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부산엑스포 우치가 무산된 뒤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모습/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부산엑스포 우치가 무산된 뒤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모습/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그 어느 대통령 보다 정치적 부채가 없는 사람이다. 자신과 동지들의 기나긴 노력 보다는 순식간에 상대편(문재인 정권)의 ‘헛짓거리’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대통령이 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동지들과 함께 30년 야당생활에 ‘대권 4수’까지 하며 대통령이 됐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완전히 다른 케이스인 것이다.

장제원, 권성동 의원처럼 소위 ‘윤핵관’으로 불리는 사람들 또한 윤 대통령이 검찰에서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했을 뿐이다. 대세론(大勢論)도 그런 대세론이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선 후보경쟁을 한 홍준표 대구시장을 도운 국민의힘 현역 의원이 사실상 전무했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윤석열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그나마 이 정권에서 얼마간의 지분을 주장할 수 있었던 사람이 이준석, 안철수였지만, ‘가출’과 ‘늦은 단일화’로 까먹고 말았다. 윤 대통령 또한 이 두 사람에 대한 채무의식은 없어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단행한 6개 부처에 대한 개각, 이에앞선 청와대 참모진 개편에서 발탁한 장관 후보자 및 대통령실 실장과 수석들의 면면에서도 이런 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

장관후보자 6명 중 3명을 여성으로 채웠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 직업 공무원 출신을 기용했다. 앞선 대통령실 개편 또한 철저히 실무자 위주로 이루어졌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시절, 오랜 시절 자신을 모셨던 사람들의 명단, ‘공신록(功臣錄)’에 따라 장관 및 청와대 요직을 나눠주던 행태와 극명하게 비교되는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와같은 정치적 채무의 부존재는 향후 국정운영에서도 중요한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과 여권이 당면한 최대 과제는 내년 4월10일에 치러지는 제22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독자적으로 과반수 의석, 151석 이상을 확보하는 것이 최상이고, 이것이 어렵다면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협치불가’ 친명 민주당 의석을 100석 정도로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그렇지 않으면 윤석열 대통령의 남은 3년은 ‘식물 대통령’이 될 뿐 아니라 대한민국 또한 극도의 혼란에 휩싸일 것이다. ‘시행령 통치’에 ‘거부권행사’로 버티는 것은 더 이상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당의 내년 총선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민주당 등 야권이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핵심 소재인 ‘무능론’이 먹혀 들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세계적인 경기침체에 고금리의 영향으로 중산층은 물론, 특히 서민층의 삶이 어렵기만 하다. “OECD 국가중 물가상승을 가장 잘 억제하고 있다”는 식의 정부 발표로 손님이 급감하고 돈이 돌지않아 흉흉해진 시장골목의 민심을 추스르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지금까지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을 한 국민들이 근거로 삼은 것이 외교 안보 분야였다. 하지만 5000억원이 넘는 예산, 특히 부실논란이 제기된 PPT 제작비용으로만 53억원을 쓰고도 2030 엑스포 유치전에서 불과 29표를 얻는데 그쳤다는 사실 앞에서 무능론의 설득력은 더해 질 것으로 보인다.

부산엑스포 유치 결과가 나오기 전 까지, 정국은 여당 중심으로 흘러갔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등장과 활동에 대한 기대감이 이재명 대표의 온갖 사법리스크에 최강욱 전 의원의 막말 등 악재만 쏟아져 나오는 민주당을 압도했다. 여기에 이준석 전 대표의 신당 추진 같은 활동 또한 뉴스의 초점이 여당에 맞춰지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부산엑스포 유치에 실패하고,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활동 또한 아무런 성과없이 ‘빈손 귀가’로 마무리 될 조짐을 보이면서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특히, 인 위원장이 당에 요구한 혁신안 중 핵심인 영남 중진 및 윤핵관 인사들의 용퇴 또는 수도권 험지 출마 문제는 여당의 개혁 및 쇄신의지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말았다.

이제 여당에 남은 카드는 한동훈 법무부장관의 등판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개각에서 한동훈 법무부장관을 제외하고 내년 초로 시점을 넘긴 것은 등판효과를 극대화 하려는 고려로 보인다.

한동훈 장관 한명으로 여당에 엄습하는 암운(暗雲)을 걷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역대 총선에서 정당에 상관없이 중진들의 용퇴, 물갈이는 정치적 타당성이나 유권자들에게 돌아가는 실익과는 별개로 속죄양(贖罪羊)의 역할처럼, 개혁의지를 상징해왔다.

하지만 지금 국민의힘에서 김기현 대표 자신이 대상자가 되는 중진 용퇴론, 수도권험지 출마론은 없던 일로 귀결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올초 당 대표 선출과정에서 보여지듯, 김기현 대표와 장제원 의원 등 윤핵관의 결합은 현재 여당을 움직이는 최대의 권력이다.

지금 이 문제의 매듭을 풀 수 있는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 밖에 없다.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윤석열 정부는 물론 윤핵관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채무부존재’ 윤석열 대통령이 움직여야 하고,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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