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흉기피습을 당한 지 보름만인 17일 당무에 복귀하면서 내놓은 발언은 ‘음모론’이었다. 개인적으로 큰 위험을 극복한 직후인 만큼 좀 더 성숙한 정치적 소회를 밝힐 것으로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양극화된 정치에 대한 반성과 함께 이를 해결해나가기 위한 정치권과 국민의 노력을 호소할 것이라는 상식적인 기대를 여지없이 저버렸다. 

[사진=TV조선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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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은 18일 “이재명 대표가 음모론을 오는 4월 총선 전략으로 삼기로 한 것 같다”고 강력 비판하는 등 이재명 피습에 관한 ‘가짜뉴스’가 정치쟁점화되고 있다.

보름 만에 당부 복귀한 이재명, 화합의 메시지 대신 갈등 조장하는 ‘가짜뉴스’ 발신

이재명 대표는 1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면서 마치 정부 여당이 지난 2일 자신이 겪은 흉기피습 사건의 배후세력인 것처럼 단언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 대표는 “수십 년동안 수많은 사람이 피흘려 만들어왔던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고 있다”면서 “국민으로부터 권력 위임받은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이, 마치 그 권력을 개인의 것처럼 국민들에게 함부로 휘두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이 대표는 “법으로도 죽여보고, 펜으로도 죽여보고, 그러고서는 잘 안되니까 칼로 죽여보려 했지만 저는 결코 죽지 않는다”면서 “국민들께서 저를 살려주신 것처럼, 이 나라와 미래를 제대로 이끌어주실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발언에는 심각하게 잘못된 이 대표의 인식이 담겨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실정법에 입각해 진행되는 이 대표에 대한 검찰 기소와 재판과정을 ‘법으로 죽이기’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 사법체계 전체를 부정하는 주장이다. 더욱이 위증교사 혐의에 대한 재판은 유죄판결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선거법 위반, 대장동 및 백현동 특혜 의혹,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경기도 법카 불법사용 의혹 등도 사법절차에 따라 수사나 재판절차가 진행중이다. 반성은 일체 없고 사법절차 자체를 음모론으로 비하한 것이다.

“펜으로도 죽여보고”는 자신을 비판한 언론 전체를 ‘정부의 하수인’ 정도로 비하한 표현이다. 언론의 정당한 비판 기능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잘 안되니까 칼로 죽여보려 했지만”이라는 대목이다. 이번 흉기 피습이 정부여당 측이 사주해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인식을 분명히한 것이다. 이는 ‘가짜뉴스’이다. 제1야당 대표가 자신이 직결된 형사사건에 대해 ‘가짜뉴스’를 공식 회의석상에서 살포하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이낙연 신당 등을 초래한 ‘개딸 정치’와 ‘수박 비하 논란’에 대한 반성은 없어

또 “그간 쉬는 동안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래도 역시 '정치를 왜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고 살리자고 하는 일인데, 오히려 정치가 죽음의 장이 되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상대방을 제거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자기자신이 모든 것을 다 갖겠다는 생각 때문에, 정치가 전쟁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원칙과 상식’ 소속 의원 등이 탈당해 신당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러한 갈등의 직접적 원인인 ‘개딸 정치’나 ‘수박 비하 논란’ 등에 대한 반성은 일체 하지 않았다. 오로지 ‘남 탓’으로 일관한 것이다. 자신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과 같은 성숙한 정치적 태도를 볼 수 없었다.

이 대표는 “민주당은 이 정권의 2년간 행태나 성과가 결코 국민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결국 자신에 대한 흉기 피습에 대한 ‘음모론’을 공식제기함으로써 4월 총선 정권 심판론을 결론으로 내세운 셈이다.

한동훈, 이재명 발언 즉각 반박...“한동훈이나 국민의힘이 피습 배후란 말이냐”

[사진=TV조선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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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즉각 이 대표 발언의 문제점에 대해 반박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 4·5선 중진 의원들과 오찬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법으로도 죽여보고 펜으로도 죽여보고 그래도 안 되니 칼로 죽이려고 하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는 이 대표 발언에 대해 “칼로 죽여본다니, 누가 죽여본다는 것인가, 내가? 국민의힘이? 아니면 국민들이? 그 정도면 망상”이라고 직격했다. 이 대표가 흉기 피습의 배후에 한 위원장이나 국민의힘 등이 존재한다는 식으로 억지를 부린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한 위원장은 “굉장히 이상한 사람이 굉장히 나쁜 범죄를 저지른 것뿐 아닌가”면서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걸 정치적으로 무리하게 해석하는 것은 평소 이 대표다운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진=채널A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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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발 음모론은 상처받은 국민을 향한 2차 가해” 비판

이 대표만 음모론을 제기하는 게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민주당도 경찰 부실수사 프레임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김민수 국민의힘 대변인은 논평에서 “민주당발 음모론은 이번 사건으로 상처받은 모든 국민을 향한 2차 가해”라며 “민주당은 자당 대표 피습사건마저도 정쟁을 위한 도구로 쓰겠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또 “민주당발 '이재명 피습사건' 음모론을 해석하면 결국 배후는 정권과 여당이며 경찰은 이를 축소 은폐했고 응급구조대와 의료진은 이 대표를 해하려 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이 대표와 민주당이 피습사건을 둘러싼 음모론과 가짜뉴스를 무차별적으로 살포할 경우 사실과 거짓이 구별되지 않는 대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윤재옥, “이재명 피습 음모론을 이번 총선 무기로 삼은 듯” 비판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18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이 대표가 음모론을 정략적으로 유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18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원내대표, 한동훈 비대위원장, 유의동 정책위의장, 김경률 위원.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18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원내대표, 한동훈 비대위원장, 유의동 정책위의장, 김경률 위원. [사진=연합뉴스]

윤 원내대표는 “법으로도 죽여보고 펜으로도 죽여보고 그래도 안 되니 칼로 죽이려고 하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는 이 대표의 발언에 대해 “궤변이다. 한 개인의 범죄를 마치 정치 탄압인 것처럼 교묘한 프레이밍을 시도하고 있다”면서 “민주당이 이번 총선은 이재명 대표 피습 음모론을 무기 삼아 치르기로 작정한 모양”이라고 날을 세웠다.

구자룡 비대위원은 “이 대표는 음모론을 그만두라”면서 “우리는 이 대표 주변의 안타까운 연이은 죽음을 알고 있다. 법으로도 죽여보고 펜으로도 죽여봤다는 게 혹시 자기 고백은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보길 바란다”고 질타했다.

조해진 의원은 SBS 라디오에 출연해 “이 대표 이야기를 들어보면, 열에 한두 개 정도가 정상적인 발언이고 나머지 여덟아홉 개는 궤변”이라며 “사법 체계를 무력화하고 당을 내세워 방탄하고 그나마 있는 재판절차도 계속 미루고서는 '법으로 나를 죽이려고 했다'는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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