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회 명성산 산정호수 억새꽃 축제 개막

 

명성산 봉우리 중 궁예가 최후를 마친 동굴이 있는 바위산 모습
명성산 봉우리 중 궁예가 최후를 마친 동굴이 있는 바위산 모습

해마다 이 무렵이면, 경기도 포천에 있는 높이 922m의 명성산(鳴聲山)의 정상부, 구릉지대 10만평이 억새꽃으로 뒤덮인다. 정선 민둥산, 영남 알프스,창년 화왕산과 더불어 대한민국 5대 억새 군락지다.

명성산과 바로 밑, 산정호수 일원에서는 올해로 26번째 ’명성산 억새꽃축제‘가 13일 시작됐다. 코로나 19 때문에 3년을 건너 뛰었으니 어언 30년이 된 축제다.

명성산의 또다른 이름은 한자(漢字) 그대로 울음산이다. 산에서 율음소리가 난다고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인 이 산에 부딪히는 바람, 억새를 흔들어 만든 풀들의 아우성이 울음산을 만든 것이다. 명성산이 울음산이 된 또 하나의 이유는 궁예(弓裔, 869~918년)의 전설이다.

신라의 삼국통일 뒤 고구려의 부흥을 꿈꾸고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는 기행(奇行)과 폭정(暴政)을 일삼다 왕건에 쫒겨 명성산에서 최후를 맞았다.

왕건의 군대는 바위 때문에 험악한 명성산을 공격하지 않고 포위만 했는데, 궁예와 그의 군대는 굶어죽고 말았다고 한다. 그 뒤로 궁예의 통곡, 그와 함께 이 산으로 들어간 신하와 말들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미륵보살을 자처한 궁예는 개성, 철원에 왕도(王都)를 세우고 나라 이름도 후고구려에서 태봉(泰封)으로 바꾸면서 민중을 위한 정치를 표방했다. 하지만 관심법(觀心法)으로 신하와 백성의 마음을 읽, 기행과 폭정을 일삼으면서 왕건의 반란을 부르고 말았다.

여름철 비가 많이 오면 명성산에는 ‘궁예의 눈물’이 흐른다. 많은 비가 순식간에 내리면, 화강암 암벽을 타고 곳곳에 폭포로 쏟아지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미군이 명성산 바로 옆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승진 훈련장을 만들면서 명성산의 울음소리를 더했다. 이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우르릉 쿠르릉”하는 포격과 폭격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명성산 정상에 서면, 산 아래 승진훈련장의 전경이 들어오는데, 지평선을 볼 수 없는 대한민국에서 산자락 사이에 숨어있는 여의도 면적의 50배가 넘는 이토록 광활한 구릉을 찾아낸 것이 놀랍다

승진훈련장 포사격 모습
승진훈련장 포사격 모습

승진훈련장에서는 박근혜 정부때 까지 2년 주기로 대통령이 직접 참관하는 대규모 한미합동 화력시범이 열렸다. 한미 양국군의 전투기와 첨단 무기들이 총 동원돼 수백억원치의 포탄을 쏟아냈다.

문재인 정권 5년 동안은 화력시범이 열리지 않자 당시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 정부를 향해 “실탄훈련을 하지 않는 것은 실전에서 부하들의 피를 부르는 일”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결국 주한미군에 배치돼 있는 ‘탱크 킬러’ A-10 공격기, AH-64 아파치 공격헬기 등이 한국내 사격장을 쓸 수 없어 태국 등 해외로 나가 사격훈련을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이 참관한 가운데 한미합동 화력시범은 역대 최대 규모로 부활했다.

승진훈련장에서의 사격은 대구경 총탄이나 포탄, 폭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수십리 밖에서도 소리가 들리고 땅이 진동한다. 이런 훈련이 밤과 낮, 주말에도 계속되면서 주민들의 불편과 피해가 적지 않았다.

잘못 쏘거나 튕긴 포탄, 이른바 도비탄(跳飛彈)이 지붕에 떨어지고 전투기에서 쏜 총·포탄의 탄피가 머리에 떨어지는 일도 잦았다. 가난했던 1960, 70년대에는 이런 탄피가 인근 주민들의 짭잘한 수입원이 되기도 했다.

명성산 억새꽃 군락지
명성산 억새꽃 군락지

명성산 자락에는 궁예가 숨어 있었다는 개적동굴을 비롯, 궁예봉과 궁예능선, 왕건의 군사를 정찰하기 위한 망무봉(望武峰) 궁예의 군사들이 왕건 군대에 패했다는 패주골 등 전설이 깃든 곳이 많다.

1200년전 명성산 동굴에 숨은 궁예는 바람에 출렁이는 억새들을 보면서 바르지 않은 정치로 백성의 버림을 받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을 것이다.

기원전 6세기 사람, 공자는 “정치가 무엇이냐”는 동시대 정치인의 질문에 “정치란 곧 올바름이다(政者, 正也)”라고 말해 주었다. 여기에 덧붙여 “군자의 덕은 바람(風)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草)과 같다”고 했다. “바람이 풀에 분다면, 풀은 반드시 바람의 방향에 따라 눕게 될 것(草上之風, 必偃)”이라는 설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한국 현대시로 꼽는 모더니즘 시인 김수영(1921~ 1968)이 55년전에 쓴 시, ‘풀’은 명성산 억새를 찾는 사람들에게 1200년과 현재가 공존하는 역사와 정치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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