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지방 재래시장 방문 모습/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지방 재래시장 방문 모습/연합뉴스

과거, 법부부에서 일하는 검사들에게는 새로 오는 법무부 장관을 길들이는 ‘노하우’가 있었다.

법무부장관이 취임해서 법무부의 양대(兩大) 현장인 전국의 지방검찰청과 교도소 등 교화시설 중 어느 곳을 먼저 순시(巡視) 하느냐에 따라 장관의 스타일이 확 달라지곤 했다.

교도소는 군대와 비슷한 조직이다. 제복(制服)근무에 계급에 따른 위계질서가 명확하기 때문에 최상급자인 장관이 찾아오면 칼 같은 ‘충성경례’에 관등성명을 복창하는 등 군대와 같은 풍경이 벌어진다.

반면, 지방검찰청에서 순시를 오는 장관을 맞는 모습은 교도소와 비교하면 뻣뻣하기 짝이 없다. 수백명의 교도관이 도열하는 교도소와 딜리 검사장과 차장검사, 사무국장이 청사 현관에 나와 장관을 맞는게 전부다.

객지(客地)에서 고생한다고, 장관이 식사자리를 만들어 폭탄주라도 돌리면, “교회에 다닌다”며 사양하는, 교도소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도 벌어진다. 그래서 법무부의 터줏대감 검사들은 장관이 새로 오면 ,교도소 보다 지방검찰청을 먼저 순시하도록 했던 것이다.

정치판에서는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자신과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자신의 차이가 커질 때 불행이 시작된다”는 말이 회자되곤 했다. 정치인의 불행은 자기자신을 과대 평가하는 착각에서 시작된다는 말이다.

요즘은 여론조사가 워낙 발달하고 광범위하게 이용되기 때문에 착각에 빠진 불행한 정치인들이 별로 없다. 하지만 여론조사가 보편화되기 이전에는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면 500표, 1000표 밖에 못얻는 사람이 “두고봐라 이번에는 내가 반드시 당선된다”고 장담하고 다니는 일이 많았다.

국회의원 후보가 돼서 시장바닥을 누비면, 면전에서 드러내놓고 박대(薄待)하는 사람은 없다. “파이팅!”도 외쳐주고, 그럴 마음이 전혀 없으면서도 “꼭 찍을게요”라고 말해주는게 인심이다.

그래서 여론조사에서 5% 밖에 안나오거나, 상대 후보에게 크게 뒤지는 결과가 나와도, “바닥민심은 그렇지 않다”면서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착각, 착시가 생기는 이유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에 국군통수권자이기 때문에 최고의 의전(儀典)을 받는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 등 ‘3부 요인’에 대한 의전의 격식은 하늘과 땅 차이다.

대통령의 권위가 의전으로 가장 빛날 때는 국군의날 같은 군대행사, 국빈 자격으로 외국을 방문할 때다. 그래서 내치(內治)의 어려움으로 편할 날이 없는 대통령도 군대나 외국 순방을 다녀오면, 기력을 회복하곤 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여소야대에 맞닥뜨린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외국 순방이나 군 행사를 의도적으로 기획하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YS는 천성(天性) 부터가 기가 센, 낙천주의자인데다 정치, 특히 선거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YS는 1995년 실시된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노태우 정부의 국무총리 출신인 정원식을 강력하게 밀어 붙였다. 정 전 총리가 YS의 대통령선거에서 많은 활약을 한 데다, 자신처럼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거물 경제학자 조순을 후보로 영입, ’포청천“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래서 여당내에서는 연로한 이미지가 강한 정원식 보다는 ‘샐러리맨의 신화’ 이명박을 후보로 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여론조사도 그렇게 나왔다.

하지만, YS는 “씰데없는 소리...선거는 내가 제일 잘 안대이”라면서 정원식을 고집했고, 선거에서 패했다. 당시 서울시장 선거 패배는 2년뒤 김대중 후보에 의한 사상 최초 여야 정권교체의 서막이었다.

대패, 참패로 끝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결정적 패인은 공천이었다.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을 서둘러 사면복권 시켜 출마하게 만든 사람이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언론 보도에 여당은 물론 대통령실도 반박하지 않는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보궐선거 책임에 따른 사퇴요구를 거부하는 이유 또한 “내가 한 공천이 아니다”라는 소문도 들린다.

윤석열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국정지지도가 줄곧 40%에도 못 미친다는 여론조사를 믿기 어려울 것이다. 지방, 심지어 민주당의 아성인 호남에 있는 민심의 현장, 시장 바닥을 찾아가도 서로 악수하려 하고, “윤석열”이라는 연호가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낮은 지지도가 대통령과 정부의 국정운영 잘못이 아닌,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벌이고 있는 총체적 발목잡기와 친민주당 좌파 언론들의 가짜뉴스와 왜곡선동이 근본 원인이라는 점은 대통령의 착시와 착각을 더 키울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왕조시대의 궁궐못지 않은 폐쇄적 공간이었던 청와대를 나와 용산시대를 연것은 국민들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서 소통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자리 그 자체의 막강한 권위, 권력에서 나오는 고립(孤立)과 폐쇄, 이로인한 착시와 착각의 위험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김태우 후보 밀어 붙이기가 김영삼 대통령이 그랬던 것과 같은 착시(錯視)에 따른 근거없는 자신감이었다면, 내년 총선 또한 위험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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