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김정일 초상화.(사진=AP 연합뉴스)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사진=AP 연합뉴스)

2000년대 이후 북한의 대남심리전 중 최대의 성공작은 ‘영향공작’(Influence Operation)이라 할 수 있다. 영향공작이란 1960년대 구 소련의 KGB(국가보안국)가 개발한 심리전술로 당시 ‘철의 장막’으로 알려진 소련에 부정적이며 적대적인 서방세계 국민들의 의식을 희석시키고 소련에 대해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생각을 같도록 유도하는 전술이다.

예를 들어 서방세계의 유력한 언론인이나 정치인 및 학자들을 소련에 초청하여 정해진 일정을 통해 소련의 긍정적이고 우월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극진한 환대 등을 통해 소련에 우호적인 의식을 갖도록 한 다음, 이들이 귀국하여 각종 방문기, 여행기를 통해 소련에 대한 서방세계 국민들의 부정적 의식을 희석시키려는 것이다. 

북한 대외선전용 화보 '조선' 4월호는 1일 '인류자주 위업, 사회주의 위업의 승리적 전진을 위하여' 제하 기사에서 김일성 주석 생일(태양절) 111주년(4월 15일)을 앞두고 그의 대외활동을 조명했다. 사진은 1985년 8월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와 만난 김 주석. 2023.4.1(사진=연합뉴스)
북한 대외선전용 화보 '조선' 4월호는 1일 '인류자주 위업, 사회주의 위업의 승리적 전진을 위하여' 제하 기사에서 김일성 주석 생일(태양절) 111주년(4월 15일)을 앞두고 그의 대외활동을 조명했다. 사진은 1985년 8월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와 만난 김 주석. 2023.4.1(사진=연합뉴스)

#1. 북한의 문화선전원(?), 루이게 린져

북한도 1970년대 이래 해외 저명인사나 재외동포 등을 대상으로 방북공작을 통해 영향공작을 선 보인 이래 점차 정교해지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우리에게는 ‘생의 한가운데’(1950년 발표, 국내에서는 1961년 번역본 출간)라는 소설로 널리 알려진 독일 작가 ‘루이게 린저’를 손꼽을수 있다.

그녀는 1980년 김일성의 초청으로 방북하고 돌아와 ‘북한 방문기’(1981, 한국에서는 ‘또 하나의 조국’ 명의로 출간)를 출판했다. 북한당국의 안내에 따라 외눈(?)으로 잠시 북한 사회를 접하고 돌아와 북한 사회를 미화·선전하는 여행기를 쓰며 영향공작에 활용되었다. 1886년 방북때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받으며 국빈대우를 받았다. 총 10차례나 북한을 드나들었다. 이 책자는 국내 종북세력들에게 북한체제를 찬양하는 학습교재로 활용되었다.  

북한의 영향공작에 놀아난 해외 인사들을 소개하면, 루이게 린저(독일 여류작가) 외에도 세르그 해리슨(카네기재단 연구원), 윌리엄 테일러(위싱턴 포스트지 기자), 빌리 그레이엄(목사), 프랭크 머코스키(미 상원의원), 빌 리차드슨(전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 등이 있다. 또한 수많은 국내 인사들도 있으나, 민감한 사안이라서 실명을 밝힐 수 없다. 

지난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손을 맞잡은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손을 맞잡은 모습. (사진=연합뉴스)

#2. 6.15 공동선언 전후 남북교류에 편승한 영향공작 극대화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특히 2000년 6.15 공동선언 전후하여 급속히 확대된 남북교류에 편승하여 북한은 우리 국민들과 해외동포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영향공작을 전개해왔다. 1999년 말, 정부는 남북한 문화예술교류를 추진한다는 미명 하에 막대한 달러(방북사례비)를 지급하며 인기 대중가수를 북한에 보내 ‘2000년 평화친선음악회’(1999.12.5)와 ‘제1회 민족통일음악제(1999.12.20) 등을 평양에서 개최한 바 있다.

이들 방송사에서는 남북한 가수들의 공연행사가 마치 통일에 큰 기여나 하는양 호들갑을 떨며 평양 공연실황을 생중계하겠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한 바 있다. 그러나 생중계는 녹화중계로 바뀌었고 코리아나그룹 등 일부 연예인들은 출연조차 하지 못하고 되돌아 와야만 했다. 이들 방송사는 북한에서 공연을 하고도 공연료를 받기는 켜녕 도리어 북한에서 상당금액의 공연감사료(?)를 지급한 굴욕적인 평양공연을 반성하기는 켜녕, ‘성공적 공연’ 운운하며 자화자찬을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였다. 북한공연을 녹화방송 후 참가 가수들이 공연의 뒷애기를 다룬 좌담프로를 통해 북한 찬양에 여념이 없었다. 특히 젊은 청소년에게 대중적 영향력이 큰 이들 가수들이 하나같이 ‘북한 인사들의 환대, 북한의 예술수준, 공연장 규모, 고급음식점에서의 식사장면, 평양시민의 환대’ 등을 소개하며 북한 사회를 미화, 선전하고 있다. 한마디로 북한이 의도했던 ‘영향공작’이 자연스럽게 우리 전파매체를 통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침투 확산되고 있었다. 

지난 2002년 10월 1일 부산 부경대체육관에서 열린 부산 아시안게임 역도 경기에서 단체 응원을 펼치는 북한 응원단의 모습.(사진=연합뉴스)
지난 2002년 10월 1일 부산 부경대체육관에서 열린 부산 아시안게임 역도 경기에서 단체 응원을 펼치는 북한 응원단의 모습.(사진=연합뉴스)

#3. 미녀응원단 등의 방남공작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 체육교류도 활발해졌다. 특히 국내에서 개최된 국제 스프츠행사에 북한은 대규모 미녀응원단을 파견하며 영향공작을 구사하였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288명),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303명),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124명) 등에 20대 초중반의 여대생과 취주악단 등으로 구성된 세련된 대규모 미녀응원단을 참가시켰다.

이들의 미모와 세련되고 친절한 행동 및 일사불란하게 진행하는 응원에 국민들과 언론은 평화분위기 연출에 놀아 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북한 사회에 대한 부정적이고 적대적 인식이 희석될 수 밖에 없었다. 바로 방남 영향공작의 대표적 사례이다.

2014년 1월10일 신은미 씨. 신은미 씨는 이날 북한 평양에서부터 판문점을 찾아갔다고 밝힌다. 2021.10.10(사진=신은미 씨 SNS)
2014년 1월10일 신은미 씨. 신은미 씨는 이날 북한 평양에서부터 판문점을 찾아갔다고 밝힌다. 2021.10.10(사진=신은미 씨 SNS)

#4. 신은미의 종북토크쇼

2014년 이른바 종북토크쇼 논란에 야기한 미국 국적의 재미동포인 신은미의 경우도 북한의 영향공작에 놀아난 대표적 사례이다. 신은미는 자신이 보수적 성향이며 북한에 적대적이였던 사람이고 이념과는 무관한 평범한 주부임을 내세우고 있으나, 북한을 6차례 방문하면서 북한 측의 안내에 따라 제한적으로 경험한 사실을 마치 북한 전체사회 모습인 양 미화·찬양하며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행각을 일삼았다. 이는 북한 실상을 올바르게 균형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화를 빙자한 또 다른 편협함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당시 신은미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북한을 6차례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 6차례 그것도 자유여행이 아니라 북한당국의 안내에 따라 특정한 곳을 선별적으로 방문한 신은미가 북한 전체를 다 아는 양 지껄이는 것은 오만이며 편협함의 극치였다. 신은미는 북한을 3차례 방문하고 방북기를 발간했는데, 북한당국이 ‘영향공작’차원에서 연출하는 사안에 놀아나 방북기에서 개선문 광장 앞 포크댄스 광경, 모란봉공원 소풍객관련 사진, 평양 대동강변의 낚시, 보트 놀이 관련 사진들을 첨부하여 북한사회를 마치 살기 좋은 사회인 양 미화하였다. 

여기까지는 북한의 1차 영향공작에 놀아난 것이 분명하나, 그 이후에는 북한의 2차 영향공작 대상자가 되어, 해외와 국내에서 북한체제를 미화, 선전하는 ‘문화공작원’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신은미 사례를 통해 북한의 정교한 영향공작의 백미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사장 임종석)이 지난 3월18일부터 향린교회 옛터에서 연 남북 미술품 전시회 중 일부 작품. 2022.03.18(사진편집=조주형 기자)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사장 임종석)이 지난 3월18일부터 향린교회 옛터에서 연 남북 미술품 전시회 중 일부 작품. 2022.03.18(사진편집=조주형 기자)

#5. 각계각층, 정권 핵심부까지 확산된 북한 영향공작 

북한의 대남공작부서는 이른바 남조선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심리전차원에서 영향공작을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면에서 공간’으로 정교하게 확대하고 있다. 특히 영향공작의 대상이 되는 인사는 초기에는 자신이 북한의 영향공작에 놀아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사실상 북한을 노골적으로 미화, 찬양하는 국내 종북세력들 외에도 신은미와 같은 영향공작 수행자들이 실제로는 우리 체제에 더욱 심각한 위협을 준다고 평가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은 제2, 제3의 신은미를 양산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이후 우리 사회에 북한을 추종하는 종북세력이 사회 각계각층에 침투되고 2000년대 이후 제도정치권과 정권 핵심부에 까지 확산된 상황에서 우리가 북한의 영향공작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6.25 남침전쟁에 버금가는 안보위기를 맞을 수 있다.

북한 김정은 "대한민국은 주적…전쟁 피할 생각 없어" .2024.01.09.(사진=연합뉴스TV , YonhapnewsTV)
북한 김정은 "대한민국은 주적…전쟁 피할 생각 없어" .2024.01.09.(사진=연합뉴스TV , YonhapnewsTV)

#6. 김정은 대남 영향공작의 대전환 예고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26일부터 30일까지 5일간 진행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대남사업의 전면 전환방침을 선언했다. 김정은의 대남부문 발언을  요약해보면, 더 이상 대한민국 것들, 남조선 것들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지 않겠다.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사업부문의 기구들을 정리, 개편하겠다.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하여 남한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향후 북한이 남북대화를 중단하고 무력적인 방법에 의해 통일을 달성하겠다는 협박이다.  남북대화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통일전선부의 기능을 정비 및 폐지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북한은 1월 11일부터 간접 영향공작의 수단이었던 통일전선부가 운영하던 평양방송과 우리민족끼리(조평통 웹사이트) 등과 같은 대남선전용 웹사이트와 유튜브계정 등을 폐쇄하였다. 대남공작은 군의 정찰총국과 당의 문화교류국(구 대외연락부)으로 이원화시키고 무력적화통일을 위한 비합법 공작을 전개하는 기반조성책으로 두 부서의 역할과 활동을 강화시킬 것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대남심리전 기능과 국내 종북세력 지하지원 기능도 양 부서로 이관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공개적인 방북공작이나 방남공작 등 대면접촉을 통해 영향공작을 확대하던 방식에서 비합법영역의 지하공작을 통해 새로운 패턴의 영향공작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대상 영향공작은 지속될 것이다.   

북한 및 종북세력의 적화공세에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체제가 이렇게 유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안보라는 둑을 굳건히 지켜온 군, 국정원, 안보경찰 등의 희생 및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려고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 및 자유시민의 노력 덕택이라 할 수 있다. 이 분들의 희생과 노고를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영향공작에 대한 이해와 경계 및 차단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편집=조주형 기자)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편집=조주형 기자)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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