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전 KBS 사장.  2008년 8월 11일의 모습. 2008.8.11(사진=연합뉴스, 편집=펜앤드마이크)
정연주 전 KBS 사장. 2008년 8월 11일의 모습. 2008.8.11(사진=연합뉴스, 편집=펜앤드마이크)

아마도 역대 KBS 사장 중에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은 홍두표, 박권상 두 사장인 것 같다. 홍두표 사장은 KBS 수신료를 전기요금에 병과하면서 재정적 안정을 구축하였고, 사상 처음으로 MBC를 넘어 시청률 우위를 확보하는 기념비적 업적을 거두었다.

또한 박권상 사장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2000년대 초반 KBS를 명실상부한 공영방송으로 끌어올렸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두 사장 시절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 KBS 구성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이후 KBS 위상은 지속적으로 추락해왔고, 급기야 이제 존립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당연히 KBS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아주 차갑다. 정치적 독립이나 편파보도에 대한 비판은 일상처럼 되어 버렸다. 조직 이기주의와 방만 경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정권교체 때마다 반복되고 있는 KBS 구성원 간의 갈등은 이념과 집단 이익이 혼재되어 마치 고질병처럼 되어 버렸다. 이 같은 내부 갈등은 2003년 취임한 정연주 사장 체제에서 시작되었다. 정연주 사장은 방송과 무관한 신문사 출신으로 모름지기 생소한 거대 공영방송 KBS를 경영하는데 어려움이 컸을 것이다.

또한 KBS를 정권과 친화적인 방송으로 만들기 위해 기존 조직과 인력구조를 재편해야만 했다. 그 방법은 KBS 외부로부터 인력을 대폭 수혈받고, ‘팀제 조직개편’을 통해 기존의 위계 구조를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우선 한겨레신문, 말, 기자협회 같은 좌파 성향 언론매체 출신 경력직 직원을 대규모로 특채하였다. 정확한 숫자를 알 수는 없지만 대략 150여 명 내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충원된 인원들은 직급에 무관하게 팀장 직책을 맡을 수 있는 팀제를 통해 KBS 조직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런 방법으로 정치적 성향이 다른 기존의 간부 사원들을 이른바 ‘창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낸 것이다. 

이렇게 단기간에 KBS 조직을 장악하고 중심에 들어선 세력이 바로 정연주 사장 체제의 전위대 역할을 했던 ‘사원 행동’이다. 이들은 2008년 보수정권이 들어서자 KBS 노동조합에서 탈퇴하여 지금의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 KBS 본부가 되었다. 이후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들과 연대해 공영방송 독립을 표방하며 강하게 투쟁하였고, 급기야 문재인 정권 들어서 KBS를 장악하게 된다. 

얼핏 보면 이 조직은 이념을 축으로 하는 결사집단처럼 보일 수 있다. 물론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엄밀히 보면 이들 또한 KBS를 숙주로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카르텔 성격이 강하다. 공영방송 독립이나 공익성 같은 주장들은 사적 이익을 포장하기 위한 슬로건일 뿐이다. 지난 정권 시절 자행되었던 ‘진실과미래위원회’ 같은 인민재판식 만행들은 집단 이익을 위한 봉건적 반민주성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사장 선출과정에서 KBS 내부에 잠재하고 있던 인적 카르텔이 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 아마 10년 넘게 KBS 내부출신 사장이 이어지면서, 여러 형태의 인적 카르텔이나 네트워크들이 자의반 타의반 형성된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 카르텔의 원조는 어쩌면 ‘정연주 키즈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KBS 사장으로 15년 만에 외부 인사가 선출되었다. 이런저런 긍정·부정 평가에도 불구하고 외부 출신 사장을 뽑은 이유는 심각한 존립 위기에 몰려있는 KBS를 살릴 구원투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KBS 위기를 자초한 원인 중에 하나가 알게 모르게 형성되어 있는 내부의 인적 카르텔이라는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새롭게 출범하게 될 박민 KBS 사장 체제가 가장 먼저 부딪치게 될 장애이자 개혁해야 할 과제가 바로 이 점이라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내부 기반이 취약한 외부 인사로서 심각한 인적 한계를 체감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KBS 내부 카르텔의 원조 격인 정연주 키즈의 불행한 역사가 다시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는 것은 가장 중요한 개혁과제일 것이다.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선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반론보도] <황근 칼럼, KBS 인적 카르텔과 정연주 키즈> 관련

본지는 지난 10월 21일자 칼럼면에 <황근칼럼, KBS 인적카르텔과 정연주 키즈>라는 제목으로 KBS 정연주 사장 시절 KBS가 150명 특채를 통해 진보/좌파 성향 매체의 직원을 대규모로 채용하여 인적카르텔을 구성하였다고 주장, 보도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정연주 사장 시절 경력직으로 채용된 인원은 50여 명으로써 이들은 특채가 아닌 공개채용으로 지역신문 및 방송을 포함한 진보/보수 등 다양한 매체에서 채용되었다"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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