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 개혁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취임식부터 파격적이었다. 전임 김명수 대법원장에 비해 3분의1 규모로 대폭 축소됐다. 주요 법원장 중 윤준 서울고등법원장만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희대 신임 대법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희대 신임 대법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두 달 넘게 대법원장 공백 상태가 계속된 상태에서, 취임식을 간소하게 해 법원 구성원 각자가 맡은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조 대법원장의 뜻에 따라, 주요 법원장이 참석했던 관례도 깨진 것으로 보인다.

조 대법원장의 취임식은 대법원 2층 중앙홀에 임시로 의자를 놓고 170여 명만 참석해 조촐한 규모로 진행됐다. 대법원 1층 대강당에서 진행된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취임식은 전국 법원장을 비롯해 600여 명이 참석했다.

김명수가 도입한 ‘법원장 후보추천제’, 사법행정 민주화 표방했지만 ‘인기 영합주의’로 흘러

취임식을 간소하게 하면서 전국 법원의 업무 공백을 방지하겠다는 조 대법원장이 첫 사법행정 개혁대상으로 ‘법원장 후보추천제’를 선택해 주목되고 있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강조한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제로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 대법원장이 법원장 후보추천제 개혁을 시작으로 사법부 정상화에 본격 착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법원장 후보추천제는 2017년 9월 취임한 김명수 대법원장이 주도하는 사법부 개혁안 중 하나로, 각급 법원 사법행정의 민주성·전문성을 기한다는 취지로 도입되었다. 일선 판사들이 직접 법원장 후보들을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최종 임명하는 제도로, 2019년부터 시행됐다. 즉, 각급 법원 판사들이 투표를 통해 법원장 후보 1~3명을 선발하면, 대법원장이 이 가운데 법원장을 임명하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사진=연합뉴스TV 캡처]

법원장 후보추천제 시행 이전에는 대법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중에서 지방법원장을 임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법원장 보임이 대법원장 한 명의 의사에 따라 이뤄진 셈이다. 김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하고 각급 법원의 사법행정 민주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법원장 후보추천제를 도입했다.

법원장 후보로 유력한 수석 부장판사, 신속한 재판을 독려하지 못하고 판사들 눈치 봐

도입 취지와 달리, 법관들의 투표로 법원장 후보가 결정되면서 사법행정이 인기 영합주의로 흐르고 재판 지연 문제를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적지 않게 제기됐다. 이에 조 대법원장은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에서 “일종의 인기투표가 되고 있고 사법부의 본질적 목적인 충실하고 신속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며 개선 방안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그간 법조계에서는 현행 추천제에 대해 “법원장 후보로 유력한 수석부장판사 등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동료 및 후배 판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신속한 재판 진행을 독려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법원 일각에선 “갈수록 법관 인사가 선거판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정도였다.

재판 지연의 수혜자는 범죄자들...민주당 사람들이 이익을 봐?

이에 대해 정혁진 변호사는 유튜브 채널에서 “고참 법관들이 후배 판사들에게 ‘너무 일하지 마, 1주일에 세 건만 판별해’ 이런 식이었다”면서, 그러다 보니 실제로 재판 지연이 엄청나게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결국 위아래도 없어지고, 판결문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판사들도 여럿 생기고 있다며 후보추천제의 폐단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 변호사는 “재판 지연으로 범죄자들이 이익을 본다”면서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범죄자들인 민주당 사람들이 이익을 봤다”고 꼬집었다. 정 변호사는 현재 사법부에 너무 많은 문제가 있는데, 앞으로 이런 부분들이 조희대 대법원장 하에서 바로잡힐 것으로 크게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희대 신임 대법원장은 11일 열린 취임식에서도 재판 지연 문제 해결을 우선 과제로 꼽았다. [사진=채널A 캡처]
조희대 신임 대법원장은 11일 열린 취임식에서도 재판 지연 문제 해결을 우선 과제로 꼽았다. [사진=채널A 캡처]

현재 조 대법원장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투표제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법원 관계자는 “법원장 후보추천제에 대한 구체적 개선 방안이 이르면 일주일 안에, 늦어도 이달 말에는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 지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속도전에 나선 것이다.

조희대 대법원장, ‘법관 투표제’ 폐지 추진...‘법원장 인선 자문위’를 대안으로 검토

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기존 제도의 폐단으로 지적된 법관 투표제는 폐지된다. 대신 추천제 골격은 유지하되 일선 법원별로 법원장 후보자를 추천받는 게 아니라, 전국 단위로 후보군을 추리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추천은 대법원 법원장 인선 자문위원회에 판사들이 직접 후보자를 추천하는 방식 등을 검토하고 있다.

법원장 인선 자문위는 법원 내규에 정해진 기구로, 법원행정처장과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추천한 법관 3명,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추천한 법관 2명으로 구성된다. 법원 관계자에 따르면 “전국 단위로 추천이 되면, 자문위에서 결격 사유자를 배제하고 대법원장이 전국 법원장을 최종 임명하는 안이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이 방안이 확정되면 내년 1월 말로 예정돼 있는 법원장 인사가 종전과 다른 방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럴 경우 현행 추천제의 폐단이 바로잡힐 것으로 보인다. 향후 조 대법원장은 추천제를 완전히 폐지할지 여부도 법원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조 대법원장은 11일 취임사에서도 재판 지연 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조 대법원장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지는데 법원이 이를 지키지 못해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국민이 지금 법원에 절실하게 바라는 목소리를 헤아려 볼 때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해 분쟁이 신속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했다.

[사진=채널A 캡처]
[사진=채널A 캡처]

조 대법원장은 오는 15일 전국 법원장 회의도 주재할 예정이다. 재판 지연 문제가 공식 안건으로 올라와 있기 때문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조 대법원장이 처음 주재하는 회의인 만큼, 법원장 후보추천제 개혁안 등을 포함한 사법행정 개혁이 심도있게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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