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
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

 

1910년은 한국과 중국이 일본을 뒤이어 근대적 '시간의식'이 형성된 시기다. 현재 우리가 말하는 시간이란 단어도, 시계(時計)라는 말도 모두 일본에서 수용한 것이다. 

서양적 의미의 근대적 시간의식, 시각제도는 사상과 문명과 함께 근대성의 중요한 요소이다.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시간'이란 말을 도입한 사람은 유길준이다. 한국사상 일본 유학 제1호 인물인 그는 일본에서의 유학체험을 바탕으로 유명한 '서유견문'을 1895년 4월에 간행하여, 일본문명을 통해 한국인을 계몽한 거물 지식인이었으며, 그 책에서 '정치학' '과학' '경제' '언어' 등 어휘와 함께 '시간'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근대적 시간관념이 한국에도 중국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신(時辰)'이란 용어가 말해주듯이, 동아시아 전통사회에서는 태양의 운행을 바탕으로 '신시' '말시'하는 격으로 시간을 측정하였는데 정밀한 시간 관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1801년에 마테오 리치가 선교사 자격으로 북경에 도착하여 명나라 신종황제에게 선물로 자명종을 헌상했는데, 중국인들을 크게 놀라게 했다. 그뒤 청국을 통해 조선황실로도 시계가 선물로 들어오는데 역시 조선인들은 신기한 것으로 놀랐다는 기록이 보인다. 청나라 강희, 건륭은 모두 시계를 몹시 즐겼는데 그것을 재미로 기교지물로 보았을 뿐만 아니라 몸소 시계를 제작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계사용은 조정이나 왕실에 불과했고 사회 전체가 '시간의식'을 갖추게 되는 때는 20세기 초반까지 기다려야 했다.

사실 중국이나 한국에 근대 '시간관념'을 보급하도록 등을 밀어준 것은 일본 유학생과 일본을 다녀온 식자들이었다.

일본은 명치유신 후인 1872년 11월에 '개력'령이 발포하고 서양의 태양력을 도입, '표준시간'에 따라 국민의 시간의식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 대도시 도쿄나 오사카에서 오포(午砲)는 시민들에게 시간을 알리는 것으로 인기가 있었다.

일본에서 일본인들이 모든 생활을 '시간'에 맞추어 작식하고 철도교통, 공장, 학교의 근대적 시간을 엄수하는 광경을 보아왔던 유학생이나 관찰가들은 그때로부터 일본인을 본따서 서양식 일부, 시간으로 일기를 적기도 했다. 문호 노신의 일기를 보면 시간 단위로 일과를 적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904년경 직예고등공업학당의 수업풍경을 보면, 교실 중앙에 걸린 벽시계가 20세기 초 중국에서 시계가 학교에도 이미 보급되기 시작했다는 새 사실을 알 수 있다.

"시간을 계량하는 장치"란 뜻의 시계가 전근대적 느슨한 시진 속에서 대충 대충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던 사람들이 숫자로 표상되는 시, 분, 초의 시간 속에서 자신을 일상적으로 규율에 예속시키기로 한 근대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에서는 1912년(민국 원년) 1월 2일 개력이 실행되어 태음력을 폐지하고 서양적 태양력이 채용됨으로써 세계의 표준 시각제도에 들어섰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리하여 사실 지금의 시계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이때로부터 우리가 시간을 보면서 시간관념 속에서 살아온 것은 백년에 불과하다.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시간관념'의 생성은 1910년 일제 강제 병합으로부터 시작했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물론 그전에도 '시계'란 단어와 함께 실제로 시계가 사용되긴 했으나 근대적 의미의 시간관념은 이 시기라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한말 외국인의 기록이나 일본인의 기술에도 그때 조선인이 느긋하고 유장하게 행동했다는 것은 근대적인 시계에 의한 시간관념이 희박했다는 증거로도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1910년 4월 3일 주목할 시계광고가 상해에서 나온다. 그무렵 상해 최대의 백화점 혜라공사가 낸 최중시계 광고이다. '시계의 문화사(카도야마)'에 의하면 그것은 미국제로서 단가가 하나에 2.5원이었는데 성능이 좋아서 일본에서도 20년 전 수입되어 잘 팔렸다고 한다. 염가시계로 하여 시계가 급격히 시민들 속에 보급 거기에 싼 손목시계까지 등장하여 시계는 국민의 일용품으로 정착된다. 그것이 1910년대 중반이다.

"시간에 쫓긴다, 매여 산다"는 일상용어는 그때부터 탄생되며, 그 시간관념은 바로 그때부터 생성, 보급되었다.

20세기 초 중국신문 '신문화보'에 게재된 개가 사람들의 하루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을 극화한 그림이 있다. 9시에 학생이 등교하고, 12시 장사꾼이 지나가고 동냥꾼이 나타나고 4시에는 손님 접대를 하고 6시에는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인간세상의 일과를 개의 눈으로 바라본 것이다. '구안간인(狗眼看人)'의 만화로 흥미롭다.

근대 중국인의 일상화 시간의식에 지배돼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동아시아에 전파된 '시간의식'은 근대화를 이룩하는데 사상 문화의 팩터와 비견되는 중대한 의식혁명이다.

프랑스의 학자 바스드우 불기에일은 '시간의 해석과 일본의 영향'이란 논고에서 그 의미에 대해서 이렇게 갈파하고 있다.

"시간을 단지 주기적, 직선적 시간의 조합으로만 생각하던 중국인이 시간을 미래와 결부시키는 감각은 원래 없었으나" "그 역사적 거울로서의 시간을 통해 과거 비재를 포섭한, 미래를 의식하게 되었다."

"중국인이 일본에서 본 표준화 시간은 과거에만 시간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가 과거보다 더 중요하며, 이런 시간의식의 정신적 변혁은 젊은 중국지식인들로 하여금 과거에 대해 재고하고 자신들의 역사를 거리를 두고 생각할 수 있게끔 했다."

상고문화에 비중을 둔 중국인이 '진보관념'을 통해 '진보사상관념'을 의식하게 되고 개안하게 된 것은 중국인에게는 큰 사상적 혁신이었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3국의 근대 역사는 이런 의미에서 '시간'의 역사 또는 '시간의식'의 역사라고 칭할 수 있다.

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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