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 시기에 소원해졌던 한미관계·한일관계 복원도 좋고 아무런 실질적 결과도 만들어내지 못한 굴욕적 대화 일변도의 대북 관계 청산도 좋다. 자유 진영에 복귀해 미국의 중국 견제 방침에 일정 부분 동참한 것도 좋다. 윤석열 정부의 전반적인 대외 정책 기조에 대해 크게 반대할 국민은 많지 않으리라 본다.

다만 조금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중 논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제78주년 광복절 축사에서 '우리의 독립운동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었다'고 밝혔는데, 여기에는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 발언은 복합적이고 입체적이어서 여러 줄기가 모인 다발과도 같은 '독립운동‘ 중 일부에만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역사를 단편적으로 보게 하고 결과론적으로 해석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역사 해석이 가진 문제점은 많은 선례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윤 대통령의 주장대로라면 독립 운동가들은 독립 후의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노정만을 상정하고 항일투쟁을 벌였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정말 그랬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우리가 '독립운동'이라 부르는 역사적 움직임의 최우선 목적은 ’일본 식민통치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한민족이 독립을 이뤄내 주권을 되찾는 것이야말로 선결 과제였다.

이 와중 동시대 우드로 윌슨이 제창했던 민족자결주의는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를 본국에만 적용하던 열강들에겐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의 식민지를 독립시켜 자신들이 차지하기 위해 내세운 아전인수격 원칙에 불과했다. 민족자결주의가 유명무실해진 국제적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각 민족의 해방을 지지하고 독립운동을 지원해주겠다는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제안은 일부 독립 운동가들에게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렇기에 소련의 지원을 받아들였던 독립 운동가를 모두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역사를 너무 단순화시킨 결과로 보인다. 더구나 이들 중 소련의 성립, 북한 김일성 체제 수립, 6.25 전쟁 발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물들이 분명히 존재했던 점도 고려해야 한다.

덩샤오핑이 낙후된 중국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선 어떤 방식이든 취할 수 있다며 ’흑묘백묘론‘을 내세웠듯, 일부 독립운동가들의 경우 악마와 거래했던 파우스트처럼 독립을 실현하기 위해서 소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일수 있다.

이들에게 있어 일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난 후의 국가 정체(政體)가 군주제여야 하는가 혹은 귀족제·민주제·공화제여야 하는가의 여부는 선결과제 '독립'을 달성한 후에 결정할 나중 문제였다. 독립 이후 한반도에 들어설 경제 체제가 자본주의일지, 혹은 공산주의·사회주의일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에 더해 윤 대통령은 역사가 우연적으로 형성된다는 점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고 있기도 하다. 설령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꿈꾸며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 운동가들이 주류였더라도, 수많은 우연적 요소들로 인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었다.

해방 직후 혼란했던 상황, 러시아와 중국이 각각 공산주의 종주국, 공산권에서 두번째로 강대한 나라였음을 고려하면 이들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반도가 모조리 공산화가 되리란 예상이 대세에 가까웠다. 이러한 예상을 깨고 대한민국이 기적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최대 위기 6.25 전쟁이 우연하게도 최대 반전이자 기회가 됐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현대사의 수많은 우연적 요소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됐다. 당시 미국·소련 양대 강국 뿐 아니라 중국, 북한, 한국의 각 국가전략엔 주요 정치인들의 자유의지가 반영됐는데, 이들이 뒤섞여 역사의 흐름에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과정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당시 선조들이 공산세력에 맞서 육지로 연결된 섬 한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수호해내는 과정은 일견 ’운명론적 필연‘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게 됐을 뿐이다. 무수한 우연함이 ‘위대한 구국의 세대’를 낳았던 것이다. 

만일 이 과정이 필연적이었다고 한다면 선조들의 투쟁이 갖는 가치는 오히려 격하된다. 역사가 정해진 목적, 결과대로 흘러간다면 그 누구도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없고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면 되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설운동이었다’는, 역사는 필연적이라는 식의 발언이 참이라면 아이러니하게도 우연하게 대반전을 이뤄낸 과정은 통째로 사라지게 된다. 대표적으로 윤석열 정부가 그토록 격상시키려 노력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존재는 일거에 무가 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했을 때 윤 대통령의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과정이었다'는 발언은 결과론적이기도 하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란 우연의 산물에 여러 경로와 방식이 상존했던 독립운동을 욱여넣으려 했단 점에서 특히 그렇다.

역사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 또한 중요하다. 일례로 러시아 혁명의 결과 소련이 탄생했지만, 그 과정은 필연적·법칙적이지 않았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는 하지만, 차르 황가가 볼셰비키에 의해 학살당한 후 일어난 러시아 내전에서 왕당파 백군(白軍)이 볼셰비키 적군(赤軍)에 승리했더라면 왕족을 다른 나라에서 모셔와 옹립시키곤 했던 유럽의 특성상 전제군주가 다스리는 러시아 제국은 유지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승리한 백군이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대영제국을 본받아 입헌군주제를 힘겹게 성립함으로써 제국을 어떤 식으로든 지키려 했을 수도 있다. 

러시아 혁명은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고, 이 가능성 가운데 수많은 우연적 요소의 작용으로 볼셰비키의 승리가 가장 유력해졌기에 공화제·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태어났다. 이러한 지난한 역사적 과정을 모두 무시하고 '러시아 혁명은 소련의 탄생을 위한 과정이었다‘라고 판단해버린다면 역사를 단편적, 결과론적으로만 해석하는 셈이 된다.

중국의 항일투쟁 과정과 대륙 중국에서의 중화인민공화국 수립·대만에서의 자유민주주의 국가 수립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의 항일투쟁이 품었던 무수한 많은 가능성 가운데 동시대 수많은 개별 요소들의 우연한 작용이 일어난 결과 현재의 지정학적 구도가 자리잡았다. 이 과정을 무시하고 중국이 ’항일투쟁은 중화인민공화국 건설을 위한  여정이었다‘고 자평한다면 이는 맞는 말인가. 그저 인민들에게 내세우기 위한 '통치 프로파간다‘일 뿐이다.

우리의 독립운동을 올바르게, 아니 역사적으로 적절하게 평가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홍범도 등 독립운동의 주역들이 정말로 소련에 의탁했다면, 적합한 접근법은 '소련을 추종했던 공산주의자' 혹은 '대한민국 독립운동 계보에 포함시킬 인물이 아니다‘란 식의 국가주의적 평가로 그칠 것이 아니다.

'실제로 소련에 의탁을 했는지, 했다면 당시 맥락을 통해 그 원인과 결과를 차분히 추적하는' 작업이 역사학계에서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 과거 인물에 대해 현재의 잣대로 판단하고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맥락을 고려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는 현 정치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역사적 진실 규명 작업이다. 

그러지 않고 보수 정권에서 비(非) 민족주의·비 자유민주주의적 독립운동을 의도적으로 격하하는 것은 진보 정권에서 공산계열 독립운동만을 일부러 격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우리가 ‘역사왜곡’이라며 비판하는 중국의 동북공정과도 다를 게 없다.

현재 한국에서 자주, 그것도 지나칠 정도로 과감하게 행해지고 있는 '현재 기준으로 역사 끼워맞추기'는 역사에서는 도무지 포착해낼 수 없는 도식화를 너무나 쉽게 해버린 결과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운동을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맞추려는 시도는 역사라는 무성하고 제멋대로 자라난 나무를 사회과학 이론이란 가위로 잘라 분재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는 역사를 도식화하려 했던 카를 마르크스와도 흡사하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남긴다. 마르크스는 서양, 그것도 일부 서유럽에서나 관찰되는 '노예제→봉건제→자본주의'라는 역사 흐름이 보편적 역사 발전 단계라 단정지었고, 그 끝에는 '공산주의'라는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최종 완성형 체제만이 있을 것이라고 상정했다. 그의 이론이 절대 진리라 생각했던 볼셰비키들은 소련이라는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했던 국가 단위 실험에 매진했다. 그 결과 소련은 전성기 때 미국과 전 세계를 양분할 정도의 초강대국으로까지 성장했지만, 인간의 본성을 철저히 무시한 체제였기에 내부에서부터 무너져 갔고 종국에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좌파가 탐닉했던 '도식적 역사접근'이 이제 우파에게도 매력 어필이 되는가 싶어 걱정스럽다. 이러한 도식적 접근법은 받아들이거나 이해하기는 쉽지만, 실제 역사와는 동떨어져 있다. 양쪽 모두 역사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지 않은 결과 우파는 좌파와만 다투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동일하지 않은 우파와도 대립한다. 좌파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곧 끝없는 정쟁으로 인한 국력의 낭비로 이어지고, 더 중요한 국정과제에 신경쓸 여력을 빼앗는다. 그 과정에서 독립운동이란 다사다난한 역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 입맛에 맞게 다시 쓰여질 뿐이다.

우리가 결과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함으로써 망할수도 있는 국가를 살려낸 것은 맞지만,그렇다고 우리의 역사 전체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향한 움직임이라고 말할수는 없다.이러한 점에서 ‘우리의 독립운동이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이었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은 듣기에 좋다 하더라도 방향만 다를뿐 좌파들이 즐겨 쓰는 방식의 프로파간다적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뒷맛이 개운치는 않았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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