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미·중 정상회담 일정을 마치고 18일 귀국했다. 6년만에 미국을 방문했던 시 주석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15일(현지시간) 회담에서 그간의 관계 경색 국면에서 중단됐던 군사 대화 채널을 복원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15일 정상회담 후 함께 산책하는 미중 정상. [사진=연합뉴스]
지난 15일 정상회담 후 함께 산책하는 미중 정상. [사진=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 사실상 두 개의 전쟁을 수행해 온 미국에게는 중국과의 긴장 수위를 낮춘 것 자체만으로도 군사적, 재정적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만약 중국이 타이완 근처 남중국해에서 무력시위를 계속 강화해 나갔다면 실제 군사적 충돌 여부에 관계없이 미국이 져야 할 부담은 배가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펜타닐 단속 합의가 미중 관계개선의 첫걸음으로 평가돼

그러나 이번 미중정상회담의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합성 마약 펜타닐 단속을 논의했다는 사실에 있다. 이 조치가 미‧ 중 관계 개선의 첫걸음이라는 의미를 부여받았다는 점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그만큼 미국 사회에서 펜타닐 문제가 심각하다는 반증으로 관측된다. 이처럼 미중 정상회담에서 합성 마약 펜타닐의 단속을 논의한 것은 내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에게 구체적인 성과물이 됐다는 평가이다.

펜타닐이 무엇이기에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이 양국관계 개선의 상징적 차원에서 펜타닐 단속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을까?

미중 정상이 합의한 주요 내용. [사진, 그래픽=연합뉴스]
미중 정상이 합의한 주요 내용. [사진, 그래픽=연합뉴스]

펜타닐은 ‘치명적 독약’...모르핀보다 100배 독성이 강해, 연필로 찍어 먹어도 치사량

펜타닐은 대표적인 오피오이드 제품이다. 오피오이드는 ‘오피엄(Opium·아편)’과 ‘오이드(Oid·~와 비슷한)’의 합성어로, 아편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합성 진통·마취제를 말한다. 실험실에서 합성해 만든 화학 물질이라는 점에서, 아편과는 구별된다.

오피오이드는 합법적 약물이지만, 강력한 중독성 때문에 엄격하게 규제된다. 특히 펜타닐은 헤로인보다 50배, 모르핀보다는 100배 독성이 강하다. 펜타닐의 치사량은 2㎎으로, 연필로 찍었을 때 끝에 묻는 정도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이 정도면 ‘치명적 마약’이라기보다 ‘치명적 독약’에 가깝다. 미국의 마약 전문가들은 “펜타닐에 장기간 중독된 사람은 없다. 그 전에 죽기 때문이다”라고 그 심각성을 경고하고 있다.

따라서 펜타닐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방호복과 고글, 검은색 마스크가 필수적이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된 영화 ‘독전2’에는 펜타닐과 유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라이카’라는 마약이 등장한다. 소금공장에서 라이카를 제조하는 농아 남매가 방호복과 고글,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도 합성 마약의 독성을 반증하고 있다.

미국 청장년층의 사망 원인 1위가 펜타닐...중국의 원료로 멕시코가 생산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10만9680명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하루 평균 300명 이상 사망한 셈이다. 이중에서도 펜타닐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지난해 7만5217명이 펜타닐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특히 젊은 층에서 사태가 심각하다. 현재 미국 18~45세 청장년층의 사망 원인 1위가 펜타닐에 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 멕시코에서 펜타닐이 흘러들어오고 있다면서, 수년간 양국에 펜타닐 근절을 요구했다. 멕시코는 펜타닐 생산지는 중국이라며 화살을 돌렸고, 중국은 미국이 근거 없이 의심만 한다고 맞받았다. 하지만 2019년 미국 마약단속국(DEA) 보고서에 따르면, 멕시코 카르텔 조직이 중국에서 펜타닐 원료를 구해 제3국에서 제조한 뒤 미국에 대량 유통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펜타닐의 주원료인 전구체(화학 성분)는 중국에서 멕시코로 수출된다. 세계 최대 의약품 원료 수출국인 중국에는 40만 개 이상의 화학 회사(불법 업체 포함)가 있는데, 이 중 일부가 제조한 전구체가 멕시코로 향한다. 멕시코에서 펜타닐로 제품화해 미국 국경을 넘는 수법이다.

중국은 미국이 근거 없이 의심만 한다고 맞받았지만, 시 주석은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 다음날인 16일(현지시간) 제30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PEC)정상회의에서 멕시코 정상과의 회담을 갖고, 전날 미·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마약 원료 단속에 대한 양국의 협력의사를 확인했다. 시 주석이 ‘펜타닐 원료를 만드는 (중국 내) 화학회사를 직접 단속하기로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이날 두 정상은 양국 관계를 새로운 관계로 끌어올리기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사진=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이날 두 정상은 양국 관계를 새로운 관계로 끌어올리기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사진=연합뉴스]

미 대선주자들, 펜타닐 근절 두고 경쟁 치열...바이든이 일단 우위 차지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대선주자들은 펜타닐 근절 공약을 잇따라 내놨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군을 파견해 펜타닐을 유통하는 범죄조직을 소탕하고 유통책들은 사형에 처하겠다고 했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도 미군을 보내 멕시코 카르텔을 제압하겠다고 약속했다.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미국 대사는 중국과 무역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했다.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으로부터 펜타닐 근절 약속을 받아냄에 따라, 대선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만큼 미국에서의 펜타닐 문제는 심각한 것으로 관측된다.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 샌프란시스코 등은 ‘좀비 도시’로 전락

미 펜실베이니아주의 최대 도시 필라델피아의 켄싱턴가(街)는 ‘좀비 랜드’로 잘 알려져 있다. 대낮에도 노숙인들이 마약 특히 펜타닐에 취해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약 6000명에 달하는 노숙인 중 상당수가 마약으로 뇌가 망가져, 허리나 팔다리를 심하게 꺾은 채 좀비처럼 약 3㎞에 달하는 거리에서 비틀거리고 있다.

경찰도 사실상 마약 거래 단속은 포기하고, 범죄가 일어나야 개입을 할 정도다. 게다가 주정부에서는 주사기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는 지경이다. 마약 중독자가 넘쳐나 단속이 되지 않기 때문에, 감염성 질병이라도 예방하려는 취지에서 안전한 주사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뉴욕에선 치명적인 수준의 마약 과다 복용이 2021년 2668명에 달해, 전년보다 500명 이상 늘었다. 코로나로 외출이 제한된 기간에 마약 중독은 더 확산됐다.

펜타닐 중독으로 '좀비 도시'라는 오명을 얻은 샌프란시스코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샌프란시스코 법의관실 통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9월까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자는 620명이었고, 이 중 506명이 펜타닐 복용자였다.

마약은 과거 미국에서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부 중독자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사이 값이 싸면서도 자극이 더 센 오피오이드 계열의 마약이 도시를 중심으로 퍼지면서 사망자와 사고가 급증하는 상황이다.

펜타닐 중독으로 매년 미국인 7만명 사망...더불어민주당의 나사풀린 마약정책은 대재앙 초래

미국을 이 지경으로 만든 주범으로는 단연 ‘펜타닐’이 꼽힌다. 말기암 환자용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중독으로 매년 7만여 명의 미국인이 사망한다. 미 당국이 제약사들의 약품 생산과 의사들의 과잉 처방을 규제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올해 입법 시즌에 미국의 46개 주에서 펜타닐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NYT는 지난 6월 “펜타닐 관련법이 심각하게 분열된 국가에서 초당적 지지를 끌어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약 30개 주가 펜타닐 공급자를 살인죄로 기소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펜타닐과 같은 오피오이드 중독으로 인해 연간 5000억 달러(약 650조 원)의 비용이 든다고 추산한다. 의료, 경찰, 재활 센터, 아동 보호 등이 포함된 수치이다. 내년 미 대선의 중요 이슈로 펜타닐 근절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펜타닐 단속에 대해 협조를 요청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볼 수는 없다. 중국이 만들지 않으면, 동남아 등 다른 국가에서 만들어 공급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기 전에 경각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막는 외에 뾰족한 방법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미국의 ‘펜타닐 대란’은 한국에게도 시사점이 많다. 미국의 비극을 통해, 마약유통에 대한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한 데 이어 법무부의 마약수사 특활비마저 전액 삭감하려는 더불어민주당의 ‘나사풀린 마약정책’이 앞으로 한국사회에 대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바이든과 시진핑의 ‘펜타닐 합의’를 바라보면서 민주당이 마약문제의 심각성을 재인식하고 각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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