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정국구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1일 국민의힘이 서울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충격적인 참패를 겪은 뒤 3차례에 걸쳐 정국구상과 관련돼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유의동 정책위의장, 이만희 사무총장 등 당 지도부와 오찬 회동을 마친 뒤 용산어린이정원을 산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유의동 정책위의장, 이만희 사무총장 등 당 지도부와 오찬 회동을 마친 뒤 용산어린이정원을 산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 3차례의 발언을 분석해보면 향후 정국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윤 대통령의 구상을 해석해낼 수 있다.

보궐선거 참패 직후 정부 여당 기류는 모호...김기현 대표는 ‘회전문 인사’ 시도

우선 보궐선거 참패 직후 정부여당의 기류는 모호했다. 획기적인 ‘혁신의 길’로 전환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기존 노선’을 고수해야 하는 것인지 아리송하다는 관측이 많았다.

그 와중에 나온 김기현 대표 체제의 지속은 윤 대통령이 발신한 ‘현상 유지’ 시그널로 해석됐다, 내년 4월 총선을 수개월 앞둔 상황에서 예측을 뛰어넘는 참패라는 정치적 위기를 초래한 데 대한 근본적 책임을 묻기 위해서라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갈 것이라는 예상은 틀린 셈이다.

더욱이 김 대표가 지난 16일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신임 사무총장으로 TK(대구경북) 출신인 이만희 의원을 임명하면서 혁신의 길로부터 더욱 멀어졌다. 김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이만희 사무총장 등 당 3역이 모두 영남출신 인사라는 점은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과 중도층 표심을 공략해야 한다는 정치적 과제와 무관한 포석이었다. 조수진 최고위원과 김성호 여의도연구원 부원장 간의 카톡 문자에서 드러난 사실은 더 충격적이었다. 김 대표는 당초 박대출 전 정책위의장을 사무총장으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보궐선거 참패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던 정책위의장을 오히려 사무총장으로 승진시키려 했다는 발상 자체가 김기현 체제 2기가 태생적으로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판이 거세다. 혁신인사에 대한 요구가 당 안팎에서 거셌는데 ‘회전문 인사’를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김 대표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민심과 당심이 원하는 수준으로 혁신을 이뤄내지 못할 경우 김기현 2기는 곧바로 청산대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향후 국민의힘의 앞길은 요동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 발언 1=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 추진”...‘기존 노선 유지’에 무게 실려

무엇보다도 윤 대통령의 정국관련 발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3일 보궐선거 참패와 관련 “선거 결과에서 교훈을 찾아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전한 바 있다.

‘차분하고 지혜로운 변화’는 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고 ‘자기 부정’, ‘자기 비판’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주문으로 해석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공격하는 상황에서 보선패배 직후 ‘통렬한 반성’ 모드로 급변하는 것은 자해행위가 될 수 있다는 보수적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됐다.

이로 인해 국민여론은 물론이고 보수 언론매체들도 대통령실과 여당의 ‘공감 능력 상실’을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이대로 가면 보수세력의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위기의식이 깊어진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17일, 18일 잇따라 여권 지도부와 회동을 가지면서 내놓은 발언들은 ‘혁신의 길’ 쪽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하고 있다.

윤 대통령 발언 2= 김한길 위원장 역할 부각시켜...중도층 확장 전략에 무게 실려

윤 대통령은 17일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위원 및 국민의힘 지도부 등 90여명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해 만찬을 가진 자리에서 ‘국민통합’을 강조했다. 특히 "위원회의 다양한 정책 제언을 우리 당과 내각에서 좀 관심 있게 꼼꼼하게 한번 읽어달라"고 강조하는 등 김한길 통합위원장의 역할을 띄우는 분위기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민통합위원회 만찬에서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등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민통합위원회 만찬에서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등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신임하는 정치원로이지만 출신성분이 다르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발탁해 정계에 입문시킨 인물이고,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 대표 등을 지냈다. 민주당 출신인사이다.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집권을 할 경우 정계개편이나 신당창당을 하는 방안을 죽마고우인 이철우 연세대 로스쿨 교수, 김한길 위원장 등과 함께 논의했다는 이야기가 무성했던 적도 있다.

윤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것은 ‘기존 노선’의 유지가 아니라 ‘혁신의 길’을 모색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는 해석이다. 따라서 김 위원장을 주축으로 삼아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윤 대통령 발언 3=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민생정책 강화를 ‘정권 지지론’의 명분으로 제시

윤 대통령은 18일 대통령실에서 가진 참모진과의 회의에서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면서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전했다. 이와 관련해 “우리가 민생 현장으로 더 들어가서 챙겨야 한다”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국민은 옳기 때문에 정부여당은 국민의 니즈를 찾아내서 충족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민생 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주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는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해 “정치에서 '민심은 천심이고 국민은 왕'이라며 늘 새기고 받드는 지점이 있다. 이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해달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날 윤 대통령이 김기현 대표 등 여당 4역과 상견례를 겸한 오찬을 함께한 사실을 소개하며 “여당과 대통령실은 회동에서 지금 어려우신 국민들, 청년들이 너무 많다며 국민의 삶을 더 세심하게 챙기기 위해 당정 소통을 더 긴밀히 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고 전했다.

따라서 윤 대통령의 정국구상은 ‘중도 확장’에 무게를 둔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외교안보 뿐만 아니라 경제정책 등을 수립하고 집행함에 있어서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기본으로 삼아왔던 기존 원칙을 지키면서도 의대정원 증원, 더받는 국민연금개혁, 청년층 삶의 개선과 비전 제시 등과 같이 다수 국민이 요구하는 민생현안을 풀어나감으로써 중도층 확장을 이뤄나가자는 비전인 것이다.

윤 대통령이 통합위의 정책제안을 정부여당이 면밀하게 살펴보라고 각별하게 주문한 것은 이처럼 ‘민생정책’을 대대적으로 강화하자는 요구라고 볼 수 있다. 내년 총선에서 ‘정권비판론’보다 ‘정권지지론’이 우세해지려면, 지지의 명분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속마음은 집권 중반기 이후 다수 국민의 페인포인트를 해결해주는 민생정책을 실천하려면 여당인 국민의힘에게 과반수 의석을 몰아달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말하지 않은 구상= YS의 신한국당식 신당 창당...“윤 대통령은 그럴 의지와 능력 가져”

하지만 이 같은 ‘차분한 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윤 대통령이 또 다른 결단을 내릴 가능성도 점쳐진다. 정치권 안팎에서 무성하게 거론되는 신당 창당이 그것이다.

신평 변호사는 18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당 밖에서 대통령 중심의 신당, 이른바 YS(김영삼 대통령)의 신한국당 모델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게 무슨 이야기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지금 윤 대통령에 대한 의도적인 평가 절하나 모욕적 비난이 도를 넘고 있지만 윤 대통령은 대단한 능력과 리더십을 가졌고 난관을 돌파하려는 의지력도 대단히 강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을 둘러싼 포위망을 과감하게 돌파하려는 시도를 할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신당 창당도 그 하나의 방법으로 선택할 수가 있다”고 주장했다.

신평 변호사가 18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CBS 유튜브  캡처]
신평 변호사가 18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CBS 유튜브 캡처]

현 상황에서 YS식 신한국당을 창당한다면, 국민의힘과 민주당 내 비명계 등이 어우러지는 신당 창당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금 국민의힘이 있는데 존재하는데 윤석열 대통령 중심의 신당이 따로 또 나온다는 말이냐”고 진행자가 묻자, 신 변호사는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계속해서 정계개편은 염두에 두시고 지금까지 국정운영을 해왔다”면서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되면 신당 창당을 고려하실 수 있지 않겠느냐, 또 그분의 리더십이나 강한 돌파력을 생각할 때 그 가능성은 더 증가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한길 위원장이 중심이 돼서 할 것이라고 그러는데. 과연 지금 여권이든 야권이건 또는 국민들이건 간에, 김한길 위원장에 대해서 그만한 희망을 두는 그런 모멘텀이 있습니까? 저는 없다고 본다”고 단언했다. 윤 대통령은 신당 창당을 할 의지와 역량을 갖고 있지만, 김한길 위원장이 그런 움직임을 주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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