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대한민국 민화문화재 기념전' 오늘 개막
북촌의 동연갤러리에서 24일까지 
대한민국민화전통문화재 제1호 송규태
대한민국민화전승문화재 제1호 윤인수
대한민국민화전승문화재 제2호 금광복
대한민국민화전통문화재 제2호 엄재권

[크기변환]2.엄재권, 일월오봉도, 94x188cm
엄재권, 일월오봉도, 94x188cm
 '제2회 대한민국 민화문화재 기념전'의 주인공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송규태, 엄재권, 윤인수, 금광복. [월간민화 제공 ]
'제2회 대한민국 민화문화재 기념전'의 주인공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송규태, 엄재권, 윤인수, 금광복. [월간민화 제공 ]

"민화를 보면 결코 한민족의 민예는 흰빛으로 상징되는 슬픔과 한이 서린 무기력의 문화가 아니었습니다. 생명의 즐거움과 기쁨 그리고 그 활력을 나타내는 빛깔의 큰 잔치였습니다. 보릿고개를 헤매면서도 민화의 세계에는 웃음과 밝은 생명력이 분출하고 있지요. 조선시대 엘리트들인 사대부들의 문인화나 풍속화와 달리 자기만의 재능이나 개성이 아니라 집단 속으로 들어가 차양을 치고 먹고, 춤추고, 노는 것처럼 참여하는 예술인 것이지요. 한국 민화는 제멋에 겨워서 '흥!' 하는 흥타령의 산물입니다."

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1934~2022)은 엄재권 화백이 민화작가로서의 41년 화업을 정리하는 특별전을 앞두고 지난 2021년 5월 찾았을 때 민화를 '무명성과 집합적 예능에의 참여'라고 규정하며 그처럼 말했다. 

이 전 장관도 언급했듯 민화는 가장 한국적인 그림의 하나다. 중국 화풍의 영향이 큰 문인화 등과 달리 민화는 화려한 안료로 그린 채색화로서 한국적인 변별력을 지닌 그림이다. 

전통그림인 민화는 예로부터 궁중·사대부·사찰·집안 등의 장식이나 염원(念願)을 바라는 목적으로 반복되어 그려져 온 한국인의 이야기그림이다. 

민화 속에는 우리 민족의 풍속, 습관, 민간신앙, 생활양식 등 민중 문화의 내용이 가득 들어있으며 상징성과 장식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같은 특장점에도 불구하고 일제 치하와 6·25전쟁을 겪으며 민화의 명맥이 끊어져 갈때 이를 되살려낸 인물이 대갈 조자용(1926~2000)이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건축구조공학을 전공한 조자용은 정동 미국대사관저를 설계하는 등 건축가로 활동하다 1960년대 민화에 빠져 전국 각지를 돌며 수집, 연구에 돌입했다. 

그리고 조선 후기 궁중 도화서에서 그려지거나 민간에서 유행했던 민화에서 해학과 풍자, 화려한 색채와 질박한 아름다움을 찾아내 이를 새롭게 조명했다.

이어서 파인 송규태는 조자용이 초석을 쌓은 그 바탕 위에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작품 제작과 동시에 후학을 양성하며 붐 조성에 앞장섰다.

1970년대 이전만 해도 민화를 전공하거나 배우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현재 국내 민화 인구는 작가와 전수생을 포함, 무려 2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오는 18일부터 (사)한국민화협회(회장 송창수)가 주최하는 '제2회 대한민국 민화문화재 기념전'은 전통문화의 명맥 속에서 사라져가는 민화의 위상을 제고한 파인 송규태를 비롯 1세대 민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전시회에는 대한민국민화전통문화재 제1호 송규태 작가(2016년 지정)를 비롯 대한민국민화전승문화재 제1호 윤인수 작가(2016년 사진), 대한민국민화전승문화재 제2호 금광복  작가(2017년 지정), 대한민국민화전통문화제2호로 지정된 엄재권 작가(2019년 지정)까지 모두 4명 작가의 작품이 걸려 방문객을 맞는다. 

[송규태] 민화 화단의 최고 원로 

국내 민화화단에서 최고 원로로 꼽히는 파인 송규태 화백이 처음부터 민화를 그렸던 것은 아니다. 송 화백이 1957년 군 제대 후 고향인 경북 군위에서 상경해 인사동에 자리 잡아 처음 한 일은 고서화 복원 및 수리였다. 

송규태, 까치호랑이1, 67.5x52cm.
송규태, 까치호랑이1, 67.5x52cm.

송 화백은 고서화를 수리하며 이당 김은호의 제자였던 운정 정완섭에게 그림을 배웠는데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똑같이 그림을 모사해내 표구상이 밀집한 인사동 일대에서는 그를 '인간국보'로 부르기도 했다. 

송 화백과 민화와의 인연은 1967년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에밀레박물관을 개관한 대갈 조자용이 민화 수리를 맡기면서 시작됐다. 

그는 에밀레박물관의 일을 계기로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호암미술관 등 박물관의 고화 수리를 맡게 됐고, 급기야 1970년대 초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요청에 의해 외국인 선물용으로 처음 민화 제작을 시도했다. 

당시 이 회장은 까치호랑이나 화조도 같은 민화를 송 화백에게 모사토록 해 외국 바이어들에게 선물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청와대 내부를 치장하기 위해 일월오봉도 등 민화의 한 유형으로 분류되는 궁중회화를 그려 납품하기도 했다.

그처럼 민화 작가로 명성을 얻으며 제자 양성에 나섰고 1990년대 민화 열풍을 이끌어 민화가 우리 미술계의 무시할 수 없는 영역으로 우뚝 서는 데 크게 기여했다.

대한민국민화전통문화재 제1호 파인 송규태 화백은 한국 민화의 부흥기를 견인한 1세대 민화작가로 지난 2017년 문화예술발전유공자 시상식에서 민화화단에 기여한 50여 년간의 공식을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번 전시를 앞두고 송 화백은 "우리 민화계가 지금의 규모로 성장하기까지 수많은 민화인들의 노력이 있었다"며 "앞으로도 민화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소회를 밝혔다. 

[금광복] "전통에 기반을 둔 현대민화" 주창  

한국 민화계 중진 작가이며 대한민국민화전승문화재 제2호로도 지정돼 있는 금광복 화백은 일찍이 전통에 기반을 둔 현대 민화를 주창해 왔다. 

그는 최근 한 전시회를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현대사회에서 민화가 지니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전통이 지닌 현대미를 표현하는데 중점을 뒀습니다. 무엇보다 민화의 통상적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자리가 됐으면 합니다. 민화가 태동했던 조선시대와 현재를 비교해보면 장수, 물질적 풍요는 이미 이룬 셈이나 다름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우울감, 절망감에 시달리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시대에 민화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민화의 길상적 의미부터 재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금 화백은 전통 민화를 그린다고 해 옛것을 그대로 좇아 행하는 답습(踏襲)이 정답은 아니라는 주장도 펴고 있다. 

금광복, 십장생도. 
금광복, 십장생도. 

그는 "민화 작가는 현 시대도 잘 알아야 한다"며 "애초 민화도 선조들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문화이기 때문에 현대 민화를 그리고자 한다면 단순히 길상의 메시지를 뛰어넘어 역사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금 화백은 2000년대 초반, 민화를 그리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자 이들의 성장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경향미술대전,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헤럴드전통문화예술대전 등 미술 공모전 내 민화부문을 개설하는데 힘을 보탰고 2005년 (사)한국민화협회 제5대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사)한국민화협회가 주최하는 '제2회 민화인의 날-한국민화페스티벌'에서 대한민국민화전승문화재 제2호로 선정되기도 했다.

금 화백은 이번 전시에 앞서 "축복의 그림이자 행복의 그림인 민화는 현재는 물론 수백 년 뒤에도 우리 곁에 존속할 것이다"며 "수십 년간 붓을 들어온 민화문화재 4인의 전시가 민화 역사의 또 다른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를바란다"라고 말했다.

[윤인수] "41년간 민화 외길 걸어온 뚝심"

대한민국민화전승문화재 제1호인 윤인수 화백은 물이 흐르는 듯 유려하면서도 섬세한 필치와 우아한 컬러로 현대 민화의 수준을 한차원 끌어올렸고, 활발한 교육활동으로 수많은 제자를 양성, 민화계의 양적 성장을 주도해 왔다. 

1978년부터 민화 작업에 매달려온 윤 화백은 그동안 무려 15회 이상 되는 개인전과 200여개에 이르는 단체전에 작품을 출품하며 21세기 접어들어 일기 시작한 '민화 열풍'에도 큰 기여를 했다. 

윤 화백은 최근 종로구 인사동 '라메르갤러리'에서 열린 '야촌 연대기 -상상의 벽을 넘다' 전에서는 장장 가로 1800cm, 높이 110cm의 대작 '영락궁 조원도(永樂宮  朝元圖)'를 선보여 화단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당시 공개된 '영락궁 조원도' 는 민화에 대한 서양화 화단이 제기하고 있는 '민화는 모사냐, 창작이냐' 의 해묵은 논란에 '해답'을 제시해 주는 작품이었다. 

윤인수, 남정연회도. 
윤인수, 남정연회도. 

영락궁은 중국 산서성 예성현에 있는 도교사원으로 조원도는 삼청전에 그려져 있는 벽화다. 

따라서 큰 범주에서 볼 때 이 작품도 '모사'의 하나일 수 있지만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면 윤 화백만의 창의적인 필치가 살아있어 지켜보는 이들에게 감탄사를 연발케 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의 표정은 물론 체형과 몸매, 손 모양까지 그림 속에서 금방이라도 뛰어나올 듯 살아있고 옷자락의 흘러내리는 모습 또한 자연스러우면서도 생동감 넘치게 표현돼 있었다. 

윤 화백은 (사)한국미술협회 초대분과위원장으로 전통공예분과 내 민화분과가 설립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또 (사)한국민화협회 상임고문, (사)한국미술협회 민화분과 부이사장, (사)한국전통민화협회 회장 등을 도맡아 민화계 발전을 위해 앞장서기도 했다. 

그는 이번 전시에 앞서 "(사)한국민화협회에서 이러한 자리를 만들어 주어 감개무성하다"며 "이제는 후학들이 더욱 열심히 해주길 바라는 마음뿐이다"라는 말로 민화인들에 대한 기대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엄재권] 이어령 장관도 칭찬한 "흥타령"의 작가 

엄 화백은 1980년 ‘한국 민화 화단의 최고 원로’이자 고모부인 파인 송규태 선생의 제자로 입문한 이래 한국민화협회 회장 등으로 재임하며 '대한민국 민화'의 전통 계승과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국내에서 민화가 부활하는 데는 엄재권 화백의 공도 크다.  한국민화협회 11대~12대 회장으로 있을 때 '민화아트페어'를 개최해 화단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민화인의 날(3월18일)'을 제정, 국내 민화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엄재권, 까치호랑이와 드론, 142×73㎝, 2014
엄재권, 까치호랑이와 드론, 142×73㎝, 2014

또한 민화를 '한류'로 연결 'K컬처'의 하나로 위상을 제고한 공도 작지 않다. 

한국민화협회 회장 재직시절인 2018년 7월에는 이슬람국가인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의 아트갤러리에서 한국민화협 회원전을 열어 호평을 받았다. 

당시 현지 미술애호가들은 민화의 파격적인 화면 구성과 원색의 강렬한 색채감, 해학적인 내용 등에 모두 '원더풀'을 연발했다. 

또 그 이듬해인 2019년 7월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의 시내 갤러리에서 협회 주관으로 개최한 한국 민화 전시회에는 매일 수천여 명의 현지 관람객이 몰려 성황을 이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엄 화백의 작품은 해학적이면서도 상징성이 넘치는 화면 구성으로 민화의 또다른 매력을 전해주고 있다.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왼쪽)이 민화에 대해 엄재권 화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효문회 제공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왼쪽)이 민화에 대해 엄재권 화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효문회 제공

변종필 제주 현대미술관장(미술평론가)은 엄 화백의 작품에 대해 "정교한 묘사의 기예에 부드럽고 섬세한 필치가 압권이다"며 '자연과 생명의 아름다운 순리', '다양한 상징성과 내러티브', '상상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초현실성', '뛰어난 묘사력과 색채감각이 돋보이는 회화성', '전통성에 독자적 조형미를 가미한 현대성' 등을 높이 평가했다. 

이와관련 엄 화백은 한 인터뷰에서 민화만의 매력을 '빙그레 웃는 마음'이라며 '민화는 길상의 의미를 지녔고, 행복의 메시지를 쉽고 친절하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엄 화백의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해학성'은 맘씨 좋게 생긴 호랑이가 드론을 조종하는 화면구성의 '까치호랑이' 작품에서 절정을 이룬다. 

엄 화백의 민화가 지닌 그같은 작품성에 대해 생전의 이어령 전 장관은 '자율성과 흥타령'의 대표적인 작가로 그를 지목하며 "내 서재에는 백남준, 이우환, 김창열 화백과 나란히 엄 선생의 '연꽃과 거북'이 걸려 있다"고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를 앞두고 엄재권 화백은 "민화인으로 살아온 지 40년, 사람으로 치면 불혹(不惑)이라지만 제게 민화는 아직도 미혹(迷惑)"이라며 "민화로 이어온 시간과 공간의 날줄과 씨줄에 스며 다시금 붓을 힘차게 잡을 수 있는 계기를 이번 전시에서 찾아보려고 한다"고 전했다.   

이경택 기자 ktlee@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