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영입은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이 벌이는 대표적인 경쟁 중 하나다. 백화점들이 연말 시즌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신상품을 홍보해서 고객들 불러 들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1996년 4월11일 치러진 제15대 총선에서는 역대 어느 선거때 보다 인재영입 경쟁이 치열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집권 여당, 신한국당은 손학규 이재오 김문수 홍준표 등 새 얼굴을 영입했다. 이에맞서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국민의힘은 김근태 등 민주화운동 출신 재야세력과 정세균 김한길 정동영 추미애 등을 끌어 들였다.

앞서 4년전 1992년 14대 총선을 앞두고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정치에 뛰어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최불암 이주일 강부자 같은 톱스타 연예인들을 영입해 비례대표 및 지역구 후보로 내세워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22대 총선을 5개월여 앞둔 현시점에서 인재영입 문제에 대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의원 수가 111명에 불과한 국민의힘은 가급적 우수한 인재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서 내년 총선에 투입해야만 하는 처지다. 특히 수도권에 출마할 참신하고 경쟁력있는 인재의 발굴, 영입이 시급하다.

반면, 의원수 168명의 거대 정당인 민주당으로서는 인재영입이라는 용어의 사용자체가 당내에 파장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미묘한 문제다. 국민의힘이 이철규 전 사무총장을 인재영입위원장으로 임명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반면,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직접 인재위원장직을 수행하기로 한 것에서 드러난다.

국민의힘 이철규 인재영입위원장은 대표적인 친윤계 인사로 꼽힌다. 김기현 대표 체제에서 당의 조직과 살림을 챙기는 사무총장을 맡게 된 배경이었고, 스스로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윤상현 의원에 대한 ‘승선불가론’ 등 비윤계 의원들과의 마찰도 잦았다.

때문에 그가 인재영입위원장에 임명돼자 당 안팎에서는 윤석열 대통령과 용산 대통령실 내지 친윤계가 공천을 주도하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재명 대표가 더불어민주당의 인재위원장을 직접 맡기로 한 것은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보인다. 친명계 인사를 내세워 인재를 발굴, 영입하는 것 자체로 비명계 축출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8일 “이 대표가 인재위원장을 맡아 당의 인재 발굴, 영입, 양성, 육성 등 인적 자원 정책 수립 및 집행을 담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당규에 따르면 인재위원장 및 위원은 최고위원회 심의를 거쳐 당대표가 임명하게 돼 있는데, 이번에는 이 대표가 직접 위원장을 맡기로 한 것이다.

별도의 위원회를 만들거나 위원도 임명하지 않고, 사무총장, 사무·조직부총장, 민주연구원, 정책위의장 등 기존 당직자와 시스템에 의해 인재 발탁업무를 수행하기로 했다. 비명계의 반발을 사지않고, 이 대표와 친명 위주의 당 시스템으로 새로운 인물을 수혈하겠다는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양김씨가 자존심 싸움을 벌였던 15대총선 때 절정에 달했던 인재영입 경쟁은 점차 시들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당장 지난 21대 총선에서도 여당인 민주당은 이해찬 대표가 인재영입 문제를 직접 챙겼고, 황교안 대표의 미래통합당 또한 별도의 위원회가 있기는 했지만 존재감이 없었다. 당시 미래통합당의 인재영입 케이스인 박찬주 예비역 대장을 둘러싸고는 큰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정치권에서 회자돼온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4대 요소를 중요성에 따라 나열할 때 1.바람 2.구도 3.조직(돈) 4.인물로 후보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맨 나중이다. 대통령선거가 아닌 국회의원 총선처럼 선거의 단위가 작아질수록 더욱 그렇다.

이와함께 과거 인재영입의 주 대상이 됐던 스타성이 강한 인물들, 유명교수나 연예인 스포츠 스타등이 정치적으로는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점도 외부 인재 영입이 시들해지는 이유가 됐다. 이들에 대한 정치권 안팎의 평가, “별 것 없더라”는 인식이 많이 확산된 것이다.

하지만 인재영입이 젊은층이나 여성 등 신진세력의 대거 수혈을 통한 정치권 세대교체,물갈이로 이어질 경우 적지않은 파괴력을 가질 수도 있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은 혁신위원 대부분을 이런 방향의 인물로 구성하고,“비례대표 연령을 30~40대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정치평론가인 홍경의 단국대 객원교수는 이와관련, “과거 총선 때 이루어진 인재영입이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개혁에 부응할 수 있는 인물을 발굴하는 측면 보다는 기성 정당과 정파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인재로 포장해서 내놓은 측면이 강했기 때문에 인재영입이라는 단어 자체가 별 의미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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