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
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

 

역사를 해독하는 작업은 냉철한 이성에 명징한 논리적 사고가 소요되는 일이다. 필자가 삼십여 년 동안 일본에서 동아시아 근대사를 재독하는 작업을 벌이면서 늘 발견되는 것은 역사 사실 그 자체보다도 역사를 만드는 현대인의 작위성에 있는 심각한 위험성이다.

일본과 엉클어져 형성된 근대사의 입론, 해석, 구성 가운데서도 해방 후 한국 국사학자들의 '근대 신화 만들기'에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근대사 속의 일본은 언제나 반드시 악의 상징이었고, 죄다 조선, 조선인을 억압하고 철저하게 살육과 약탈을 감행한 장본인이라는 이미지.

이런 정설로 된 이미지는 이미 고착된 '신화'로 되었으며,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일본은 악의 화신이었다"고 어느 한국의 역사학자의 말이 그 대표적 언설이다.

현대 한국, 조선인의 '민족' 의식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대립물로서, 그것을 용수철로 튕겨 나오듯 생긴 것이며, 통치자였던 일본에 대한 무한한 증오심과 적개심이 민족사, 민족주의의 바탕에 농후하게 깔려있다.

일본 식민지배 하에 이룩돼 온 식민지적 한국의 근대화에 대한 논의는 그런 국사학자들에게 있어서는 '반동'이며 민족의 반역 행위로까지 될 수 있는 반민족 행위다.

필자의 관찰, 분석에 따르면 해방 후 한국은 민족, 애국주의의 이데올로기로 한국인의 아이덴티티 정립을 지향하고 그를 위해 서슴없이 과거 지배자였던 일본, 일본인, 일본문화 모든 것에 대한 악의 신화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므로 일제 36년 통치의 모든 근대화, 문명, 제도까지도 포괄하여 민족주의, 민족사관이란 잣대로 재단하고 차별과 억압이라는 사정권 안에 밀어놓고 식민지 지배 아래의 근대화 성립 가능성 팩터로 역할했던 것에 대한 분석도 게을리했다.

요약하면 일제의 통치는 극악무도한 잔인한 한국민족에 대한 수탈, 살육에 편향된 '죄악'이었다.

이미 밝혀진 토지조사사업이나 여러가지 일제가 시행한 근대적 식민시책, 문명화적 구체적 통치수단에 대해서 모두 일제의 '악'의 죄였으며 일제의 악의 신화를 만들기 위해 사실과 숫자를 조작하고 창작하는 것까지 불사했다.

그럼 토지조사사업과 쌀의 약탈에 대한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대 경제학교수 이영훈씨의 글을 인용해본다.

"국사학자들에 의해 그러한 신화가 만들어지고 국민교육을 통해 널리 보급되기에 이른 한 가지 좋은 사례로서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통하여 전국 농토의 40%를 약탈하였다는 국사교과서의 서술을 들 수 있다. 원래 그러한 주장은 식민지기의 학술 논지에서는 물론, 독립운동가들의 가장 선동적인 연설에서도 들을 수 없는 것이었는데, 1950년대에 일본에 유학 중이던 이재무라는 한 청년에 의해 최초로 고안되었다. 그는 일제가 토지를 수탈하기 위해 소유권 의식이 취약한 농민들에게 복잡한 절차의 신고를 강요하였으며, 그 간교한 계책의 결과 수많은 미신고지가 발생하자 국유지로 몰수한 다음 일본인 회사와 이주 농민에게 헐값으로 분배하였다고 주장하였다. 하등의 실증적 근거 없이 그저 책상머리에서 고안된 이 새로운 신화는 대한민국의 국사학자들에 의해 더욱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국사의 이름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이를테면 교과서에 나오는 농토의 40%라는 수탈의 정도는 교과서를 집필 중인 어느 국사학자가 아무래도 적절한 숫자가 필요하여 아무렇게나 써넣은 것에 불과하다. 최근 국사교과서는 필자를 포함한 비판자들을 의식하여 그 부분을 '국토의 40%'로 슬그머니 수정하였지만, 논리적으로나 실증적으로 통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현행 국사교과서에 의하면 일제는 '토지의 약탈'에 이어 '식량의 수탈'을 자행하였는데, 제시된 도표에 의하면 그 정도는 한때 생산된 미곡 총량의 절반을 초과하였다. 식민지기에 조선과 일본은 관세가 폐지된 자유무역을 매개로 하나의 시장권으로 통합되었다. 그 시장에서 성립한 가격기구의 작용으로 인해 대량의 조선 쌀이 일본으로 수출된 것이다. 그것이 수탈이었다는 근거를 국사교과서는 일제가 "미곡과 각종 원료를 헐값에 사갔다"라는 간단한 서술로 대신하고 있으나 필자로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폭력적인 논리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전시기 이전의 식민지기에 성립한 미곡의 자유시장에서 총독부가 가격을 통제한 적은 없으며, 더욱이 위의 서술이 지시하는 그대로 미곡무역에 직접 종사한 적도 없었다. 대량의 수출은 수출한 쪽에 대량의 자본을 축적하기 마련이며, 그로 인해 초래된 시장과 산업의 발달은 경제학의 정교한 논리로 해부되지 않으면 안 된다. 폭력적이면서 애매하기 짝이 없는 신화는 장차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의 원천을 이루는 젊은이들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필자의 강의를 수강하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대학생들은, 필자의 설문 조사에 의하면, 90% 이상이 총독부가 총칼로 쌀의 50% 이상을 공출하였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농토의 40% 이상과 쌀의 50% 이상을 총칼로 약탈하였다면, 그 일제가 '악의 화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필자는 대한민국의 국사 교육이 그의 복잡다단한 근대사를 그렇게 단순하고 폭력적인 신화로 대신하고 있는 한, 요란한 정치적 구호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인용이 다소 길어졌지만, 한국의 국사 '신화 만들기'는 그야말로 이성과 과학적 논리가 결여된 문학적 창작, 숫자 불림이 동원됐음을 알 수 있다.

한국 "국사"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그 자체가 근대사 현대사 등 역사의 진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기술,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국사"의 기술에나 연구에는 항상 "민족"과 "애국"이란 허구한 이데올로기로 꽉 차 있었으며 진실이 들어갈 틈을 주지 못했다.

한국 "국사"의 일본과 엮인 근대사는 그야말로 "민족신화" "애국신화"만들기에 "일본악의 신화"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인위적으로 조작, 날조된 근대사는 학문적 의미에서 이미 진실성을 배척한 열악한 이데올로기 주장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 자체 또한 한국인의 자기 아이덴티티 인식에 스스로 담벼락을 쌓는 우를 범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또한 인문학적 의미에서 이미 학문의 진실을 상실한 학문이 아니다.

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현 일본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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