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지난 4일과 5일에 걸쳐 광주에서의 행보를 통해 사실상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조 전 장관은 4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북콘서트를 개최했고, 다음날에는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았다.

5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참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5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참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북콘서트 때문에 광주를 방문한 김에 찾았다고 볼 수 있지만, 5·18민주묘지 참배도 예사롭지 않은 행보이다. 조 전 장관은 5일 오전 9시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았다. 추모탑 앞에서 묵념한 뒤 묘역으로 이동, 5·18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50여일 옥중 단식 농성을 벌이다 숨진 고(故) 박관현 열사와 무명열사 묘소를 참배했다.

학자의 길을 포기한다던 조국, 곧바로 맞춤법 틀리는 촌극 벌여

조 전 장관이 민주묘지를 찾은 것은 지난 2019년 5월 문재인 정부 주도 5·18 기념식에 문 전 대통령과 참석한 이후 4년만의 행보이다. 조 전 장관의 민주묘지 참배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2024년 총선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조 전 장관이 본격적인 행보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조 전 장관은 민주묘지 참배에 대해 정치적인 의미 부여를 삼가 달라며 “마음을 추스르고 정리하고자 개인 자격으로 왔다”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조 전 장관의 민주묘지 참배가 주목되는 것은 ‘정치적인 의미’에 더해, 방명록 작성에서 보여준 실수 때문이다. 사소한 실수로 치부되기에는 ‘평생 학자를 소명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다’는 조 전 장관의 자질을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5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작성한 방명록. '고이'를 써야 하는데, '고히'를 잘못 썼다. [사진=연합뉴스]
5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작성한 방명록. '고이'를 써야 하는데, '고히'를 잘못 썼다. [사진=연합뉴스]

조 전 장관은 참배에 앞서 방명록을 작성했다. '5·18 정신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한 걸음을 내딛겠습니다. ‘고히 잠드소서’라고 적었다. '고히'라는 단어는 없다. '편안하고 순탄하게'라는 뜻의 '고이'를 쓰려고 했는데 ‘고히’로 잘못 쓴 것이다. 서울대 교수로 지내온 조 전 장관이 학자의 길을 걷지 않겠다고 하자마자 맞춤법부터 틀리는 촌극을 벌였다고 볼 수 있다.

학자로 돌아가는 길이 봉쇄됐다고?... 사실은 학자될 능력이 안돼

조 전 장관은 전날 북콘서트에서 “평생 학자를 소명으로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2019년 사태 이후로 학자로 돌아가는 길이 봉쇄됐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학자로 돌아가는 길이 봉쇄됐기 때문에, 이제는 총선 출마 외 다른 방법이 없다는 각오를 다진 것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의 이같은 실수를 두고, 국민의힘에서는 ‘학자로 돌아가는 길이 봉쇄돼서가 아니라, 학자될 능력이 안 돼서 학자를 할 수 없다’는 풍자가 나오고 있다.

6일 채널A에 출연한 박정하 국민의힘 대변인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바닥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본인은 더 이상 학자의 길을 갈 수 없다고 얘기하지만, 지금까지 받았던 (범죄) 혐의 때문에 학자로서의 양심이 안 돼서 학자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맞춤법까지 틀린 걸 보니, 학자될 능력도 안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며 비판한 것이다.

[사진=채널A 캡처]
[사진=채널A 캡처]

자신이 할 일은 학자가 아니라 총선 출마라는 조국, 비장한 분위기 연출해

조 전 장관은 5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도 “윤석열 정권에 제가 아부하면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살 수가 없는 것 아닙니까? 제가 침묵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저는 제가 해야 될 일이 학자가 아니다라는 생각은 이미 마음먹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일 북콘서트에서 학자로 돌아갈 길이 봉쇄됐다고 밝힌 데 이어, 5일에도 같은 내용이 유튜브를 통해 방송되도록 미리 사전녹화를 한 것으로 보인다. 5일 광주에서 민주묘지를 방문한 조 전 장관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려는 김어준 씨의 의도가 감지된다.

조 전 장관은 ‘역할을 해야 되겠다, 여기까지만 결정한 거냐?’라는 취지의 질문에 대해 “조용히 웅크리고 골방에 처박혀서 살 수는 없는 거 아니냐, 라는 생각”이라고 답했다.

4일 북콘서트에서도 조 전 장관은 총선 출마에 쐐기를 박은 듯한 발언을 했다. 신당 창당과 총선 출마에 대한 질문에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돌 하나는 들어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발언보다 좀더 강한 의미가 담긴 것으로 읽히며, 북콘서트 참석자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사진=채널A 캡처]
[사진=채널A 캡처]

구체적으로 당을 만든다거나 뭔가를 당장 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건 아니지만, 조 전 장관은 “주변에 친구와 동지와 또 국민들의 마음에 따라 몸을 맡기자”라고 말했다. ‘주위의 권유를 피하지 않겠다’라는 의지를 확고히 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마디로 비장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중이다.

조국 혼자만 비장...민주당 내 비명 친명 모두 조국의 출마에 부정적 반응

조 전 장관의 이같은 입장에 대해 민주당은 친명 비명 할 것 없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조 전 장관 혼자만 비장한 셈이다.

비명계 이원욱 의원은 지난 6월 “출마는 그 개인의 자유”라면서도 “법적으로 할 수 있으면 하는 건데, 민주당한테는 굉장히 큰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총선에서 조국의 강이 아닌 조국의 늪에 빠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사진=채널A 캡처]
[사진=채널A 캡처]

친명계 핵심으로 꼽히는 김영진 의원 역시 지난달 7 “정치와 국회의원 출마가 명예회복의 수단은 아닌 것 같다”면서 “정치 출마를 통해 명예회복을 한다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라며 비판했다.

5일 채널A에 출연한 조기연 민주당 법률위 부위원장은 “조국의 늪까지는 아니지만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조 전 장관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과도했고 조 전 장관의 가족이 조리돌림당하는 것이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지만, 항소심 재판이 현재 진행 중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재명이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하면, 조국의 여의도 입성은 어려워져

조 부위원장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유지될 경우 신당 창당의 방식이 될 수도 있고 호남에서의 무소속 출마 방식도 가능하지만, 민주당으로 출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도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총량적으로 볼 때 민주당한테 그렇게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을 것 같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표가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마음을 굳힌 데는 조 전 장관의 입지를 의식한 측면도 적지 않다는 평가가 정치권 일각에서 흘러나온다. 현행 준연동형을 내년 총선에서도 유지할 경우, 잠재적 대권 주자인 조 전 장관이 신당을 창당해 무난하게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대표는 조국의 비장한 각오가 실현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이는 준연동형을 폐기하고 병립형으로 회귀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대표가 병립형으로의 회귀를 선택한다면 그보다 더 조국을 무안하게 만드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