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30년만에 '권한대행 체제'…선고·인사 줄혼란. 2023. 9. 25.(사진=연합뉴스TV, YonhapnewsTV)
대법원 30년만에 '권한대행 체제'…선고·인사 줄혼란. 2023. 9. 25.(사진=연합뉴스TV, YonhapnewsTV)

35년 만의 대법원장 공석 사태와 그 파장

김명수 대법원장이 퇴임하고, 이균용 후보자에 대한 국회 동의가 부결됨에 따라서 35년 만에 대법원장 공석 사태가 발생했다. 1988년 노태우 정부 당시 정기승 후보자의 부결 이후 최초로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것이다.

여기서 이균용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부결이 합당한 것인지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법원장 공석 문제의 심각성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기초 위에서 대통령실에서는 후보자의 인선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이고, 야당에서도 임명동의안 부결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더욱이 오는 11월에는 헌법재판소장의 임기도 만료되는데, 후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해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는 등, 국회의 임명동의안 부결이 다른 고위공직자로 확대될 경우에는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대법원장이나 헌법재판소장 등이 공석일 경우에는 권한대행 체제로 가게 된다. 문제는 권한대행이 대법원장이나 헌법재판소장 등의 권한을 모두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이미 대통령에 대한 두 차례 탄핵소추로 인해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업무를 수행할 때 확인된 바 있다. 권한대행은 이른바 현상유지적 권한만을 수행할 수 있으며, 기본적인 틀을 바꾸는 권한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대통령 권한대행이 장관을 교체하거나 국가정책의 근간을 변경하는 등의 권한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점이 인정되었다.

물론 권한대행은 대통령이나 대법원장 등 삼권의 수장에 대해서만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국회에서 탄핵소추되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기각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직무수행이 정지되었고, 권한대행 체제로 행정안전부 업무가 수행된 바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대통령, 대법원장의 경우에는 그 권한의 범위가 큰 만큼 권한대행에 따른 문제점도 더 클 수밖에 없다.

특히 대법원장의 경우에는 법원 조직 전체의 수장일 뿐만 아니라, 법관 인사를 비롯하여 사법행정에 관한 광범위한 권한을 갖고 있으며, 이를 권한대행이 수행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문제되는 사안들도 적지 않은 것이다.

대법원 정의의 여신.(사진=연합뉴스, 편집=펜앤드마이크)
대법원 정의의 여신.(사진=연합뉴스, 편집=펜앤드마이크)

법원의 구조와 대법원장의 지위

법원은 3심제에 따라 기본적으로 대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의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지방법원에 속한 지원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고등법원급의 특허법원, 지방법원급의 가정법원, 행정법원, 행정법원도 있다. 또한 제1심은 지방법원 단독판사가 하고, 제2심은 지방법원 합의부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든 재판의 제3심은 대법원이다.

그러므로 대법원의 최고법원일 뿐만 아니라, 최종심이다. 물론 상소를 하지 않으면 제1심이나 제2심에서 판결이 확정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법원에 대한 상고의 제한이 문제되고 있다. 대법원의 과중한 업무 때문에 상고의 제한이 불가피한 부분이 있지만, 소송당사자 중의 상당수는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대법원이 최종심이라는 것은 –비록 사법부의 독립 때문에 대법원이라 해도 하급심 재판에 관여할 수 없지만- 하급심 재판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대법원의 기존 판례에 어긋나는 하급심 판결이 나오는 것은 –미국처럼 선례의 법적 구속력이 인정되지는 않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것이다. 그로 인하여 대법원을 이끄는 대법원장이 법원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강력하다.

우리가 제왕적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제왕적 국회의장이라는 말은 없듯이, 제왕적 대법원장에 대한 논란은 있어도 제왕적 헌법재판소장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보다 국회의장이 국회 내에서 모든 국회의원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없고, 마찬가지로 헌법재판소장도 헌법재판관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장은 -비록 삼권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사법부 전체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것은 앞서 이야기한 대법원이 하급심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과 더불어, 대법원장이 대법관의 임명에 깊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즉, 대통령이 대법관을 임명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대법원장의 제청이 필요하다. 결국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임명된 대법관은 대법관 회의 등에서 대법원장에게 한 발 양보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법원장을 통제할 수 있는 최고위 법관인 대법관들이 이럴진대, 다른 법관에 의해 대법원장이 통제되는 것은 기대할 수 없으며, 제왕적 대법원장의 위상은 적어도 현행헌법 하에서는 확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개헌을 통해 제왕적 대법원장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장의 공석이 법원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행사할 수 있는 현상유지적 권한은 무엇이고, 이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최근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는 대법관의 임명 제청, 법관 인사, 그리고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의 결정이 있다. 이 중에서 대법관의 임명 제청은 권한대행의 권한으로 볼 수 없다는 점에 큰 이견이 없지만, 다른 권한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대법원 30년만에 '권한대행 체제'…선고·인사 줄혼란. 2023.09.25.(사진=연합뉴스TV, YonhapnewsTV)
대법원 30년만에 '권한대행 체제'…선고·인사 줄혼란. 2023.09.25.(사진=연합뉴스TV, YonhapnewsTV)

대법원장의 공석으로 인한 신임 대법관 임명 차질 등의 문제

현행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대법관의 임명을 위해서는 대법원장의 제청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헌법조항의 해석상 대법원장이 아닌 대법원장의 권한대행은 대법관 임명제청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즉, 대법원장 공석이 장기화되면 신임 대법관의 임명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지배적인 것에는 두 가지 근거가 있다. 하나는 신임 대법관의 임명제청권을 현상유지적 권한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사한 형태의 제청권이 인정되는 국무총리의 경우에도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은 이른바 국무총리 서리, 또는 국무총리 권한대행이 국무위원의 임명제청권을 가질 수는 없다고 보는 것과의 통일성이다. 

만일 국무총리 서리나 권한대행이 국무위원 제청권,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에 대한 부서권 등 국무총리의 권한을 모두 행사할 수 있다면, 국무총리의 임명에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함으로써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 행사에 –현실적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견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한 헌법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 된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제청권도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행사할 수는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법관 인사를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결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견해 대립이 있다. 한편으로는 정기적으로 반복되는 법관의 인사는 현상유지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법관의 승진 등 인사는 법원 내에서 가장 큰 변화이며, 이를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반대 견해가 있는 것이다. 

또한 대법원 전원합의부를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주재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한편에서는 대법원장이 공석인 상태에서는 전원합의부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반면에, 다른 한편에서는 전원합의부에서 대법원장은 항상 다수의견을 따르는 관행이 있었던 점, 그리고 대법원장이 아닌 권한대행이 가부동수일 경우에 캐스팅 보트를 갖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밖에도 수많은 문제들이 대법원장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와 관련하여 논란될 수 있으며, 대법원장의 공석이 장기화될수록 사법기능의 부분적 마비나 사법개혁의 지체 등으로 인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질 것이다.

대법원, 법원. (사진=연합뉴스TV, 편집=조주형 기자)
대법원, 법원. (사진=연합뉴스TV, 편집=조주형 기자)

대법원장 공석의 장기화로 인한 문제를 막으려면

문제의 해결 방법에는 당장의 문제를 단기적으로 해결하는 방법과 문제의 근원을 해소시키는 중장기적 방법이 있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중요한 문제는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시도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장 공석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당장의 문제를 단기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후임 대법원장이 최대한 빨리 임명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이 후보자를 빨리 지명하고, 국회에서도 임명 동의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다만, 대통령의 후보자 지명과정에서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며, 국회의 임명 동의 과정에서는 정파적 고려보다는 법원의 안정에 무게중심을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의 문제를 단기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아니다. 유사한 문제는 언제라도 다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를 해소하기 위한 중장기적 대안의 마련을 위한 노력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헌법개정을 통해 대법원장의 임명방식 자체를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될 것이다.

대통령이 사법부의 수장을 임명할 수 있다는 것이 제왕적 대통령을 가능케 하는 핵심적 요소의 하나라는 점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 따라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극복을 위해서도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등의 임명방식 개선은 필요하다. 다만,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으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등의 추천위원회를 두고, 그 추천 결과에 대해 국회의 인사청문과 동의를 거쳐서 대통령은 형식적으로 임명하는 방식도 고려될 수 있다. 또는 대통령의 관여를 완전히 배제하고, 대법관들의 호선으로 대법원장을 선출하고 국회의 인사청문과 동의 절차를 거쳐서 확정하는 방법도 논의되고 있다. 각각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대법원장 등의 공석사태 장기화를 막는 것과 관련하여서는 대법원장 등의 임기말에 비로소 후임 대법원장 등의 선임을 위한 절차를 시작할 것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 여유를 두고 절차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추천위원회를 통한 선임의 경우에는 국회의 인사청문 및 동의절차에서 부결될 경우에 대비하여 –비공개를 전제로- 후보자의 순위를 정하는 것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보아도 대법원장이나 헌법재판소장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한 인물이 넘쳐날 정도로 사법부의 인재들이 많고, 그들이 충실하게 자기관리를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사진편집=조주형 기자)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사진편집=조주형 기자)

장영수 객원 칼럼니스트(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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