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어디 말대꾸야?"     

586 세대 정도라면 어렸을 때 누구라도 들어봤을법한 말이다. 이 훈계에는 이유를 불문하고, 아무리 논리가 구려도 나이가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권위주의적 위계질서가 내포돼 있다. 이른바 꼰대 의식이다.     

꼰대질이 횡횡하는 사회가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9세기 조선이 그랬다. 아무리 서양의 문물이 동양보다 앞서있다는 증거를 들이대도 조선의 양반 지배 귀족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그게 가능했던 것은 유교적 세계관과 결합한 권위주의와 꼰대 의식이 사회 저변에 깊숙히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이런 꼰대의식을 일찌감치 청산하지 못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그런 나라가 한 세기가 지나 선진국이 된 것은 운이 많이 작용했다. 식민지 시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신분제가 완전 청산되고, 과거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아버렸다. 토지개혁과 자유시장경제를 통해 개인의 권리와 재산권의 가치를 경험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달리기에 돌입했다.      

미 군정청이 1946년 7월 '미래 한국 통치구조'에 관해 여론조사를 했을 때 한국인의 77%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원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관철한 리더의 선택은 지금 서울과 평양의 차이를 만들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라면 그런 선택을 관철하리라 장담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운이 좋았다.     

대한민국은 패스트 팔로워 전략으로 선진국에 입성했다. 1948년에는 지도자와 국제질서가 선택했지만, 이제는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한다. 새 길을 만든다는 것은 새 패러다임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아직도 꼰대질이 너무 많다. 1948년에는 꼰대들이 끼어들 틈이 없어 패러다임 전환을 할 수 있었다면, 이번엔 꼰대들이 패러다임 전환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운동권 정치다.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어디 말대꾸를"이라는 말을 듣고 자란 586 정치인들은 후배 세대들에게 여전히 그런 소리를 하고 있다.     

꼰대 언론도 끔찍하긴 마찬가지다.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발언 와중에 나온 조크를 뽑아 앞뒤 다 잘라내고 노인폄하로 몰아가는 한겨레와, 한겨레를 따라 쓴 수많은 매체들을 보라. 실제적인 맥락이 무엇인지도 따지지도 않고, 또 그것이 노인을 겨냥한 발언인지 따지지도 않고 그들은 무책임한 말의 독침을 쏟아대고 있다. 꼰대질이다.     

양평고속도로가 영부인의 이익 때문에 노선이 바뀌었다는 주장이나, 대통령실의 위치를 정하는 데 천공이 개입했다는 주장,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이 새벽 3시까지 청담동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주장 등은 자신들의 뇌피셜에 기반한 정황 외에 그 주장을 입증할 객관적 증거가 전혀 없이 보도됐다. 언론들은 인용의 형식으로, 공방의 형식으로 정치적 의도로 찌든 주장을 퍼날랐다. 꼰대질이다.     

객관적 근거나 치밀한 논리는 애초에 필요 없었다. 웬만하면 처벌받지 않는 언론은 무소불위의 권력이 됐고, 과거 권력을 위협하는 자들을 사문난적으로 몰아 죽여버리듯 지금은 여론이라는 칼을 휘두르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자들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려고 대든다.     

대한민국이 민주화와 산업화를 모두 이루는 동안 운동권 세력은 한때 군부독재의 꼰대질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지만, 군부독재가 사라진 이후 꼰대 역할을 자신들이 이어받았다. 꼰대질도 그렇거니와 기득권을 끝까지 지키려 발버둥 치는 모습까지 조선 양반 귀족을 빼닮았다.     

운동권 언론은 운동권 정치권력과 운명공동체이자 운동권 정치가 그 구린내 나는 꼰대질을 계속할 수 있는 기반이기도 하다. 운동권 정치 청산이 화두가 되고 있다. 꼰대 정치의 청산만으로는 부족하다. 꼰대 언론이 함께 청산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이 한 번 더 도약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정철웅 KBS방송인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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