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국가(nation state)들은 국민통합에 실패하고 있다
국민국가의 붕괴 현상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
동일한 헌정질서라는 강제가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워
진행 중인 경제와 사회 분야의 변화, 탈근대의 맥락에서 음미할 시점
특히 한국은 미완의 근대에서 탈근대 패러다임 모색해야
경제와 사회를 관통하는 합리성 얼마나 온존,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인터넷에 ‘중국 분열 지도’라는 것이 가끔 올라온다. 티베트, 위구르, 내몽골, 만주, 홍콩, 마카오 등이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떨어져 나가고 대만은 완전한 독립을 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대만 혹은 홍콩인들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 분열 예상 지도인데, 구체적인 내용은 버전마다 차이가 있다.

중국의 동북3성 지역(만주)은 간도 지역을 포함해 통일한국에 합병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이 지도에 첨부되어 거론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공 정권에 대해 갖고 있는 거부감이 이런 지도에 투영되어 가시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 지도에 반영된 세계관은 복고적이다. 티베트나 위구르 등 민족적 또는 종족적 정체성이 미래의 통치 체제(governance system)도 좌우할 것으로 전망하기 때문이다. 물론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가진 집단 정체성이 앞으로도 상당한 정치 사회적 영향력을 가질 것은 분명하다. 대한민국만 해도 ‘조선 사람’이라는 복고적 감성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보다 앞서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정체성은 미래의 정체성에 부분적인 영향을 끼칠 뿐 주도적인 요소가 되기는 어렵다. 중국만 해도 근대 이전 왕조체제의 역사가 오래됐지만 지금 중국 인민들의 정체성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지금 중국 인민들을 단일한 정체성으로 통합해내는 힘은 근대 국민국가의 헌정질서와 건국 과정의 내러티브 등이다.

현재 중국의 헌정질서가 근대 국민국가의 기준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객관적으로 법치 등 근대 국민국가의 구성 요소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중국은 또 건국 과정에서 장정 등 처절한 투쟁과 유혈을 거쳐야 했고 그러한 내러티브는 중국 인민의 동질감을 형성하고 중공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강고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렇게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근대적 정체성의 세례를 받은 중국 인민들이 그보다 낡은 종족적 정체성으로 회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설혹 중국 공산당이 정치적 권위를 잃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대륙 전체에 대한 통제력과 구심력을 상실한다 해도 그렇다. 즉 중공 체제가 무너진다 해도 그 대안은 미래의 기술적 사회적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형태이지, 낡은 과거 시스템으로의 회귀일 가능성은 별로 없다. 즉, 지금 온라인 공간에 떠돌아다니는 중국 분열 지도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화인민공화국이 정치적 권위와 통제력을 잃을 경우 중국대륙에 등장할 미래의 통치 체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일까? 나는 그게 대도시들의 네트워크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샹하이-홍콩-선전 등 경제력이나 사회 발전 수준이 앞선 도시들끼리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중국 공산당의 지배를 벗어나 자신들만의 독립적인 헌정질서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그것이다.

이런 변화가 좀더 진전되면 샹하이-로스엔젤레스-뉴욕-서울-싱가폴-도쿄 연합이라는 국제적 네트워크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중국 공산당의 통제력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미래지만, 원래 거대한 변화일수록 코앞에 닥칠 때까지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법이다.

이렇게 거대 도시들의 연합이라는 네트워크형 통치 체제의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것은 현재의 국민국가(nation state)들이 사실상 국민 통합에 실패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민국가들이 정작 국민 통합에 실패하는 이유는 같은 국민들이라 해도 그 지향하는 바 이념과 이해관계의 괴리가 도저히 봉합 불가능한 수준으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국민국가는 전근대의 왕조국가와 달리 인민들에게 계급적 차이를 벗어나 최대한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계급적 이해관계가 상이한 인민들에게 최대한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공화주의적 헌정질서다. 결과적으로 중산층 또는 보통사람들이 헌정의 중심에 자리잡게 된다. 현실적인 조건이 각각 다른 인민들을 하나로 묶어세우려면 통합의 기준이 필요하고 그 기준은 결국 최대 다수를 통해 담보되는 헌정의 보편성일 수밖에 없다. 그 최대 다수를 대표하는 존재가 바로 중산층이다.

이런 통합과 보편성은 하나의 전제 조건을 충족시켜야 실현 가능해진다. 고정된 국경선과 영토 안에서 배타적으로 작동하는 단일 헌정질서이다. 이 헌정질서 안에서 보편적인 권리 보장과 자원의 배분이 이루어진다. 그 권리 보장과 자원 배분의 대상으로서 자격을 갖는 자들을 우리는 국민(nation)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현대 국가의 가장 보편적인 모델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국민국가 내부의 보편성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도저히 같은 나라 국민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가치관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런 분열 현상은 비교적 일찍 국민국가 형성에 성공하고 높은 생활 수준을 달성한 선진국일수록 심각하다. 국민국가의 붕괴 현상이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이유이다.

이렇게 같은 국민들 사이의 이해관계와 이념의 갈등이 심각해지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사람들끼리 헤쳐모여야 한다. 이건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끼리는 갈라서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물론 해답은 간단하지만 실현은 쉽지 않다. 고정된 국경선과 영토 안에서 배타적으로 작동하는 헌정질서가 울타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해관계가 같은 사람들끼리는 공간적으로도 가까운 곳에 모여 살기 쉽다. 한국의 강남이나 미국의 부유층이 모여 사는 비버리힐즈 등이 그런 경우이다. 하지만 사회가 좀더 발전하면서 지리적 근접성을 뛰어넘는 경제적 사회적 이해관계가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서울의 강남에 거주하는 1천억원대와 100억원대 자산가들보다 1천억원대의 비슷한 자산 규모를 가진 서울과 뉴욕 시민의 이해관계가 훨씬 비슷해질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동일한 헌정질서라는 울타리가 국민들의 이해관계를 억지로 동조화시키고 있지만 이런 강제가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

지금 많은 나라들 특히 선진국일수록 국민국가의 프레임을 유지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천문학적인 복지 비용이다. 사실 PC(political correctness)는 이 복지 비용을 합리화 정당화하기 위해 등장한 이념체계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이념체계도 경제적인 합리성을 지속적으로 배척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인류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인류는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 이들 숙제를 해결하려면 어마어마한 기술적 진보가 필요하다. 이런 기술적 진보는 거대한 자원의 동원을 요구한다. 즉 부의 집중이 필요한 것이다. 이게 실현되려면 지금처럼 사회적 약자에게 대가 없이 주어지는 혜택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복지국가가 궁극의 미래로 여겨지는 분위기지만 그런 사회적 합의는 바뀔 수 있다. 이런 변화를 선도적으로 달성하는 사회가 미래의 주역이 될 것이다.

근대 국민국가는 국경선과 영토 즉 면(面) 중심의 헌정질서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경제적 합리성이란 점에서 이런 질서는 점차 설득력이 떨어질 것이다. 고정된 영토 안에서 배타적으로 관철되는 단일한 헌정질서가 아니라, 영토와 국경선을 뛰어넘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이해 공동체들끼리 보다 유연한 헌정질서를 구성하는 미래가 점차 가시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즉, 점(點)과 점(點)끼리 선(線)으로 연결되는 도시 연합체가 새로운 통치 체제를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점(點)은 도시이고, 선(線)은 그들을 묶는 헌정질서의 내용 즉 계약서의 내용이다.

이 새로운 통치 체제는 취약점이 많다. 안전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가령 샹하이-로스엔젤레스-뉴욕-서울-싱가폴-도쿄 연합을 베이징 정권이 물리력을 동원해 위협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새로운 거버넌스 시스템의 성립 초기에 이런 위협은 특히 심각할 것이다.

이 문제는 결국 계약에 의거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생활 수준은 샹하이 연합에 비해 뒤떨어지지만 충분한 군사력을 갖춘 다른 도시 및 농촌 연합과 계약을 맺고 베이징 정권의 위협에 대처하게 될 것이다. 그 거래 조건은 공동체들의 요구와 상황에 의해 달라지게 된다.

국민국가의 힘은 그 구성원인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공화주의적 헌정질서 및 국민적 정체성에 동의하는 데서 나온다. 근대 이전 군주정과 달리 인민이 참정권 등 국가의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는 데 따른 자발적인 충성이며 이 충성을 우리는 보통 애국심이라고 부른다. 이 애국심은 일종의 소속감이며 자신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자부심이다. 이 소속감과 자부심이 국민국가 구성원들의 권리와 책임의 원천이다.

원래 이런 소속감과 자부심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에 그 원형이 있다. 이들 도시국가에서는 자기 재산으로 직접 무장을 갖출 수 있는 유산계급 즉 시민들만이 군인이 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주인의식이 나온다. 이 주인의식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원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진 자가 공짜로 베푸는 것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은 원천적으로 공짜와 대립되는 개념이다.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도 인민들 모두가 동일한 책임과 권리를 공유한다는 원리에서 출발했다. 왕과 귀족들의 특권을 거부한 것이다. 즉 공짜에 대한 거부이다. 하지만 점차 고정된 영토 안에서 배타적인 헌정질서를 관철시켜 국민 통합을 달성해야 한다는 요구에 밀려 일하지 않는 자들,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공짜로 자원을 퍼부어주는 모럴 해저드가 복지국가의 미명 아래 일반화됐다. 근대 국민국가의 위기는 여기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미국은 신대륙의 공간 위에서 공화주의적 헌정질서에 대한 동의를 기반으로 국민(nation)을 만들어냈다. 독립 초기에 국민의 범주에서 배제했던 흑인들을 결국 국민으로 통합해낸 것이 남북전쟁이었다. 이것이 미국 국민의 탄생이었다. 낡은 전통의 속박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대지에서 헌정질서에 대한 동의만을 전제로 건국된, 근대 국민국가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나라가 미국이었다.

대한민국은 낡은 땅에서 출발했지만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이념적 선택을 근거로 남북이 갈라졌다. 그렇게 대한민국 국민이 탄생했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가장 비슷한 건국 과정을 거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런 이념적 선택의 결과가 현재 남북한 체제의 현실이다. 그런 위대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현재 내전을 연상시킬 만큼 국민 통합에 실패하고 있다는 점도 대한민국이 미국과 비슷한 점이다.

근대 국민국가는 합리주의가 만들어낸 궁극의 통치체제이다. 하지만 이 통치체제는 점차 합리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이는 근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포스트모던에 대한 모색은 주로 예술 분야에서 선도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이는 본말이 뒤집힌 접근이었다. 예술 등 인간의 정신적 영역의 변화는 경제와 사회 등 하부구조의 변화를 반영한 결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제와 사회 분야의 변화를 탈근대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이런 요구는 특히 절실하다. 한국은 근대를 잘못 수용했기 때문이다. 헌정질서에 대한 동의를 전제로 성립하는 국민(nation)의 개념을 혈연과 전통의 동질성에 근거한 종족 개념으로 오해하고 이를 ‘반일 정신병’으로까지 발전시킨 행태가 대표적이다.

근대는 우리에게 축복이자 저주였다. 우리는 근대의 완성이라는 과제도 마무리하지 못했는데 다시 새로운 탈근대의 숙제를 받아들게 됐다. 근대와 탈근대는 상반된 현상이지만 그 저변에 흐르는 힘은 하나다. 바로 경제와 사회를 관통하는 합리주의적 노력이다.

이것이 인터넷에 떠도는 ‘중국 분열 지도’를 보면서 그려보는 미래의 가능성이다.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 (前 국민의힘 광주 서구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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