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어머니인 김영식 여사와 여동생들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씨 등 ‘LG가(家) 세 모녀’가 구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낸 이유가 미 뉴욕타임스(NYT) 인터뷰를 통해 최근 공개됐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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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 “구광모 회장이 합의 위반” VS. LG 측, “세 모녀 측은 ㈜LG지분 추가 확보해 경영에 참여하고자한 속내 드러내”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구광모 회장 측이 거액의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세 모녀’의 주식까지 담보로 잡아 대출을 받은 게 화근이었다. 세 모녀가 뒤늦게 마음이 변해서 LG그룹의 경영권을 구 회장으로부터 빼앗아오기 위해 소송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상속세 폭탄’이 구 회장과 세 모녀의 당초 합의를 흔들리게 만든 구조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LG관계자는 24일 펜앤드마이크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같은 NYT인터뷰 내용과 관련, “세 모녀는 당초 소송을 제기하며 경영권에는 관심이 없고 상속 절차를 바로잡기 위한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세 모녀 측이 법원에 제출한 녹취록을 통해 (주)LG 지분을 추가로 확보해 경영에 참여하고자 한 속내가 드러나기도 했다”면서 “원고 측은 ‘구본무 회장 유지와 상관없이 분할 리셋해야’, ‘연경이가 잘 할 수 있으니 경영권 참여를 위해 지분을 다시 받고 싶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구광모 회장과 ‘세 모녀’, 2018년 11월 ‘장자 경영권 승계 원칙’에 따른 재산분배 합의

LG그룹은 경영권 분쟁 없이 가족간의 합의에 의한 ‘장자 승계 원칙’을 잡음 없이 실현해온 대기업이다. 고(故) 구본무 전 회장은 지난 2018년 5월 20일 사망하면서 ㈜LG주식 11.28%를 비롯해 총 2조원 규모의 재산을 남겼다. 유족들은 2018년 11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수 차례 협의를 거친 끝에 상속재산을 분할했다. 구광모 회장은 LG주식 등 경영권 관련 재산을 주로 물려받아 LG 경영권을 승계하기로 했다.

대신에 김 여사 등 세 모녀는 LG주식 일부와 미술품, 금융투자 상품, 구본무 전 회장의 한남동 단독주택 등을 상속받았다. 이에 따라 구 회장은 LG지분의 8.76%, 장녀인 구 대표와 차녀 구 씨는 각각 2.01%, 0.51% 지분을 승계했다.

구 전 회장이 남긴 재산은 2조원 규모라고 한다. 이 중 세 모녀의 상속규모는 5천억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 회장이 상속받은 재산이 1조5천억원 정도여서 압도적으로 많다. 이는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구 회장은 구 전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이었는데, 2004년 구 전 회장의 양자로 입적됐다. 구 전 회장의 아들이 비운의 사고로 사망함으로써 슬하에 두 딸만 남게되자 ‘장자 승계 원칙’을 실행하기 위해서 구 회장을 양자로 삼은 것이다.

2012년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미수연에 모인 LG家 사람들.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2012년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미수연에 모인 LG家 사람들.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세 모녀, 5년 뒤인 지난 3월 구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 소송’ 제기

구 회장은 경영권 승계 이후 LG그룹을 새로운 성장 궤도 위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데 의외의 돌발 변수가 터졌다. 김 여사 등 LG가 세 모녀가 지난 3월 구 회장을 상대로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구 회장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상속 범위를 넘어 재산을 상속받았기 때문에 구 전 회장의 상속재산을 다시 분할해야 한다는 게 소송의 핵심 요지였다.

2018년 11월 합의를 깨고, 세 모녀의 주장대로 법정 비율에 따라 상속을 하게 되면 구 회장의 경영권은 심각하게 흔들리게 된다.

법정 상속 비율에 의하면 배우자인 김 여사는 1.5를, 나머지 자녀들은 1 대 1 대 1의 비율로 재산을 분할해야 한다. 그럴 경우 구 전 회장의 LG지분 11.28%는 김 여사에게 3.75%, 구 회장과 두 자매가 각각 2.51%씩 상속된다. 세 모녀의 LG지분율이 구 회장보다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세 모녀가 상속재산 분할을 마친 뒤 5년이 지나서 구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낸 것에 대해 다수 여론은 “이해할 수 없다”는 쪽이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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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의 충격적인 뉴욕타임스 인터뷰, “채무가 너무 많아 카드 발급 거절당해”

그런데 세 모녀가 지난 1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 구 회장이 2018년 합의를 위반했다는 주장이었다.

구연경 대표가 2021년 신용카드 발급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게 구 회장과의 갈등의 시발점이 됐다. 카드사 측이 “채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카드 발급을 거절했다는 게 구 대표의 인터뷰 내용이다. 대한민국 대표 재벌 그룹 오너 일가 중의 한 사람이 카드 발급을 거절당했다는 것은 충격적인 사실이다.

깜짝 놀란 구 대표는 자신뿐만 아니라 모친인 김 여사, 여동생인 연수씨 등의 계좌를 확인했다. 그 결과 자신들의 LG 주식을 담보로 거액의 대출이 이뤄져 거액의 상속세를 납부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세 모녀는 이를 2018년 11월 합의 위반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구 회장이 LG지분을 포함해 1조 5천억원의 재산을 상속받는 대신에 구 회장이 혼자 상속세를 납부하기로 합의해놓고, 세 모녀의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상속세를 납부했다는 설명이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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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모 회장, 상속세 내려고 세 모녀의 주식담보대출 받아?

또한 구 회장이 당초 자신들이 합의한 것보다 훨씬 많은 유산을 받은 사실도 파악하게 됐다는 게 세 모녀의 주장이다. 구 회장은 지난 1월 모친인 김 여사에게 편지를 보내 “상속세를 낼 현금이 부족해 직원들이 세 모녀 계좌에서 자금을 융통한 것”이라는 취지의 해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세 모녀 계좌에서 빼낸 자금도 되갚을 계획이라는 언급도 했다고 한다.

구 회장은 “한국 상속법 체제에서 각자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면 LG 경영권이 4대까지 승계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모녀는 지난 3월 구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김 여사는 지난 9월 추석 때 서울 자택에서 열린 LG 가문 모임에 구 회장이 참석했다면서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도, 말도 하지 않았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전했다. 구 회장이 수세에 몰려있음을 강조하는 상황 설명으로 보인다.

재판과정에서 공개된 녹취록에 의하면 김 여사는 "지분을 찾아오지 않는 이상 주주간담회에 낄 수 없다"며 "경영권 참여를 위해 지분을 받고 싶다"고 경영권 참여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LG 측 “합의와 다른 일방적 주장에 유감”...“각 지분에 대한 상속세는 각자 부담하는 거로 합의해”

그러나 LG 관계자는 24일 펜앤드마이크와의 통화에서 “원고(세 모녀) 측이 합의와 다른 일방적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원고 측 인터뷰 내용은 이미 법정에서 증거들을 통해 사실이 아님을 입증했다. 재산 분할과 세금 납부는 적법한 합의에 근거해 이행돼 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구광모 회장이 상속세를 모두 부담한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면서 “2018년 5월말부터 11월까지 합의 과정을 거쳐 3차례 합의 변경이 있었는데, 당초 구광모 회장이 1차에는 모든 주식을 다 받기로 되어 있다가, 2~3차 합의를 거쳐 구 회장 8.76%, 장녀인 구연경 대표와 차녀 구연수 씨가 각각 2.01%, 0.51%를 받는 거로 변경되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각 지분에 대한 상속세는 각자 부담하는 거로 합의했고, 이에 2018년부터 2021년까지 4차례 상속세를 각자 부담해 왔다. 이미 1,2차 변론기일에서 관련 사실에 대한 증거를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세 모녀, 구 회장의 ‘대출금 상환’ 약속 불신하는 듯...법정 비율로 다시 상속받고 상속세도 각자 부담?

이처럼 세 모녀의 태도가 돌변하게 만든 화근은 우리나라의 과도한 상속세율에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자신도 모르게 거액의 채무를 지게 됨으로써 구 회장에 대한 감정이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구 회장이 지난 1월 김 여사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세 모녀의 주식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을 상환하겠다고 약속한 것에 대해서도 불신하는 것으로 보인다. 구 회장이 7200억원의 상속세를 완납하는 과정에서 자금 여력이 완전히 소진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 모녀는 다시 법정 비율로 상속을 받아서 상속세도 각자 부담하는 게 자신들의 재산권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의 상속세율은 50%로, 전 세계에서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최대주주할증 과세 적용시에는 60%까지 오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상속세율은 20%에 불과하다. 삼성그룹의 경우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상속재산이 18조 9633억원으로 확정됨에 따라 12조원대의 상속세가 부과됐다. 경영권을 승계한 이재용 회장도 주식담보대출 등으로 상속세 납부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해 사망한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의 상속재산도 10조원대였다. 유가족은 6조원 가량의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지주사인 NXC 지분 29.3%를 기획재정부에 물납했다. 이로써 한국 정부가 넥슨그룹의 2대 주주에 올랐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오너 일가가 과도한 상속세 부담에 허덕여야 하는 실정이다. 서민들이 재벌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 한국 국적의 글로벌 기업들이 승계과정에서 상속세 부담으로 인해 외국 자본에 팔려나가는 불상사가 벌어질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매년 이자만 수백억원 내는 구광모 회장, 상속세 납부에 허리가 휠 수밖에 없어?

LG가의 불화도 과도한 상속세율이 빚은 참사의 성격이 강하다. 구본무 전 회장의 유가족인 구 회장과 세 모녀가 납부해야 할 상속세는 9179억원이다. 이 중 구 회장 몫은 7200억원이다.

구 회장은 지난 11월 LG주식을 담보로 한국증권금융으로부터 1670억원을 빌려 상속세를 냈다. 연 5.14% 금리에 계약기간은 1년이다. 이로써 5년간 6회에 걸쳐 상속세 분할 납부를 끝냈다. 그러나 개인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7200억원을 상속세로 내기 위해 받은 주식담보대출만 3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식담보대출 이자율은 연 5~6% 수준이다. 올해 빌린 주식담보대출 이자만 160억원에 달한다.

현재 구 회장이 보유중인 LG주식의 절반 가량이 담보로 잡혀 있다고 한다. 상속세를 완납했다고 해서 상황이 종료된 게 아니다. 내년 대출만기시 추가재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또 다시 주식담보대출에 나서야 한다. 매년 수백억원대의 이자 부담을 감안하면 매년 주식담보대출액이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상속세 납부에 허리가 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장자 승계 원칙’을 평화롭게 지켜왔던 LG가의 불화는 과도한 상속세 제도에서 촉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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