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트럼프, 김정은에게 비핵화 촉구 안하면 ‘당근’을 그냥 가지려 들 것”
美전직 협상가들 “北, 핵시설 은폐 정황은 미북회담 합의 위반 아냐...신고서 제출이 출발점”

북한의 핵미사일 은폐 의혹이 최근 미국 언론을 통해 잇따라 제기되자 미국 내에서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와 함께 이를 ‘미북 정상 간 합의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신중론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일(현지시간)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계속하고 있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김정은이 우라늄 농축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존중하지 않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비핵화 시간표와 완전한 핵시설 리스트를 요구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에게 대북 강경책을 촉구했다.

WSJ은 이날 사설에서 최신 위성사진들은 북한이 영변에 있는 플루토늄 생산 원자로의 냉각시스템을 개선시키고 다른 핵시설에서 플루토늄 추출 작업과 농축작업이 행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WSJ는 “미 정보당국은 지난주 이러한 정보를 언론매체에 알림으로써 북한이 핵무기에 사용되는 농축 우라늄 생산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며 “이는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정상회담 후에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김정은은 아마도 지금 이러한 기회들을 부당하게 이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정은은 서해에 위치한 미사일 실험 시설을 해체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가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며 북한에 대한 불신을 나타냈다. 또 “비록 비핵화 시간표가 존재한다할지라도 북한은 오랫동안 그것을 따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며 “김정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모든 비핵화 약속을 어겼다”고 상기시켰다.

WSJ는 “트럼프 행정부가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만든 최고의 기회는 대북 ‘최대 압박’ 캠페인이었다"며 "그러나 중국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대북제재를 완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했듯 밀수꾼들이 북중 국경을 넘어 물품을 이동시키고 있으며 북한은 노예노동으로부터 외화를 더 많이 벌어들이기 위해 현존하는 대북 제재에 난 구멍을 이용하려 들 것”이라고 했다.

WSJ는 “계속되고 있는 북한의 핵연료 생산은 북한이 가능한 한 오랫동안 미북 대화를 질질 끌며 각 단계마다 미국으로부터 새로운 양보를 받아내는 전통적인 패턴을 좇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변에서의 활동은 김정은이 비핵화에 대한 조치 없이 ‘미북 정상회담이라는 당근’을 주머니에 넣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비핵화를) 촉구하지 않는다면 김정은은 당근을 그냥 가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을 압박할 것을 촉구했다.

반면 과거 북한과 비핵화 협상에 나섰던 미국의 전직 외교 당국자들을 인용해 최근 언론이 보도한 ‘북한 핵시설 은폐’ 정황을 미북 정상 간 합의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어떤 구체적 약속도 도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비핵화 과정은 북한의 ‘완전한 신고서’ 제출 시점부터 시작된다는 지적이었다.

조셉 디트라니 전 6자회담 미국 측 차석 대표는 2일 미국의소리(VOA)에 “출처와 정확성을 확인할 수 없는 정보가 언론에 유출된 것”이라며 “북한이 핵물질을 만들고 핵시설을 은폐하려 한다는 최근 보도 내용에 지나치게 무게를 둘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는 “후속협상을 앞두고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번 절차와 검증은 북한이 핵 신고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된다”며 “북한이 어떻게 핵 신고서를 작성하는지 또한 엄격한 검증 의정서에 동의하는지 지켜봐야 하는 만큼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북한이 신고서를 받고 현지에 사찰단을 파견하기 전가지 해당보도를 근거로 북한이 미북 성명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며 “다만 해당 보도가 북한에 국제사회를 속이려 해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일종의 ‘감시자’ 역할을 하기 위한 의도였다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북한이 조만간 ‘핵 신고서’를 제출하고 사찰단을 허용하면 모든 상황을 알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도 자신이 과거 북한과 협상에 나섰을 때도 있었던 일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힐 전 차관보는 “(최근 언론보도는) 북한과 협상에 나서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압박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며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유출된 내용을 토대로 결론을 짓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그는 “때때로 사람들은 목적을 가지고 정보를 유출하기도 한다”며 “또한 유출된 정보가 사실이더라도 현 시점에서 북한은 이를 약속위반으로 만들 만한 합의를 한 적이 없으며 미북 양국이 도출한 것은 한 장짜리 요약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폼페이오 장관이 다시 북한을 방문하는 만큼 그가 무엇을 가지고 돌아올지 지켜보자”고 덧붙였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특사는 “해당 자료들이 믿을만한지는 확인할 수 없는 만큼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돋보이지 못하도록 두 정상이 실패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갈루치 전 특사는 2003년 5월 미군이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킨 뒤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 ‘임무 완수’를 선언했던 것을 상기시키며 북핵 위협이 사라졌다며 이미 ‘승리’를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 역시 강경 노선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이 북한에 미리 준 실질적인 ‘세 가지 선물’로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과 느슨해진 대북제재 그리고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유예를 들었다. 이어 “북한과 대화가 막 시작된 시점에 ‘더 이상 북한의 위협은 없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포까지 더해 북한과 실무협상에 나서는 폼페이오 장관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고 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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