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 간의 전쟁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팔레스타인의 ‘자기모순적 태도’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하마스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과 아랍국가들은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배후국가로 판단해 반미(反美)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열린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병원 폭격 규탄 긴급 기자회견에서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인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열린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병원 폭격 규탄 긴급 기자회견에서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인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역설적 현상=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국민에게 진짜 구세주는 김정은이 아니라 일론 머스크

특히 팔레스타인 내 반미집회에서는 미국 자본주의를 맹비난하며 북한 김정은 초상화까지 내걸면서 칭송하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상당수 팔레스타인인들은 김정은 정권이 미국 정부에 대항하는 주체라는 점에 깊은 공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서는 북한 정권이 하마스 등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공습이 격화되면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통신망 등이 마비되자 미국 자본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김정은이 아니라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이다. 네티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다양한 국제기구들이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를 운용 중인 일론 머스크가 스타링크 서비스를 팔레스타인에게 제공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적극적 지원 의사를 표명했다.

결국 전쟁의 수렁에 빠진 팔레스타인 국민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구세주’는 그들이 칭송하던 김정은이 아니라 원수나 다름없는 미국의 자본가라는 역설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자유와 독립 쟁취 운운하며 김정은 정권 칭송해

지난 20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헤르본에서 열린 집회에선 러시아 푸틴 대통령 사진과 함께 김정은 초상화가 내걸렸다. 시위대는 ‘미국 자본주의는 전쟁에 중독됐다’ 등의 구호가 적힌 팻말과 함께 김정은 사진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김정은은 고모부 장성택을 총살시키면서 권력기반을 굳히고 북한 주민들을 억압하는 ‘잔혹한 독재자’이다. 그가 ‘반미의 선봉장’이라는 이유만으로 환호성을 보내는 하미스 지지세력의 비이성적 태도는 국제사회의 동정심을 약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이같은 친 김정은 정서는 일부 과격파 군중이나 하마스만의 성향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하마스에 비하면 온건파로 평가받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도 이번 전쟁을 계기로 노골적인 친북행보를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의 지난 24일 보도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마흐무드 압바스 수반이 북한 노동당 창건 78주년(10일)을 맞아 김정은에게 축전을 보냈다. 압바스 수반은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합법적인 투쟁을 지지해주고 있는 귀국의 입장을 평가한다. 숭고한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세계 최악의 독재국가인 북한의 권력자 김정은에게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을 지지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충격적 사태’가 벌어진 셈이다.

압바스 수반의 황당한 찬사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북한은 이미 지난 7일 외무성 조철수 국제기구국장 명의의 담화문에서 “미국은 수천 명의 사상자와 인도주의 위기를 발생시킨 이스라엘의 행위를 ‘자위권’으로 합리화했다”면서 “대량 살육의 공범자, 인권 유린의 주모자”라고 미국을 맹비난했다. 북한 독재정권이 미국을 인권 유린의 주모자로 몰아세우는 적반하장식 행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압바스 수반의 축전은 이 같은 북한 담화문에 대한 화답인 셈이다.

이스라엘 공습으로 유무선 통신 마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스타링크 측에 연락해 지원 요청

그러나 비상사태가 터지자 김정은 정권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았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통신이 이스라엘 군의 공격으로 완전히 파괴되면서 의료·구호 시스템이 거의 마비되자, 민간인 사상자가 급증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포격과 공습으로 위급한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구급차 출동 방향 자체를 결정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28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인터넷과 유·무선 전화 서비스가 완전히 중단됐다. 이는 지난 3주간 이어진 이스라엘의 봉쇄로 이미 붕괴 직전에 있던 의료·구호 시스템에 더 큰 타격을 입혔다”면서 “전기·연료 고갈로 어둠에 갇혀 있던 가자지구 주민들의 고립이 심화했다”고 보도했다.

가자지구의 한 구급차 운전기사는 통신 두절로 인해 목적지를 특정하지 못한 채 폭발 장소로 차를 몰았다고 영국BBC 방송은 전하기도 했다. 가디언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인한 사상자 수와 지상 작전의 자세한 내용을 즉시 파악할 수 없다”면서 “이러한 통신 두절로 민간인 사상자 수를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게 된 게 큰 문제점”이라고 강조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국경없는의사회, 국제앰네스티 등 구호·인권 단체들도 가자지구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연락이 두절됐다고 호소하고 있다. 에리카 게바라 로사스 국제앰네스티 국장은 “통신 차단으로 가자지구 민간인에게 벌어지는 인권 침해와 전쟁 범죄의 정보와 증거를 수집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면서 “통신·인터넷 복구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결국 네티즌들은 일론 머스크에게 위성 인터넷 서비스인 ‘스타링크’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등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SOS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머스크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는 “당신은 항상 스타링크가 선과 인류를 위해 쓰인다고 말해왔다. 이제 그것을 증명할 때” 등의 글이 남겨졌다.

일론 머스크.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일론 머스크.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스타링크’는 머스크가 보유한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보유하고 있다. 머스크는 지난해 2월 통신망이 파괴된 우크라이나에 스타링크 단말기를 지원, 위성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었다. 팔레스타인에도 유사한 조치를 취해달라는 게 네티즌들의 요청사항이다.

아랍지역 매체 ‘알아라비야’에 따르면, 28일(현지시간) 오전 기준으로 ‘가자를 위한 스타링크’ 해시태그(#starlinkforgaza)가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374만건 이상 사용됐다.

북한 김정은 정권과 서로 소중한 관계임을 역설해온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도 일론 머스크에게 손짓을 보내고 있다. 스푸트니크 통신에 따르면, 이샤크 사드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통신부 장관은 ‘알하다스’ 방송 인터뷰에서 “통신을 복구하는 방법의 하나는 인공위성에 접속하는 것이다. 이미 스타링크 측과 연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 파격적 지원 의사 밝혀...팔레스타인에 스타링크 서비스 임시 개통?

하지만 알아라비야는 현재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에서는 스타링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스타링크 홈페이지에는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내 서비스가 2024년부터 시작한다고 돼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일론 머스크는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넘어 가자지구에서 ‘스타링크’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조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머스크는 28일(현지시간) 엑스(X·옛 트위터)에 “스타링크는 가자지구에 있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구호단체들의 연결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자지구 주민들의 통신을 차단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한 미국 진보 정치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민주·뉴욕) 연방 하원의원 게시물에 이같이 답변했다.

머스크의 이같은 답변은 스타링크 서비스가 팔레스타인에 즉각 제공될 수 있도록 ‘임시 개통’ 등의 파격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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