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을 용기 있는 김덕용 감독과 애국자분들에게 바치고 싶다."

김화일 반부패국민운동지도차연합 총회장
김화일 반부패국민운동지도차연합 총회장

우남 이승만 박사의 최초의 기도' 나의 영혼을 구원해준 것처럼 이 민족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남북으로 갈라진 국토에 이념의 전쟁이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어느 한사람의 진념과 신념으로써 우남 이승만 전 대통령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역사를 잊은 국민에게는 미래가 없다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사람으로써 깊은 죄책감이 든다. 항간에 상영되었던 다큐멘터리 영화가 우리 곁을 진짜와 가짜로 다가왔다.'길 위에 김대중‘은 개봉 28일 만인 12만 여명 관객을 넘었으며 지난해 상영된 '문재인 입니다’는 5월 개봉해 11만 6559명이 관람을 하였다. '그대가 조국'은 30만이라지만 서울 경찰청 반부패. 공공범죄수사대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에 배급한 배급사 24곳 등 업체 관계자 69명을 업무 방해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를 하였다. 관객 수 조작한 혐의도 받아 진실을 왜곡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파라는 단체에서도 국민의힘도 아직까지 관람을 안 한 것으로 볼 때 현재 43만을 기록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167개 상영관에서 557개로 확대되어 상영을 하며 미국에서도 두 곳에 상영을 한다고 한다. 하와이 영화관에서도 관람할 수 있도록 김덕용 감독에게 간절히 부탁을 드려 본다. 시청자 100만을 향한 “건국의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경제 대국 미국에서 최초로 카퍼레이드를 한 우남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대한민국에서도 우남의 동상을 찾아 볼 수가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역사는 기록을 하기에 하나하나 행동과 말을 조심해야 하며, 우리는 생각하는 동물이기에 훗날을 가슴 깊이 생각을 하여야 할 것이다.

우남 이승만은 여성과 교육에 열정을 쏟았을까?

우남 이승만 박사는 한성감옥에 수감돼 있을 당시, 미국 교육제도에 관한 책을 쓴 이승만 박사는 여성도 배워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하와이에 오자마자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공학제를 실시하였다. 모티브는 경북궁 근정전과 향원정을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한인들의 자발적인 힘으로 무교파의 한인교회도 설립을 하였다. 그 당시 하와이는 "작은 대한민국" 이였던 것이다. 특히 여성에게 많은 관심을 둔 계기는 길가에 구걸하는 어린 여자아이를 보았는데 조선 사람같이 생겼으나 말을 하지 못한 것을 보고 슬픔을 감추지 못하였다. 필자는 글쓰기를 한참을 망설였지만 역사는 바로 잡아야하기에 용기를 냈다. 또 한가지는 15세 된 여성아이를 부모가 사창가를 겸한 여관에 돈을 받고 넘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장 그 곳으로 가서 말다툼을 하여 경찰이 와 어린 여성은 풀려날 수 있었다. 여관 주인은 돈과 주변에 힘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경찰 동원을 할 지혜를 가지고 말다툼을 하였던 것이다. 여성은 한인여학원에 입학을 시켰고 1918년 9월에 우남은 여학교를 한인기독학원으로 개명하면서 남녀공학제인 민족교육기관을 만들었다.

우남 이승만은 누구인가?

1875년생으로 황해도 평산도에서 삼남으로 태어났으나 두형제가 죽고 나서 장남이 되었다.

양녕대군의 16대손이며 배제학당에서 수학하며 신학문을 연마했고,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YMCA에서 활동을 하였다. 황제퇴위 음모에 가담한 사실이 발견되어 5년 7개월간 한성 감옥에 투옥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매일신문 일간지를 창간하여 주필을 지냈고 제국신문을 창간하여 편집과 논설을 담당하였다. 러일전쟁 때 사면되어 밀사로 미국에서 독립운동 활동을 하였다. 광복 이후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주도하였다. 우남은 초대 대한민국 국회의장을 거치고 1948년 국회 간선제로 치러진 제1대 대통령 선거는 재헌 국회 선거이지만 2대 선거 때는 최초로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주었다. 초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이승만 대 김구 두 명이 출마하여 이승만은 91.8%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득표수는 이승만 180표, 김구 13표로 대승을 하였다. 우남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1.2.3대 대통령을 역임하였고 4대 때에는 조병옥 민주당 후보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급사하여 단독으로 당선을 하였으나 부통령 후보인 이기봉의 3.15 부정선거가 발각되어 4.19혁명을 초래함으로써 선거는 무효가 되었고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를 하였다. 필리핀의 마르코스와 이멜다는 엄청난 금괴를 가지고 망명을 하여 하와이에 거대한 저택을 구입하며 살았지만 좌익들이 이야기한 '런승만'이라 하지만 우남 이승만 박사는 돈 한 푼 없이 이국땅에 온 것은 분명 '컴백승만'이 아닐까 생각을 가지게 한다. 기거할 집을 도움 받았고, 요양원의 병원비등, 운명하기 전에 도움을 받았던 분에게 전 재산 이화장을 빚 갚기 위해 공동으로 되어 있던, 오스트리아 출신 프란체스카 여사 집문서에 양도하는 서명 란에 힘이 없어 알아보기 힘들어 사인 옆에 도장을 찍어, 마지막 가는 길에도 은혜를 잊지 않은 우리의 건국 대통령 우남 이승만이였다.

우남 이승만 박사는 교육의 필요성을 깨달아.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내각에 전원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입각시켰지만,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전원 친일파로 내각을 구성을 하였다. 지금도 좌익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하였다고 헛소리를 하지만, 토지개혁을 하여 일제 재산을 전부 농민에게 주었다. 반대로 김일성이는 토지개혁을 한다고 실시를 하였으나 모든 재산을 공산당으로 흡수를 하였다. 하물며 천황을 찬양하는 일제잔재 불교인 '대처승'은 정통 불교인 '비구승'에게 모든 사찰을 넘기고 당장 떠나라고 대통령으로 엄명하기도 하였다. 우남은 철저한 기독교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종교의 자유를 아시는 총명하였다고 생각을 한다. 지금도 좌익들은 친일파를 청산 안 하였다는 근거를 제시하면 될 것이다. 그들에게 지금이 조선시대란 말인가 묻고 싶다. 조선시대 고종 시절 때는 글을 모르는 무학자가 국민의 90%가량 되어 있었던 것을, 사립학교를 만들어 교육에 열정을 보이며 사회에 자유 민주주의를 심어 고인이 되신 분들이지만, 오늘날 삼성의 이병철 회장, 현대의 정주영 회장, 대우의 김우중 회장 등이 존재하여, 근현대사에 획을 그어 자유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북한의 초대 최고지도자 이자 독재자 김일성이 소련과 중공의 힘을 빌려 권력욕이 너무 강하여 성급하게 일을 저지른 사건이 6.25 전쟁이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일어나, 1953년 7월 27일 22시에 기나긴 전쟁을 끝내고 휴전을 하였다. 우남은 한강철교 폭파하기 전에 경찰들에게 피난민을 보호를 시키며 폭파 후 옆에 부교를 만들어 한명의 사상자가 없이 피난을 시켰다. 이 사고로 경찰 70여명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위에서 언급 하였듯이 좌익들이 지금도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을 지우려고 '런승만'이라고 하지만 전쟁 중에도 현장 연설을 279회를 하였던 우남이다. 일평생을 조국의 안위와 국민들에게 헌신과 봉사한 위대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사목지신"의 정신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과 산업화. 민주화 두 마리 토끼를 잡으신 박정희 대통령, 불가능을 가능으로 실천한 영웅!

우남 이승만 대통령이 철로를 놓았다면, 철길을 따라 열차를 달리게 한 박정희 대통령을 빼 놓을 수가 없다. 미 8군 밴 플리트 사령관은 '이승만은 그의 몸무게만큼의 다이아몬드 같은 존재이며, 그는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학자, 사상가, 정치가, 애국자중의 한사람이다'라고 말을 하였다. 폴 케네디는 '박정희는 세계 최고빈곤 국가를 불과 20년 만에 세계 정상급 국가로 만든 인물이다'. 또한, 엘빈 토플러는 '민주화는 산업화가 끝난 후에 가능하다. 이런 인물을 독재자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박정희라는 모델은 누가 뭐라고 말해도 세계가 본받고 싶어 하는 모델이다' 세계적인 인물 중 한명인 키신저는 '19-20세기 세계적 혁명가들 5인중 경제발전에 기적을 이룩한 사람은 오직 박정희 한사람이었다. 그는 산업화 후에 민주화를 이룩한 민주화의 토대를 다진 인물이라서 나는 그를 존경한다'라고 찬사를 하였는데, 왜 이념에 쌓인 좌익들은 폄훼 하는지 모르겠다. 중공의 등소평은 '흑묘 백묘'란 슬로건으로 농민 사회를 산업화의 길로 건설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이나 박정희 대통령의 조국 사랑은 말로 다 형용 못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인 고속도로 개통식에서 '내가 살아 있는 이 한 세대는 한 순간이다. 그러나 민족과 국가는 영원하다. 오늘 내가 밤새워 조국 근대화를 위해 일하는 것은 오늘을 잘 사고자 함이 아니다'. 두 영웅은 불가능의 기적을 만들어낸 주역들이다. 우리는 평생 고마워하며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흔해 빠진 기념품 시계하나도 없을까?

비욘드 스토리를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일본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두발의 핵폭탄을 맞고 항복을 선언을 한 뒤에, 1945년 9월 2일 동경 만에 정박한 미 해군 전함 미주리 함상에서, 2차 대전 막을 내리는 역사적인 항복 조인식이 거행했다. 연합군 최고 사령관 맥아더, 일본 대표인 시게미츠 마모르가 서명한 것을 사진으로 담고, 기사화를 하였던 사람이 우남 이승만이었다. VOA기자였던 것이다. 지금도 미국 국무성에서 관리하는 언론이 Voice of America이다. 미국 방송이면서 미국에서는 뉴스를 송출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2차 대전 중립을 지켰던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인하여, 전쟁에 정식으로 출전을 하여, 기나긴 시간 동안 자국 군인 407.000명을 희생하였다. 항복 문서를 받는다면 당연히 미국인 기자가 가야하나, 그 곳에 이승만 기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전 세계에 특파원들이 있고, 그 나라에 번역되어 기사가 송출되는 것이다. 필자는 비욘드 스토리를 들으면서 또 다른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 시계를 구하고 싶어 부탁을 하였더니, 선물용 시계 같은 것을 만들지 않는 이유는 시계 만들 돈으로 밀가루를 사면 배불리 먹을 수 있는데, 이런 것은 사치품에 불과하니 참모들에게 거절을 하였던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 11년 집권과 박정희 대통령 18년 집권에 있었던 두 영웅들의 조국과 국민에게 얼마나 헌신과 봉사를 하였는지 전교조 교육을 받은 세대라고 하더라도 역사관만큼은 정확히 알았으면 좋겠다. 그동안 정치 지도자들의 부정부패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그리고 특히 여성분들이 오늘날 있기까지 우남의 참교육 정신을 이어 받아 기권하지 말고 투표를 하여 애국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해 본다.

얼마 남지 않은 완벽한 정권교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2024년 4월10일 22대 총선이 다가온다. 정치란 덜 나쁜 사람을 골라 뽑는 과정이다.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정치인들은 싫다고 하지만, 투표를 포기한다면 제일 나쁜 인간들이 다해먹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리는 이명박 정권 때 수입소를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고, 국민을 상대로 얼마나 가짜뉴스를 보았는가?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사드 반대로 성주 참외가 전자파에 튀겨져 먹으면 전자파를 흡수한다고 하였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수입소가 최고치를 넘으며, 성주참외는 6014억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우리 국민들은 아주 현명해졌다. 윤석열 정부 들어와 후쿠시마에 잡은 바닷물고기를 먹으면 치명적인 방사능물질에 노출된다고 민주당의 이재명은 전국을 돌면서 홍보하였지만 어민만 힘들게 하는 꼴이 되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 꼭 조국과 국민을 위한 인물에 한 표를 던지는 용기 있는 자세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을 한다. 건국전쟁을 보면서 거짓과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바보같이 세 번의 눈물을 흘리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은 역사에 남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역대 대통령들도 장단점이 있겠지만 거론한 네분은 정치인이 아니라는 점이 눈에 띠는 대목이다. 정치 지도자의 덕목은 자기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며 신념과 지식 및 지혜 그리고 전략을 두루 갖추어야할 것이다. 이 칼럼을 용기 있는 김덕용 감독과 애국자분들에게 바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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