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부산을 방문했을 때 재계총수들이 동행해 화제를 모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등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그룹 오너 경영인들이 윤 대통령과 함께 부산 전통시장을 방문해 떡볶이와 오뎅 등 서민음식을 즐겼다. 자신을 향한 환호와 카메라 세례를 향해 ‘쉿’하는 포즈를 취한 이재용 회장 사진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대한상의 회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3일 하노이 한 호텔에서 열린 한·베트남 비즈니스포럼에서 환영사를 위해 목발을 짚고 나서자 윤석열 대통령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2023.6.23. [사진=연합뉴스]
대한상의 회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3일 하노이 한 호텔에서 열린 한·베트남 비즈니스포럼에서 환영사를 위해 목발을 짚고 나서자 윤석열 대통령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2023.6.23. [사진=연합뉴스]

이 자리에 4대 그룹 회장 중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보이지 않았다. 동생인 최재원 SK수석부회장이 대신 참석했다. 이날 부산 방문은 윤 대통령 입장에서 중요한 행사였다.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가 불발된 후 처음으로 부산을 찾아 시민들을 위로하고 각종 지원책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부산 방문에 불참한 최태원 회장, 도쿄에서 ‘대규모 쇄신 인사안’ 사인해

최태원 회장은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가장 열심히 뛰어다닌 총수였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지구촌을 누비는 최 회장을 향해 ‘목발 투혼’이라는 유행어가 생길 정도였다. 때문에 부산행에 동생인 최 부회장을 보낸 것은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최 회장은 그 시기에 일본에 체류중이었다. 11월 30일 SK최종현학술원과 도쿄대가 주최한 ‘도쿄포럼’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도쿄에서 지난 7일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화두로 삼은 임원인사안을 확정했다.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대폭 인사였다.

최 회장은 지난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SK그룹 CEO 세미나’에서 ‘서든 데스(돌연사)’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급격한 대내외 환경 변화로 빠르게, 확실하게 변화화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메시지였다.

2016년 ‘1차 서든 데스론’ 당시 기용된 ‘복심’ 조대식 의장은 2선 후퇴

최 회장의 ‘서든 데스론’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6년 6월 확대경영회의에서 처음 언급했고 대대적인 세대교체 인사를 단행했다. 2016년 12월 연말인사에서 전격적으로 발탁됐던 최고경영자(CEO)들의 2선 후퇴와 50대 사장단 기용이 지난 7일 단행된 SK인사의 핵심이다.

7년만에 다시 ‘서든 데스’를 경고하고 대대적인 세대교체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SK그룹을 이끌어온 최고협의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소속 부회장 4명 전원이 대표직을 내려놓고 고문으로 물러났다.

[사진=채널A 캡처]
[사진=채널A 캡처]

조대식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장동현 SK㈜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등이 그들이다. 조 의장은 SK㈜로, 장 부회장은 SK에코플랜트로 자리를 옮겼다. 김 부회장과 박 부회장은 각각 SK이노베이션과 SK하이닉스 부회장 직함을 유지하면서 자문 역할을 수행한다. 2016년 ‘1차 서든 데스론’ 당시 50대로 최고경영진에 발탁됐던 이들 4인은 이제 60대이다.

이들 4인 중 특히 조 의장의 퇴진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조 의장은 최 회장과 같은 1960년생이면서 신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동문이다. ‘복심’으로 불리면서 최 회장을 보좌해왔다.

‘1차 서든 데스론’ 때 계열분리됐던 사촌동생 최창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발탁

조 회장의 뒤를 잇는 후임 의장으로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임명됐다. 1964년생인 최 부회장은 최 회장의 사촌동생이다. 또 지동섭 SK온 사장이 SV위원회 위원장, 정재헌 SK텔레콤 대외협력담당 사장이 거버넌스위원회 위원장으로 각각 기용됐다.

[사진=채널A 캡처]
[사진=채널A 캡처]

SK수펙스추구협의회가 4인체제에서 3인체제로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최창원 의장은 고(故) 최종건 창업주의 3남이다. 최종건 창업주가 지난 1973년 40대의 나이로 별세하자 동생인 최종현 선대회장이 그룹경영을 승계했다. 1998년 최종현 회장이 별세하면서 별다른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최종건 창업주 집안을 포함한 오너 일가들이 최종현 회장의 장남인 최태원 현 회장을 차기 총수로 추대했다. 이후 최종건 창업주의 2남인 최신원 전 회장이 SK네트웍스를, 최창원 부회장이 SK디스커버리를 각각 맡아 경영하는 체제를 구축해왔다. SK디스커버리는 지난 2017년 SK그룹과 지분 관계가 정리됨으로써 계열분리가 된 곳이다. SK케미칼·SK가스·SK바이오사이언스 등을 지배하는 중간 지주사이다.

즉 최태원 회장은 2016년 ‘1차 서든 데스론’을 띄운 뒤 그해 연말인사에서 조대식 의장 체제를 구축했고, 다음해인 2017년 최종건 창업주 일가는 SK그룹경영의 중심에서 떠나는 구도를 수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최창원 부회장이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기용되면서 ‘사촌경영 체제’가 구축됐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그룹내 권력 서열 2위로 꼽히는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사실상 계열분리시켰던 사촌동생인 최창원 부회장을 발탁한 의도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채널A 캡처]
[사진=채널A 캡처]

최창원 기용 목적 1= 사업부문 효율화, 미래사업 강화, 인적구조조정 단행 등 주도

최창원 부회장은 ‘사업 구조조정 전문가’라는 평판을 받고 있다. 2007년 SK케미칼 경영을 책임지면서 당시 매출 절반을 차지하던 섬유사업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친환경·헬스케어·바이오 등의 미래사업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는 대변혁을 단행했다. 현재의 달콤한 과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겨냥한 혁신을 실천한 것이다.

‘인적 구조조정’도 최창원 부회장의 트레이드마크이다. 1996년 선경인더스트리(현 SK케미칼) 기획관리실장으로 일하면서 국내 최초로 명예퇴직제를 도입했다. 당시 인력의 3분의 1을 감원하는 대규모 인적 구조조정을 결행했다. 이는 1998년 1월 몰아닥친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경쟁력으로 작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에도 워커힐호텔과 SK상사, SKC, SK건설의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10월 ‘CEO세미나’에서 “(이같은 대격변 시기에는)투자를 결정할 때 매크로(거시환경) 변수를 분석하지 않고, 마이크로(미시환경) 변수만 고려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경제 대변혁을 감안한 경영전략 수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인 것이다.

따다서 글로벌 대변혁에 대응하는 사업부문 효율화, 미래사업 강화, 인적 구조조정 등이 최태원 회장이 방점을 찍고 있는 경영전략이고, 최창원 부회장은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그 사령탑을 맡는 그림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최창원 기용 목적 2= 최태원의 후계구도 계획에 최창원과 최윤정이 편입돼?

SK그룹 후계 구도 변화 가능성도 주목된다. 최태원 회장은 11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후계 구도에 대해 생각하고 있고, 준비해야 한다”면서 “내가 사고를 당한다면 우리 그룹은 누가 이끄나. 승계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만의 계획은 있지만 공개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따라서 사촌동생인 최창원 부회장이 이번에 SK그룹 후계구도에 편입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범SK그룹의 2세 5형제(최윤원·최신원·최태원·최재원·최창원)는 각별한 우애로 유명하다. 1998년 9월 고 최종현 회장이 별세하자 가족회의에서 최태원 회장에게 SK그룹 지분을 전부 상속하기로 합의하고 실행했다.

최태원 회장은 SK그룹 지주사인 SK㈜ 지분 17.7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최창원 부회장은 현재 SK㈜ 지분이 없다. 최 회장이 2018년 친족들에게 1조원 규모의 SK㈜ 주식을 증여할 때 최창원 부회장은 증여대상에서 제외됐다. 최창원 부회장이 이미 SK디스커버리의 지분 40.2%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됐다.

최 회장은 노소영 씨와의 사이에 장녀 최윤정 씨, 차녀 최민정 씨와 장남 최인근 씨를 두고 있다. 이들 중 1989년 생인 최윤정 씨가 후계구도에 진입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1월 SK바이오팜의 전략투자팀장으로 승진한 지 10개월만인 지난 7일 인사에서 부사장급 사업개발본부장으로 승진했다. 중국 베이징국제고와 미국 시카고대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2015~2017년 글로벌 컨설팅기업 베인앤드컴퍼니를 거쳐 2017년 SK바이오팜 경영전략실 전략팀 선임 매니저(대리급)로 SK그룹에 입사했다.

최태원 회장의 장녀 윤정 씨 (괄호 안의 인물)는 이번 인사에서 후계구도에 진입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진=채널A 캡처]
최태원 회장의 장녀 윤정 씨 (괄호 안의 인물)는 이번 인사에서 후계구도에 진입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진=채널A 캡처]

차녀 민정 씨는 SK하이닉스 소속으로 지난해 휴직계를 내고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타트업 자문과 창업 활동을 하고 있다. 장남 인근 씨는 SK E&S의 북미법인인 ‘패스키(PassKey)’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들 3자녀는 SK주식을 갖고 있지 않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