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공천과 물갈이의 정치학

2008년 18대 총선에서 집권세력인 이명박 대통령측의 친이계가 당내 비주류인 박근혜측 인사들을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키자 상당수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선거구도를  뒤흔들어 놓았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집권세력인 이명박 대통령측의 친이계가 당내 비주류인 박근혜측 인사들을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키자 상당수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선거구도를 뒤흔들어 놓았다

윤석열 정부의 순항(順航) 여부 및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의 운명을 가를 22대 국회의원 총선이 10일로 딱 6개월이 남았다.

정치인이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 뱃지를 달기 위해서는 주요 정당의 후보가 되는, 특 공천이라는 절대절명의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한다.

우리나라 양궁선수가 그렇듯이 공천이라는 예선전, 즉 국가대표가 되는 과정이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 보다 힘든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국민의힘에서 영남권, 더불어민주당에서 호남지역은 사실당 ‘공천=당선’이라는 등식이 성립돼왔기 때문이다.

각 정당은 총선때 마다 현역의원 중 상당수를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이른바 ‘물갈이’를 중요한 선거전략으로 구사해왔다. 다선 중진 의원들에게 공천을 주지않고, 참신한 인물로 대체하는 물갈이를 통해 정치에 식상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고, 쇄신의 의지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한편으로 이런 공천 물갈이는 ‘양날의 검(劍)’과도 같은 역할을 해왔다. 의정성과가 미미하거나 물의를 일으킨 의원들을 공천에서 배제함으로써 쇄신의 의지를 보여주는 한편으로 ‘미운털’이 박힌 의원, 정적(政敵)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던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3김이 한국정치를 지배했던 시절과 3김 못지않은 당수(黨首)였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 이런 일이 많았다. 가깝게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 박근혜의원을 따르는 ‘친박’들을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켰고, 박근혜 대통령 때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이그룹에 대한 공천배제 보복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22대총선을 앞두고 예상되는 국민의힘과 민주당 양당의 공천물갈이 전망은 대조적이다. 우선 국민의힘은 물갈이 대상이 될 수 있는 다선(多選) 의원들이 많지 않다. 지난 총선때 영남지역 중심으로 다선 의원들을 대상으로 상당한 물갈이를 한데다 수도권에서 대패(大敗)한 탓이다.

현재 국민의힘 소속 의원 111명 중 3선 이상 다선 의원은 31명(3선 17명, 4선 8명, 5선 6명)으로 27.9%를 차지한다. 그나마 물갈이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영남권 다선 의원 중 막상 물갈이 대상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영남권 4,5선 그룹 중 4선의 김기현 대표, 5선의 주호영 전 원내대표, 조경태 전 최고위원 등 대부분이 당내 입지가 강한 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남권 4,5선 의원들에 대해 세대교체 명분의 용퇴압박, 또는 수도권 출마 권유가 공천배제로 이어질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의 사정은 판이하다.

우선, 소속 의원 168명 중 3선 이상 다선 의원이 39명(3선 22명. 4선 11명, 5선 5명, 6선 1명)으로 김진표 국회의장(5선)까지 합하면 40명이나 된다.

국민의힘은 영남권을 제외한 수도권이나 충청 의원들의 경우 단 한석이라도 빼앗길 가능성 때문에 물갈이 대상으로 삼기 어렵지만 민주당은 수도권 상당수 선거구가 호남 못지않은 강세지역이어서 물갈이가 용이한 편이다.

여기에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친명계와 비명계간에 상당한 내홍을 겪고 있는데다, 친명계 강성 지도부나 의원들, 심지어 ‘개딸’ 등 친명계 극성 지지자들까지 비명계에 대한 공천배제를 요구하고 있어 비명계에 대한 대대적인 ‘공천학살극’까지 벌어질 수 있다.

특히 40여명에 달하는 비명계 의원들 중 상당수가 3선 이상 다선 의원이라는 점 또한 세대교체 물갈이를 명분으로 한 비명계 공천학살 가능성이 적지 않다.

문제는 인적 쇄신을 명분으로 내건 공천 물갈이가 정적 제거의 목적으로 악용될 경우 예외없이 부작용이 뒤따랐다는 점이다.

실제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18대 총선에서 당시 한나라당을 장악하고 있던 친이명박계, 친이계가 박근혜 의원측의 친박계에 대해 대대적인 공천학살극을 벌이자 김무성 홍사덕 한선교 등 친박 인사들이 대거 무소속으로 출마해 상당수가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당시 친밖계의 영수(領袖)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들 무소속 출마자들에게 했던 ”살아서 돌아오라“라는 말은 두고두고 회자되곤 했는데, 내년 22대 총선에서도 이같은 상황이 재현될 지 여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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