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보수 퇴진 거부 선언' vs'퇴진거부는 잘못입니다 할아버지'[권태욱]
'늙은 보수 퇴진 거부 선언' vs'퇴진거부는 잘못입니다 할아버지'[권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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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N독자, 두 글 통해 고령 우파 인사와 청년 우파 인사 입장의 글 투고
'늙은 보수 퇴진 거부 선언' 글을 통한 한 할아버지의 입장
할아버지 입장에 대한 젊은 청년의 반박...'퇴진거부는 잘못입니다. 할아버지'

PenN의 한 독자가 6.13 지방 선거 이후 상당수 언론에 게재된 '고령의 우파 정치인과 시민운동가들은 퇴진하라'는 내용의 칼럼들에 대해 태극기집회부터 열심히 참여한 우파 시민운동가의 입장에서 반박하는 내용의 글(늙은 보수 퇴진 거부 선언)과, 해당 글을 전달받은 젊은 우파, 청년 우파 인사의 입장에서 할아버지 세대가 물러나야 되는 이유를 할아버지께 설명하는 글(퇴진거부는 잘못입니다. 할아버지)을 PenN에 보내왔습니다. 독자의 균형 잡힌 판단을 돕기 위해 두 글을 함께 게재합니다. <편집자>

 

늙은 보수 퇴진 거부 선언

6.13 지방선거를 대한민국 보수의 종말이라고 떠드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나이 든 사람들이 주축이 된 보수세력은 젊은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가야 한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 30대의 젊은이가 대통령이 되어서 과감한 개혁을 성공시켜 나가고 있는 프랑스의 예를 들면서. 그 사람이 왜 북한의 김정은은 예로 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강남의 귤이 강북에서는 탱자가 된다.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회성 사건 하나를 보고 그것이 보편적 원리인양 무분별하게 도입, 적용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대한민국은 아직도 선진국의 문턱에서 헤매고 있다. 로스쿨만 도입하면 모든 법조비리와 고시열풍이 사라질 것이라고 우기고 밀어 부쳤던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다. 지금 대한민국 사법부는 로스쿨 도입 이전보다 훨씬 깨끗하고 공정해졌는가? 고시낭인은 사라졌는가? 사법고시라는 계층의 사다리를 하나 빼앗긴 청년들은 행정공무원과 대기업, 금융기관 선발 시험 등 남아있는 사다리로 방향만 바꾸었을 뿐이다. 준비하는 시험 이름만 바뀌었을 뿐, 대한민국 고시낭인의 숫자는 하나도 줄지 않았다.

지금 대한민국 권력을 장악한 40대와 50대가 하고 있는 짓을 보면 아버지가 평생 일해서 모아놓은 재산으로 사업한다고 까불다가 한 번에 날려버리고 손주들 학비도 대지 못하는 우리 아들 세대를 보는 것 같다.

남북수뇌회담, 미북수뇌회담으로 한반도에 완전한 평화가 왔는데 아직도 냉전시대 사고에 빠져 있다는 것이 작금 보수 비판의 핵심이다.

우리도 우리가 틀렸으면 좋겠다. 남북간에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졌고, 그래서 이 땅에 전쟁의 위협이 영구히 사라졌고, 북한 정권은 개혁 개방과 경제개발에 나설 것이고, 북한 경제가 발전하면 북한 주민의 인권도 저절로 개선될 것이라는 주장을 믿고 싶다.

우리가 그런 주장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노인이라서 눈앞에 일어나는 일을 보고서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완고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다.

아무 것도 실제로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희희낙낙하는 사람들이 틀린 것이다.

정말 남북간의 긴장 적대 관계가 해소되었고, 한반도에 완전한 평화가 왔는지 한번 확인해보자.

질문 1: 김정은 정권은 핵무기를 몇 개를 갖고 있고, 몇 개를 지금까지 파괴했는가?

질문 2: 앞으로 언제 얼마만큼 씩 파괴하겠다고 했는가?

북한 핵개발로 초래된 한반도 전쟁위기가 남북회담, 미북회담으로 완전히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위의 두 개 질문 중 하나라도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김정은 정권은 지금까지 개발한 핵무기를 하나도 파괴한 것이 없고, 얼마나 갖고 있는지 밝히지 않았으며, 언제, 어떻게 파괴하겠는지 밝힌 것이 하나도 없다.

오로지 ‘김정은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다’고 하는 주장만 있을 뿐이다. 그런 말은 그의 아버지가 여러 번 했던 말이고, 한번도 지켜지지 않았던 약속이다. 아버지가 아니고 아들이 한 말이니까 믿을 수 있다는 ‘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근거를 바탕으로,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김정은을 만나라고 애원하고 부추겼다. 그리고 한미합동군사 훈련을 중단한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미국이 종전 선언을 하고, 북한이 미국의 지원으로 경제개발을 하면, 북한이 핵무기에 더해서 강화된 재래식 무기로 대한민국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미북평화협정?

뮌헨협정과 파리평화협정 이후에 폴란드와 자유 월남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가? 모른다고? 뮌헨협정과 파리평화협정이 뭔지도 모른다고? 그러면서 미북평화협정이 대한민국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그렇다면 본인의 용감한 믿음이 무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미국과 북한이 종전선언을 하면 유엔군사령부는 해체되고, 주한미군도 철수하고, 한미동맹은 약화될 것이다. 일단 철수한 주한미군은 북한이 대한민국을 침략해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은 도미노 이론으로 미국이 국제 전략을 결정하던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6.25가 일어날 때 미국이 서둘러 참전했던 것은 당시 미국의 국제정책을 결정하던 도미노 이론 때문이었다. 2차대전 이후에 소련의 지원을 받은 공산세력들이 동구를 석권하고,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베트남, 그리고 인도차이나 반도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그런 시기에 북한이 대한민국 을 침공했다. 북한이 한반도 전역을 지배하면 그 다음 공산화 차례는 일본이 될 것이라는 것이 도미노 이론이었다. 당시 일본의 공산세력은 강력했다. 한반도가 공산화된 뒤에 일본이 공산화되지 않도록 하려면 일본의 우파정권을 지원하고, 그들이 재무장하는 것을 허용해야 했다. 일본이 재무장하면 그 총구를 동쪽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래서 미국은 공산세력의 세계적 확장을 한반도에서 중지시켜야 했다. 그래서 미국의 꽃다운 젊은이들이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한반도에서 꽃다운 젊음을 희생했던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자유와 번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태평양 방위전선의 최전선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은 미국의 방위전략의 수행으로 발생한 기회를 이용해서 우리 국민들이 피땀 흘려 일궈낸 산물이다.

이제는 북한의 번영이 미국의 새로운 방위전략이 되었다. 북한주민의 자유는 상관없다. 중국에서, 그리고 베트남에서 미국은 보았다. 자국민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공산정권도 경제적으로 번영할 수 있으며,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수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한편으로 이라크에서 미국은 뼈아프게 깨달았다. 외국의 독재자를 제거하려는 시도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미국 군인의 피 흘림과 엄청난 액수의 비용을 지불하고서도 미국에 우호적인 정권을 수립하고 전쟁을 끝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미국은 대한민국 국민이 자유를 누리든, 독재치하에서 시달리든 별로 상관을 안 한다. 유신과 5공 때도 미국은 대한민국과 단교를 하거나 경제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정권이었으므로. 그런 미국이 김정은이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하면서 국내 인권 개선 작업은 추진하지 않으면 징벌하겠는가? 그럴 가능성은 제로다.

이런 현대사를 배경으로 볼 때, 북한이 미국의 어느 도시를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준비를 갖춘 다음에 대한민국을 공격한다면 미군이 참전할까? 북한 전역이 초토화되는 것보다 로스앤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 도심에 한발의 미사일이 떨어지는 것이 미국의 정책결정자에게는 더 큰일이다. 미국으로서는 궁극적인 미국의 승리가 문제가 아니라, 미국영토와 미국 국민이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동네의 나쁜 놈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보다 우리 아들이 그들에게 한 대도 맞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처럼.

이런 일들이 일어나도 우리의 손주들이 김정은 치하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하는 역사적 근거는 하나도 없다. 오히려 모든 역사는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날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는 몰락했다고 믿거나 주장한다. 소련과 동구 위성국가의 공산정권이 몰락한 것은 맞다. 그러나 아시아의 공산정권은 2차대전 이후에 하나도 몰락한 것이 없다. 베트남은 1974년에 베트남 전역을 석권했고, 중국은 1948년에 중국 본토 전역을, 2000년에 홍콩을 장악했고, 그리고 2020년에 대만을 흡수할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다. 북한 공산정권은 세계 최초로 미군과 직접 싸워서 항복하지 않은 집단이다. 북한의 국가 애창가요 1호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지금도 북한 전역에서 아이들부터 부르게 시킨다. 가사는 우리가 부르는 것과 같지만 그들이 말하는 ‘통일’은 ‘적화통일’이다.

대한민국은 휴전 이후에 한번도 북한의 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한 군사행동을 취한 적이 없다. 만약 대한민국과 미국이 그럴 의사가 있었다면 1990년대 초 북한이 소위 ‘고난의 행군’을 할 때 공격했을 것이다. 그랬으면 북한은 물론이고, 개혁 개방 초기의 중국이나 연방이 해체된 후유증에 시달리던 소련도 별다른 저항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과 미국은 그렇게 안 했다. 무력으로 북한 체제를 전복시킬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북한이 기회 있을 때 마다 ‘체제보장’을 떠드는 것은 자신들이 침공할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남북대화나 미북대화가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선전을 우리가 믿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를 전쟁위기로 몰아넣었던 상황에 아무런 변동이 없는데 북한이 한반도 적화야욕을 버렸다고 믿고 희희락락하며, 무장을 해제하고, 북한을 지원한다고 설치는 사람들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한 탕 크게 할 수 있는 사업 기회가 있다고 아버지가 평생 모은 재산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아들’을 보는 기분이다. 우리는 그런 아들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없다. 아들은 망해도 손주는 공부시켜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바탕으로 ‘한반도의 평화’가 정말 왔다는 것이 확인될 때까지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평화와 안녕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중단할 수 없다.

[퇴진거부는 잘못입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며칠 전에 할아버지께서 전달해주신 "늙은 보수 은퇴 거부 선언" 잘 읽었습니다.

저희가 보는 할아버지 세대의 보수운동과 보수운동 단체는 이런 모습입니다.

대한민국 보수운동은 외세의 지원을 받아서 성립된 정권의 후원으로 만들어졌고, 성장했고, 유지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법을 무시하는 폭력단체로 시작했지요. 서북청년단, 백골단, 땃벌대...

점차 제도화된 조직들이 대체했습니다. 새마을운동, 자유총연맹…

이들은 자기들을 시민단체라고 불렀지만, 정확한 성격은 관변단체였지요.

시민단체는 재정 등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운영되는 단체, 관변단체는 정부의 예산 지원으로 운영되면서 정부기관이 아닌 단체. 이렇게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운영되는 시민단체는 21세기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민주산악회 등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운영되는 단체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정치권 외곽단체였지, 시민단체가 아니었습니다. 당사자들도 자신들을 시민단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시민단체의 또 하나의 조건이 시민운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스스로를 시민운동단체로 규정한 것은 경제정의실천운동연합이 최초였습니다. '경제정의를 실천하기 위한 운동'을 시민운동이라고 규정짓고, 시민들의 참여와 후원으로 정부지원을 받지 않고 활동한다는 면에서 시민단체적의 요건을 갖추었지요.

그 이후로 유신과 5공 정권 아래서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학생운동과 재야운동 출신 활동가들이 여러가지 이름의 시민단체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유명한 것은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가 있습니다. 시민단체들은 그 활동가의 배경이 시사해주듯이 대부분 좌파정부 지지 성향이었습니다. 노무현 정권의 탄생은 한편으로 좌파 시민단체들의 승리이기도 했습니다. 정권탄생의 유력한 공신으로서 좌파시민단체들은 노무현 정부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습니다.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청와대와 정부에 공무원으로 진출했고 ('어공' 즉 '어쩌다 공무원'이라는 용어가 이때 탄생했지요),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5년동안 권력의 단물을 즐기면서 시민단체들은 쇠퇴했습니다. 단체는 늘어났고 목소리는 커졌지만, 회원들은 줄었습니다. 회원의 참여가 없어도, 회원들이 후원금이나 회비를 내지 않아도, 정부지원금으로 풍부한 자금을 누리게 된 활동가들은 귀찮게 회원들의 의사를 묻고 따르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단체를 운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가 끝나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을 때 갑자기 자금줄이 끊기고, 회원들의 참여를 권장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의지를 상실한 활동가들만 남은 좌파 시민단체들은 빈사상태에 들어갔습니다. 그런 상태에 처한 좌파시민단체들에게 긴급수혈을 해 준 것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 시위였습니다. 광화문에 모인 수십만의 인파에 기업인 출신 이명박 대통령은 기가 죽었고, 과거 한때 당신도 민주화 운동을 하는 학생이었다는 센티멘탈리스트가 되어서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서 '아침이슬'을 따라 부르는 지도자 답지 못한 처신으로 촛불시위 주도 세력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그때 서둘러서 항복 선언을 하지 않고 조금만 더 기다렸더라면 유언비어에 현혹된 여자중학생들과 젖먹이 자녀를 둔 엄마들이 앞장섰던 촛불 시위는 얼마 안 가서 사그러들었을 것입니다. 그때 촛불시위의 주력은 군대에 간 '동방신기' 오빠들이 미국에서 수입되는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까 봐 걱정한 여자 중학생들과, 아기들의 이유식에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가 들어갈 것을 걱정한 엄마들로 구성된 유모차 부대였습니다. 그 시위를 조직하고 선동한 이른바 '시민단체'의 본래 회원들이 아니었습니다. 흥분한 여중생과 젊은 엄마들은, 시간을 갖고 설득했더라면, 며칠 안 가서 학교와 학원으로, 동네의 브런치 카페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시민단체의 본질과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사람이 없는 청와대가 굴복하는 바람에 '호가호위'한 좌파시민단체들이 그 '촛불시위'로 살아났습니다. 그들은 기가 죽은 이명박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내고, '어공'에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권력의 맛을 본, 활동가들이 참여해서 조직과 인원을 보강하고, 계속 과격하고 기만적인 선동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세력을 불려나가기 시작한 시민단체가 대승을 거둔 것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끌어 낸 촛불시위였습니다. 그 사건의 자세한 부분은 여기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시민단체의 지원을 받는 좌파세력이 권력을 잡고 난 뒤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보수세력의 정당들은 참패를 했습니다. 그래서 보수정당의 해체 또는 완전한 재편성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수정당의 패배로만 생각하는 소위 보수시민단체들은 자기들은 돌아 볼 생각은 않고 정당 재편에 콩 놔라 밤 놓아라 훈수를 두고 있습니다.

보수시민단체들은 지난 정부에서 약간씩 등장했지만 그들이 본격적으로 무대에 나선 것은 역시 지난 번 촛불시위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태극기 부대'의 시위를 조직하면서 보수세력의 생각을 대변하는 시민단체로서 자리매김하고, 언론의 주목을 받고, 국민들 앞에 등장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도 이때부터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어떤 이는 '태극기부대'의 등장이 없었으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촛불시위는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해졌을 것이고, 그랬으면 태블릿 pc와 '세월호 7시간'을 둘러 싼 각종 유언비어의 진실이 밝혀져서 나라가 정상화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그 분들의 주장입니다. 추운 겨울에 길에서 고생하신 할아버지께서 들으시면 정말 억울하고 분한 주장이겠습니다만,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메기효과라는 게 있습니다. 물고기를 멀리 운송할 때 그냥 가져가면 대부분이 죽습니다. 그런데 물고기들을 잡아먹는 메기를 한 마리 어항 속에 넣어두면 훨씬 많은 물고기들이 살아있습니다. 그냥 자기들끼리 놓아두면 먼 길 가는 동안 가만히 있다가 운동부족으로 죽어버리는 놈들이 많은데, 메기를 넣어두면 잡아 먹히지 않으려고 계속 움직이니까 살아 있게 된다는 것이죠.

지난 번 탄핵요구 촛불집회를 보면 처음에는 숫자도 적고 주장도 약했습니다. 그러다가 거기에 기름을 부은 듯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 태극기부대의 집회가 시작되던 때와 겹칩니다. 태극기부대가 촛불집회에 메기 역할을 한 것이지요. 태극기집회보다 많이 모여야겠다는 동기가 생겨서 추운 날씨에 집에 있었을 사람들까지 촛불집회에 참석해서 인원이 늘어났고, 인원이 늘어나니까 주장하는 내용도 점점 강도가 높아졌고, 결국에는 강한 압력이 되어서 헌법재판소의 결정까지 연결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보수언론의 논객은 근래에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대북관련 행보를 두고 ‘역사적 행위를 하는 사람은 의도한 결과 못지 않게 의도하지 않은 결과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을 신문에 실었습니다. 만약 태극기집회가 촛불집회에 동력을 제공했고, 그래서 탄핵을 끌어냈다는 주장이 맞다고 한다면, 추운 겨울에 고생하신 할아버지의 마음은 어떠십니까?

그 주장이 맞든 틀리든, 어쨌든 간에 할아버지가 그렇게 열심히 참가하신 태극기 집회는 탄핵을 막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역효과를 낳는 집회였든, 아니면 실행과정에서 힘이 부족했든, 의도한 결과를 낳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실패한 것이고, 그런 집회를 주도한 세력의 판단력과 추진능력에 대한 평가가 높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태극기 집회의 부작용은 또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가 태극기를 부끄러워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을 응원하기 위해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 손에는 태극기가 들려있지 않았습니다. 누가 그들 손에서 태극기를 빼앗았나요? 바로 할아버지께서 고생하며 참석한 태극기 집회였습니다.

그 태극기집회를 주도한 세력이 보수시민단체들입니다. 이들은 정권의 지원으로 유지되는 관변단체가 아니었고, 시민운동적 이슈를 놓고 자발적으로 조직해서 행동했으므로 자신들을 시민단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데 크게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 보수시민단체에 대해서 6.13 지방선거는 보수정당과 함께 심판을 했고, 퇴진을 요구했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제게 전달해주신 펌글은 그런 주장을 배격하는 논리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 논리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금년 4월 27일부터 시작해서 진행되고 있는 남북대화와 미북대화의 내용이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공감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할아버지께서 다시 태극기를 들고 길거리로 나서는 것이 좋은, 아니면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습니다.

맨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대한민국 보수단체는 처음부터 권력의 비호를 받고 출발했습니다. 그들의 역할은 권력이 원하는 행동을 때로는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면서라도 수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댓가로 그런 단체의 지도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특혜를 받았지요. 때로는 금전으로 때로는 사업체로, 그리고 때로는 공직에 진출하는 것으로. 권력과 공생하는, 혹은 기생하면서 권력의 단물을 빨아먹고 부정한 권력에 항거하는 국민의 뜻을 좌절시키는 사람들의 집단이었습니다. 부정한 역대 권력이 부당한 권력행사를 정당화시키는 명분은 언제나 국가안보였습니다. 자기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지 않으면 북한이 쳐들어와서 대한민국 전부가 공산정권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대한민국 국민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은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1961년 쿠데타가, 1972년의 시월유신이, 1981년 서울의 봄을 좌절시키고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신군부가, 이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10.26이 났어도,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되고 수평적 정권교체가 일어나도 휴전선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압도적인 경제력 차이로 북한이 대한민국을 무력으로 침공해서 정복하는 일은 누구의 눈으로 봐도 불가능해지자, 할아버지의 보수단체는 북한인권 문제를 앞세워서 북한 정권을 전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독재정권에 의해서 고문당하고, 납치당하고, 피살될 때는 아무 말도 안하시던 분들이 갑자기 인권의 수호자가 되어서 북한 동포의 인권 회복이 우리 민족의 최대 당면과제인 것으로, 북한 동포의 인권을 탄압하는 북한정권의 타도가 긴급한 일인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도 북한에 살고 있는 우리동포들이 우리들과 같은 수준의 인권을 누리며, 우리들처럼 번영과 복지를 누리면서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으로 할아버지의 보수단체가 택한 휴전선 풍선 날리기, 탈북자 지원 등이 효과적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10년 이상 그런 노력들을 해 오셨지만, 북한 주민들의 인권은 하나도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킨다고 북한 동포의 인권이 개선된다면 우리는 그런 법을 열 번, 스무 번이라도 만들고 통과시키겠습니다. '국민소득은 10만 달러로 정한다'는 법을 만든다고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10만 달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북한인권법을 제정한다고 북한 동포들의 인권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상당한 실행 기간을 거치면서 확인되었습니다. 심지어는 할아버지의 보수단체들에게 재정지원을 해주는 것이 북한 인권법의 숨겨진 진짜 목표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보수단체는 이처럼 탄생, 과거,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 까지 국민들에게 도덕적 모범으로 자리매김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국가 예산의 지원을 받아서 거리에서 휴전선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때로는 소란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그런 보수단체에 대해서 우리국민들은 이번에 최종 판결을 내렸습니다. 6.13일 지방선거는 보수정당을 자처하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뿐 아니라 할아버지의 보수시민단체들에 대한 심판이요 선고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폐기되었습니다.

할아버지, 미국 서부 해안지역에서 자라는 로지폴 소나무라는 나무가 있습니다. 이 나무는 길고 곧고 가벼운 목재를 생산합니다. 미국 인디언들이 버팔로 사냥 때 임시 거주지로 사용하는 천막집을 지을 때 이 나무를 사용합니다. 그들은 미국 서부 산악지대에서 자라는 이 나무 둥치를 구하기 위해서 대평원을 가로질러 가기도 했습니다. 이 나무의 씨앗은 산불이 났을 때만 발아합니다. 몇 백도의 고열에 씨앗이 타버리는 것이 아니라 싻을 틔우는 것입니다. 높은 열로 산을 덮고 있던 풀과 나무들이 모두 불타고 쓰러져서 새로 싻 틔우는 씨앗에 풍성한 햇빛과 거름을 제공할 여건이 되었을 때, 싻을 틔우는 것입니다. 크고 아름다운 나무는 낡은 숲이 산불로 타버렸을 때 싻을 틔우고 자라기 시작합니다.

지난 6.13 지방선거는 대한민국 보수 정치와 보수 시민사회 생태계를 휩쓴 산불입니다. 거기서 보여 준 국민의 뜻은 온 산을 뒤덮고 있는 기존 보수 정치인들과 보수 시민운동단체들이 모두 타고, 쓰러져서 새로 등장할 젊은보수세력에게 공간을 내어주고 거름을 제공하라는 것입니다. 반공 안보만이 유일한 구호인,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과대평가와 찬양 일색인 유사보수주의 시민단체들은 이번 6.12 지방선거라는 거대한 산불에 모두 타 버렸습니다.

보수주의는 영원한 가치입니다. 할아버지의 보수단체가 내세우는 반공 안보가 보수의 핵심적인 가치가 아닙니다. 물론 공산치하에서는 보수주의의 가치가 실현될 수 없지요. 그래서 정통 보수 이념을 추구하는 보수 시민단체들도 공산주의를 반대합니다. 그렇지만 보수의 가치가 실현되는 것을 막는 것은 공산주의 뿐 아닙니다. 우파 독재도 마찬가지로 보수의 가치가 실현되는 것을 막고, 방해하는 세력입니다. 그러므로 우파독재권력의 지원과 비호를 받은 전력이 있고, 반공이라면 우파독재권력도 지지할 수 있다는 가치를 가진 할아버지의 보수단체들은 진정한 보수주의가 실현되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입니다. 게다가 보수라는 이름을 왜곡시켜서 일반인들이 거부감을 갖도록 만드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할아버지의 보수세력, 할아버지의 보수시민단체들은 이제 조용히 뒤로 물러나셔서 저희에게 길을 내어주셔야 합니다.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젊은 보수 시민운동이 저희가 하려는 것입니다.

젊은 보수주의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할아버지의 반공독재 지지 보수주의와 구분하기 위해서 구태여 그렇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진정한 보수주의, 저희가 젊은 보수라 시민운동이 추구하는 이념의 가치는 여섯 개의 단어로 표현됩니다. 자유 책임 정의 질서 안전 풍요. 젊은 보수는 국가나 정부가 개인의 행복을 보장해준다는 약속은 하지 않습니다. 행복감은 사람마다, 같은 사람도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부잣집 아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여성에게 외면당하면 불행해집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엄마도 아들이 서울대학교에 합격하면 행복해집니다. 정부나 사회가 모든 개인의 행복을 보장해주겠다고 한다면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무지하거나 거짓말쟁이입니다.

국가와 사회가 개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개인들이 자유롭게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 여건을 구성하는 것이 자유 정의 질서 안전 풍요입니다. 한편으로 개인들은 자신이 자유를 행사할 때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무책임한 자유는 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파괴와 궁핍을 가져옵니다.

이 여섯 개의 단어로 표현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 사회적 노력을 우리는 대한민국의 젊은 보수 시민운동이라고 이름 붙입니다.

할아버지 세대가 닦아 놓은 산업화 만주화의 토양에서 더 높은 수준의 단계로 대한민국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고정관념에 매달려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국가 안보가 걱정되어서 반공의 기치를 높이 들고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모인 할아버지의 보수시민단체들은 뒷전으로 물러나셔야 합니다. 해체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그리고는 저희 손자세대들이 이 나라와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앞장서서 나갈 수 있도록 공간을 비워주십시오.

전투함은 아무리 커도 항공모함 전투선단에 이길 수 없습니다. 낡은 전투함이 항구를 차지하고, 물자와 탄약의 공급을 독식하고 있으면 새 항모전단을 건설할 수 없습니다.

좌파는 그들의 항모전단을 지난 30년의 투쟁을 통해서 완성했습니다. 전교조, 전농, 공무원노조, 대기업노조, 언론노조, 참여연대 등 등이 그 항모전단의 구성원들입니다. 그들의 항모전단이 이 나라의 경제와 안보를 초토화시키는 것을 막으시려면, 저희도 보수의 진정한 가치에 바탕을 둔 항모전단을 구축해야 합니다. 저희가 저희의 항공모함 선단을 구축하도록 항구를 비워주십시오. 할아버지와 친구 분들은 산 위에 올라가서 저희가 싸우는 것을 구경하시거나, 뒤에서 보급과 지원을 맡아주시는 게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기여하시는 방법입니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이 좋은 나라를 저희에게 물려주셔서.

이제부터는 저희들이 맡아서 더 좋은 나라로 가꾸고 발전시켜 나가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사랑합니다.

권태욱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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