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원칙과 도덕성을 상실한 공천 결과를 발표해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민주당 험지로 꼽히는 부산, 울산, 충청 등의 13곳 지역구를 단수 공천 지역으로 발표하면서,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국민소통수석과 대변인을 지낸 박수현을 공주시·부여군·청양군에 단수 공천했다. 이는 두 가지 이유로 다수 국민이 이율배반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2019년 8월 9일 당시 UN해비타트 한국위원회 박수현 회장이 9일 오전(현지시간) 케냐 나이로비 UN사무국에서 열린 "UN 2019 세계 청년의 날" 기념행사에서 대표연설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2019년 8월 9일 당시 UN해비타트 한국위원회 박수현 회장이 9일 오전(현지시간) 케냐 나이로비 UN사무국에서 열린 "UN 2019 세계 청년의 날" 기념행사에서 대표연설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친문 용퇴론’ 밀어붙이는 이재명, 왜 박수현 전 수석만 단수 공천해?

첫째, 이재명 대표가 4.10총선 공천과 관련해 ‘친문 용퇴론’을 밀어붙이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유독 박수현 전 수석에게만 단수 공천이라는 파격적 호의를 베풀었기 때문이다.

임혁백 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은 6일 1차 경선지역 및 단 수공천지역 발표를 마친 뒤 "선배 정치인은 후배들을 위해 길을 터줄 수 있도록 책임 있는 결정을 부탁한다"면서 "윤석열 검찰 정권의 탄생 원인을 제공한 분들 역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친문 인사들의 자발적 총선 불출마를 노골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이같은 임 위원장의 발언은 이재명 대표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친명계들은 최근 임종석·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충청권이 험지이므로 압도적 경쟁력을 가진 후보의 경우 단수 공천을 한다는 입장 이다. 공주시·부여군·청양군의 현역은 국회 부의장을 지낸 국민의힘 중진인 정진석 의원이다.

국가적 망신 초래한 ‘사기 논란’ 당사자를 굳이 단수 공천해

둘째, 국민의 분노를 촉발시키는 대목이다. 박수현 전 수석은 국가적 망신을 초래한 ‘사기 논란’에 연루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초대 회장을 지낸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가 유엔 산하 기구를 사칭해 수십억원의 기부금을 거뒀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박 전 수석은 단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 유엔의 공식 문건이 공개돼도 오히려 오리발을 내밀면서 궤변을 펴왔다.

박수현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 초대 회장이 지난 2020년 9월 일요TV와 1주년 기념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일요TV 캡처] 
박수현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 초대 회장이 지난 2020년 9월 일요TV와 1주년 기념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일요TV 캡처] 

국민의힘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는 지난해 8월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가 본부와 기본 협약도 없이 산하 기구인 척 행세해 4년간 44억원의 기부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특위는 이같은 의혹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유엔해비타트는 유엔해비타트를 대표하는 시민사회단체나 비정부단체를 지지, 또는 승인하지 않는다"는 유엔해비타트 본부의 공식 답변서도 공개했다.

그러나 박 전 수석은 지난해 9월 7일 페이스북에서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 설립은 유엔해비타트 본부의 최고위직인 마이무나 모드 샤리프 사무총장이 보낸 공식서한을 통해 인정받았다"면서 샤리프 총장이 2019년 4월 보내왔다는 공식서한을 공개했다. 이 서한에서 샤리프 총장은 '한국에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가 설립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는 내용과 함께 총회에 초청한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박 전 수석은 이 서한을 근거로 삼아 "유엔해비타트 한국위 설립은 처음부터 본부와 긴밀히 협의해 이뤄졌다"고 우겼다. 2019년 5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총회에서 샤리프 사무총장과 양자면담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박 전 수석이 샤리프 총장을 만났다고 해서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가 유엔해비타트의 산하기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산하기관을 승인하지 않는다는 게 유엔해비타트의 공식입장이기 때문이다.

박수현, ‘삼성전자 미국지사’가 삼성전자와 대등한 협력관계라는 식의 ‘궤변’으로 일관

박 전 수석은 이와 관련해 궤변을 펼쳤다. 그는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는 본부의 국가 사무소가 아니다"면서 "국가 사무소는 행정·재정의 재량권이 없는 상하 관계지만, 한국위원회는 그런 권한과 의결권을 독립적으로 갖는 수평적 협력관계로 설계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라는 명칭은 누가 봐도 유엔해비타트 산하기관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명칭이다. 그런데 산하기관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이제 와서 수평적 협력관계라고 우긴 것이다.

이는 ‘삼성전자 미국 지사’라는 회사를 삼성전자의 승인 없이 설립해서 미국에서 영업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삼성전자 본사가 그런 회사를 승인한 적이 없다는 공문을 보내오자, 삼성전자 미국 지사는 삼성전자에 종속된 회사가 아니라 삼성전자와 수평적 협력관계를 맺는 독립적 기업이라고 우기는 격이다.

하태경, 박수현이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가 유엔기구의 ‘지회’나 ‘지부’ 같은 국가위원회라고 밝힌 영상 공개

당시 국민의힘 시민단체 특위 위원장 하태경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유엔기구 사칭 증거 여기 있다"면서 관련 영상을 공유한 뒤 "영상에서 박 전 수석은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가 유엔기구의 지회, 지부와 같은 국가위원회'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사칭이 아니면 사기라는 건가. 영상과 기사라도 내리고 국민을 속이라"고 폭로했다.

하 의원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국회, 후원 기업을 속인 것도 모자라 이제는 국민까지 속이려고 하나"라며 "차라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십시오"라고 질타했다.

새로운 의혹= 박수현, 기부금 44억원 중 6억7천만원을 지역구에 투입?

최근에는 박 전 수석이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 명의로 걷어들인 기부금 44억원 중 일부를 지역구에 사용했다는 의혹도 새로 제기됐다.

국민의힘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은 8일 비대위 회의에서 “충남 공주·부여·청양에서 민주당 단수 공천을 받은 박수현 전 수석이 유엔해비타트 한국위가 모은 기부금 44억원 중 일부를 박 전 수석의 지역구 사업에 사용했다”면서 “2022년 '공공의 도시'라는 사업으로 3억2천만원을 지출했는데 사업 지역이 충남 공주·부여·보령이다. 2022년 3억5천만원을 지출한 꿈나무 메타스쿨 사업이 진행된 곳은 충남 공주”라고 주장했다. 44억원 중 6억 7천만원을 박 전 수석의 지역구에 투입했다는 게 김 위원의 주장인 것이다.

김 위원은 "이미 44억원을 다 써버렸다. 법적으로 환수할 방법은 없다"면서 “86세대의 창의적인 수법으로 정말 여러가지 돈과 관련된 걸 많이 해 드신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에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정도는 해야 민주당에서 단수 공천을 받는 것 같다"며 "분명히 말한다. 국민의힘에 이런 분은 공천 신청을 하지 말라. 우리는 이런 분을 공천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8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MBN 캡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8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MBN 캡처]

국회 사무처, 유엔해비타트 한국위 법인 설립 취소하고 수사기관 고발 검토 중

민주당이 박 전수석을 단수 공천한 행위가 최소한의 도덕성을 내팽개친 선택이라는 사실은 유엔해비타트 한국위가 법인 설립이 취소된 단체라는 점에서 확인된다. 국회 사무처가 지난해 11월 2일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의 법인 설립을 취소했다. 국민의힘 시민단체 선진화 특위가 “유엔해비타트 한국위가 본부와 기본 협약도 없이 산하 기구인 척 행세하며 로고를 무단사용하고 4년 간 44억원의 기부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국회 사무처에 제기한 법인 설립 허가 취소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이에 앞서 유엔해비타트 한국위는 지난 2019년 국회 사무처에 법인 등록을 한 바 있다.

국회 사무처는 나아가 유엔해비타트 한국위를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지난 해 11월 8일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은 "국회 사무처가 유엔해비타트 한국위 고발을 주저하면 설립 과정에서 사무처와 공모한 부분이 있지 않겠냐는 의혹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면서 "국회 사무처도 분명히 피해자이고, 허가기관인 국회 사무처를 믿고 공공기관이나 기업들이 44억원을 기부했기 때문에 제3자가 고발한 것과 별도로 피해자인 국회 사무처가 고발해야 한다"고 추궁했다.

답변에 나선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은 "등록 부분에 있어서 저희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처음 허가해줄 때 오류가 있었다는 점은 분명히 저희가 사과드린다"면서 "저희가 검토 의견을 마쳤는데, 해비타트 (한국위) 고발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답변하는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답변하는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SH 공사도 한국위, 박수현, 최기록 등을 ‘사기죄’로 고소...최기록, 모든 책임을 박수현에게 전가?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장도 지난달 11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엔해비타트 한국위를 사기죄 혐의로 수사해달라고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고소 대상은 유엔해비타트 한국위, 초대 회장인 박수현 전 수석, 전 회장인 최기록 변호사 등이다. 김헌동 사장은 "유엔의 승인을 받지 않은 한국위원회가 유엔해비타트 로고를 무단으로 사용해 공사로 하여금 공식 인가를 받은 단체로 오인하게 했다"고 "한국위원회는 공사로부터 받은 사업비 총 3억9천800만원을 주거권 교육, 국내외 탐방 등에 사용해 공사에 재산상 손해를 입혔다"라고 주장했다.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장이 지난 달 11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를 사기죄 혐의로 수사해달라고 고소장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장이 지난 달 11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를 사기죄 혐의로 수사해달라고 고소장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이와 관련 최기록 변호사는 "2021년 당시 회장이었던 박 전 수석이 청와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한국위 측에서 회장직을 부탁해 와 수락한 것"이라며 "단체 설립 과정에 전혀 개입한 바가 없기 때문에 한국위가 공식인가를 받지 않은 사단법인이라는 건 아예 몰랐다. SH공사와 맺은 협약도 기존 사업이 전부터 이어져 온 거라 관여한 바가 없다"고 해명했다. 최 변호사는 자신도 오히려 피해자라는 식의 인식을 드러내면서 모든 책임을 박 전 수석에게 떠넘긴 셈이다.

사기죄로 수사를 받게 될 박수현은 사과한 적 없어...국민의 심판이 총선 관전 포인트

현재 주요 포털에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를 검색하면 “현재 사이트는 준비중입니다”라고 뜬다. 국회 사무처가 ‘사기’를 당했다고 판단해 법인 설립을 취소하고 수사 기관 고발까지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어거지를 부릴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SH공사까지 사기죄 수사를 의뢰하는 고소장을 제출한 만큼 유엔해비타트 한국위, 초대회장 박수현 전 수석 등에 대해 수사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후임 회장이었던 최 변호사는 모든 책임을 박 전 수석에게 전가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전 수석은 단 한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 이재명 대표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국민을 가볍게 여기면서 총선에서 표를 달라고 한다면 국민들이 어떤 심판을 할지가 4.10 총선의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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