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팬카페 개설자가 9일 자정 이후로 '개딸'이란 호칭을 더이상 쓰지 말아달라며, 민주당에 청원을 올렸다. 스스로 선택한 자신들의 호칭을 더 이상 쓰지 않겠다는 선언인 동시에, 외부에서도 그런 표현을 쓰지 못하도록 막아달라고 청원을 냈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개딸’이란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을 의미하는 단어로 통용돼왔다.

'개딸' 명칭 파기 청원을 올린 청원글은 11일 오전 1779명의 동의를 얻는 데 그치고 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캡처]
'개딸' 명칭 파기 청원을 올린 청원글은 11일 오전 1779명의 동의를 얻는 데 그치고 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캡처]

‘명튜브’라고 자신을 지칭한 이 대표 지지자는 지난 9일 민주당 국민응답센터에 <‘개딸’ 명칭 파기 확인 및 각종 기사 ‘민주당원’ 정정보도 요구 청원>이라는 글을 올렸다. 비(非)실명 원칙에 따라 청원인의 이름은 ‘박*현’으로 표기됐다.

청원인은 청원글 본문에서 자신을 ‘재명이네 마을 개설자’라고 소개했다. 친민주당 성향의 인터넷 매체에서는 ‘박상현’이라는 지지자가 ‘재명이네 마을 개설자’로 보도된 바 있다. 따라서 박상현 씨가 이 청원글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칭 ‘개딸 창시자’, ‘개딸’ 대신에 ‘민주당 지지자’로 불러달라고 고압적으로 요구

청원인은 <‘개딸’ 창시자 공식 입장문>이라고 제목을 적은 뒤, “결론부터 말씀드린다. 2023년 12월 9일 0시 부로 ‘개딸’이라는 명칭을 공식 파기한다”며 “앞으로 ‘개딸’이란 명칭 대신 ‘민주당원’ 또는 ‘민주당 지지자’로 명명하여 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사실상 ‘개딸’이라는 이름의 호적을 말소하라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모습이다.

‘개딸’이라는 호칭의 창시자가 개딸 대신 ‘민주당원’ 혹은 ‘민주당 지지자’로 ‘개명’을 하겠다는 선언으로 풀이됐다. ‘개딸’이라는 용어는 외부에서 부른 호칭이 아니라, 이 대표 강성 지지자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호칭이다.

그런데 이 호칭은 개딸들의 폭력적인 행동으로 인해 부정적인 이미지로 고착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박’으로 불리는 일부 비명계 의원 지역구 사무실에 가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예사이다. 심지어 지난 9월 이 대표의 단식장에 등장한 개딸은 여성 경찰관에게 흉기를 휘두르기도 했다. 당시 폭력 사태에 대해서 이 대표 측이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자, 묵인 또는 방조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 9월 14일 오후 7시52분께 국회 본청 앞에 설치된 더불어민주당 단식 농성장에서 한 시민이 휘두른 흉기에 경찰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회와 당 관계자들이 사건 현장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9월 14일 오후 7시52분께 국회 본청 앞에 설치된 더불어민주당 단식 농성장에서 한 시민이 휘두른 흉기에 경찰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회와 당 관계자들이 사건 현장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박’이라고 편가르기 하던 ‘개딸’, 이제 와서 우리도 ‘민주당 지지자’라고 물타기 시도

더욱이 ‘개딸’을 ‘민주당 지지자’와 등가개념으로 사용하라는 것은 일종의 ‘물타기 시도’로 분석된다. 그동안 이 대표에 대해 비판적인 민주당 인사들을 ‘수박’이라고 매도해놓고 이제와서 “우리도 민주당 지지자일 뿐이다”라고 주장한다면, 비명계 인사들은 민주당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과 다름 없다.

이원욱 민주당 의원은 11일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 '개딸 용어' 파기 요구에 대해 "본인들도 국민 혐오 단어가 된 것을 자인한 것"이라며 "개딸의 폭력적 태도를 없애고 당 지도부가 이들과 단절을 위해서 실효적인 조치를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라며 말했다. 개딸을 민주당 지지자라고 부르는 게 해법이 될 수 없고, 이 대표와 친명계가 강성 지지층인 개딸 그룹과의 단절을 선언하는 게 당내 화합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인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의원은 "문제는 용어보다 태도"라면서 "이 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폭력적인가. 총알 한 방이라도 있으면 쏴버리고 싶다는 등 폭력적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개딸’의 폭력적 이미지 고착화되자 일방적으로 ‘사용중단’ 선언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10일 유튜브 ‘어벤저스 전략회의’에서 “이 용어 자체가 굉장히 폄하하고 비하하는 용어가 돼버렸다. 맹목적이고 폭력적으로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면서 상대방에 대해서는 폭력과 테러를 일삼는 자들이라는 의미”라고 진단했다.

이 위원은 조만간 이 단어가 사전에도 등재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본인들이 이걸 더 확장시켜 개삼촌 개이모 양아들 등 많은 용어를 양산했다”고 짚었다. 실제로 이 대표 지지자들은 지난해 대선 패배 직후인 3월 10일 개설된 ‘재명이네 마을’에 가입하고, 자신들을 ‘개혁의 딸’, ‘양심의 아들’이라면서 개딸‧ 양아들이라고 불렀다.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이 대표를 비롯해 민주당 인사들도 이 호칭을 즐겨 사용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재명이네 마을’ 온라인 투표에서 ‘1대 이장’으로 뽑힌 뒤 “개딸, 냥아, 개삼촌, 개이모, 개언니, 개형 그리고 개혁동지와 당원동지 시민 여러분 모두 모두 깊이 사랑합니다”라고 썼다.

이렇게 애용하던 호칭을 하루아침에 버리겠다고 해서 버려질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현종 위원은 “뭔가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다 보니, 이제 와서 ‘쓰지 말아주세요’라고 하니 정말 개웃기네요”라고 비꼬았다.

개딸들의 ‘개명 운동’에 대해 채진원 경희대 공공고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개딸’ 용어는 개딸들의 폭력적인 행동 탓에 부정적으로 이미지화됐다”며 “행동이 바뀌지 않는 한 ‘개명 운동’이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개딸’이라고 쓰는 언론사에 대해서는 정정보도 요구?...언론이 가진 ‘표현의 자유’ 억압 의도

청원인의 비상식적인 요구는 한 가지 더 있다. 그는 청원글에서 “이 지구상에 있지도 않은 ‘개딸’이란 기사 제목 및 내용으로 우리 민주당원을 매도한다면 마치, '폭도'라는 프레임을 걸어 광주를 잔혹하게 포격했던 전두환처럼 허위, 날조, 선동하는 기사와 기자로 확인하고 낙인찍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언론이 가진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겠다는 발언을 서슴없이 토해내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민주당을 향해 “‘개딸’ 이라는 명칭을 쓴 기사 및 언론사에 대하여 ‘민주당원’이라는 명칭으로 정정보도 요구할 것을 청원한다”고 요구했다.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서도 “공식 파기된 ‘개딸’이라는 명칭을 쓰지 말고, 민주당원 또는 민주당 지지자란 용어를 써주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지난 3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더불어수박깨기운동본부 관계자들이 비명계 의원들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수박'은 이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 겉과 속이 다른 배신자라는 뜻으로 이 대표 측 지지자가 지난 대선 당시 경선 상대였던 이낙연 전 대표의 측근 등을 비난할 때 쓰는 표현이다. 2023.3.3. [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더불어수박깨기운동본부 관계자들이 비명계 의원들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수박'은 이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 겉과 속이 다른 배신자라는 뜻으로 이 대표 측 지지자가 지난 대선 당시 경선 상대였던 이낙연 전 대표의 측근 등을 비난할 때 쓰는 표현이다. 2023.3.3. [사진=연합뉴스]

11일 오전 10시 기준 이 청원에는 1779명이 동의했다. 30일 이내 5만명 이상 동의할 경우 당 지도부가 답변하게 된다. 10일 오전 9시 30분 기준, 900여 명이 동의했다. 11일 자정 무렵에는 약 1700여명이 동의했다. 증가속도는 가파르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증가속도와는 무관하게 청원인은 ‘재판리스크’에 시달리는 이 대표에게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거리낌없이 ‘정정보도 요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언론탄압’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현종 위원은 청원인의 이같은 요구에 대해 “언론에서 이걸 받아들일 리가 없다”면서 “정정보도 청구를 하게 되면 언론중재위원회로 넘어가는데, 100% 기각된다고 본다”고 예상했다. 개딸 호칭이 이재명 대표 지지자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됐고, 이 대표도 쓰면서 언론이 그걸 받아서 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위원은 “언론은 언론 나름대로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쓰는 것”이라며, 자기들이 써달라고 해서 쓰기 시작했는데 그동안은 문제제기를 하지 않다가, ‘개딸’의 의미가 너무 부정적이 되니 이제 쓰지 말아달라는 요구는 비상식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만한 발상 드러낸 ‘개딸’, ‘개딸 프레임’ 강화하는 패착 둔 듯

이 위원의 설명에 함께 출연한 신지호 전 의원은 “개딸들이 민주당원 전체를 대표하는 것도 아닌데, 개딸이 민주당원 전체를 대표하는 양 불러달라는 것도 오만한 발상”이라면서 “오늘 이 소동으로 개딸 프레임은 더욱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위원은 이 대표가 ‘재명이네 마을 이장’직을 사퇴하고, 사이트를 폐쇄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면, 가능성은 조금 있을 것 같다고 여지를 남겼다. 하지만 이 위원은 이 대표가 절대 재명이네 마을 이장직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원욱 의원을 비롯한 ‘원칙과 상식’ 의원들이 가장 먼저 요구한 사항이지만, 이 대표는 지금까지도 이장직을 사퇴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개딸로 추정되는 강성 지지자들의 비명계를 향한 폭력이 계속된다면, 개딸이라는 용어가 사라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개딸’이라는 호칭이 사라지기를 원한다면, 비명계를 폄하하는 ‘수박’ 호칭도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동시에 나왔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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