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19일 의대 정원을 1000명 이상 확대하는 방안을 직접 발표할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소아과 의사 부족, 특정 진료과목 의사 편중, 외과 등 수술의사 부족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의사 수 확대 정책을 논의해왔다. 당초 연말쯤 발표할 예정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전남 목포시에서 열린 '공생복지재단 설립 9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전남 목포시에서 열린 '공생복지재단 설립 9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의대 정원 확대 폭도 당초 2000년 의약분업을 계기로 줄었던 351명(10%)만큼 다시 늘리는 방안과 정원이 적은 국립대를 중심으로 521명 늘리는 방안 등이 거론됐다.

보궐선거 참패 이후 급물살 탄 의대 정원 확대, 규모 커지고 발표 주체도 대통령으로 격상돼

그러나 그 시기도 다음 주로 전격적으로 앞당겨졌고, 발표 주체도 윤 대통령으로 격상됐다. 정원 확대 규모도 1000명을 넘어 당초 논의보다 2배 이상 커졌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시점을 현재 고등학교 2학년생이 지원하는 2025년도 대학입시로 보고 있다. 19년 만에 의대 정원이 늘어나게 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확고하다. 정원 확대 폭이 1000명을 넘어 충격적이라고 할만한 수준일 수도 있다”면서 “결국 의료계를 설득하는 게 관건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등은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의 반발을 예상해 정원 증가 폭을 최소화하려고 했으나 윤 대통령이 대폭 확대를 강력하게 주문한 것으로 관측된다.

의료계의 집단이기주의에 가로막혀 역대 정권이 19년 동안 실현하지 못했던 ‘의대 정원 증원’이 이뤄질 경우, 다수 국민의 강력한 지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발전과 급격한 고령화가 맞물려 의사 수요는 빠르게 증가해왔으나, 의사 공급은 오히려 감소된 상태에서 동결되는 기형적 현상이 지속돼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 대통령이 직접 발표하는 것은 단순한 ‘의대 정원 정책’이 아니라 파격적인 ‘의대 개혁 정책’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의대 정원 동결은 다수 국민의 바람을 등지는 집단이기주의 또는 이권 카르텔의 산물인 만큼, 이 카르텔을 깨고 인력을 확대하는 것은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극복해야 하는 개혁정책이라는 의미이다.

의대 정원 확대. [일러스트=연합뉴스]
의대 정원 확대. [일러스트=연합뉴스]

보궐선거 참패에 따른 충격 탈피하고 새로운 국정운영 동력 확보 나서

윤 대통령의 결단은 지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17.15% 포인트 격차로 여당이 참패한 데 따른 충격과 후유증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정운영 메시지를 겨냥한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정부여당에 대한 ‘냉랭한 수도권 민심’을 확인한 만큼 뼈를 깎는 아픔을 감수해서라도 혁신을 해야 한다는 게 윤 대통령의 인식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 13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와 관련해 “선거결과에서 교훈을 찾아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민생 정책’의 대대적인 강화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방침으로 전망된다. 대대적인 의대 정원 증원은 그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해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도권 승리가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수도권 중산층의 민심을 얻어야 한다. 이 절박한 과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그동안 역점을 두어왔던 자유민주주의 이념 행보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 이번 보궐선거 표심을 통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윤 대통령은 ‘민생 정책’ 드라이브를 통해 수도권 등의 증산층에게 변화와 혁신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호소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물가 안정’, ‘내수 활성화’, ‘더 받는 국민연금 개혁’ 등의 다양한 민생경제 정책도 구체적으로 제시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000명 이상 증원은 시민사회 여론...의료계의 강력한 반발을 극복해야

그러나 의협의 반발과 같은 걸림돌도 적지 않다. 정부는 올해 초부터 14차례 의협과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진행하며 정원 문제를 논의해왔다. 하지만 1000명 이상 증원은 의협 등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방안일 것으로 예상된다. 의사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증원 규모를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20년 매년 400명씩 10년간 의대 정원을 4000명 증원하는 계획을 공공의대 도입 등과 함께 추진하려고 했지만, 의사들이 파업에 나서면서 힘없이 포기하고 말았다. 따라서 문 정부는 국민 다수 여론을 외면하고 소수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에 무릎을 꿇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정부가 의료계 반발을 해결하면서 의대 정원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다수 국민여론을 정책 원동력으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각종 조사에 따르면 “의대 정원을 1000명 이상 증원하라”는 게 다수 국민의 의견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대 정원은 2000년 의약분업에 반발한 의사단체의 요구로 10% 줄어들었다. 2006년 이후 3천58명으로 묶여 있다. 윤 대통령의 구상대로 1000명 이상 늘린다면 19년만에 정원의 30%이상 확대되는 것이다. 이같은 규모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과 같은 시민단체들이 요구해온 수준이다.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이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 정원 확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5.25. [사진=연합뉴스]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들이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 정원 확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5.25. [사진=연합뉴스]

‘피안성’과 ‘정재영’에 탐닉하는 의료계 개혁은 다수 국민의 지지 견인해낼 듯

더욱이 의료계의 반발을 이겨내고 1000명 이상 의대 정원을 증원한다고 해도 필수의료 인력난이나 지역 간 의료 불균형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거세다. 의사들의 서울 편중 현상과 특정 진료과목 편중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병행되지 않는 한 의대 정원만으로는 필수 의료진 확보, 지역간 의료 불균형 등의 문제를 풀어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의협 등을 포함한 의료계는 이 같은 논리를 내세우면서 의대 정원 증원을 반대해왔다.

지난 11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 '정재영'(정신건강의학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으로 불리는 인기 진료과목을 예로 들며 "의사 면허를 취득하면 어떤 과목을 지원하겠느냐"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물었다.

조 장관은 "상대적으로 근무 여건이 좋고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쪽에 몰릴 것"이라고 답변했다. 의대생들이 지역의사로 내려가기보다는 서울에서 개원하는 지역 편중 그리고 고수익이 보장되는 ‘피안성’이나 ‘정재영’에 몰리고 소아과나 외과를 기피하는 특정 진료과목 편중현상 등은 의대정원 증원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조 장관은 필수 의료 분야의 전공의 지원 급감에 대해 “의사 개인을 비난할 수는 없고,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면서 “의대 정원 확대만으로는 (진료 과목 양극화가) 단기간에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역 간, 과목 간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정책 패키지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공공의대 설립이나 지역의사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번 윤 대통령의 발표에서 공공의대 등에 대한 내용은 담겨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의대는 입학 후 일정 기간 공공의사로 근무할 것을 전제해 학생들을 모집하는 방식이다. 지역의사제는 역시 특정 지역 복무 의무를 부여해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이다.

결국 의료계는 ‘피안성’, ‘정재영’과 같은 돈 되는 진료과목에만 의대 졸업생들이 몰리고 암 수술과 같은 힘든 의료행위를 책임지면서도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되는 외과의사를 기피하는 세태를 정당화시키면서 의대 정원 증원이라는 현실적 개선책마저도 반대하는 셈이다.

다수 국민은 이같은 의료계의 집단이기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다. 따라서 윤 대통령이 의대 정원 대규모 증원 정책을 관철시킬 경우, 그것만으로도 역대 정부가 실패했던 최대 난제를 해결한 정부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총선에 여당에 대한 지지 기반을 확대해주는 강력한 정책적 계기가 되는 것이다.

윤 대통령 개혁 정책 동력= 1000명 이상 늘려도 천 명당 의사 수는 OECD 평균의 절반 수준

정부가 계획대로 의대 정원을 1000명 이상 증원해도 우리나라 의사 수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DC) 평균을 훨씬 밑돈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점이다. 2021년 우리나라 임상 의사 수(한의사 포함)는 인구 1천 명당 2.6명으로, OECD전체 회원국 중 멕시코(2.5명) 다음으로 적다. OECD 국가 중 꼴찌에서 두 번째인 셈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현재 국내 의대 졸업자는 인구 10만 명당 7.2명으로, OECD 평균 13.6명의 56% 수준이다. 내년부터 의대 정원을 1000명씩 늘릴 경우, 2035년에는 인구 1천명당 의사 수(한의사 제외)는 2.88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35년 OECD 국가의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도 4.5명으로 늘어난다.

의대 정원을 1000명 이상 확대한다고 해도 인구 1천명당 의사 수가 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윤 대통령의 의대 개혁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가장 강력한 팩트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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