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4·10 총선에 적용할 선거제와 관련된 비례대표 선출방식 결정권을 이재명 대표에게 일임하기로 함에 따라, ‘이재명의 계산법’에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선거 승리’를 위한 주판알을 두드리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일 4·10 국회의원 총선에 적용할 선거제와 관련한 당론 결정을 이재명 대표에 위임하기로 했다. [사진=SBS 캡처]
더불어민주당은 2일 4·10 국회의원 총선에 적용할 선거제와 관련한 당론 결정을 이재명 대표에 위임하기로 했다. [사진=SBS 캡처]

이재명의 선거제 시간끌기 지속되면, 정상적인 총선 관리에 심각한 지장 초래할 수 있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비례대표 선출 방식을 변경할 경우 시스템 개발 등을 위해 최소 6주가 소요되므로 설 연휴(9일) 전에는 현행 유지 혹은 개정 방향 등과 관련된 입장을 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전달했다. 그 이상 늦어지면 단순히 유권자의 혼란 등과 같은 문제보다 훨씬 심각한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게 중앙선관위의 인식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표가 시간을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당에게 가장 유리한 비례대표 선출방식을 선택해서 어떤 명분으로 포장할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하에서 소수 정당은 득표율 10%면 4~5석 얻어

제3지대 소수 정당에 가장 유리한 모델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이는 국회의원 의석수 총 300석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나눈 뒤, 지역구 의석수가 정당 득표율보다 적은 당에 대해서만 비례대표 의석을 할당해주는 방식이다. 득표율보다 부족한 의석 100%를 비례대표 의석으로 보전해준다.

때문에 소수정당에게 유리하고 거대 양당에게는 불리하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지역구 의석 253석을 사실상 독식하게 되므로 이들 거대 양당은 항상 득표율보다 더 많은 지역구 의석을 얻게 된다. 이에 비해 10%~20% 정도의 득표율을 얻는 제3당은 지역구 의석이 0석에 그칠 수 있다. 연동형이 실시되면 제3당, 제4당 등에게만 비례대표 의석이 집중적으로 배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컨대 10% 지지를 받은 군소정당은 비례대표 의석 4~5석을 배분받을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2일 오후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선거제와 관련해 당의 입장을 정하는 권한을 이재명 대표에게 위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진=채널A 캡처]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2일 오후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선거제와 관련해 당의 입장을 정하는 권한을 이재명 대표에게 위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진=채널A 캡처]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새로운미래)와 민주당 탈당파(미래대연합)가 합쳐서 4일 창당할 예정인 ‘개혁미래당(가칭)’ 등 입장에서는 최상의 선거제이다. 비례대표 의석 47석을 이들 신당이 대부분 차지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대표가 연동형을 유지할 확률은 희박하다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 관측이다.

지난 2020년 실시된 21대 총선에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했다. 준연동형은 득표율에 못미치는 의석수의 50%까지만 비례대표 의석으로 보전해준다는 점에서 연동형과 차이가 있다. 또 준연동형이 적용된 비례대표 의석도 전체 47석 중 30석만을 대상으로 했다.

따라서 21대 총선 당시 민주당과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위성정당을 만들어 준연동형으로 뽑는 30석 중 상당수를 차지했다. 소수정당의 원내진출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연동형을 도입해놓고 ‘위성정당’이라는 편법을 동원해 그 취지를 왜곡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병립형’이 당론...민주당도 유리하지만 ‘회귀’의 명분 부족해

따라서 국민의힘은 일찌감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를 당론으로 정했다. 편법과 탈법으로 얼룩지는 연동형 선거제를 버리고 ‘정직한 선거제’인 병립형을 채택하자는 것이다. 병립형은 전체 의석 300석 중 지역구 253석과 비례대표 47석을 각각 별도의 투표로 뽑는다. 따라서 거대 양당이 얻은 지역구 의석수와 무관하게 정당 득표율에 의거해 비례대표 47석를 나눠가질 수 있다. 투표방법이 투명하고 꼼수가 통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군소 정당이 득표율에 상응하는 의석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단 봉쇄조항의 적용을 받는다. 비례대표제로 인한 군소정당의 난립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 비율 이상의 정당 득표율을 올린 정당에 대해서만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봉쇄조항은 정당 득표율 3% 이상이다. 3%가 돼야 1석을 얻는 것이다.

민주당으로서도 병립형으로 회귀하는 게 유리하다. 하지만 선뜻 국민의힘과 합의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 21대 총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과정을 민주당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군소정당의 원내 진입을 촉진한다는 명분으로 선거제 개편을 해놓고 4년 만에 병립형으로 돌아가자고 할 경우 격렬한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권역별 병립형’ 추진...개혁신당과 개혁미래당에게 최악의 시나리오

따라서 민주당 지도부는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추진하려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 제도는 병립형으로 회귀하는 데 따른 정치적 비판을 희석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주의 타파라는 명분으로 포장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갖는다.

[사진=채널A 캡처]
[사진=채널A 캡처]

권역별 병립형은 전국을 수도권, 중부권, 남부권 등 3개 권역으로 나누고 정당 득표율에 따라 권역별로 할당된 비례대표 의석수를 배분하는 제도이다. 인구비례 등을 감안할 때 수도권 18석, 중부권 14석, 남부권 15석 등으로 배분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제3지대 소수 정당에게는 최악의 제도이다. 명분은 지역주의 타파이지만 병립형 비례대표제 하에서보다 군소정당이 비례대표 의석수를 획득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영남과 호남이 합쳐지는 남부권 15석을 기준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정당 득표율 10%이면 1.5석을 배분받는다. 1석을 얻으려면 7% 안팎의 정당 득표율을 획득해야 한다. 하지만 이준석의 ‘개혁신당’이나 4일 창당 예정인 ‘개혁미래당’이 남부권에서 정당 득표율 7%를 넘기는 게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개혁신당의 경우 영남권에서 10%대 정당 득표율을 확보한다고 해도 호남권 기반이 취약한 탓에 남부권에서 의석을 얻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국민의힘 당론인 병립형에서는 정당 득표율 5%만 확보해도 2석을 건지는데, 민주당이 추진하려는 권역별 병립형에서는 정당 득표율 5%를 얻어도 0석이 되는 것이다.

병립형에서 5% 정당 득표율이면 2석 VS. 권역별 병립형에선 5% 정당 득표율이면 0석

따라서 전권을 위임받은 이재명 대표가 권역별 병립형을 선택할 경우, 국민의힘에게는 불리한 카드가 아니다. 거대 양당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혁신당과 개혁미래당에게는 위기상황이다. 22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의석 확보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럴 경우 양당이 합당하는 게 최선책이다. 그래야 영호남 모두에서 10% 이상의 정당 득표율을 올릴 수 있고, 수도권 정당 득표율도 올라가게 된다.

조응천 미래대연합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은 2일 S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권역별로 15석이라고 쳤을 때 1석을 얻으려 (정당 득표율) 7% 정도는 받아야 한다”면서 “(이준석 대표가) 어느 쪽이건 갈라져서 7%를 받을 수 있겠냐에 대해서는 아마 확신이 잘 안 설 것”이라고 말했다. 개혁신당과 개혁미래당이 합당하지 않고 독자노선으로 치닫을 경우 권역별 병립형에서 의석 획득이 어렵다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독자노선은 자멸의 길이므로 합당해야 한다고 회유하는 모습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이낙연의 개혁미래당을 ‘70대 노인 정당’으로 비하해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2일 YTN인터뷰에서 개혁미래당과의 합당 논의에 대해 "그냥 윤석열 피해자 모임, 이재명 피해자 모임으로 양쪽에서 합쳐진 것 같이 되어서는 굉장히 소극적 지지밖에 받을 수 없다"며 "결국에는 명분이 중요하다"면서 "70대 접어든 개혁미래당의 주축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개혁이라는 것은 앞으로 10년 정도 정치를 할 수 있는, 10년 정도의 타임 플랜을 가지고 짜는 계획이라면 우리는 30년 뒤 대한민국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데에 관심이 많다"고 주장했다. 양측간에 공통분모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개혁미래당이 70대 노인 정당이라는 식으로 비하를 한 셈이다.

[사진=YTN 캡처]
[사진=YTN 캡처]

이 대표는 같은 당 허은아 최고위원이 개혁미래당과의 통합 가능성을 90% 이상으로 전망한 데 대해서도 “허 의원의 생각일 뿐이다”라고 일축했다. 이기인 개혁신당 최고위원은 SBS라디에서 자신과 천하람 최고위원을 '자강론', 김용남 정책위의장은 '통합론', 허 최고위원은 '중도'로 각각 분류했다.

이재명이 선거제 확정을 지연시킬수록 개혁신당과 개혁미래당 간 갈등의 골은 깊어져

이준석 대표는 자신의 리더십에 동의하지 않는 합당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양측이 독자노선을 고집한다면, 개혁미래당이 현역의원을 더 많이 확보해 기호 3번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2월 15일까지 현역의원 5명을 확보하면 선거보전금과 경상보전금을 받는 경제적 이득도 취하게 된다.

이재명 대표가 권역별 병립형을 골자로 한 선거제를 밀어붙일 경우 개혁신당과 개혁미래당은 22대 총선에서 존립기반을 구축하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원내 다수당인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선거제 확정을 지연시킬수록 개혁신당과 개혁미래당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져, 피차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널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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