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N수첩/홍준표] '보수'는 버려야 할 가치인가
[PenN수첩/홍준표] '보수'는 버려야 할 가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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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보보다는 우파-좌파로 분류하는 것이 더 명확
자유시장경제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모여 보수를 재건해야
보수는 버려야 할 '가치'가 아닌 개선해야 할 '이미지'
홍준표 PenN 기자
홍준표 PenN 기자

필자도 '보수'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우리 사회가 말하는 소위 보수·진보로 나누고 본다면 단어 자체가 풍기는 뉘앙스는 본래가 추구하는 것과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우선 경제 문제와 관련해선 보수로 일컬어지는 세력이 진보라는 단어에 훨씬 가깝다. 전통시장을 죽어라 고집하는 자들이 보수로 불리는 것이 마땅하지, 그들을 진보주의자라고 부르기엔 이상하지 않은가? 서비스산업발전법, 유통산업규제법, 개인정보보호법, 규제프리존법,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 생계형 적합업종 제도 등 '진보'를 자처하고 있는 자들에 의해 4차산업혁명이 모조리 가로막히고 있는데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진보'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닌다. 단어가 주는 혼동을 배제하려면 보수-진보보다는 우파·좌파로 분류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보수라는 딱지는 모두가 경계한다. 보수라는 딱지 하나로 낡고 고집스런 이미지를 씌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보수는 내가 붙이고 싶어하지 않아도 붙여지게 되는 레이블이다. 보수라는 딱지가 싫어도 세계적으로 보수(Conservative)가 가진 역사는 깊다. 비록 그것이 본래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국가 권력을 최소화하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특징들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주의에 가까울진 몰라도 우리가 이 사회에서 지켜야 할 가치는 분명히 있다는 점에서 보수는 분명 개선시켜야 할 이미지일 뿐, 버려야 할 가치는 아니다.

'반공'을 기치로 내걸었던 미국의 보수주의는 어떻게 환골탈태 했는가? 기존 '반공'에만 머물러 있던 보수주의의 올드한 이미지는 1960년 젊은층으로 구성된 YAF(Young Americans for freedom)를 통해 보수를 상징하는 가치를 점차 '반공'에서 '경제적 자유'로 탈바꿈 시켰다. 베트남 전쟁을 마지막으로 냉전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그들에게 시대적으로, 전략적으로 필요한 기치는 '경제적 자유'였다. YAF의 명예회장을 맡기도 했던 레이건은 '레이거노믹스'로 일컬어지는 감세, 규제철폐, 작은 정부로 개인의 사유재산권 보장과 기업의 자유도를 보장한 이력이 있다.

당시 국가의 방향성 설정이라는, 보수가 직면한 시대적 화두에 미국의 젊은 보수주의자들은 '자유'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모든 가치를 담았다. 레이건 이후 부시로 이어지는 네오콘들은 미국의 신보수주의를 상징하며 '국방·안보'가 핵심가치인듯 보이지만 그 기저엔 YAF의 'The Sharon Statement' 정신이 깔려있다.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문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었다면 'The Sharon Statement'는 미국의 보수주의를 위대하게 만들었다. 

'The Sharon Statement'는 당시 미국의 젊은 리버테리안 혹은 보수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내품은 성명서였다. 그들의 선언문 중 몇가지만 인용한다.

We, as young conservatives, believe: (우린, 젊은 보수주의자로써 다음과 같은 것들을 믿는다)

That liberty is indivisible, and that political freedom cannot long exist without economic freedom; (자유는 나눠지거나 공유되어질수 없고 정치적 자유는 경제적 자유가 없다면 존속할 수 없다)

That the purpose of government is to protect those freedoms through the preservation of internal order, the provision of national defense, and the administration of justice; (정부의 목적은 내부 질서의 보존, 국방의 제공, 법의 집행을 통해 그러한 자유를 보호함에 있다)

That when government ventures beyond these rightful functions, it accumulates power, which tends to diminish order and liberty; (정부가 이같은 정당한 기능을 넘어선 행태를 보인다면 권력이 점차 비대해지고 질서와 자유를 해친다)

That the market economy, allocating resources by the free play of supply and demand, is the single economic system compatible with the requirements of personal freedom and constitutional government, and that it is at the same time the most productive supplier of human needs;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의해 자원을 배분하는 시장 경제는 개인의 자유와 입헌제의 요구에 부합하는 단일 경제 시스템임과 동시에 인류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가장 생산적인 공급자다)

자유시장경제를 이해하는 자들이 모여 보수주의를 재건했다는 것을 알 수있는 대목들이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한다. 그들은 우리가 원하는 '정의'가 시장이 아닌 비대해진 정부로 인해 필연적으로 질서와 자유를 해치고 끝내는 부패를 낳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제도가 인간의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진화·발전되어 왔고 지금의 입헌제와 자유시장경제가 인류 문명을 진정 '진보'시킴을 아는 자들이 보수를 재건했던 것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진정한 진보는 창의적인 개인(기업가 정신)이 이끌고 그것은 국가주의가 아닌 시장주의에서 발현된다. 진정한 약자의 보호는 보편적 복지가 아닌 선별적 복지가 해결한다. 진정한 사회의 정의는 결과론적 평등 혹은 가진 자에게 뜯어내는 약탈적 논리가 아닌, 절차적 공정함이 이뤄낸다. 진정한 사회의 신뢰 회복은 대중의 여론몰이를 통한 인민재판이 아닌 보편성이 적용된 엄격한 법치주의가 해결한다.

우린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지 않고 완전무결함을 지향하다 결국 패망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인간은 감성적이고 나약한 동물이란 한계를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의 정치적 자유의 획득을 통해, 국가권력이 모든 생산수단을 소유하기 보단 사유재산권을 지켜줌으로서 확립되는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통해, 극복하고 또 '진보'해 왔다. 인간을 선한 존재로 상정하고 '자본'이 그들을 타락시킨다고 가정한 맑스의 국가관은 아담스미스의 인간의 이기심이 '자본'을 통해 사회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국가관에 의해 무참히 깨졌다. 적어도 지난 수 백년간 우린 그 역사적 순간들을 목격해왔다.

레이건이 있기 전, 배리 골드워터는 '보수'라는 가치를 끝까지 이끌며 재건의 바닥을 다졌다. 물론 그도 반공을 내세우다 '극우'라는 레이블링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64년 대선 당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무참히 패배했지만, 그를 비롯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보수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버리지 않았었기에 레이건과 같은 보수주의자가 나올 수 있었다. 레이블링은 단순한 이미지 싸움일 뿐이기에 그가 내건 가치에 전통적으로 보수가 추구하는 가치엔 변함이 없었다. 미국의 보수는 레이건이라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기존 보수의 이미지를 벗겨내고 기업의 자유도를 전면에 내세웠다. 베트남 전쟁에서 패하고, 중동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정부의 무분별한 통화정책으로 대공황이 터지고 나서야 위기감을 느끼고 정신을 차린 것이다.

그들은 우파의 가치를 버리면서까지 '중도', '신보수', '탈보수' 같은 몰가치적이고 무이념적인 헛짓거리로 살아난 것이 아니었다.

베리 골드워터가 쓴 '한 보수주의자의 양심'에서 그는 "개인의 경제력을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면 그가 주장하는 정치적 자유는 허상"이라는 구절과 "민주적인 대중들의 폭정을 반대한다"는 구절 등을 통해 보수주의의 핵심은 결국 '리버테리어니즘', 개인들의 경제적 자유와 작은 정부에 있다는 사실을 되짚었다. 포퓰리즘에 쉽게 넘어가는 대중들을 등에 업어 마치 무한한 정당성을 확보하기라도 한듯한 정부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미몽에서 벗어나길 바랬던 양심들이 '자유'라는 가치를 끝까지 붙잡고 늘어졌던 것이다.

그가 '한 보수주의자의 양심'에서 말하는 '양심'이란 낡고 썪어 패배주의에 찌들어버리다 못해 포퓰리즘에 기대보려는 보수주의자들에게 날리는 일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생, 사회적평등, 성평등, 평화, 환경주의 등 단어 자체가 연상시키는 달콤한 환상에 자칭 보수주의자라고 하는 몇몇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양심을 팔기 시작하고 있다. 보수주의자를 자처했던 자들이 양심을 팔면 대중들은 '양심적인 보수', '중도 보수'라는 레이블을 붙여 그 불량한 양심을 사기에 바쁘다. 나라의 기둥이 하나둘씩 몇몇 단어가 풍기는 향기에 도취되어 판단력을 상실하기에 이른다면 국가는 포퓰리즘적인 세력에 팔리고 언젠간 지붕이 무너져 내린다.

본래 보수·진보가 추구하는 가치들이 세력화되어 그 기능성을 상실할 때, 국가는 패망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이미 패망을 경험해 봤던 남미와 뉴질랜드 등의 국가들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미 그 암적인 세포들이 증식해 이미 사형선고가 내려진 국가들이다. 보수의 가치를 다시 지키려고 일어서는 미국과 브렉시트를 단행했던 영국, 그리고 더는 버티다 못해 기업자유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중부담중복지로 돌아선 북유럽, 마크롱이 이끄는 지금의 프랑스, 3선을 향해 달리는 일본의 아베 등 보수의 가치를 지킨 국가들은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다.

현재 미국에선 젊은 보수주의자 벤 샤피로(Ben Shapiro)가 미국 전역의 대학들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보수가 직면해 있는 논쟁들인 이민, 종교, 성에 대한 상대주의적 관점들의 위험성을 설파하고 있다. 미국의 새로운 보수주의는 그렇게 가고 있다. '12 rules for life'의 저자로 잘 알려진 조던 피터슨(Jordan B. Peterson) 교수 또한 '진실(Truth)'이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워 소위 진보로 불리길 소망하는 집단으로부터 미국인들을 구제하고 있다. 그는 캐나다에서 성적 정체성과 표현에 관한 차별을 금지하고 이를 혐오 범죄로 규정 및 처벌하는 C-16법안에 혹독한 비판을 가한 것으로 유명해졌고, 학자로써 실증적인 연구들을 통해 무엇이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를 대중들에게 설파하고 있다. 이들은 맑시즘이 네오맑시즘으로 부활하고 절대적 가치가 위협받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서 보호하고 준수해야할 가치는 분명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철저히 가치중심적이며, 인물지향적이고 당파성을 띄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보수는 낡았다며 보수의 가치를 내팽겨쳐버린 썪은 보수들이 정치세력의 한 축을 담당할 때, 그 국가들의 말로는 불보듯 뻔하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외치는 자들에게 권력을 쥐어주니 국가가 비대해지고 결국 망하는 길로 들어선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평등과 정의, 평화를 지향하자는 명제는 반증불가능한, 누구도 반론의 여지가 없는 구호일 뿐이다. 흔히 말하는 부패의 원인은 시장경제가 아닌 정부의 비대함이 그 원인이며 이는 강력한 법치의 문제이지 경제적 자유도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자유도를 최상위로 유지하고 있는 북유럽, 싱가폴, 홍콩과 정부의 개입, 정부의 비대화로 인해 타락한 남미. 지금 어느 나라가 더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었지는 자명하게 드러난 사실이지 않는가? 평등과 정의는 국가권력이 평등과 정의로운 사회를 외친다고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은 모두 아름다운 미사여구로 포장된 구호들이었다. 보수주의자들은 언제나 인기영합적인 구호보단 그 방법론을 탐구하고 그로부터 얻어진 진실만을 고집했을 뿐이다. 보수는 그 가치가 썩은 것이 아니다. 그 가치를 제대로 추구하는 자들이 없었을 뿐이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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