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6일 ‘부산행’은 지난달 29일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에 따른 대국민사과의 후속편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날 부산에서 ‘부산시민의 꿈과 도전 간담회’를 갖고 가덕도신공항 건설과 산업은행 부산이전 약속을 확인하며 민심 달래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부산시 중구 부평동에 있는 깡통시장을 찾아 시민들을 만났다.

윤 대통령의 이날 부산행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구광모 LG 회장이 함께 했다. 윤 대통령이 깡통시장에 갔을 때는 이재용 회장이 바로 옆에 있었다. 두사람은 나란히 시장골목을 걸었고, 한 음식점에서는 ‘먹방’도 보여주었다.

그런데 시장상인들 사이에서 “윤석열!” 이라는 연호 못지않게 “이재용!”이라는 외침이 크게 울려 퍼졌다. 몇시간 뒤 SNS에는 이날 부산에서 찍힌 이재용 회장의 사진이 급속히 확산됐다.

이 회장이 손가락을 입에 대고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쉿”이라고 말하는 듯 하는 사진이었다. 평소 볼 수 없었던 이재용 회장의 색다른 모습이라 문제의 사진은 온갖 SNS를 타고 퍼져 나갔지만 막상 무엇을 하는 장면인지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인터넷에서는 “회식 2차 가기 싫어서 조용히 집에 가는 대리님 표정 같다”거나 “재벌 총수가 저런 표정을 짓다니 어떤 상황인지 궁금하다”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 “합성 아닌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저런 표정을 지은 것인가” 등의 댓글도 이어졌다.

이 사진을 이용한 패러디물도 번졌는데, 이 회장과 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사진이 들어가 있고 ‘동생 몰래 계산 안하고 튀기’라고 적혀 있었다. 신라호텔을 이용한뒤 계산을 안하고 도망가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런 궁금증은 부산행사에 갔던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통해 풀렸다. 이 장관은 이날 저녁 무렵 자신의 SNS에 “이재용 회장님의 사진이 인터넷에서 난리가 났다”면서 “대기업 회장님들은 전통시장 나들이가 처음이신 듯 했는데 그래도 유쾌하게 상인들과 어울리시며 함께 나들이를 잘 했다. 근데 이재용 회장님의 인기가 정말 하늘을 찔렀다”고 밝혔다.

이영 장관은 “시장 전체가 대통령님을 연호하는 소리로 가득했지만, 그 사이를 뚫고 유독 이재용 회장님을 부르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며 “그렇게 가는 곳마다 사진 찍자, 악수하자고 하시는 통에 아마도 주변에 대통령님이 계셔서 소리를 낮춰 달라고 하신 포즈가 아닐까 한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행사에서 누군가가 대통령 바로 옆에 서 있는 것은 사전에 고도로 기획, 연출된 일이아니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재용 회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부산행사에 동행한 것은 대통령실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못지 않게 바쁘고, 부산에 출마할 일도 없는 이재용 회장이 자원했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이 이날 행사에 이재용 회장까지 ‘동원’한 것은 엑스포 유치실패에 따른 민심의 동요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반증(反證)으로 보인다. 언젠가부터 영화계에서 흥행을 위해 주연배우 못지 않게 유명한 찬조출연자를 등장시키는 것처럼.

이재용 회장은 몇 년전부터 SNS에서 인기 연예인 ‘지드래곤’과 그의 이름을 합성해 ‘재드래곤’으로 불릴 만큼 인기가 높다. 삼성이 눈부신 실적과 더불어 문재인 정권에서 핍박받고 있는 것에 대한 동정심이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이영 장관이 “이재용 회장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고 표현한 것처럼, 부산 행사에서 이재용을 연호했던 군중심리의 이면(裏面)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차마 대통령을 향해 “뭐하러 오셨어요”라고 말할 수 없는 심사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재계도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이나 정부 못지않게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런데 정작 민관합동 엑스포유치위원장을 맡았던 최태원 SK 회장은 부산행사에 보이지 않았다.

이재용 회장은 얼마전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 검찰로부터 징역 5년을 구형받아 놓은 상황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국정농단 사건으로 두 번 감옥을 다녀온데 이어 또 다시 수감위기에 처해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 특검의 수사팀장으로 이재용 회장을 구속 수감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깡통시장에서 터져나오는 이재용 함성을 들으며 윤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