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통과된 일명 오세훈법은 한국 정치의 투명성을 크게 높인 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세훈법은 2002년 이른바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을 계기로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의 주도로 개정된 정치자금법·정당법·공직선거법 등 3법을 묶어 일컫는 말이다.

불법정치자금 모금의 통로로 지목된 지구당을 폐지하고, 법인·단체의 정치자금 기부 행위를 금지하며, 개인 후원을 통해서만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도록 했다.

국회의원 선거구마다 있었던 지구당이 없어지면서 현재 국민의힘은 당원협의회, 민주당은 지역협의회로 이름을 바꿔 유사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법적 지위나 할 수 있는 일의 내용에서 지구당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오세훈법은 아울러 돈을 들여서 할 수 있는 선거운동과 사전선거운동을 획기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정치권에 만연한 금권선거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성과를 냈다.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가 지역구 유권자를 상대로는 결혼식 주례도 안서고, 경조사 부조금, 밥값, 술갑까지 선거법을 핑계로 안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후 선거법 등 정치관련법은 여러차례 개정됐지만, 유독 사전선거운동과 돈이 들어가는 선거운동을 철저하게 제한하는 내용은 단 한차례도 바뀐 적이 없다.

이 두가지 내용이 기존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정치신인의 활동을 철저히 제한하는 진입장벽의 역할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22대 총선이 5개월여 앞둔 가운데 여야, 수도권과 지방을 막론하고 이번 선거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그 어느때 보다 많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선 국민의힘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현역 국회의원이 없는 선거구가 많은데다, 정권교체를 계기로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휩쓸었던 수도권 의석이 대거 (국민의힘으로) 넘어오지 않겠느냐는 기대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비수도권에서도 윤석열 대통령 및 권력 핵심부와의 각종 인연을 바탕으로 공천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은데다, 다선(多選중진 의원들에 대한 물갈이여론이 높은 것이 원인이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 때 찬성표를 던진 비명계 국회의원 지역구를 중심으로 도전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른바 개딸로 불리는 이재명 대표 극렬 지지자들의 수박축출론과 궤를 같이하는 흐름이다.

그런데 내년 총선에서 정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하려는 신인들은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아직 예비후보 등록기간이 안됐기 때문에 받는 사람이 ! 이 사람이 내년 총선에 출마하려고 하는구나라고 알아 볼 만한 명함도 만들 수 없다.

신인들은 사무실을 얻어 주로 ‘00지역 발전소같은 간판을 내걸지만 자신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현수막 하나 내걸 수 없다.

경조사 부조금이나 식사제공을 금품살포로 규정해서 막은 취지는 좋다고 하더라도 상가나 결혼식장을 맨손으로 가다가는 욕먹기 십상이다. 게다가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출마예정자를 만나서 더치페이, 자기 돈으로 밥 먹고 차 마실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반면, 현역 국회의원에게는 사전선거운동이라는 개념이 없다. 지역구 활동, 의정보고회라는 명목으로 4년임기 내내 지속적인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의정활동 보고서라는 유인물은 언제든지 만들어 배포할 수 있고, 수시로 현수막을 내건다.

뿐만 아니다. 현역 의원들은 후원금 제도를 통해 자신의 지역구 경쟁 상대의 자금줄을 차단하고 있다.

현행법상 국회의원이 아닌 원외 당협위원장, 신인들은 선거 120일 전, 예비후보로 등록한 뒤에만 후원금을 받을 수 있다. 후원금 상한액도 현역 국회의원(연간 3억 원)의 절반 밖에 안 된다.

애당초 돈으로 하는 선거, ’돈정치'를 없애기 위해 만든 제도지만, 현실에서는 신인들의 발이 묶이고 돈이 없는 사람은 아예 정치를 못하게 된 것이다.

과거 노회찬법으로 불리는 정치자금법·정당법 개정안이 있었다. () 노회찬 의원이 발의한 이 법의 골자는 지구당 제도를 부활시키고, 원외 정치인도 연간 5000만 원까지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대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정치자금 사용 내역은 7일 이내에 공개하도록 했다.

이 무렵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국회 정치개혁특위 회의에 지구당 부활과 후원회 설치를 허용하자는 내용의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을 보고하는 등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노회찬법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노 전 의원이 법안을 발의한 뒤 했던 현역들 입장에서는 경쟁자를 키워주는 법안인데 통과시켜 주려고 하겠나”“라는 예상대로 였다.

전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낡은 정치를 하고 있는 한국정치의 쇄신을 위해서는  새 인물 수혈이 필수적인데, 여야 불문,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봉쇄당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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