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희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
강문희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

 

 지금까지 인류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모두 충족시키면서 번영을 이루기 위한 협력의 방법을 고민해왔다. 자유를 강조하는 우파는 각자 노력한 만큼 성과를 가져가라고 한다. 반면 평등을 강조하는 좌파는 균등한 노력으로 성과도 똑같이 나누자고 한다. 무엇이 좋을까? 오래전 고대 철학자의 사상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타난 일관된 결론은 법과 제도 그리고 통치방식의 공정성이었다. 누군가 불만을 품게 되면 협력은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메가시티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도시 간 협력도 마찬가지다. 도시의 경계와 권한에 관한 법과 제도 그리고 이들의 다양한 광역행정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통치방식의 공정성은 매우 중요하다. 필자는 협력을 확보해왔던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필자의 제안은 자유와 공정을 지향한다.

어떤 방법들이 있나?

 세계 각국의 도시들이 취해온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난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통합, 점진, 절충적 방식이다. 통합적 방식은 도시권에 속한 모든 도시들을 단일의 정부로 통합하여 권력을 집중시키고 광역행정업무를 처리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기존 자치단체를 해체하거나 광역과 기초의 관계로 재편성함으로써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도시합병이나 시군통합, 도농통합과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 개별 도시들의 경계와 권한이 무너지기 때문에 당연히 정치적 반발이 있고, 쉽지 않은 방식이다. 서울 메가시티와 관련하여 경기도와 인천이 화들짝 놀라 즉각 반발하고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울 메가시티는 경기도의 관할구역에 대한 침략이었고 참을 수 없는 약탈이었기 때문이다. 인천에게는 곧 다가올 공격의 위기로 느껴졌다. 왕국처럼 성벽을 지키고 싶은 원초적 본능이 작동한 것이다.

 점진적 방식은 기존 자치단체의 경계와 권한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협의나 기능의 재분배를 통해 광역행정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협정이나 계약 그리고 광역협의회가 이에 해당한다. 구조변화가 없기 때문에 저항이 없지만, 법적인 구속이 없기에 추진력과 지속성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언제든 파기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권역별 광역경제협의회가 부․울․경처럼 결국 정치적 이벤트로 끝나버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 절충적 방식은 기존 자치단체의 경계와 권한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광역행정을 담당하는 새로운 광역단위의 자치단체 정부를 설치하는 방식이다. 통합과 점진의 조합인 셈이다. 연합정부와 조합 그리고 특별자치단체의 설치 등이 있다. 실패로 끝난 부산울산경남특별연합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절충적 방식은 정치적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전문적인 기관 설치를 통해 광역행정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실제 운영과정에서 기존 자치단체와의 기능중복과 책임소재의 문제가 나타날 수 있고, 기능만을 분리하여 운영할 경우 자치단체 사이의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이 나타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주민들 입장에서도 특별자치단체의 난립은 참여와 통제를 어렵게 하는 문제를 드러낸다. 부․울․경의 실패는 바로 절충적 방식이 가진 약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이 세 가지 방식 중 무엇이 가장 좋을까? 정답은 없다. 함께 살아야 할 도시들끼리 최선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협력의 간절함에 따라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협력은 각자도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지만, 협력에 참여할 구성원들의 이해관계는 늘 다르기 때문이다. 협력을 이용하여 각자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이익을 얻고 싶은 이기심도 작동한다. 도시의 협력을 위해 정부와 시민사회 그리고 기업의 조화로운 상호관계를 강조해온 <거버넌스>라는 용어는 사실 학계의 오랜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하다. 현실의 세계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국내 일군의 학자들은 미국의 실리콘밸리나 유럽 도시권의 다양한 거버넌스 형태를 이상적인 모델로 소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민․관․정․학․연이 함께 하는 거버넌스 체제나 <선 연대․협력 → 후 편입․통합>이라는 순차적 접근을 처방책으로 내놓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의 설명은 해당 도시권들이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한 협력 방법을 모색하고 실패를 거듭한 후에 현재의 상태에 이르고 있으며 여전히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생략하고 있다. 해당 국가의 도시권이 가져왔던 독특한 지역 특성과 정치-경제-사회-문화 및 제도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설명도 생략하고 있다. 참고는 할 수 있으나, 결코 우리의 처방책이 될 수는 없다.

2023년 5월 21일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 국회토론회. [사진=연합뉴스]
2023년 5월 21일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 국회토론회. [사진=연합뉴스]

 

로미오와 줄리엣, 가문과 경계의 비극

 우리의 행정구역체제는 도시들끼리 쉽게 협력할 수 없는 가문과 경계의 비극적 분할구도에 얽매여 왔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죽음으로 이끈 가문과 경계의 비극. 어땠을까? 가문의 텃세가 없었다면. 성 같은 저택에 둘을 갈라놓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가문과 경계의 비극은 사실 메가시티와 관련하여 수도권과 지방에게 모두 일어나고 있었다.

 이제 정치권이 숨기고 있는 불편한 현실의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한동안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던 메가시티의 운영방향과 관련한 갑론을박의 논의가 잠잠해지고 있다. 왜일까? 이유는 바로 구역과 계층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서울 메가시티론이 불거지자마자 당장 경기도가 경기북부특별자치도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경계에 대한 권리주장이었다. 정작 김포, 고양, 구리는 싫다고 하는데도. 특별자치도라는 그럴싸한 명칭변경으로 경기 북부 도시들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척 허세를 부리며 자신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 두겠다는 속셈이다. 인천은 자기 관할구역도 아닌 김포의 생활권이 오히려 자기 쪽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관할권 침범을 선제적으로 방어하겠다는 심산이다. 

 부․울․경의 실패도 사실은 서로의 경계에 대한 권리의 신경전 때문이었다. 부산의 입장에서야 허울 좋은 부․울․경 특별연합보다는 차라리 인접한 김해와 양산을 끌어안고 숨통을 트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감히 그런 속내를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두 도시는 엄연히 경남의 관할구역이니까. 대구․경북, 대전․충청권, 서남권의 실패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부산은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을 통과시켜 부산만의 특권을 누리고 싶어 하고 있다. 특별법을 통해 얻게 될 막대한 돈 앞에서, 부산의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여야 가릴 것 없이 모처럼 착하게 힘을 합치고 있다. 인천과 대구, 대전, 세종, 울산, 창원, 광주는 가만히 있을까? 불과 얼마 전 의기양양하게 출범한 전북특별자치도와 작년 6월 출범한 강원특별자치도도 사실은 <특별>을 강조한 관할권의 엄포에 다름 아니다. 특별? 그럼 충북, 충남, 전남, 경북, 경남은? 왠지 구역의 독점권을 두고 난투극을 벌이는 조폭들의 영화가 연상된다. 

 구역과 계층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기로 하자. 우리나라는 정부수립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의 8도 체제를 기본으로 지역을 구분해 왔고, 중앙-광역-기초라는 2층제의 계층적 통치 질서를 유지해왔다. 중앙정부의 효율적인 집권통치를 위한 구조였지만, 지방자치를 도입한 후에도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중앙의 관점에서 도의 지리적 경계와 권한위임은 지방을 통제할 수 있는 매우 편리한 통치방식이었기 때문이다. 2024년 현재 제주도를 제외하고 8도로 엄밀히 구분된 지리적 공간 안에 17개 광역자치단체와 226개의 기초자치단체가 2층의 계급질서로 산재되어 있다. 광역시는 도와 계층구조에서 동급이지만 도의 지리적 공간 안에 존재하고, 도는 시․군 단위의 기초를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역과 계층체제는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누가 언제 그었는지도 모를 도의 지리적 구역 구분은 우리의 근현대사를 통해 서로가 경계를 분명히 하며 허물 수 없는 장벽으로 굳어졌다. 정치적으로는 거래와 야합의 밀실로, 행정적으로는 징세와 서비스의 배타적 권역으로, 경제적으로는 성장의 한계범위로, 사회적으로는 지역이기주의의 공동체로 뭉쳐왔다. 도는 자신의 지역 안에 있는 시․군에게 광역-기초의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강조하며 결코 출가시킬 수 없는 자녀로 옭아맸다. 도는 어느새 지역의 맹주이자 강력한 후견인으로 자리를 굳힌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도의 고집스러운  경계의 금 긋기는 이미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다. 수도권의 많은 도시들이 서울 메가시티의 거대한 네트워크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왔고, 지방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의 경계는 더 이상 도시의 확산과 연결을 가로막지 못하고 있다.

 도의 번거로움은 그동안 여러 면에서 나타났다. 정치적으로는 소모적인 진영 갈등을 유발했고, 행정적으로는 옥상옥의 존재로 조직을 키워 군림하며 행정의 누수비용만 증가시켰다. 경제적으로는 희망사항에 불과한 하향식 청사진 수준의 발전계획과 규제를 남발했고, 사회적으로는 각자 닉네임을 만들어 지역민들의 향토애를 호소하는 광고장이의 역할에 그쳤다.

 그러나 도시의 입장에서는 도의 경계를 자유롭게 벗어나 주변 도시들과 협력을 구하는 방법이 훨씬 유리하다. 서울과 경기도의 남․북부 도시들이 합치지 못할 이유가 없고, 경기도의 도시와 충청도의 도시가 합치지 못할 이유도 없으며, 경상도와 전라도의 도시가 합치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다만 지금까지 가문의 전통과 경계의 구분으로 용기를 내지 못했을 뿐. 최근 김포가 참다못해 금기를 깼고 너도나도 따라나서고 있다.

<개방과 폐쇄>의 역사적 교훈

 역사적으로 돌이켜보면, 도시의 경계에 대처한 인간의 대응방식이 어떻게 도시의 흥망성쇠를 좌우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고대 도시들은 사실상 당시의 인구 기준으로 볼 때 메가시티였다. 대표적으로 로마가 그렇고 중국의 많은 고대 도시들이 그러하다. 이들 고대 도시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단일의 도시로 섬처럼 존재한 것이 아니라 주변 지역은 물론 국제적인 교역의 중심 도시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교류가 확산되면서 당연히 도시의 권역도 넓어지게 되었고 정치-경제-행정-사회-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된다. 이는 당시의 많은 도시들이 주로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을 쌓고 내적 통치에만 전념했던 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즉, 고대의 메가시티와 다른 도시들의 중요한 차이는 개방과 폐쇄에 있었다. 개방을 추구한 도시는 번영했고, 폐쇄를 고집한 도시는 멸망했다.

 <개방과 폐쇄>라는 상반된 도시정책은 그 이후 역사적으로 도시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남미 페루의 마추픽추를 예로 들어보자. 인류학자와 고고학자들은 그처럼 정교한 도시설계와 고도의 기술수준(건축, 천문학, 의학, 금속 등)을 가지고 있었던 도시의 급작스러운 소멸에 대해 다양한 설명을 하고 있다. 오랜 가뭄, 부족 내부의 갈등, 외적의 침입과 전쟁, 급격한 기후변화, 편향된 식단으로 인한 영양결핍과 친족교배에 따른 유전자 변형 등 다양한 설명이 제시되고 있다. 아직까지 이러한 설명 중 어느 하나도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마추픽추의 멸망이 도시정책의 폐쇄성에 있었다고 추론한다. 애초에 그처럼 높은 고산지대에 도시를 건설하게 된 배경은 외부와의 단절을 통한 영원한 자립이었을 것이다. 누가 감히 그렇게나 높은 지역(해발 2,700 미터)을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꿈꿀 수 있었을까? 그러나 외부와의 단절은 스스로의 함정이 되었다. 

 만약 마추픽추의 주민들이 경계를 허물고 주변 지역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었다면, 가뭄이나 내부 갈등, 식량부족, 기후변화 등과 같은 위기를 충분히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풍족한 자연환경을 가진 주변 지역에서 얼마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변 지역인과의 자유로운 혼인을 통해 훨씬 더 풍요로운 도시국가로 번성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추픽추의 통치자들은 그러지 않았고, 하늘만을 바라보며 무고한 시민을 제물로 바치는 연쇄적 집단 자살의 주술 공간으로 그곳을 전락시키고 말았다. 도시의 폐쇄성이 가져온 비극이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나 요르단의 페트라 역시 비슷한 궤적을 겪었을 것이다. 우리의 동족 국가이기도 한 평양 도시국가도 마찬가지다. 

지난 25일 국회에서 부산지역 국회의원들이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25일 국회에서 부산지역 국회의원들이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어떻게 할까? 가문을 없애고 경계를 허물어라

 어떻게 할까? 답은 간단하다. 국토의 불필요한 구역 구분을 없애고 도시의 자유로운 연대와 통합이 가능하도록 행정체제를 개편해 주기만 하면 된다. 필자의 처방은 도의 폐지다. 위계질서를 강요하는 가문의 전통을 없애고, 이유 없이 협력을 가로막는 경계를 허물라는 것이다. 메가시티가 수도권은 물론 지방에서도 자유롭게 탄생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묘책이다. 이는 필자 혼자만의 도발적인 제안이 아니다. 1996년 이후 정치권과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개혁안이다. 다만 정치권의 복잡한 이해관계로 무산되었을 뿐이다.

 고맙게도 야당은 여당의 입장을 총선 전략이라고 비판하면서 차라리 이참에 <국토개혁과 행정개편>을 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야당이 무슨 속내로 알맹이도 없이 그런 엄청난 발언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해법의 물꼬를 터준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렇게 하면 된다. 논의시점을 두고 총선 이후로 미루자는 신중론이 나오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딱히 뒤로 늦출 이유가 없다. 이미 전 국민에게 희망을 품게 한 이슈기 때문이다. 불과 2개월 정도의 시차가 있을 뿐이다. 

 메가시티를 위해 도를 없앨 경우 국토의 공간 재구성은 즐거운 상상으로 이어진다.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도시들은 서로의 동반성장에 맞는 짝짓기를 시작할 것이다. 새로운 짝짓기는 단순히 지리적 근접성만을 따지지 않을 것이다. 서로가 주고받을 것이 있을 때 협력의 파트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역시와 기초의 통합, 특례시와 기초의 통합, 기초끼리의 통합 등 다양한 조합이 나타날 수 있다. 도시들은 드디어 번영을 위한 동행과 협력의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자유는 경쟁을 낳고, 경쟁은 혁신을 일으키고, 혁신은 진보로 이어진다. 이를 위한 협력의 방법은 서로가 풀어 가야할 과제다. 그리고 국토의 풍경은 지루한 대칭 균형의 모습이 아니라 역동적인 비대칭 균형의 미학으로 새롭게 나타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엄청 많다. 정치적으로는 도시의 자유로운 연대와 통합으로 고질적인 소지역주의를 벗어날 수 있다. 정책과 상관없이 1당이 독주하는 비정상적인 선거 관행을 척결할 수 있으며, 토착 엘리트의 전횡도 막을 수 있다. 선거구개편을 통해 참신한 인재 등용의 기회를 넓힐 수 있고, 지역발전을 위한 정당 간의 건전한 정책경쟁도 정착시킬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지방의 도시권은 더 이상 중앙의 정치적 기류에 휘둘리지 않고 진정한 분권과 자치를 실현할 수 있다. 

 행정적으로는 옥상옥의 번거로운 존재를 제거함으로써 절차의 간소화는 물론 중복비용과 누수비용의 절감을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도시의 연대와 통합은 새로운 세원의 발굴과 확대를 통해 재정능력도 키울 수 있다. 도 예산을 균등하게 갈라먹으며 각자의 이기주의를 만족시켜왔던 예산배분의 낭비도 없앨 수 있다. 비용 절감과 조직의 통합은 자연스럽게 서비스공급 능력의 효율성과 전문성으로 이어진다. 도시들은 광역정부가 제시해온 청사진 수준의 하향식 발전계획과 기계적인 역할분담의 굴레에서 벗어나 스스로에게 맞는 성장전략을 자유롭게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각자도생의 불필요한 경쟁을 없앨 수 있다. 저마다 인구소멸을 막기 위해 터무니없는 퍼주기 정책을 경쟁적으로 남발할 필요가 없다. 각각의 인프라를 광역 도시권으로 활용함으로써 자본과 기업을 유치하고 정주환경을 개선함으로써 인구성장의 기반을 만들어낼 수 있다. 서로의 이용 편의와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교통망 확충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저마다 한정된 공간에 중복투자를 하는 대신 서로를 연결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도시권의 확장은 자연스럽게 생산을 위한 규모와 범위 그리고 집적의 경제를 가져온다. 소비 상권의 확대를 통해 수요의 네트워크 효과도 높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자생적인 지역산업클러스터가 나타나고 혁신이 일어나며 국제적인 경쟁력이 생길 수 있다.

 사회적으로도 도의 담장을 없애는 일은 교류의 확산으로 이어져 갈등해소와 통합의 기회로 승화된다. 도시권의 확장은 미래를 함께 꿈꿀 수 있는 남녀의 교제로 이어지고 출산율을 높이는 공간으로 작동한다. 지역문화의 창조적 융합과 확산을 위한 기회이기도 하다. 문화란 폐쇄된 공간에서 소수의 지역 동호인들만의 노력으로 계승되고 발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수가 공감하고 공유할 때 문화의 역동성이 나타난다. K-Pop 문화에 대한 전 세계인의 열광은 이를 이미 입증한 바 있다. 도의 경계가 사회통합과 문화의 경계가 될 수는 없다.  

도를 없애라, 응답하라

 도를 없애고 행정구역개편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답안은 10여 년 전에 학계에서 다수의 정답지로 준비한 바 있다. 당시의 답안을 통해 도시들이 알아서 선택하면 될 일이다. 정치권이 공연히 나서서 도시들을 간섭할 이유가 전혀 없다. 다만 정치권은 <도를 없애고, 도시들의 자유로운 연대와 통합이 가능하다>는 단 한 줄의 결정문만 합의해주면 된다. 어려운가? 응답하라.

강문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전 한국정책과학학회 회장)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