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들은 북한 수령 독재에 대해서는 내재적 접근법으로 폭넓은 이해를 부르짖으면서, 대한민국의 지도자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대통령에 대해서는 문명세계의 보편적 잣대인 자유·민주·인권의 가치를 앞세워 외재적 접근법으로 질타한다. 그런 사람들이 국가 세금으로 국회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마이크 잡고 평화와 통일, 남북교류를 외쳐대고 있다

#. 여의도 한복판에서 터져 나온 문제적 발언

무소속 윤미향 의원은 지난 124일 국회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남북 관계 근본 변화와 한반도 위기 이해평화 해법 모색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참석자는 겨레하나, 국가보안법7조 폐지운동 시민연대, 전대협동우회, 남북민간교류협의회 민족위원회 등 20개 시민 단체였다고 한다.

워낙 나라 전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지 오래라 그저 그런 좌파 친북단체 행사려니 하고 잊혀질 법도 했다. 그런데 참석자들의 도를 넘은 강성 발언으로 요란하게 매스컴을 타게 되었다.

첫 번째 발제자 김광수 부산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의 발언부터 문제였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그는 한총련 2기 정책위원장, 6·15부산본부 공동대표, 문재인 정부 통일교육위원 등을 지냈다고 한다. 이런 경력의 인사가 공개석상에서 우리는 국가보안법을 넘어서는 평화통일 운동을 해야 한다”, “최후의 방법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전쟁이 일어난다면, 통일 전쟁이 일어나 그 전쟁으로 결과의 평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그 전쟁관도 수용해야 한다라고 열변을 토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제기된 문제 발언 일부를 소개한다.

 

장창준(한신대 평화통일정책연구센터장) : “한반도 전쟁 위기는 실재한다. 실재하는 근원은 북 때문이 아니라 한미 동맹 때문.”

고은광순(평화어머니회 이사장) : “북은 완전 자주국방이고 교육·의료·주거는 남쪽은 경쟁, 북은 무상. 친일 청산도 남쪽은 완전히 실패, 북쪽은 성공했다. 어디가 제대로 사는 것이냐.”

이한용(남북민간교류협의회 이사장) : “현 정부는 짐승 같은 정치 세력, 새로운 평화의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또 희망을 만들 수 있다. 일단 410200석 이상 확실히 만들고 금년 말에는 (현 정권을) 몰아내야.”

윤미향 의원이 개최한 문제의 토론회 포스터.
윤미향 의원이 개최한 문제의 토론회 포스터.

 

좌익 국회의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마치 북한 로동신문 사설에서나 볼 수 있는 발언이 여의도 한복판에서 여과 없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내용이 보도되자 김광수 이사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전쟁에 동조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학자로서 내재적 접근을 통해 이론적 전개를 시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내재적 접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낯설지 않은 용어 아닌가.

 

#. 김씨 조선 세습 이데올로기 합리화 방안

필자는 오래 전부터 북한을 21세기 판 김씨 조선으로 이해하고 있다. 세습하는 왕이 이씨에서 김씨로 바뀌었을 뿐 북한은 영락없는 후조선이다. 수령 자리에 국왕, 양반 자리에 조선노동당 간부, 자력갱생을 폐쇄·쇄국·위정척사로 대입시켜 보라. 오죽했으면 나라 이름에마저 조선을 못 박고 있지 않은가.

21세기 개명 천지에, 그것도 주체적 사회주의 공화국으로서 지상천국을 선포한 나라에서 3대 째 권력 세습이라니. 수령님의 영도를 따르면 영생불멸을 확신하는 주체교 열심당원인 대한민국의 속칭 86 운동권 인사들도 낯 뜨거운 상황을 면키 어렵게 되었다.

이쯤 되면 자신들의 뜨거운 후조선 흠모 신앙을 합리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들이 찾아낸 만병통치약이 내재적 접근법이란 괴물이다.

​내재적 북한 접근법은 필연적으로 김씨 일가, 이른바 백두혈통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집중될 수밖에 없다.
​내재적 북한 접근법은 필연적으로 김씨 일가, 이른바 백두혈통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집중될 수밖에 없다.

 

#. 북한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북한을 연구·분석하는 틀을 한 작가의 창작물에 대한 감상 행위로 비교해 보자. 한 작가의 작품은 내용이나 형식, 표현만으로는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반드시 작품과 작품의 외적 요소, 즉 작가·시대·사회현실·독자를 관련시켜 이해할 때 진정한 접근이 가능하다.

내재적 접근법(혹은 내재적 관점)이란 작가의 이념·철학·가치관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 배경이나 사회현실, 작품을 읽는 독자에 대한 배려 등에도 눈길을 주지 말라고 한다. 애오라지 내용이나 형식, 표현만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라는 방법론이다.

이런 감상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론이 외재적 접근법(혹은 외재적 관점)이다. 이것은 내재적 접근법과는 철학이나 가치관이 대척점에 서 있다. , 작품을 쓴 작가의 성격은 어떠하며, 그 동안 어떤 삶의 궤적을 살아온 사람인지,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작품을 읽는 독자는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이해해야 진정한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이 시각을 북한으로 돌려 본다. 내재적 접근법이란 북한을 관찰할 때 북한의 행태나 책략을 우리 시각으로 판단·평가하지 말고 저들 입장에서 바라보라는 입장이다. 북한의 특수한 현실을 고려하면서 북한 입장과 시각으로 북한의 사회현상을 분석해야 한다는 방법론이다.

이런 관점에서 북한을 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북핵을 반대한다 해놓고는 북한이 미국과 군사적 대결 상태에 있는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고 토를 단다. 이런 식으로 현실에 눈을 감고 옳고 그름의 잣대를 치워버리면 비판은 설 땅을 잃게 되고 모든 것이 용인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북한의 세습체제와 영생불멸의 주체교, 당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자들을 재판 없이 죽을 때까지 가둬놓고 강제 노동을 시키는 인권유린 행위, 배급제를 폐기하여 자국 인민 수백만을 굶겨 죽이는 행위까지 모든 것이 면죄부를 얻게 되는 것이다.

내재적 접근법의 문제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기된 것이 외재적 접근법이다. 민주주의·자유·인권·생명 존중이란 인류 보편적 관점에서 북한 사회 전반을 분석하고 해부해야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 관점에서 북한을 바라보면 저들은 공화국이 아니라 권력을 핏줄로 세습하고, 양반 노동당원이 상놈 주민들을 흡혈귀처럼 착취하는 후조선임이 당장 드러나고야 만다.

 

#. 내재적 북한 접근법의 몸통, 송두율

우리 사회에 북한을 내재적 접근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방법론을 바이러스처럼 퍼뜨린 주인공은 송두율이었다. 김철수라는 가명으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된 것으로 국정원이 발표했던 사람, 내재적 접근법으로 김일성의 극찬을 받았던 인물이다.

페터 루츠 교수의 내재적 동독 접근법을 벤치마킹한 내재적 북한 접근법을 한국 사회에 퍼뜨린 송두율.
페터 루츠 교수의 내재적 동독 접근법을 벤치마킹한 내재적 북한 접근법을 한국 사회에 퍼뜨린 송두율.

 

북한을 내재적 접근법으로 바라보자는 이론은 송두율에게 저작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이론적 모델의 창시자는 내재적 동독 접근법을 독일 사회에 퍼뜨린 베를린자유대학 교수 페터 크리스티안 루츠였다.

송두율은 루츠의 방법론을 벤치마킹하여 내재적 북한 접근법을 한국 사회에 퍼뜨렸다. 조갑제 대표는 송두율이 제창한 소위 내재적 접근법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조갑제, ‘감옥으로 간 내재적 접근법’)

첫째, 북한정권을 전체주의적 체제로 규정하고 연구하는 방식을 버려야 한다.

첫째, 비교 대상을 주로 소련, 동구,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로 삼아야 한다.

셋째, 주체사상을 전제하고 이것이 북한의 각 부문에서 어떻게 실천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넷째, 한국과의 평면적 비교는 옳지 않다.

송두율 식 북한 보기의 핵심은 북한이 식민지적 낙후성과 국토분단 속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한 위대한 주체 공화국이니 북한 정권에 불리한 결과를 내는 비교법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엉터리 방법론도 학문이랍시고 쌍수를 들어 환영한 사람이 강정구·이종석 등 좌파 학자들이다.

 

#. 송두율 식 방법론, 뭐가 문제인가?

그렇다면 북한에 대한 송두율 식 내재적 접근법은 뭐가 문제인가? 이를 깊이 파헤친 인물이 정창열 북한연구회장이다. 그의 분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핵심 이슈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먼저 북한 실상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회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료가 필요하다. 페터 루츠 교수도 동독을 동독의 시각으로 보기 위해서는 네 가지 기본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진지하고도 신뢰할 만한 정보, 둘째 가혹할 정도로 객관적인 분석, 셋째 비교 연구의 기초 확립, 넷째 정치적 결정의 탈이데올로기 및 합리화다.

그런데 북한 실상 파악에 필요한 자료는 전적으로 북한 노동당이나, 북한 정부의 통제 하에 있는 보도매체가 제공한다. 이러한 자료들은 사실(fact)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당과 정부가 자기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선동하기 위해 날조·과장한 결과물이다. 쉽게 말해 내재적 접근법의 창시자 루츠 교수가 제시한 네 가지 기본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자료라는 뜻이다.

이런 사이비 자료를 토대로 북한을 바라보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노동당과 북한 정부 입장과 의도대로 사고할 수밖에 없게 되고 만다. 1차 사료 자체가 날조·과장되었으니 그 결과물이 객관적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논리 아닌가.

이런 이유 때문에 정경훈 매일경제 논설위원은 내재적 접근법이란 사이비 과학을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것. 표현은 거창하지만 간단히 말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눈으로 본 북한이 진짜 북한이란 소리라고 비판했다(매일경제신문, 2012531)

내재적 접근법에 의한 북한 연구는 대부분의 연구 자료가 김일성 일가의 선전물이라는 제한으로 인해, 이른바 백두혈통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내재적 접근법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불편한 진실이다.

 

#. 사족(蛇足)

독일은 세계 철학계·문학계·음악계·과학계의 거장을 수없이 배출한 지성의 등불 같은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어떻게 페터 루츠의 내재적 접근법 같은 사이비 학문이 각광을 받게 되었는지는 사회과학적 연구 대상이다.

하지만 지성의 등불나라인 독일의 전통답게 이런 사기성 이론이 마르고 닳도록 약효를 발휘하지는 못했다. 동서독 교류의 확대로 인해 동독 공산체제의 적나라한 민낯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1990년대 공개된 슈타지 문서를 통해 루츠 교수가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의 스파이였음이 밝혀지면서 내재적 접근법에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독일 지성계는 루츠 교수가 창안한 내재적 접근법이 동독 체제 합리화를 위한 고도의 이념전쟁 도구였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독일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루츠의 이론은 폐기되었지만, 그 원형을 베껴온 내재적 북한 접근법은 아직도 21세기 한국에서 백주대로를 활보하며 궤변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윤미향의 124일 토론회는 그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들은 북한 수령 독재에 대해서는 내재적 접근법으로 폭넓은 이해를 부르짖으면서, 대한민국의 지도자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대통령에 대해서는 문명세계의 보편적 잣대인 자유·민주·인권의 가치를 앞세워 외재적 접근법으로 질타한다. 그런 사람들이 국가 세금으로 국회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마이크 잡고 평화와 통일, 남북교류를 외쳐대고 있다. 참으로 웃기는 코미디 세상이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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