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다수당으로 비례대표 선거제의 키를 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민주당은 선거제 개편 방향을 놓고 반으로 갈라졌다. 비례대표 배분 방식과 관련해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를 유지하자는 주장과 병립형 비례제로 회귀하자는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4.1.26. 이 대표는 선거제에 관해서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4.1.26. 이 대표는 선거제에 관해서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의원 81명은 2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동형 선거제도 확정’을 촉구했다. 이날 회견에는 이탄희, 김두관, 김상희, 강민정, 이용선, 이학영, 민병덕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비례대표 몇 석 더 얻으려다 253개 지역구에서 손해를 보는 소탐대실을 막아야 한다”면서 “대국민 약속을 지키는 민주개혁진보 대연합을 이루자”고 주장했다.

민주당 국회의원 81명은 ‘연동형’ 확정 요구 VS. 지도부와 당원들은 ‘권역별 병립형’ 원해

반면 민주당 지도부 내에서는 권역별 병립형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최근 진행된 비례대표 선거제 관련 설문조사에서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선호도가 연동형에 비해 우세하다는 결과가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당원 설문조사에서도 권역별 병립형 선호도가 압도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조사는 민주당이 지난달 비례대표 선출 방식을 두고 당내 이견이 분출되자, 의원과 당원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민주당의 핵심 관계자는 "비례대표제 관련 의원 설문조사에서 ‘이중등록이 가능한 병립형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선호 비율이 55대 45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최근까지 수차례 실시된 당원 여론조사에서도 70대 30 정도로 병립형에 대한 선호도가 꾸준히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의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81명은 지난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연동형 선거제도 확정’을 촉구해, 당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반증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 11월부터 세 차례 의원총회를 열고 선거제 토론을 벌였지만, 아직 당론은 미정인 상태이다.

일각에서는 전당원 투표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이다. 이를 두고 민주당을 탈당한 이원욱 의원은 “민주당은 소멸해야 할 정당”이라고 직격했다. 이 의원은 지난 25일 동아일보 유튜브 <중립기어>에서 “(과반이 넘는) 민주당이 판단하면 되는 것인데, 어떻게 하면 한 석이라도 더 얻을까만 고민하고 있는 정당”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지역주의 완화 명분 가진 권역별 병립형, 신당의 원내 진출 ‘허들’을 높여

이런 가운데 민주당 지도부가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 논의에 들어갔다. 권역별 병립형 하에서 신당의 원내 진출 허들이 높아진다는 게 민주당 측 계산법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연동형이 아닌 병립형을 주장하고 있는데, 권역별 비례대표제까지는 협상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장 총선을 목전이 둔 상태에서 2월초까지는 결론을 내야 하는 거대 양당의 입장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굳어져가는 분위기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만지작거리는 이유로는 ‘신당의 등장이 민주당에 불리하기 때문’으로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서 “다른 당을 도울 만큼 민주당이 여유롭지 않다”고 고백했을 정도이다. 거대 양당이 공고할 때는 소수당을 위해 의석 배려를 할 수도 있었지만, 제3지대 신당들이 10% 내외의 지지를 받는 상황은 민주당에 결코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병립형이긴 하지만, 전국을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눈 뒤 권역별로 정당 지지율에 따라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이다. 현재 권역을 어떻게 나눌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김진표 국회의장의 안에 따르면 서울, 인천·경기, 충청·강원, 전라·제주, 경북, 경남의 6개 권역으로 나누게 된다. 수도권·중부권·남부권 등 3개로 구분하는 방안도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지역주의 완화 효과가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영·호남을 ‘남부권’으로 묶을 경우, 대구·경북 지역에서 민주당 의원이, 호남에서 국민의힘 의원이 나올 수 있다. 영남과 경북에서 민주당 비례 의원이, 호남에서 국민의힘 비례 의원이 탄생할 수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의 맹점= 소수 정당이 의석 얻으려면 ‘7% 지지율’ 넘겨야

수도권과 중부권, 남부권의 3개 권역으로 나눌 경우 한 권역당 비례대표 47석 중 15석 정도가 배분될 수 있는데 이럴 경우 득표율이 7% 정도만 넘으면 의석을 배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7% 득표율이 소수 정당에게는 만만치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 1월 25일 국회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은) 수년째 여러 차례 공언한 준연동형 유지, 보완의 입장을 국민께 공식적으로 설명 한번 없이 번복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정의당도 마찬가지다. 김준우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촛불을 배신하려고 하는 것은 민주당"이라며 "미래세대에게 정치가 무엇을 남길지에 대한 과연 떳떳한 대답이 될 수 있을지 자문해 보길 촉구한다"고 압박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권역별 병립형 제안하면 전당원 투표로 결정?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9일 CBS라디오에서 선거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사진=CBS 유튜브 캡처]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9일 CBS라디오에서 선거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사진=CBS 유튜브 캡처]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29일 CBS라디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병립형으로 돌아가서 권역별 비례로 가는 게 하나의 안이고, 현재 연동형제를 유지하면서 시민 세력과 함께 연합비례정당을 만드는 두 가지 안이 지금 존재하고 있다”면서 “조만간 지도부가 결정을 하고, 당내 의견을 수렴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당내 의견 결집은 이번 주 안으로 모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덧붙였다.

‘지도부는 권역별 비례제 하면서 병립형으로 가는 쪽으로 마음을 잡았다라는 소문이 있다’는 진행자의 질문에 홍 원내대표는 “아직은 정해진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이 이 사안을 전당원 투표에 붙이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의원들 단톡방에 올렸다’는 진행자의 질문에, 홍 원내대표는 “지도부가 어느 정도 결정을 하고, 그 안을 의원총회나 전당원 투표를 통해서 추인받는 모습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홍 원내대표는 ‘두 가지 안 중에서 당원 투표를 통해서 결정하겠다 하면, 당 지도부나 의원들이 (당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인 것 같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즉 “A안, B안 2개를 놓고 (당원들에게) 결정해 달라고 하는 것보다는, 지도부가 결정하고 묻는 게 더 좋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하지만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이 과연 적절한 방안인가에 대한 지적은 민주당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김준일 뉴스톱 수석 에디터는 29일 유튜브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전당원 투표로 가는 게 가장 무책임하고 가장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가 자신의 입장을 정한 다음, 당원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선거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전당원 투표’의 악몽 재연될 수 있어

하지만 이 대표는 현재 선거제에 대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입장도 없는 상태’로 알려져 있다. 김 수석 에디터는 이에 대해 “이재명 대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금 아무것도 안한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부패 문제나 사법리스크보다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점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지지율에도 아무 변화가 없다’는 것이 김 수석 에디터의 지적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전당원 투표로 당헌당규를 개정해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낸 적’이 있다. 이낙연 대표 시절, ‘귀책 사유가 있으면 후보를 내지 못한다’는 내용의 당헌당규에 대해 전당원 투표를 한 결과 86.6%의 찬성으로 개정했다. 당시 높은 찬성률로 당헌당규를 고쳐 후보를 낸 결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참패를 했고, 그 결과 정권까지 내주는 ‘악몽’을 초래했다는 것이 김 수석 에디터의 분석이다.

최근 이낙연 전 대표는 그 점에 대해서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사과를 했다. 이재명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전당원 투표로 선거제 제도를 결정하려 할 경우 또 다시 악수를 두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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