1848년 2월 21일 – <공산당선언> 첫 출간

 

 독일의 사상가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산주의자들의 강령으로 집필한 <공산당선언>은 1848년 2월 21일 처음으로 책으로 만들어졌다. <공산당선언>의 핵심은 프롤레타리아의 행동 촉구이다. 자본주의는 그 모순 때문에 당연히 몰락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저절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고 마르크스는 주장했다. 결국 ‘행동’이 필요한데 이 <공산당선언>은 그 ‘행동’을 권장했고 실제 많은 사람이 이에 선동되었다. 

 <공산당선언>이 독일어가 아닌 외국어로 번역되기 시작한 것은 1871년 이후이다. <공산당선언>의 ‘가르침’이 그야말로 확실한 ‘행동’으로 옮겨진 1917년 러시아혁명 직전까지 이 책은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 책이 공산주의 강령을 넘어서 정치‧사회 교과서처럼 여겨지던 시기는 첫 출판으로부터 100년도 더 지난 1960년대부터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이 시기에 <공산당선언>은 전 세계에 퍼졌고 주 독자는 지식인들이었다. <공산당선언>이 바야흐로 고전이 된 것이다. 

러시아 울란우데에 있는, '공산당선언'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겨 러시아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레닌의 두상.
러시아 울란우데에 있는, '공산당선언'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겨 러시아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레닌의 두상.

 

 

 <공산당선언>은 머리글과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머리글은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에 떠돌고 있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제1장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에는 자본주의 생산 방식의 발생 과정, 자본주의적 착취의 본질, 자본주의의 모순과 멸망의 불가피성, 피착취 계급과 착취 계급의 투쟁이 인류 역사의 근간이며 사회 발전의 추동력이라는 주장 등이 담겨 있다. 이 장에서 마르크스는 부르주아가 아닌, 새롭게 떠오른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주역이 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2장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 주도의 공산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모든 공산주의자의 목적이라고 썼고 제3장 ‘사회주의 문헌과 공산주의 문헌’에서는 기독교 사회주의, 봉건적 사회주의, 유토피아 사회주의 등 유사 사회주의들을 비판하였다. 제4장 ‘각종 반정부당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태도’에서는 각국 공산당들의 기본적인 혁명 전략을 다뤘다. “공산주의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족쇄뿐이고 그들이 얻을 것은 전 세계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유명한 구호는 이 장 끝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카를 마르크스의 석상.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카를 마르크스의 석상.

 

 <공산당선언>의 효과가 겉으로 나타난 것은 1871년의 파리코뮌이었다. 파리코뮌은 세계 역사상 최초로 일어난,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혁명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공산당선언>의 공동 저자였던 엥겔스는 “파리코뮌이 <공산당선언>의 정신적 자식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는 말까지 했다. 1881년에는 <공산당선언>에 나타난 사회주의 이념을 내세운 독일 사회민주당의 국회의원이 열두 명이나 당선되었다. 유령과도 같던 공산주의가 책에서 튀어나와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이다.  

 1917년 러시아에서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을 거뒀다. 혁명은 성공했지만 공산주의는 러시아, 아니 소련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처럼 공산주의가 만인에게 자유를 가져다주는 세상은 오지 않았다. 1919년 마르크스의 고향 독일에서도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행동’은 있었으나 이도 실패로 돌아갔다.  

 <공산당선언>에는 여러 가지 ‘명언’이 있다. 이 ‘명언’들은 사람들을 <공산당선언>에 빠져들게 하고 그들을 선동하며 가슴에 불을 지르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 내용이 훌륭하고 교훈적이어서가 아니라 당시로는 획기적이고 감각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인간의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다.”

“부르주아는 무정한 ‘현금 지불’ 이외에 인간 사이에 다른 어떤 관계도 남겨놓지 않았다.”

“노동자는 분업과 기계화로 말미암아 단순한 도구나 부품이 되었고 매 시간 감독하는 관리자, 사용주, 부르주아, 국가의 노예가 되었다.”

“소유를 폐지하는 것이 공산주의가 처음이 아니다. 프랑스혁명에서 부르주아는 봉건적 소유제를 완전히 폐지했다. 그리고 부르주아는 생산 수단을 독점했다. 그러므로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박탈한 것은 부르주아이다.”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이 국가를 장악하기 전까지는 그 자신이 민족적이다.”

“노동 계급 혁명의 첫걸음은 노동 계급이 지배력을 장악해서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것이다.”

“노동자 계급이 권력을 획득한다면 각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가 등장할 것이다.”

“공산주의자는 모든 나라 민주주의 정당들의 단결을 위해 노력한다.”

“부르주아 지배 계급으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 벌벌 떨게 하라!”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동상.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동상. 

 

 

 “20∼30대에 한 번쯤 사회주의에 빠져들지 않으면 뭔가 부족한 사람이지만 40대 이후에도 여전히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진짜 바보이다”라는 말이 아주 오래전부터 떠돌았다. 이 말은 공산주의 세력이 아직 세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을 때도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그런데 공산주의의 실패를 눈앞에서 보고도 여전히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공산주의의 유령’이 아직도 전 세계를 떠돌며 사람들을 홀리고 있음에 분명하다.

황인희 작가(다상량인문학당 대표·역사칼럼니스트)/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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