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내 예비후보 적격심사에서 불거진 ‘성비위 의혹’ 논란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 논란에 휩쓸린 인사들은 공교롭게도 친명계로 분류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들은 당안팎의 비판여론이 거세짐에 따라 순차적으로 예비후보를 자진사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퇴원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이 대표는 자택에서 당분간 치료를 이어갈 예정이다. 2024.1.10.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퇴원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이 대표는 자택에서 당분간 치료를 이어갈 예정이다. 2024.1.10.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이 대표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공정성’을 중시하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정치적 리더십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비명계 박용진, 성비위 의혹 3인방 거론하며 이재명의 결단을 압박?

이재명 대표가 지난 10일 서울대병원에서 퇴원 직전, 최측근 정성호 의원과 주고받은 문자가 포착되면서 불거진 ‘현근택 성비위’ 논란이 도화선이 됐다. 이 논란이 단순히 한 명을 공천 주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넘어서, 이 대표의 리더십 문제로 번진 데는 박용진 의원의 발언이 크게 작용했다.

박 의원은 1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성희롱 발언 의혹 등을 두고 "자격 없는 후보들, 형편없는 인물을 공천하면 민주당은 망하는 길"이라며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면 즉각 조치했을 것"이라고 이재명 대표를 겨냥했다.

박 의원은 현 부원장 외에도, 정봉주 전 의원의 미투 의혹 그리고 강위원 특보의 성문제와 관련된 범죄 혐의까지 거론하며 “성비위 의혹의 3인방, 이 트로이카가 당의 공천 국면을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이면 정말 큰일난다”고 우려했다.

현근택 부원장에 대한 조치를 주저하거나 강위원 특보에 대한 조치를 회피하려고 하거나 정봉주 미투 의혹을 모르는 척하면 망하는 길로 갈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사진=CBS 유튜브 캡처]
[사진=CBS 유튜브 캡처]

정 전 의원은 비명계인 박 의원 지역구인 서울 강북을에 출사표를 던진 상태이다. 과거 미투 논란이 제기됐던 정 전 의원은 최근 민주당 예비후보 심사에서 적격 판정을 받았다. 민주당은 2020년 총선 때는 정 전 의원을 성추행 의혹으로 부적격 처리했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은 2021년 성추행 의혹을 보도한 한 인터넷 매체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 등에서 무죄를 최종 확정받았다. 다만 정 전 의원이 미투의혹을 보도한 프레시안 기자 등을 대상으로 낸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정 전 의원에 대한 무고 등 혐의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됐지만 "이것이 '성추행 사실이 없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는 취지는 아니다"고 봤다고 프레시안은 보도했다. 여전히 다툼의 여지가 남아있는 사안이라고 볼 수 있다.

박용진 지역구에 도전장 던진 정봉주, “허위사실 공표로 선거법 위반 될 수 있어”

따라서 박 의원의 발언을 두고 민주당 내부 친명 모임에서는 ‘아무말 대잔치’라며, ‘해당 행위’로 징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정 전 의원은 16일 MBN ‘지하세계-나는 정치인이다’에 출연해 박 의원을 대해 “허위사실 공표로 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다”면서 “위험하다. 제가 문제 제기를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당에서 문제 제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 의원의 주장은 외견상 자신의 지역구인 강북을에 도전장을 던진 정 전 의원을 겨냥한 발언으로도 보이지만, 진짜 핵심은 ‘이 대표가 당내 공천과정을 둘러싼 성비위 논란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그냥 방치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지적한 데에 있다. 사태를 예민하게 바라보고 심각해서 판단해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동훈의 비교우위를 강조한 박용진, “한동훈이라면 즉각 조치했을 것”

그러면서 박 의원은 2012년 총선에서 ‘김용민 후보 공천’을 실례로 들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 투표였기 때문에 ‘다 이긴다’고 본 선거를 망친 이유는 ‘김용민 후보 문제를 빨리 결정하지 못하고 일주일인가 열흘인가 질질 끌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당시 김용민 후보가 콘돌리자 라이스 장관을 두고 한 부적절한 발언이 민주당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다.

특히 이날 박 의원의 발언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은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이 대표의 결정을 비교’했다는 점이다. 박 의원은 "국민들에게 거꾸로 한동훈이면 어떻게 했겠냐 물어본다. 한동훈이면 어떻게 했겠나?"라며 "즉각 조치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민주당의 리더십, 민주당의 지도부가 그런 즉각적 조치가 아니라 이게 지금 질질 끌고 있거나 정밀 심사로 넘어가겠다라고 하면서 공관위로 넘긴 상태"라고 지적한 것이다.

[사진=채널A 캡처]
[사진=채널A 캡처]

친명계로 꼽히는 현 부원장이나 강위원 특보의 문제에 대해서 이 대표가 시간을 끌고 결정을 빨리 내리지 못하는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이 대표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함으로써 “국민들 보시기에 이재명 대표하고 친하면 패스 그리고 이재명 대표하고 멀리 있거나 이재명 대표 측근들에게 도전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다이(die, 죽는다), 이렇게 되면 국민들이 보시기에는 정말 갸우뚱(하실 것)"이라고 비판했다.

강위원은 ‘부적격 판정’ 대신에 ‘자진 사퇴’로 마무로...민주당 차원의 단호한 대처 없어

박 의원의 해당 발언 이후 친명계 원외 핵심 인사로 꼽히는 강위원 당대표 특보는 스스로 총선 공직선거후보자 검증 신청을 철회했다. 음주·무면허 운전에 성추행 2차 가해 사실까지 알려진 상황에서도 버티던 강 특보가 입장문을 통해 "'계속 심사' 대상으로 당이 결정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이 부담된다"며 "이재명 대표와 당의 총선 승리 전략을 흔들게 둘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강 특보의 철회를 두고 15일 채널A에 출연한 박원석 미래대연합 공동대표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정치권에 어떤 특별한 인연이 있거나 빚을 진 게 없기 때문에 저런 기준에 대해서는 엄격할 것 같다”면서 “민주당 내부의 예비심사를 두고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강 특보에 대해 “성 비위 음주운전 논란 등으로 과거에도 공직 출마를 포기한 사례가 있었다. 당연히 당내에서는 부적격이라는 시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표의 특보라는 이유로 부적격 판정을 안 내리고 있었다”면서 “스스로 포기하는 형태가 본인에게는 좀 덜 불명예스러운지 모르겠으나, 당 내부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기준이다, 이런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 전 의원에 대해서도 “‘부적절한 자객 출마’인 것 같다”며, “저런 것들이 당내에서 친명비명 간에 공천 불협화음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근택, 피해자A씨 ‘실명’과 함께 ‘합의안된 합의서’를 공개...2차 가해논란 촉발돼

같은 방송에 출연한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민주당은 과거 박원순, 오거돈, 안희정 등 3명의 자치단체장의 성비위 문제가 큰 논란이 된 적이 있다”면서 “그런 것을 겪고도 성비위 논란이 반복되는 것이 민주당이 현재 처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가 단호하게 대처를 하지 못함으로써, 박용진 의원이 한동훈 위원장까지 소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진단한 것이다.

특히 현근택 부원장 같은 경우에는 당 윤리위원회 감찰단의 조사가 시작된 마당에, 당사자들의 화해를 통해서 해결을 하려는 시도로 ‘2차 가해’ 논란까지 제기됐다. 성희롱 발언 논란이 불거지자 현 부원장이 피해자 측과 합의에 나섰지만,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반박에 나서면서 오히려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현 부원장의 성희롱 발언의 피해자이자 민주당 성남 지역 정치인인 이석주씨는 지난 14일 페이스북에 자신과 현 부원장, 피해자 A씨가 작성했다는 3명의 합의문을 공개했다.

이씨는 “잠정적으로 3인이 대화를 나눴고 현 후보 본인이 자필로 쓰고 마무리 과정 중”이라며 “다만 피해자분이 법률 검토를 하고 최종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사안은 성희롱으로 기억될 게 아니고 실수와 모범적인 사과로 기억될 것”이라고 적었다.

[사진=채널A 캡처]
[사진=채널A 캡처]

이 합의문에는 현 부원장이 사과한 내용이 포함됐다.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당시에 현장에서 위 발언 이외에 직접적인 발언은 없었다. 술에 취해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해 상처를 더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는 내용이었다.

이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합의문에 대해 피해자 A씨는 ‘해당 문서에 사인하지 않았고, 현 부원장의 사과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내 합의도 없이 어떻게 합의문이 SNS에 올라가냐?’며 문제제기에 나섰다. 특히 이씨가 올린 내용에는 “이석주와 A씨는 현근택의 불출마, 당내 징계 및 출마 자격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현 부원장은 당 윤리위원회 감찰을 받는 상황이어서, 피해자와의 합의가 가장 시급했던 것으로 관측된다. 이씨가 합의문을 본인 SNS에 올리자, 현 부원장도 거기에 동의하면서 자신의 SNS에 올렸다. 그런데 정작 피해자 A씨가 합의 사인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합의문이 공개된 것이다.

현근택 사태, ‘친명 패권 공천’의 문제점 드러내

법조계에서는 ‘피해자의 사인이 없는 합의서도 금시초문인데다, 그게 공개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4일 채널A에 출연한 강전애 변호사는 “현근택 변호사가 자필로 쓴 합의문 내용에는 심지어 ‘2차 가해에 미안하다’는 얘기까지 있다”며 “피해자의 사인은 있지도 않고, 오히려 피해자의 이름을 온 세상에 알린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형사적인 죄책도 아마 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 부원장은 지난해 말 모임에서 같은 지역 출마 예정자였던 이석주 예비후보의 수행비서 A씨에게 “부부냐”, “같이 사냐” 등의 발언을 해 도마 위에 올랐다. 이씨는 현 부원장이 사과한 합의문에 서명을 했지만, 피해자 A씨는 서명하지 않았다.

특히 A씨는 이씨의 글에 댓글로 반박했다. “피해자를 가해자로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할 지경까지 이르렀다”며 “지금은 최대한 말을 아끼겠다. 또다시 당했다는 생각에 참 씁쓸하다”고 적었다. 피해자 A씨가 형사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경우, 현 부원장의 형사 처벌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여론에 밀린 현근택 16일 불출마 선언...이재명은 여전히 침묵 모드

결국 현 부원장은 16일 오후 페이스에 글을 올려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번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 당과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저의 도전은 여기에서 멈춘다"고 적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단 현 부위원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상황이 종료됐다고 보기 어려운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9일 친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과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에서 “현근택은 어느 정도로 할까요?”라고 물었고 정 의원은 "당직 자격 정지는 돼야 하지 않을까, 공관위 컷오프 대상"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컷오프는) 너무 심한 거 아닐까요?"라고 반문했다. 현 부원장의 사례가 컷오프할 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게 이 대표의 판단임이 공개된 것이다. 현 부원장이 불출마를 결정했지만, 이 대표는 성비위 논란에 대해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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