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8강전 한국과 중국의 경기 응원 이벤트를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포털 사이트 ‘다음’의 응원 페이지에서 중국팀 응원수가 한국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아 90%를 넘기자, 정부여당은 총선을 불과 6개월 앞둔 시점에 ‘반국가 세력’에 의한 여론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1일 중국 항저우 황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8강전 한국과 중국의 경기. 한국 2대0 승리 후 선수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일 중국 항저우 황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8강전 한국과 중국의 경기. 한국 2대0 승리 후 선수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심각한 국기문란이 될 수 있다’고 했고, 김기현 대표는 포털 댓글에 국적을 표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나서서 여론조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했다.

한 총리는 지난 4일 "가짜뉴스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심각한 사회적 재앙"이라며, "방통위를 중심으로 법무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유관 부처와 함께 '여론 왜곡 조작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범부처 TF를 시급히 구성하라"고 지시했다. 한 총리의 강경한 대처에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민 안전과 강화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민 안전과 강화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여론조작 방치한 ‘다음’의 행태에는 눈감으며 정부여당을 맹비난

정부여당의 이같은 대응에 민주당이 발끈하며 ‘비상식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다음’에서 이뤄진 여론조작의 원인 규명이나 향후 후유증 및 유사 사태 재발 방지 대책 등에 대해 논의하는 대신 오히려 정부여당을 공격했다. 응원 페이지에 로그인하지 않고 응원 클릭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여론 조작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열어놓는 시스템을 구축한 ‘다음’에 대한 최소한의 비판도 하지 않았다.

도둑놈(‘다음’을 통한 여론조작)을 감싸면서 경찰(여론조작 원인 규명하고 재발 막으려는 정부여당)을 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적 책임을 지는 공당의 자세가 완전히 실종됐다고 볼 수 있다.

최민석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4일 국회 브리핑에서 “정부가 클릭 응원 서비스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며 “상식적으로 여론조작 세력이 고작 스포츠 경기 클릭 응원을 조작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대변인은 “더욱이 이를 빌미로 국무총리까지 나서 범정부 TF(태스크포스)를 만들겠다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며 “국민의 커지는 질타에 잘못된 국정운영을 되돌아보지는 못할망정 언론의 입을 막고 국민의 소통 창구인 포털을 통제하려고 달려들다니 정말 파렴치한 정부”라고 했다.

‘오욕의 댓글 조작 역사’ 가진 민주당, 일말의 반성도 없이 여론조작을 가볍게 여겨?

그러나 민주당의 이같은 태도는 양심불량의 전형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민주당은 불과 2년전에 포털을 통한 여론조작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전력을 가진 정당이다. 포털 여론조작에 대해서는 겸허하고 반성하는 자세를 보여야 하는데 오히려 적반하장격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2016년 6월∼2018년 2월 ‘드루킹’(온라인 닉네임) 김동원 씨(52)와 공모해 포털사이트 기사 8만여 건의 댓글 순위를 조작한 혐의에 대해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드루킹은 여론조작 자동화 프로그램인 ‘킹크랩’을 사용했다. 더욱이 댓글 순위 조작이 이뤄진 기간에는 지난 2017년 대선도 포함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과정에 한 점 부끄럼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처럼 ‘오욕의 댓글 조작 역사’를 가진 민주당이 포털 여론조작 사태에 대한 대책 마련을 ‘포털 통제’라고 비난하는 것은 국민적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포털의 여론조작을 가볍게 치부하는 정치문화라도 정착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태도라는 것이다.

친민주당 성향 언론인, 국민의힘이 ‘요즘 아이들의 밈’을 이해 못한다고 조롱해

좌파 세력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한국 네티즌의 장난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사태의 의미를 평가절하하려는 흐름도 있다. 지난 5일 CBS라디오에 출연한 김준일 뉴스톱 수석 에디터는 “네티즌 특유의 문화 ‘밈’에 대한 몰이해일 가능성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준일 뉴스톱 수석 에디터는 ‘다음’ 응원 이벤트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밈에 대한 몰이해 가능성’을 거론했다. [사진=CBS 유튜브 캡처]
김준일 뉴스톱 수석 에디터는 ‘다음’ 응원 이벤트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밈에 대한 몰이해 가능성’을 거론했다. [사진=CBS 유튜브 캡처]

김 에디터에 따르면, ‘밈’은 스포츠 응원전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었을 경우, 자신의 기술로 그걸 반대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일종의 놀이라는 설명이다. 한마디로 ‘요즘 애들은 다 이러고 놀아. 국민의힘이 요즘 애들의 이런 문화를 이해 못한 데서 발생한 문화적 차이 ’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전 경향신문 기자로, 친민주당 성향으로 분류되는 김준일씨의 이같은 인식은 최민석 민주당 대변인의 논평과 궤를 같이한다. 최 대변인은 ‘중국 응원 비율이 높았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조작 운운하는 것은 호들갑’이라고까지 했다.

국민의힘은 사태의 본질을 강조...포털 내 여론 조작 가능성 자체가 심각한 리스크임을 강조

하지만 국민의힘은 단호한 입장이다. 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윤희석 대변인은 “테러가 무방비 상태에 있는 불특정 다수를 공격하듯, 여론조작이 무방비 상태에 있는 불특정한 국민에게 원칙 없는 정치적 폭력을 가한다는 점에서 같다”고 설명했다.

윤 대변인이 테러에까지 빗대서 강조하는 이유는 ‘지난 17년도 대선에서 자행된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에 관련된 트라우마를 아직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단순히 스포츠 경기 응원 클릭을 가지고 정치 영역에서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여론과 다른 허위의 상황이 거대 포털에서 구현이 가능하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누군가가 매크로를 돌린 것 같다’는 진행자의 의견에 윤 대변인은 “누가 그랬냐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장난으로 했든 의도를 갖고 했든 여론을 조작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포털에 조작된 숫자가 노출돼 있으면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우려스러운 것인데, 야당이 이에 대해 예민하게 비판적으로 나오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진행자는 “응원전이 열리던 자정께 철없는 네티즌인 어그로꾼 하나가 관종 짓을 한 건데, ‘정부여당이 이걸 물어버렸다’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며 ‘어그로꾼에 의한 밈’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윤 대변인은 “어그로꾼의 장난을 예민하게 여긴다고 생각하는 의도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면서 “어그로꾼 한 명이 이렇게 문제를 만든 그 사안의 중대성을 봐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윤희석 국민의힘 대변인은 5일 CBS라디오에서 ‘다음 응원 이벤트에 대한 정부여당의 대처’에 예민하게 비판하는 야당의 태도를 꼬집었다. [사진=CBS 유튜브 캡처]
윤희석 국민의힘 대변인은 5일 CBS라디오에서 ‘다음 응원 이벤트에 대한 정부여당의 대처’에 예민하게 비판하는 야당의 태도를 꼬집었다. [사진=CBS 유튜브 캡처]

‘일각에서는 포털 길들이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는 진행자의 의견에 윤 대변인은 “포털이 짐승도 아니고 무슨 길들이기냐?”면서 “요즘에는 그런 게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용어를 쓰는 자체가 이 상황을 여야의 정치 대립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인 것 같다는 설명이다.

여론의 힘은 강해지는데 여론조작의 힘은 더 강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선거를 6개월여 앞둔 시점에 특정 국가나 특정 세력이 관여됐다면 분명 더 큰 문제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핵심은 ‘포털이 허술한 시스템으로 관리돼, 누군가 한 명의 장난으로라도 조작이 가능하다는 자체가 문제’라는 데 있다.

민주당, 여론조작한 나쁜 놈들 잡겠다는데 쌍심지를 켜고 반대...‘제2의 드루킹 사건’ 걱정해?

따라서 이번 응원 조작 사태에 대해 여야가 함께 문제의식을 갖고 여론조작 가능성 차단에 협력해야 하는데도, 민주당은 발끈하면서 오히려 화를 내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조선일보 박은주 부국장은 “여론조작에 대해 수사도 아니고 조사 단계에서 민주당이 이같이 화를 내는 이유는 제2의 드루킹 사태가 될까봐 (우려하는 것)”라고 진단했다.

박 부국장은 지난 5일 조선일보 유튜브에서 이같이 말하며 “그런 공포 때문에 (여론을) 조작한 나쁜 놈들 잡겠다는데 쌍심지를 켜고 반대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이 집권했다 하더라도 이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함께 진행한 조선일보 신동흔 차장은 “어느 지점에서 민주당 인사와 연결된 게 나올 수 있다”면서 “드루킹 사건도 김어준과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가 국민의힘이 조장했을 거라며 고발했던 건데, 김경수 지사가 연루된 게 밝혀진 것”이라고 되짚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헤집어서 좋을 게 없다는 뜻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두 사람은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는 여론을 조작하는 세력을 막아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19세기식 표현의 자유를 빌미로 여론 조작 세력을 방치했다가는 향후 AI를 이용한 여론조작 기술의 공격으로 진실과 거짓을 아예 구분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는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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