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돌연 당내 친명계와 친문계 간의 공천 갈등 진화에 나서 그 진짜 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이재명 페이스북 캡처]
[사진=이재명 페이스북 캡처]

이 대표는 지난 9일 페이스북에 ‘단결만이 답입니다’ 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친명 비명 나누는 것은 소명을 외면하는 죄악이다”면서 “시스템을 통해 능력, 자질이 국민의 기대치와 눈높이에 부합하느냐가 유일한 판단 기준이다”고 밝혔다. 또 “지금 이 순간도 꼼꼼하게 우리 사이의 빈틈을 파고드는 이간계를 경계한다”면서 “친명이냐 친문이냐 하며 우리를 구분 짓는 행위 자체가 저들의 전략이다. 오직 주어진 소명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임혁백이 친명-친문 갈등 폭발시켰는데...이재명은 ‘저들의 전략’이라고 선문답해

친명과 친문을 구별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알기 힘든 ‘저들의 전략’이라고 하면서 계파갈등을 극복하고 ‘단합’하자는 게 핵심 메시지인 셈이다.

이 메시지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무엇보다도 친명과 친문을 구별해 갈등을 폭발시킨 이는 임혁백 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이었다. 임 위원장은 지난 6일 1차 경선 발표 브리핑에서 ‘명예혁명 공천’을 거론하며 “본의 아니게 윤석열 검찰 정권 탄생에 원인을 제공하신 분들 역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달라”고 말함으로써, 친문계의 격렬한 반발을 초래했다. 임 위원장은 구체적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으나 당내에선 임종석‧노영민 전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 등 핵심 친문들을 겨냥한 발언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이재명 대표가 지난 4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로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하고 30여분 동안 단독 대화를 갖고 당 지도부와 오찬을 함께 한 지 이틀 만에 임 위원장이 판을 깨는 듯한 발언을 한 셈이다.

그런데 이 대표는 ‘저들의 전략’ㅇ;라고 선문답을 함으로써 임 위원장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 하지만 친명계 내에서 친문 책임론이 제기되는 과정을 따져보면 ‘저들의 전략’이 아니라 ‘친명계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친명계 지도부, 임종석의 중·성동갑 출마 불가 방침 정한 뒤 임혁백 ‘친문 퇴진론’ 나와?

친명계 지도부가 지난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총선 전략회의를 열고 임 전 실장의 중·성동갑 출마는 안 된다는 방침을 정한 이후 임 위원장이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권 탄생 책임론’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8일 채널A 방송 화면 캡처.[사진=채널A 캡처]
8일 채널A 방송 화면 캡처.[사진=채널A 캡처]

5일 친명계 지도부의 회의에 이 대표는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친명계는 임 전 실장 퇴출 명분으로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과 소득주도성장 정책 실패로 정권을 내준 만큼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내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문재인 정부의 첫 대통령비서실장 출신으로 당내 친문 핵심 인사인 임 전 실장이 전면에 나설 경우 총선에서 문재인 정부의 책임론이 더 거세질 수 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친명계 지도부의 이같은 입장이 알려진 이후, 임 전 실장과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시절 대변인을 맡았던 고민정 의원까지 일제히 반발했다. 임 전 실장은 페이스북에서 "이재명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양산 회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여기서 더 가면 친명(친이재명)이든 친문이든 당원과 국민께 용서받지 못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사진=채널A 캡처]
[사진=채널A 캡처]

문재인, ‘친명-친문’ 프레임 안타깝다고 지적...이재명, 분열은 필패라고 화답해

임 전 실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친명-친문 프레임이 안타깝다'며 '우리는 하나고 단결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고, 이재명 대표는 '용광로처럼 분열과 갈등을 녹여내 총선 승리에 힘쓸 것'이라고 화답했다"며 "지금부터는 단결은 필승이고 분열은 필패"라고 강조했다. 4일 양산 회동에서와 다른 이 대표와 친명 지도부의 입장을 비판한 것으로 풀이됐다.

특히 임 전 실장은 지난 7일 채널A에 출연해 “대선 직전까지 문재인 정부의 국정 지지율이 45~47%에 이르렀다. 그런데 대선 패배와 윤석열 정권의 탄생 책임을 문재인 정부로 돌린다? 사실도 아니고 동의할 수가 없다”고 반발했다. 한 마디로 ‘이재명 대표가 잘못해서 패배해놓고 왜 문재인 정부 탓을 하고 있는 것’이냐는 취지의 반박인 셈이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가 끝난 이후에는 패배한 후보자가 ‘자신의 책임’이라며, 패배의 탓을 자기에게 돌리는 것이 관례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 대표는 그런 관례를 무시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대표와 친명계 지도부가 윤석열 정권 탄생에 대한 책임을 문 전 대통령과 친문계에게 지우려는 것은 전형적인 ‘책임 전가’라는 것이다.

친문 책임론은 이재명과 친명계의 전형적인 ‘책임 전가’ 비판 나와

이에 대해 8일 채널A의 김진 앵커는 “이 대표는 대선 패배 후 통상적인 사과를 했겠습니다만, 바로 당대표에 출마하고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지금 다시 당대표로서 공천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모습과 연결돼서 ‘대선 패배 탓은 후보에게 있지 아니하고 상대 후보를 발탁한 전 정부에게 있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어서, 상당히 뭔가 좀 어색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송영훈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은 “윤석열 정권 탄생에 원인 제공한 분들 1순위는 이재명 후보, 2순위를 꼽자면 이재명 후보 캠프의 핵심 관계자들 아니겠냐?”고 했다. 송 위원은 친명계 좌장으로 불리는 정성호 의원의 발언을 인용하며 “정성호 의원이 ‘정권 재창출 실패 핵심 역할을 했던 분들 책임져야 된다’고 그랬는데, 일종의 자충수를 얘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윤석열 정권 탄생에 민주당 의원 164명이 전부 책임이 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서정욱, “정권교체 책임 1순위는 이재명, 2순위는 김혜경씨 법카 녹취록...임종석을 희생양 삼아”

서정욱 변호사도 8일 채널A에서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이었지만, 임종석 실장을 변호하게 된다”면서 “임 실장이 비서실장을 한 때는 2017년 5월부터 2019년 1월까지였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50% 딱 넘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전 실장이 비서실장을 맡았을 때는 정권 초기였기 때문에, 임 전 실장이 정권 교체에 책임이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서 변호사는 정권 교체의 책임에 대해 “1위는 이재명 대표, 2위는 김혜경 씨의 법카 녹취록, 3위는 조추박”이라고 단언했다. 조국 전 장관, 추미애 전 장관, 박범계 전 장관 등 3명의 법무부 장관이 당시 윤석열 총장을 팰 때마다 지지율이 쑥쑥 올라갔다면서, 그들을 책임자로 보는 것이 상식이라고 강조했다. 즉 “임종석 실장을 희생양 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재명, 임종석과 노영민 공천 요구에 대해 답변하지 않아?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도 8일 오후 채널A에 출연해 “지난 4일 양산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하고 이재명 대표 회동에서 문 전 대통령이 ‘21대 총선에서 내 측근들도 불출마한 사람들이 많다’면서 친명들에 대해 불출마해야 된다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 전 대통령이 친명의 희생을 요구하는 동시에 임종석 전 실장과 노영민 전 실장에 대해 공천을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이 대표는 일절 답이 없었다”고 이 위원은 후일담을 전했다.

이 위원은 “이재명 대표는 이번 총선을 통해서 친명계 일색의 정당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강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거기에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는 사람이 임종석 전 실장”이라며 “임종석 전 실장은 친문계를 뭉쳐낼 수 있는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즉 “이 대표가 친문계를 뭉칠 수 있는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 몇 명만 쳐내면 친문계는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이재명 대표 측의 판단”이라고 이 위원은 분석했다.

임종석 공격은 8월 전당대회의 ‘친문 구심점’ 제거 차원?

[사진=채널A 캡처]
[사진=채널A 캡처]

민주당 안팎에서 민주당 친명계 지도부와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까지 한결같이 임 전 비서실장을 겨냥한 이유가 ‘친문 구심점 없애기’ 차원이라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번 총선보다도 총선 후 8월 치러질 전당대회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더 많다.

당 관계자는 “임 전 실장이 원내 진입 후 8월 전당대회에서 친문·86그룹을 대표해 친명계 대항마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며 “친명계가 미리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의도”라고 했다. 당내 86그룹 대표 격이기도 한 임 전 실장이 총선을 통해 원내 재진입에 성공할 경우 친문 세력과 86그룹을 규합해 이 대표의 차기 당권 또는 대권 행보의 경쟁자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임 전 실장은 지난 7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표의 경쟁자가 될 거라서 친명이 압박한다 이런 해석도 나오던데?’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제가 벌써 그렇게 컸나요? 괜한 억측들”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총선 승리가 누구보다 절박한 사람은 이재명 대표고, 민주당 지도부”라며 “지금은 모두가 단결해서 총선 승리만 보고 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을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과 이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먼저 제기했지만, 임 전 실장을 필두로 한 친문계의 반발 뿐만 아니라 여론의 비판에 부딪힌 것이다. 대선 패배의 제1 원인이 ‘이재명 대표’라는 여론의 일반적인 인식이 이번 기회에 오히려 확인된 셈이다.

친문 책임론에 대한 당내 역풍이 예상보다 거세?...공천 리스트 나와 봐야 이재명의 본심 알 수 있어

[사진=채널A 캡처]
[사진=채널A 캡처]

따라서 이 대표가 “친명, 비명 나누는 것은 소명을 외면하는 최악”이라고 한반 물러선 자세를 보인 이유는 친문계 책임론에 대한 당내 역풍이 당초 예상보다 거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공천 갈등을 둘러싼 계파 갈등이 심각해지자 진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임 전 실장은 10일 페이스북에서 "다시 한번 양산 회동의 정신과 원칙을 강조한 이 대표의 호소에 깊이 공감한다"며 화답해 눈길을 끌었다. 일단 표면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미봉책’이라도 수용해서 공천을 받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임 전 실장은 "총선에서 윤석열 정권을 준엄하게 심판해야 한다는 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소명"이라면서 "매 순간 당의 단결을 위해 노력하고, 오직 국민의 승리만 보고 가겠다"고 적었다.

하지만 비명계에 대한 이 대표의 자객 공천이 멈출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는 드물다. 설 연휴 이후에 구체화될 민주당 공천 리스트를 보면 이 대표가 진정으로 계파 갈등을 해소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지 여부가 확인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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