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침묵모드

의사단체들이 정부의 대규모 의대 증원 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설 연휴 이후 ‘파업’ 등의 단체행동을 추진하고 있으나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필수의료부족과 같은 근본문제 및 의사단체의 입장에 대한 정책적 견해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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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파업 예고’에 민주당은 눈치보기 돌입?...국민의힘은 ‘밥그릇 지키기’ 비판

의사들 편에 서서 정부의 증원정책을 비판하는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도 지난 2020년 10년 동안 4천명을 늘리는 의대증원 방안을 추진했다가 의사단체들의 반발에 밀려 포기한 적이 있다. 의사 편에 서서 정부 정책을 비판한다면 자기모순에 빠지는 격이 된다. 결국 4.10 총선을 앞두고 의료계와 국민여론 눈치보기에 돌입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12일 의사단체들의 집단행동 예고에 대해 강한 수위의 비판 논평을 냈다. 정광재 대변인은 "또다시 파업으로 응수한다면 '밥그릇 지키기' '국민 건강을 볼모로 한 투쟁'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며 "국민의 고통을 먼저 살펴달라"고 호소했다. 정 대변인은 "그동안 의사 단체는 의대 증원을 추진할 때마다 파업을 무기로 반대해 왔고, 이는 현재 의사 부족과 필수·지역의료 공백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그동안 의대 증원과 관련해 지난 1년간 27차례에 걸쳐 논의했고, 의료계의 요구사항을 정책 패키지에 담는 등 무수한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정부의 의료계 여론청취 노력을 강조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는 의료계 반박을 재반박한 것이다.

정부와 의사단체들 정면충돌로 치달아...향후 사태 주도권은 ‘대전협’이 쥘 듯

정부 현재 3058명인 의대 정원을 2000명 늘어난 5058명으로 증원해 2025년부터 2029년까지 5년 동안 적용할 계획이다. 그럴 경우 2031년부터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가 추가 배출될 전망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산하 16개 시도 의사회는 오는 15일 전국 곳곳에서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궐기대회를 추진하고 있다. 17일 서울에서 전국 의사대표자회의를 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인턴(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3~4년 동안 전공지식을 익히는 전공의들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이날 오후 9시 온라인으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의협은 지난 7일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비대위 전환 방침을 정하면서 "정부가 싫증난 개 주인처럼 목줄을 내던지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맹비난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사들의 목소리를 집단이기주의로 폄하하는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는 게 다수 의사들의 인식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급격한 의대 정원 증원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게 되는 전공의들의 반반이 거센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향후 사태의 주도권은 의협이 아니라 대전협이 쥐고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대전협은 이미 전공의 1만여명의 88%가 집단행동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설문 결과를 발표하는 등 전의를 숨기지 않고 있다.

결국 정부와 의료계는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의료계에선 강경발언이 쏟아지고 정부는 근로자가 아닌 의사들의 집단행동이나 파업은 원천적으로 불법이라고 규정, 강경대응 방침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의 극단적 발언= “3명이 희생돼도 3천명이 희생돼도 모두 정부 탓”

[사진=노환규 전 의협 회장 페이스북 캡처]
[사진=노환규 전 의협 회장 페이스북 캡처]

SNS를 통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온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은 지난 11일 페이스북에서 극단적인 발언을 했다. 의사들이 파업에 돌입할 경우 이로 인해 환자가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노 전 회장은 “흥미롭다. ‘결국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들의 비밀’에 나오는 지혜로운 방법과 모든 면에서 반대되는 방법으로 의대 증원 정책을 밀어붙였다. 책에 나오는 어리석은 방법을 모두 동원한 것이다”면서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 문제는 그 재앙적 결과가 모두 국민의 몫이라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2000년 의료대란 때 지인으로부터 의무기록 review를 부탁 받은 적이 있었다. 타질환으로 치료 중에 사망한 그 지인의 친척의 중환자실 의무기록을 보니, 소변배출이 급속히 줄어들고 심각한 I/O imbalance가 지속되는 상태가 의사들이 자리를 비웠던 수일간 방치되었었다”면서 “환자는 사망했지만, 그리고 의사들은 인과관계를 알지만 그것을 증명하기는 어렵다.

그런 비극들이 다시 생겨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00년 의료대란으로 인한 공백사태로 사망한 지인의 친척 사례를 거론하면서 이번 파업에서도 의사가 파업에 참여함으로써 무고한 환자가 사망하는 ‘비극들’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또 “단 한 명의 생명이 희생되어도 정부 탓, 정확히는 김윤/박민수/윤석열의 책임이고 단 두 명의 생명이 희생되어도 책임소재는 같다. 세명이 희생되어도 같고, 30명, 3천명이 희생되어도 같다”고 강조했다.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삼아 정부를 겁박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박민수는 보건복지부 2차관이고, 김윤은 그동안 의대 정원 증원을 주장해온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입장= 노동자가 아닌 의사나 전공의들의 파업은 원천적으로 불법...‘의사면허 취소’ 경고

복지부와 법무부, 경찰청 등은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해 범정부적 대응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의사나 전공의들이 파업에 나설 경우 의료법 등에 입각해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이에 불응하는 경우 ‘의사면허 취소’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이미 의협 집행부에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을 내린 상태이다.

'의료법' 59조에 따르면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집단 휴업해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면 복지부 장관이나 지자체장이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업무개시명령'을 할 수 있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자격 정지뿐만 아니라 3년 이하의 징역형도 받을 수 있다. 나아가 '금고 이상의 실형·선고유예·집행유예'를 선고받았을 때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2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5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2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5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파업에 참여한 의사가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하게 되면 징역형을 살고 난 뒤 의사 면허를 박탈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한 의사가 소속된 의료기관도 1년 범위에서 영업이 정지되거나 개설 취소, 폐쇄에 처할 수 있다.

응급의료법, 공정거래법, 형법(업무방해죄) 등으로도 면허를 취소하는 게 가능하다. '응급의료법'은 의료기관장이 종사자에게 비상진료체계 유지를 위한 근무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그 명령을 위반해 환자에게 중대한 불이익을 끼친 경우 6개월 이내 면허·자격정지 혹은 취소처분 등이 가능하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부당한 경쟁 제한, 각 사업자의 활동 제한 등의 금지행위를 할 경우 사업자단체(의사단체)는 10억원 이내 과징금을 물게 되고, 단체장 등 개인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000년 의약분업 추진으로 의협 차원의 집단휴진 사태가 벌어졌을 당시에도 의협 회장은 공정거래법과 의료법 위반으로 면허가 취소된 바 있다.

최악의 사태 막기 위한 협상 재개돼야

무엇보다도 의협이나 대전협은 ‘노조’가 아니라 ‘직능단체’라는 점에서 파업권을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의협 회원의 대다수인 개원의는 노동자가 아니고, 전공의들도 노조 소속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전공의들은 수련병원과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는다.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에 따른 '수련 계약'을 체결한다. 따라서 전공의들은 2020년 의료계 집단행동 당시에도 특정일에 휴가를 쓰거나, 사직서를 제출하는 방식 등으로 집단행동에 참여했다.

다수의 의사나 전공의들이 파업에 참여하고, 정부가 면허취소를 단행하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협상이 재개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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