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적으로 아첨하는 기술을 배워라. 평소라면 명예롭지 못한 행동이지만, 공직에 출마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후보자는 카멜레온처럼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을 맞추고, 필요하다면 표정과 말투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

#. 총선 시즌 본격 개막

출근 시간에 원색의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굽신거리며 명함 돌리는 것을 보니 바야흐로 총선 시즌이 개막되었음을 실감한다. 언론에선 연일 개혁신당 얘기가 화제이고, 거리마다 정당의 치적을 홍보하는 현수막이 나부낀다.

칼 포퍼는 피를 흘리지 않고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수 있는 정치제도가 갖추어져 있다면 그 국가는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국가라고 설파했다. 한국의 정치 현실은 늘 살벌했다. 건국 대통령은 4·19 의거로 하야, 다음 대통령은 5·16 군사 정변으로 강퇴, 그다음 대통령은 영구차에 실려 청와대를 나온 것이 그 증거다.

그 시절과 비교하면 시대가 참으로 진보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제 누구도 의거·정변·사태 등 정치적 격변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는가 했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노무현·박근혜 대통령 재임 시절 탄핵 소추 건을 보라.

자유민주 선거의 합법적 절차에 의해 당선된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국민의 대표들이 임기 중에 탄핵 소추를 통과시키는 일이 두 차례나 벌어졌다. 이게 유행이 되면 어느 대통령인들 소신껏 국정을 운영할 마음이 생겨나겠는가.

각설하고, 노무현·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이 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존재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의원이다. 대통령은 국회 해산권이 없지만, 국회는 대통령 탄핵소추권이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대통령 권한은 크게 축소, 국회 권한은 대폭 확장. 이것이 6공 헌법의 기본 정신이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존재가 국회의원이다. 6공 헌법구조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마음만 먹으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담합하여 국회 독재가 가능한 나라가 되었다. 그러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유권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면 어떤 기적이라도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 이 나라 선거판이다.

 

#. 로마의 전략가가 제시한 선거 승리 비법

2012년 오바마 재선 캠프가 가동됐을 때 참모들이 열심히 탐독한 책이 화제가 되었다. 촌음을 아껴야 할 선거판에서 선거운동 접고 독서라니.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취재해 보니 문제의 책은 지금으로부터 2000년쯤 전에 활약했던 로마의 군인 출신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쓴 선거에서 이기는 법이었다.

사연인즉 기원전 64, 공화정 시대의 로마에서 국가 원수에 해당하는 콘술(집정관) 선거가 열렸다. 이 선거에 로마 최고의 연설가로 명성을 날리던 마르쿠스 키케로가 출마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 퀸투스의 형이다.

로마의 군인 출신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쓴 『선거에서 이기는 법』의 국내 번역본.
로마의 군인 출신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쓴 『선거에서 이기는 법』의 국내 번역본.

 

학자이자 철학자, 정치가로서 명성은 높았지만, 이상주의자였던 형이 출마하자 현실주의자였던 동생 퀸투스는 걱정이 되었다. 퀸투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휘하의 군단장으로 갈리아 전쟁에 참전했고, 5,000의 병력으로 5만의 반란군을 막아내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전략가였다.

퀸투스가 보기에 형은 너무 고상한 성격이어서 눈 뜨고도 코 베이는 선거판에서 자칫 잘못하다간 낙선하면 가문의 수치로 남게 될 것으로 우려했다. 그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58가지 비법을 정리하여 형에게 보냈다. 이 비법을 탐독하고 실행한 마르쿠스 키케로는 무난히 콘술에 당선되어 기대에 보답했다.

퀸투스의 처방전은 어미·아비 팔아먹으라는 말은 없지만, 상대의 뇌물 사건이나 성 추문을 적극 활용하고, 자신의 장점은 부각하고 단점은 숨기며, 표가 될 만한 것은 총체적으로 동원해야 한다는 무자비하고 뻔뻔한 내용이 담긴 현실적 지침서였다. 문제의 책이 몇 년 전 한글로도 번역 출간되어 국내에도 알려지게 된 것이다(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 저, 매일경제 정치부 해제, 이혜경·필립 프리먼 역, 선거에서 이기는 법, 매일경제신문사, 2020).

 

#. 로마 전략가의 선거 승리 처방전

목 빠지게 공천을 기다리는 예비후보들은 대체 무슨 내용이 들어 있을까궁금할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저기 현장 뛰어다니기 바쁜 현실이다 보니 오바마 캠프처럼 운동 작파하고 독서에 나설 수도 없고. 이에 퀸투스가 형에게 조언한 몇 가지 사례를 대신 소개한다.

평범한 유권자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후보에게 무엇보다 크게 감동합니다. 따라서 유권자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 매일 노력하십시오.”(135)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라고 말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솔직한 거절보다 우아한 거짓말을 듣고 싶어하니까요.”(143)

필사적으로 아첨하는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평소라면 명예롭지 못한 행동이지만, 공직에 출마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누군가를 매수하기 위해 아첨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환심을 사 정치적 동지를 만들기 위한 방편이라면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후보자는 카멜레온처럼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을 맞추고, 필요하다면 표정과 말투를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135)

지지자들에게 유익한 조언을 하고 충고를 구함으로써 그들이 계속 당신에게 호의를 가지도록 힘쓰십시오. 지금은 당신이 베풀었던 친절에 보답받을 때입니다. 당신에게 빚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이야말로 선거에서의 지지로 빚을 갚을 때라는 점을 꼭 상기시키십시오.”(31)

귀족 계급, 특히 과거 집정관을 지냈던 사람의 지지가 당신에게 큰 힘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이들을 내 편으로 만들고 싶다면, 반드시 당신이 자신들과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합니다.”(31)

가족을 비롯해서 당신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그들 모두가 당신의 성공을 바라고 당신을 지지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친인척이나 이웃, 의뢰인, 과거에 데리고 있던 노예, 현재 부리고 있는 하인까지 모두 포함됩니다. 선거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악의적인 소문은 대부분 가족과 친구에게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71)

특수 이익집단, 지역공동체 조직, 외딴 지역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들의 지도자를 당신의 친구로 만들면, 나머지 사람들도 당신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97)

그가 정리한 비법은 내용이 쓰인 지 2100년이 지난 오늘날에 봐도 파괴력 있고 효과적인 내용이다. 오죽했으면 일부 평자들은 이 책을 마키아벨리의 명저인 군주론의 선조 격이라고 극찬했겠는가.

 

#. 선거는 전쟁이다. 이겨야 한다

선거는 전쟁이다. 전쟁이니까 무조건 이기고 봐야 한다. 패배한 후 이러쿵저러쿵 왈가왈부 해 봤자 죽은 자식 거시기 만지기일 뿐이다. 필자는 선거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고 있다. 이번 총선은 예전 총선과는 그 중요성이 완전히 다른 선거라는 사실, 자유 우파가 패하면 대한민국은 소멸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사실 말이다.

선거는 전쟁이다. 따라서 이겨야 한다. 지고 나서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다. 사진은 장창보병 밀집대형으로 승리를 구가한 그리스의 팔랑크스 전술.
선거는 전쟁이다. 따라서 이겨야 한다. 지고 나서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다. 사진은 장창보병 밀집대형으로 승리를 구가한 그리스의 팔랑크스 전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승리하여 대한민국을 지속 가능하도록 만들 것인가?

정치공학자들은 복잡한 논설을 늘어놓지만, 선거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간단하다. 우리나라 총선은 후보가 두 명이든, 10명이든 상관없이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당선되는 시스템이다. 우선 지역구에서 상대 후보보다 한 표라도 더 얻으면 되고, 상대 정당보다 의석수가 한 석이라도 더 많으면 승리다.

이를 위해서는 단일 대오 형성이 급선무다. 지난 2022년 치러진 20대 대선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는 이재명 후보보다 247,077표를 더 얻어 간발의 차로 당선됐다. 이 대선에서 일등 공신은 803,358표를 득표하여 3위를 차지한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였다.

만약 심 후보가 사퇴했다면 그의 지지표는 성향으로 볼 때 이재명 후보에게 돌아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랬다면 윤석열 후보의 당선은 물거품이 되었을 것이니, 심상정의 역할이 침으로 대단했다. 우리 쪽은 후보 단일화, 상대방은 후보 난립. 이것이 가장 손쉬운 선거 승리 비법의 제1번 아니겠는가.

 

#. 개혁신당(3지대 통합신당) 등장의 후폭풍

이번 총선 예측에 흥미로운 변수가 본격 등장했다. 예견됐던 일이지만, 이낙연·이준석 등이 중심이 된 개혁신당즉 제3지대 통합신당이 현실화하면서 셈법이 꽤나 복잡해졌다.

지금까지 총선에서 여야 대표 정당 이외에 제3 세력이 재미를 본 것은 1980년대 후반 등장한 3김 정당 시절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민정당이 죽을 쑨 반면,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대중의 평화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약진했다. 이 시기에 제3 세력이 맹위를 떨친 이유는 3김이 영남·호남·충청 등 연고 지역을 확고부동하게 장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1세기 중반을 향해 달리는 이 시대에도 지역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주자성리학의 나라이다 보니 정치판에선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무시로 벌어진다. 그동안 선거 때마다 영호남은 확고한 지역 기반으로 인해 심플하게 정리가 끝나는 지역이었다.

이번 총선은 계가가 좀 복잡해질 것 같다. 이낙연 총리가 더불어민주당에서 태를 가르고 나오면서 호남의 지역 프리미엄이 이낙연 당(개혁신당이재명 당(더불어민주당) 중 어느 쪽으로 쏠릴 것인지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로 등장했다. 게다가 수도권은 기백 표로 당락이 갈리는 지역이 많다. 개혁신당이 수도권에서 여야 어느 쪽 표를 잠식하느냐에 따라 총선 구도 자체가 뒤집힐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개혁신당은 여야 모두에게 부담스런 존재로 부각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들이 약진하여 원내 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할 정도로 당선자를 내면 더더욱 흥미진진한 일들이 많아질 것이다.

개혁신당은 여야 중 어느 쪽 표를 더 많이 잠식할까, 그들은 원내 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할 정도로 약진할 수 있을까. 선거 방정식이 복잡해지고 있다. 사진은 개혁신당에 참여한 이준석, 이낙연.
개혁신당은 여야 중 어느 쪽 표를 더 많이 잠식할까, 그들은 원내 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할 정도로 약진할 수 있을까. 선거 방정식이 복잡해지고 있다. 사진은 개혁신당에 참여한 이준석, 이낙연.

 

 

#. 한미동맹 폐기 외치는 세력과 손잡은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선거를 코앞에 두고 민주개혁진보 선거연합이란 희한한 제도를 들고나왔다. 즉 민주당이 녹색정의당, 통합진보당의 후신인 진보당과 비례 위성정당, 지역구 선거연합을 통해 선거에서 승리하겠다는 구상이다. 민주·개혁·진보 등 좋은 용어는 다 모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이 선거연합은 좌파 성향의 반미·친북 세력 정치화의 총본산이나 다름없다.

이 연합전선이 이목을 끄는 이유는 한미동맹 파기를 주장하는 세력이 민주당이 추진하는 야권 비례 위성정당의 다수 지분을 차지하여 국회에 진출할 가능성 때문이다. 여차하면 이적단체로 해산당한 2의 통합진보당이 재림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 날로 심각해지는 개표 신뢰성, 대안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갈 점은 21세기 AI(인공지능)가 판을 치고, 우주선이 태양계를 벗어나 비행하는 시대에 민주주의의 기본인 개표 신뢰성이 능멸당하는 현실이다. 그간 개표 조작, 혹은 개표 부정을 지적하는 여러 주장이 제기됐다. 게다가 해커들의 능력이 점점 고도화되고,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개표 신뢰성은 더더욱 의심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러시아는 이미 2016년 미국 대선에서 AI를 사용해 페이스북·트위터에 가짜 뉴스를 퍼뜨려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다. 그중에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 대한 뉴스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부 전문가는 러시아의 가짜 뉴스가 유권자들에게 영향 미쳤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의심 사례는 2017년 프랑스 대선, 2018년 브라질 대선에서도 등장한 바 있다.

더욱 우려를 자아낸 것은 20223월 러시아 해커들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AI를 사용해 컴퓨터 시스템을 해킹, 투표 결과 조작을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례가 밝혀지면서 AI 전문기업인 오픈AICEO인 샘 알트먼은 AI가 선거에서 강력하고 잠재적 피해 줄 수 있다고 우려하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특정 세력이 AI를 이용해 거짓 정보를 제공하고 여론 조작으로 선거에 엄청난 파급효과 야기할 경우 민주주의는 어떻게 수호할 수 있을까. 다수의 유권자가 개표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과연 자유민주주의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까.

개표 부정, 부정선거 문제는 이번 총선에서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될 수도 있는데, 정부는 어떤 특단의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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