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2·12사태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 관객이 500만명 돌파하는 등 흥행돌풍을 계기로 범(汎)삼성가와 영화를 둘러싼 인연이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기생충, 명량 등 초대작 영화의 제작 및 배급에 참여했던 ’한국 영화계의 큰손‘ CJ는 ’서울의 봄‘과는 아무런 인연을 맺지 않았다.

CJENM은 올들어 거액을 투자한 영화 대부분이 흥행에 실패하는가 하면, 배우 이선균을 캐스팅해 200억원 상당을 투자한 영화 '탈출' 까지 이씨의 마약혐의 수사로 개봉이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CJENM은 지난 2019년 그때까지 15년을 지켜온 영화시장 1위 자리를 경쟁사 롯데엔터테인먼트에 내준 바 있다. 이때까지 CJ가 영화업계 1위를 달릴 수 있었던 비결은 대한민국 문화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반영한 ’정치영화‘들이었다. 비교적 최근 개봉한 영화중에는 2018년 11월 개봉한 ‘국가부도의 날’이 대표적이다.

이 영화는 한국은행을 선(善),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은 재벌과 결탁한 악(惡)으로 묘사했는데, 이런 이분법적인 선악 구도가 현실에는 없었다는 비판의 목소리에 부딪혀 대부분 극장에서 상영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후 CJ는 정치성이 강한 영화를 대폭 줄이는 모습을 보였고, 대안으로 내놓은 영화들이 잇달아 흥행에 실패하면서 자금난에 봉착, 올 연말 임원인사에서 CJENM 대표를 교체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이라는 정치환경의 변화 또한 CJ가 과거와 같은 정치영화 제작에 소극적인 이유 중 하나로 지적된다.

하지만 혈통상 삼성 이병철 창업주의 적장자(嫡長子) 기업인 CJ로서는 ‘서울의 봄’ 흥행돌풍을 지켜보는 느낌이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이병철 창업주의 장남으로 2015년 작고한 이맹희 전 CJ그룹 오너는 생전, 이건회 회장과의 갈등이 한창일 때 펴낸 자서전에서 “전두환 대통령 때문에 삼성의 후계자가 되지 못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이맹희 전 회장은 1931년생 동갑내기로 10대 초반에 만나, 중·고등학생 시절 대구 수성천변에서 함께 뛰놀던 동네친구였다.

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집권을 한 뒤 아버지 이병철 회장에게 자신에 대해 안좋은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하는 바람에 경영권을 물려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전 회장은 전 전 대통령이 자신을 험담한 이유에 대해 “어릴적 전두환과 더불어 막내동생 전경환도 함께 어울려 잘 아는 사이라 삼성 비서실에 취직을 시켜줬는데, 일을 제대로 못해서 자주 혼낸 것 때문에 앙심을 품어서 생긴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회장은 이 책에서 “내가 전두환 전 대통령을 6·25 전쟁에서 죽지않도록 만든 생명의 은인”이라고 까지 했지만, 문제의 자서전은 출간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중에서 사라졌다. 당시 출판계에서는 “삼성에서 거액을 들여 출판권을 사서 책을 회수하고 없애 버렸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현재 삼성그룹의 주인은 자신을 거쳐 이재현 CJ회장이 되었어야 한다는 것이 이맹희 전 회장의 주장인 것이다.

CJ그룹으로서는 ‘서울의 봄’이 이맹희 전 회장의 ‘한’을 풀어주는 영화가 될 법 했지만, 이 영화의 제작과 배급에 참여하지 않았다. 정치영화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최근 그룹의 분위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대신 ‘서울의 봄’은 하이브미디어코프라는 중소기업이 제작에 참여했다. 이 회사 김원국 대표는 ‘내부자들’(2015년)과 ‘남산의 부장들’ 같은 정치성이 강한 영화를 만든 바 있는데, ‘서울의 봄’은 2020년에 개봉된 10·26을 다룬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속편인 셈이다.

한편 ‘서울의 봄’으로 주가가 급등한 수혜종목으로 중앙일보 계열 배급사인 콘텐트리중앙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콘텐트리중앙은 서울의 봄 배급사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관련주로 묶였다.

종편 JTBC의 대규모 적자로 직원들의 희망퇴직까지 받고있는 중앙미디어그룹으로서는 그나마 ‘서울의 봄’이 얼마간 자금난을 해소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앙일보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미디어그룹은 지금은 완전히 이건희 전 삼성회장의 처가 쪽 회사가 됐지만 한때는 삼성의 주력기업이었다. 이건희 회장이 경영수업을 중앙일보에서 시작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이 사실상 자신의 회사였던 중앙일보를 포기한 것은 2008년 삼성특검 때문이었다. 처남(홍석현)에게 맡겨놓은 경영권을 언제든지 회수할 수 있는 지분상의 ‘안전장치’가 있었지만, 이것이 드러날 경우 횡령죄가 되는 비자금 규모가 너무 불어나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영화 서울의봄은 이래저래 삼성가와 엮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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