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 공천 일정을 앞둔 더불어민주당의 ‘비명 숙청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공천권을 이재명 대표가 완전히 장악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그 신호탄이다. 이 대표는 최근 스스로를 ‘민주당 인재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셀프 임명이라는 전례없는 사건이다. 총선기획단장에는 친명계 핵심인 조정식 사무총장을 기용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의 야심 드러낸 내년 총선 공천 시스템은 두 가지 원칙 내포

친명계가 공천권을 장악한 정도가 아니라 이재명 본인이 전권을 행사하는 노골적인 구조이다. 그동안 이 대표의 팬덤 정치를 비판하면서 포용과 합리성을 주문해온 ‘비명계’는 이제 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내년 4월 10일 실시되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의 예비후보자 등록신청은 다음달 12일부터 시작된다. 이 시기를 전후로 해서 민주당 공천은 큰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새피 수혈’을 기치로 내걸고 친명계 핵심을 대거 기용하는 반면, 비명계 인사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는 정치적 소용돌이가 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제1원칙= 총선 인재 발굴 최고 책임자는 이재명 인재위원장

이 대표가 내년 총선에 출마할 인재 영입을 목표로 한 인재위원회 위원장에 자신을 임명한 것은 지난 8일이다. 이날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이 기자들과 만나 밝힌 ‘이재명식 인재’의 핵심 내용은 두 가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첫째, 총선 투입을 위한 인재 발굴의 최고 책임자는 이재명 인재위원장이라는 점이다. 박성준 대변인은 인재위원회 구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과거처럼 몇 명으로 구성되는 게 아니다. 사무총장, 민주연구원장, 정책위의장 등의 당 시스템 하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답했다. 현재의 지도부 체제가 인재를 발굴한다는 의미라는 설명이다. “지난 2020년 이해찬 대표도 그런 시스템 하에서 인재를 영입했다”는 것이다.

지난 2020년 21대 총선에서도 민주당은 별도의 인재영입위원회 구성 없이 이해찬 대표 시스템에서 인재 영입을 했고, 180석을 얻는 대승을 거뒀다. 또 이해찬 체제가 정립한 권리당원 여론조사 50%· 일반국민 여론조사 50%에 의해 경선을 실시하기 때문에 공정성을 담보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50%를 차지하는 권리당원이 친명계 혹은 개딸 그룹의 영향력 하에 놓여질 가능성이 높아, 사실상 이 대표에 의한 ‘사(私)공천’이 될 것이라는 게 비명계의 반박이다.

제2원칙= 외부 인재 영입보다 내부 인재 발탁에 역점 둬

둘째, 외부 인재 영입보다는 내부 인재 재활용에 역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박 대변인은 “이 대표가 인재위원장을 맡아 당의 인재 발굴과 영입, 양성과 육성 등 인적 자원의 정책 수립과 집행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면서 “과거 인재위원회는 주로 외부의 신진 인사 영입에 주력했지만 이번에는 당 내부 인재 및 당무에 참여한 정무 경력이 있는 외부인사들을 포함해 발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명칭이 인재영입위원회가 아닌 인재위원회가 되는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해찬 전 대표, “전문성보다 개혁적 투지가 중요”

외부의 신진 인사보다 당 내부 인사 발탁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이다. 과거 당무에 참여했던 ‘중고 신인’도 충원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이해찬 전 대표의 영향력이 발휘될 것이라는 분석도 흘러나온다.

이 전 대표는 지난 6일 조승현 정치의미래연구소 소장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반을 훨씬 넘게 얻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21대 총선에서) 180석 갖고도 제대로 못했지만, 그 때는 여당일 때라 전문성이 중요했던 시절이고 지금은 야당이 됐기 때문에 개혁적 투지를 갖고 일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생활을 향상시킬 정책 역량보다 소위 정부 여당에 대한 투쟁력이 내년 총선 공천의 기준이 돼야 한다는 점을 노골적으로 강조한 발언이다.

이해찬 가이드라인= 정부 여당에 맞서 싸울 ‘투사형 인재’ 선호

이러한 ‘이해찬 가이드라인’은 이재명 대표의 이해관계와도 일치하는 대목이다. ‘대장동· 위례 신도시 특혜 개발 비리’ ‘성남FC 불법 후원금’ ‘백현동 특혜 개발 의혹’ ‘위증 교사’ 사건에 대한 재판으로 인해 매주 서너 차례씩 재판정에 출두해야 하는 이 대표로서는 대여 투쟁력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즉 민생과 외교안보를 챙길 ‘정책 전문가’보다 자신의 ‘사법리스크’에 앞장 서서 싸워줄 ‘투사형 인재’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로서는 이해찬 전 대표가 투사형 인재를 공천 기준으로 제시한 게 가려운 곳을 긁어준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4일 오후 국회 앞 단식투쟁 천막을 찾은 이해찬 상임고문과 대화하고 있다. 2023.9.4.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4일 오후 국회 앞 단식투쟁 천막을 찾은 이해찬 상임고문과 대화하고 있다. 2023.9.4. [사진=연합뉴스]

서울에서 내려간 개딸 당원들, 비명계 김종민 의원에 대해 정치적 테러 가해

일부 개딸 그룹이 비명계에 대한 정치적 테러를 시작한 것도 ‘친명 중심 공천’의 신호탄으로 분석된다. 이 대표는 지난 9일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개딸로 불리는 강성 당원들이 비명계인 김종민 의원의 지역구(충남 논산) 사무실에 찾아가 '비난 시위'를 하는 사진을 첨부하고 “이런 과한 행동이 민주당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라고 자제를 주문했다.

첨부된 사진은 지난 7일 개딸 당원들이 김 의원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수박 모형의 탈을 쓴채 ‘김종민 수박깨기’ 집회를 벌였다. 이들은 서울에서 차량으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 지역구에는 친명계인 황명선 전 논산시장이 도전장을 던진 상태이다. 황 전 시장은 지난 해 민주당 대변인을 지내기도 했다. 민주당 박 대변인이 밝힌 정무 경력을 가진 당내 인사에 황 전 시장이 해당되는 셈이다. 이처럼 민감한 상황에서 서울에서 내려간 개딸 당원들이 '김종민, 넌 역적이다', '김종민은 민주당에서 탈당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 대표가 자제할 것을 요구했으나 비명계 입장에서는 진정성이 실린 것으로 보기 어렵다. 김종민에게 정치 테러를 가한 개딸이 논산지역이 아니라 서울에서 내려간 것이 사실이라면 지도부 책임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종민, 이재명의 민주당을 조선노동당에 비유하며 비판...비명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너?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이상민·이원욱·김종민·조응천 등 4명의 비명계 의원들은 공개적으로 민주당 탈당을 언급하고 있다.

조응천 의원은 지난 9일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당내 민주주의가 완전히 와해됐다"면서 "끝까지 민주당을 정상적인 정당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겠지만, 접어야 되나하는 생각을 한다. 12월까지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자인 김 의원은 지난 8일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자기가 원하는 사무총장을 뽑아 공천해서 원하는 색깔로 선거를 치르려고 당대표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 "전 세계 민주 정당 중에 그렇게 하는 정당은 조선노동당하고 공산당밖에 없다. 이런 식의 독임적 권한을 갖는 당대표는 없다"고 이재명 대표를 맹비난했다. 이재명의 민주당을 북한 조선노동당과 같은 독재정당으로 비유한 것이다.

이 대표가 9일 개딸 그룹의 자제를 요구한 것은 이 같은 김 의원의 분노를 달래기 위한 제스처로 해석된다. 그러나 김 의원은 "혐오 정치를 양산하는 강성 유튜버 방송에 출연해 동조하고 거드는 당직자와 의원들을 징계하고 공천 안 해주겠다는 선언을 해야 한다"고 강성 친명계 공천 배제를 요구했다. 이재명의 공천 구상과 이해찬 전 대표의 가이드라인은 궤를 함께 하고 있지만, 비명계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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