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촌야도(與村野都), 시골은 여당을 지지하고 도시는 야당을 지지하는 경향. 과거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여당은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때의 여당, 즉 공화당과 민정당을 의미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여촌야도 현상은 완전히 무너졌다.

특히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3김씨의 지역할거(地域割據) 정치가 오랫동안 펼쳐지면서, 이들의 정치행보에 따라 영남은 국민의힘에 이르기까지 보수정당, 호남은 민주당의 텃밭이 됐다.

여촌야도 현상이 끝난 것은 1988년 치러진 13대 총선때다.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민주당은 그때부터 광주와 전남, 전북 호남을 싹쓸이 했다. 이후 지금까지, 보수정당 후보로 광주와 전남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은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가 유일하다.

민주당 또한 경북에서는 단 한명의 당선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양쪽 지역에서는 “후보가 누구인지 아무 상관이 없다. 공천만 받으면 빗자루를 세워둬도 당선된다”는 말 까지 생겨났다.

급격한 도시화 이전, 농촌에 여전히 인구가 많았던 시절, 박정희 전두환 정부의 농업 및 농촌정책은 농촌이 대한민국 사람 모두의 고향이라는 점과 더불어 여촌야도에 대한 보답의 측면도 강했다.

도시 근로자의 임금이 높지않아 저곡가(低穀價) 정책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농민이 생산한 쌀을 시중보다 비싸게 양에 상관없이 수매해주는 이중곡가제(二重穀價制)가 대표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면서 제출한 내년도 정부예산 규모는 657조원 올해보다 2.8% 중가한 ’슈퍼예산‘이다. 이중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출하는 농업예산은 총 18조3,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국가 예산 증가율 2.8%의 두 배인 5.6%가 늘었다.

특히 쌀값이 목표가격 이하로 떨어질 경우 그 차액을 지급하는 직불금 규모는 올해 2조8,400억원에서 내년 3조1,042억원으로 10%가량 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직불금 규모를 5조원까지 늘릴 것을 지시한 바 있다.

농민단체는 아우성이지만, 전 세계 어디에서도 대한민국처럼 농업분야에 대해 파격적으로 많은 지원을 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청년농업인을 지원하기 위해 1조2,000억원 이상을 들여 농지를 사주고 각종 시설 건축비용을 무이자에 20년 상환 조건으로 대출해주고, 수십가지 명목으로 보조금을 지원해준다.

태풍이나 병충해로 농산물이 피해를 입을 경우 보상해주는 농산물보험도 있다. 논 10마지기로 벼를 재배하는 농민이 부담하는 벼보험 보험료는 1만5천원 정도. 정부가 10만원, 지자체가 7만원 가량을 대준다.

농작물 보험은 그 어떤 보험회사도 이런 상품을 팔려고 하지않자, 정부가 농협 산하기업인 농협보험의 팔목을 비틀다 시피해서 만든 것이다.

도시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사람한테 매출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질 경우 보상을 해주는 보험은 없다. 누군가 식당을 만든다고 정부나 지자체가 가게를 임대해 주거나 인테리어 같은 시설비를 보조해주는 일도 없다.

자영업에 종사하는 도시 서민, 특히 빈민층은 요즘처럼 경기가 둔화돼 시중에 돈이 돌지 않으면 직격탄을 맞고 벼랑으로 내몰린다. 잊을만 하면 들려오는 '일가족의 비극'은 빙산의 일각이다.

요즘 시골의 독거노인들은 한여름 혹서기, 한겨울 혹한기 몇달에는 마을회관에서 생활한다. 에어컨과 난방은 물론 식사까지 지자체에서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농촌에 대한 정책적 배려는 전남·북 농촌출신 의원들이 많은 민주당도 마찬가지이지만 국민의힘에는 유독 과거 여촌야도의 유전자가 더 강하게 남아있다.

여기에 수도권 같은 도시 출신 의원들은 정책이나 공약 보다는 선거 때 부는 바람, 정당 지지도에 따라 당선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도시 서민과 영세민들의 삶에 대한 고민과 정책마련이 뒷전일 수 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 달성하기 위해 수도권 공략에 사활을 걸고 있다. 김포시민들과 서울 인접 경기도 베드타운 주민들이 원하는 서울 편입을 적극 추진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작 수도권 주민, 특히 도시 영세민들의 삶에 다가가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가장 많은 표를 가진 유권자들임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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