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공천 국면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내 권력투쟁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수박’으로 분류된 ‘비명계’ 축출이 어느 정도 진행되자 친명계 내부에서 ‘순수 친명’ 가려내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친명 원외 조직이 그동안 친명 핵심으로 분류돼온 조정식 당 사무총장을 향해 ‘물러나라’고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채널A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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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명계 원외 모임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22일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을 향해 4월 총선 불출마를 결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더민주혁신회의는 이날 논평을 통해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서 당 지도부가 먼저 나서달라"며 "당 사무총장이 선당후사의 물꼬를 먼저 터주시길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의 발언을 거론하며 “가장 중요한 당무를 책임지는 당 사무총장부터 물꼬를 터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임 위원장은 21일 “후진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여론이 있다라는 것도 알고 있다”면서 “멈출 때를 알면 위태롭지 아니하다”는 뜻의 ‘지지불태’를 언급한 바 있다.

표면적 이유= 비명을 쳐내려면 친명인 조정식 희생이 필요해...지역구 경쟁자 탈락이 빌미 제공

더민주혁신회의의 이같은 발언에 친명 핵심 관계자는 “비명을 쳐내려면 친명의 희생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 사무총장이 불출마하면 이 대표가 ‘친명 공천’을 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민주당 검증위에서 조 사무총장 지역구에 도전하는 김윤식 전 시흥시장을 경선 불복을 이유로 부적격 판정을 내린 것을 거론하며 "(조정식에 대한) 의원들 여론이 안 좋다. 이 대표도 그런 여론을 들을 수 밖에 없다"는 의견도 제시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23일 YTN라디오에서 친명계 핵심으로 평가받는 조 사무총장이 총선 불출마를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 전 수석은 “사무총장 자리는 총선을 앞두고 헌신이 요구되는 자리”라며 “사무총장이 한 건 아니지만, (당 예비후보 적격심사에서) 공교롭게 당내 지역구 경쟁자를 커트했다”고 지적했다. 김윤식 전 시흥시장의 부적격 판정을 거론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YTN 유튜브 캡처]
[사진=YTN 유튜브 캡처]

연이어 최 전 수석은 "4년 전에는 (조 사무총장이) 단독공천을 받았는데, 헌신은 못 하더라도 누가 봐도 공정하다고 해야 하는데 그건 이미 글렀다"며 "사퇴까지는 모르겠지만, 헌신한다면 총선 돌파에 대해서, 승리에 대해서 절실하면 누군가는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과 이해찬 간의 주도권 갈등 표면화...친명계 원외인사 희생이 불씨 돼

조 사무총장은 시흥에서 5선을 한 의원으로, 6선으로 선수를 쌓아 다음 국회의장의 꿈을 꾸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원래 이해찬계로 알려졌지만, 친명으로 불리며 총선의 핵심 요직인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조 사무총장에 대한 불출마 요구는, 단순히 친명 내부 간의 갈등이라기보다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총선 이후의 주도권을 놓고 ‘이재명 대표와 이해찬 전 대표 간의 갈등’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의 핵심 관계자는 "'더민주전국혁신회의'로 대표되는 '성남파'와, '이해찬계' 조정식의 알력다툼은 꾸준히 있었다", "정의찬, 강위원, 현근택 등 친명계 원외 인사들만 희생되자 '성남파'의 불만이 폭발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신지호 전 국회의원은 23일 유튜브 ‘어벤저스 전략회의’에서 “느닷없이 이해찬 전 대표와 이재명 대표가 지난 21일 오찬회동을 했다”면서 “이 전 대표 측에서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이 전 대표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회동을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9차 인재 영입식에서 인재영입인사인 공영운 전 현대자동차 사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일영 의원, 김병욱 의원, 이 대표, 공 전 사장, 정성호 의원, 김성환 인재영입위 간사. 2024.1.22. [사진=연합뉴스]uwg806@yna.co.kr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9차 인재 영입식에서 인재영입인사인 공영운 전 현대자동차 사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일영 의원, 김병욱 의원, 이 대표, 공 전 사장, 정성호 의원, 김성환 인재영입위 간사. 2024.1.22. [사진=연합뉴스]uwg806@yna.co.kr

신 전 의원은 “민주당 지도부에서 이해찬 사람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조정식 사무총장과 김성환 인재영입위 간사”라고 밝혔다. 이 전 대표 입장에서는 “친노들하고 내 계파들을 다 칠 것 같아서 이 대표를 만난 것”이라는 게 신 전 의원의 설명이다.

이 전 대표와 이 대표가 4‧10 공천을 앞두고 의기투합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하루 이틀 지나지 않아서 이재명 쪽에서 조 사무총장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이 전 대표에게 이재명 대표가 또 립서비스를 잘 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조 사무총장에게 사퇴를 요구한 걸 보면 ‘친명이 다 할 거니까, 친노들은 나가’라는 요구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친노’를 겨냥한 민주당 내 친명계의 공격 시작돼...임종석과 노영민이 핵심 타깃

이 위원과 신 전 의원의 설명대로 친노를 겨냥한 친명계의 공격이 민주당 내부에서 자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대선에서부터 이재명 대표를 적극 지원하기 시작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23일 ‘윤석열-한동훈’ 충돌 사태의 책임 소재를 거론하며 “석고대죄해야 할 문재인 정부의 두 비서실장이 총선을 나온다”고 비판했다. 추 전 장관이 말한 ‘두 비서실장’은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노영민 전 의원이다. 두 사람 모두 4월 총선에 출마하는데, 이들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발탁해 대통령 당선에 일조했으니 총선에 출마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추 전 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부의 무능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김용남 전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을 소개한 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게) 끝도 없이 힘을 주고 방치한 것을 말한다”며 “윤·한(윤석열·한동훈) 커플이 저지른 난동질을 제동걸지 못한 참담한 결과에 대해 책임감과 정치적 양심을 보여줘야 한다. 정치에 염치를 빼면 뭐가 남느냐”고 적었다.

추 전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2020년 법무장관 재직 시절 윤 총장에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며 ‘추·윤 갈등’을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총장을 수사에서 배제하고 직무까지 정지시켰지만, 윤 총장이 끝까지 맞서면서 ‘권력에 탄압 받는 검사’로 보수 간판 스타가 됐다. 윤 총장은 이듬해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친명계의 속셈= 조정식을 공천 실무 총괄하는 사무총장직에서 내치기...이재명 독자세력 구축?

추 전 장관에 앞서, 민주당의 친명계 조직인 ‘민주당혁신행동’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임종석·노영민 전 실장의 총선 출마 행보를 비판했다. 이들은 언론에 배포한 입장문에서 “윤석열 정권 탄생에 기여한 이들이 민주당 이름으로 출마를 한다니 황당하다”고 꼬집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연합뉴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연합뉴스]

이들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임종석·노영민 전 실장은 윤석열을 발탁한 진실부터 밝히라”고 요구했다. 문재인 정부가 윤석열 당시 검사를 서울중앙지검과 검찰총장으로 발탁한 것이 정권교체의 계기가 됐다며 “윤석열 정권 탄생에 기여한 사람들이 반성도 부끄러움도 없이 앞다퉈 출마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민주당 내부의 이런 분열에 대해 신 전 의원은 “이 대표는 올 8월 전당대회에 재도전해 당대표직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이해찬 전 대표의 도움 없이 홀로서기가 가능할 정도의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단기 목표”라고 분석했다.

조정식 사무총장에 대한 친명계 핵심 원외조직의 불출마 요구는 조 의원 개인의 낙마를 노린다기보다는 ‘공천 실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직에서 쳐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앞으로도 친명계 내부의 갈라치기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등으로 활약하다가 지난 대선을 계기로 중앙정치무대에 진입했던 이재명 대표가 4.10 총선을 계기로 친노와 이해찬계마저도 쳐내고 독자세력을 구축하려한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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