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다음주부터 한 달 동안 ‘빈대와의 전쟁’을 벌인다. 지하철 좌석에 앉거나 여행을 가기도 꺼림직할 정도로 도처에 확산되고 있는 ‘빈대 포비아’를 근절시킬 수 있을지 국민적 관심과 기대가 쏠리고 있다.

8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교통공사 용산차량기지에서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 중인 빈대를 사전 예방하기 위해 특별 살충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8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교통공사 용산차량기지에서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 중인 빈대를 사전 예방하기 위해 특별 살충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빈대 집중 점검 및 방제 기간(11월 13일~12월 8일)'을 운영해 범정부 차원의 총력전을 펼치겠다고 지난 7일 밝혔다. 중앙부처 및 지자체별 소관시설에 대한 관리·방제작업과 취약계층 방제 지원 등이 양대 방역 대책이다.

13일부터 4주간 행안부 총괄로 재난 수준 대처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가 빈대 확산을 막겠다며 지난 3일 출범한 ‘빈대 정부합동대책본부’의 총괄을 맡았다. 당초 질병청이 총괄을 맡을 것이라고 관측됐으나, 재난안전 기능을 가진 행안부가 대책본부를 총괄하게 된 것이다. 빈대 발생을 정부가 재난 수준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8일 오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주거 취약 지역을 최우선으로 방역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빈대 방역과 관련해 "질병청이나 보건소 단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행안부가 직접 대책본부를 만든 것은 빈대 출몰 문제를 재난 수준으로 다루겠다는 의지 표현이냐"고 물었고, 이 장관은 "그렇다. 상황이 심각해지는 것 같아 정부차원에서 대응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해 대책본부를 만들었다"고 답했다. 또 "국민들이 너무 불안해 하는 것 같아서 정부가 일단 개입해서 해결할 것임을 천명한 것"이라고도 했다.

긴급 승인 앞둔 ‘네오니코티노이드 계’는 기존 모기 및 바퀴벌레 퇴치용이라 ‘빈대 내성’ 없어

특히 ‘신형 살충제’를 사용하기로 해 빠른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 기대 섞인 분석도 제기된다. 정부는 해외에서 효과와 안전성이 보장된 ‘네오니코티노이드 계’ 살충제를 조속히 국내에 도입할 수 있도록 다음 주에 긴급사용승인 및 변경 승인을 동시에 추진하기로 했다.

국내에서 출몰하는 빈대가 기존 살충제에 내성을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는 이르면 10일, 기존보다 효과적인 대체 살충제를 긴급 승인할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피레스로이드 계’ 살충제를 사용했지만, 국내에 서식하고 있는 빈대가 이 살충제에 내성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새롭게 보완해 사용하려는 살충제인 ‘네오니코티노이드 계’는 모기나 바퀴벌레 퇴치용으로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으로 빈대가 내성을 갖지 못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미 가정용으로 허가돼 있어서 사용 신청을 하면 곧바로 적용할 수 있다. 다만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제제는 사람의 태반을 통과해 탯줄 혈액에서도 검출된다는 보고가 있어 남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KTX, 지하철까지 ‘빈대 발견’ 공포 확산

이처럼 정부가 신형 살충제를 긴급 승인하고, 재난 수준 대응에 나설 정도로 ‘빈대 공포증’은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대중교통과 같은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하기 꺼려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빈대가 발견되지 않은 지역에서도 불안하다는 반응이 관측된다. 출퇴근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공공장소 이용을 꺼리는 사람도 늘었다. 빈대 출몰 업소로 낙인찍힐까봐 자영업자들이 빈대 발견 신고를 주저하는 분위기도 감지되면서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

5일 서울 한 쪽방촌 골목에 '빈대' 등 감염병 예방 수칙을 담은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5일 서울 한 쪽방촌 골목에 '빈대' 등 감염병 예방 수칙을 담은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KTX나 SRT, 지하철에서 빈대가 발견됐다는 글이 올라와 ‘빈대 포비아(공포증)’를 부추기고 있다. “그동안 지하철에서 자리가 나기만을 기다렸는데, 이제는 빈대에 옮을 바에야 잠깐 몸이 힘든 게 나은 것 같아 서 있는다”는 글이 다수 눈에 띈다.

여행 취소하는 직장인 늘고, 특정 업체 겨냥한 ‘가짜뉴스’ 퍼져

직장인들 중에는 계획했던 여행 취소 여부를 두고 고심한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아무래도 숙박시설 침대가 걱정스럽다는 내용이다. 아직 빈대가 출몰하지 않은 지역을 골랐지만 확산세를 보면 어디든 안전하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이다.

빈대 포비아는 가짜뉴스로도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한 유통업체 물류센터에서 빈대가 발견됐다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은 빠르게 퍼지면서 ‘당분간 업체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댓글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업체 관계자는 “일부 SNS를 통해 유언비어가 확산하고 있다. 현재까지 빈대가 발견된 사례는 없다”며 “허위사실 최초 유포자와 유언비어를 확산한 사람에 대해서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빈대 퇴치제 판매량, 일주일 간 813% 뛰어...빈대, 감염병 없지만 가려움증 등 유발

이처럼 빈대 걱정이 갈수록 커지면서 빈대 퇴치 용품 판매량도 크게 늘었다. 한 온라인 마켓에서는 최근 일주일간 빈대 퇴치제 판매량이 813% 뛰었다. 침대 청소기 매출은 610% 늘었고, 고열 스팀기와 자동분무기 판매도 증가했다. 살충제와 방충망 매출도 각각 2배 넘게 증가했다.

정부도 방역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빈대 정부합동대책본부에 따르면 전날까지 전국 17개 시·도 등에 접수된 빈대 의심 신고는 30여건으로, 지난 2014년부터 10년간 질병관리청에 접수된 빈대 신고(9건)를 압도했다. 대책본부는 이날 정부합동대응회의를 열고 13일부터 4주간 ‘빈대 집중 점검 및 방제 기간’을 운영키로 했다.

빈대는 감염병을 옮기진 않지만, 물리면 피부에 붉은 반점이 나타나면서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하지만 흡혈에 따른 불편과 알레르기, 심리적 피로감을 준다. 주로 낮에는 가구, 침대, 벽 틈에 숨어 있다가 잠자는 동안 노출된 피부를 물어 붉은 반점과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일반적으로는 별도의 치료를 받지 않아도 1~2주 안에 증상이 완화되지만 드물게 빈대가 분비하는 액체가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심각한 알레르기 반응)를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지하철 방역 횟수 3배 이상 늘려, 전국 공항에선 빈대 출현 긴급 측정

지자체들도 앞다퉈 관련 대책을 쏟아냈다. 서울시는 버스·지하철 등 대중교통시설에 대한 방역을 강화키로 했다. 서울교통공사의 경우 열차 방역 횟수를 연 9회에서 30회로 3배 이상 늘리고, 직물 의자는 고온 스팀 청소기로 살균·살충 작업을 하고 있다. 또 직물 의자는 단계적으로 빈대가 서식할 수 없는 플라스틱 재질 등으로 교체할 예정이다.

호텔업계는 빈대 발생이 매출에 직접 타격을 줄 수 있는 만큼 일제히 방제에 뛰어들었다. 롯데호텔앤드리조트는 침대 매트리스 고온 소독을 실시하고 카펫과 쇼파도 세척할 방침이다. 호텔신라는 빈대에 특화한 방역제를 추가 도입했고, 조선호텔앤리조트는 빈대 발생 시 매뉴얼을 세우는 한편, 기피제 분사 횟수를 늘렸다.

최근 ‘빈대’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김포와 제주 등 14개 국내공항도 ‘빈대 박멸’에 팔을 걷었다. 한국공항공사는 공사가 운영하는 전국 14개 공항에서 민간 방역업체 세스코와 함께 빈대 발생 즉시 방제할 수 있는 사전 차단 및 대응 체계를 가동 중이라고 8일 밝혔다.

지난 7일 한국공항공사 직원들이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터미널 내 여객 쉼터에 빈대 전용 모니터링 키트(트랩)를 설치하고 있다. 2023.11.8 [한국공항공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7일 한국공항공사 직원들이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터미널 내 여객 쉼터에 빈대 전용 모니터링 키트(트랩)를 설치하고 있다. 2023.11.8 [한국공항공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공사는 전국 공항을 대상으로 빈대 출현 여부를 긴급 측정했다. 현재까지 큰 이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향후 발생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 특별 방역 활동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공사는 공항 수하물 검색장과 터미널 내 휴게시설, 어린이 놀이터, 교통약자 전용쉼터 등 취약지역 방역 횟수(공항별 주 1회에서 2회)를 늘리고 빈대 출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인 트랩을 대거 설치할 계획이다. 승객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1차 차단하는 것이다.

아울러 현장 직원이 상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고객 접점 지역에 부착된 빈대 발견 신고 전화로 신속한 방제 조치 체계도 가동한다. 만약 빈대가 발견되면 해당 구역을 바로 격리해 성충·유충을 제거하고 신규 부화가 불가능하도록 물리적·화학적 방제를 실시하는 3단계 방역체계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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