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위대한 문자 한글이 577년 전 1446년에 반포되었다. 인류역사상 만들어낸 문자 중 가장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다. 누구나 서너 시간이면 터득할 수 있다. 한국은 해방 후 문맹률이 8할 정도였다. 이승만 대통령의 국민교육과 한글 보급으로 몇 년 안에 전 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국가가 되었다. 총·균·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Gered Diamond)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라고 높게 평가하였다.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 족이 한글을 그들의 문자로 차용하였고,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주도 표기문자로 도입했었다.

 

  디지털 시대에는 한글만큼 효율적인 문자가 없다. 바로 옆 나라들과 비교하면 상상을 초월한다. 컴퓨터로 문자를 입력하는데 한글은 중국어나 일본어보다 6배 이상 빠르다. 한글은 소리 나는 대로 입력하면 된다. 무슨 소리든 표현할 수 있다. 중국어나 일본어는 소리 나는 대로 정확하게 표현하기가 어렵다. ‘맥도널드’를 표기하면 엉뚱하게 들린다. 중국어의 ‘麦当劳(마이당라오)’와 일본어의 ‘마쿠도나루도’가 되어 버린다. 고급 단어의 경우 동음이의어(同音異意語)가 너무나 많다. 먼저 영어 알파벳을 이용해 입력하면, 발음은 같으나 뜻이 다른 단어들이 여러 개 뜬다. 심할 경우 수십 개나 된다. 그 가운데서 원하는 단어를 찾아내서 클릭해야 입력이 끝나는 것이다.

 

  한글이 왜 우수한가? 이웃의 글자와 비교해 왜 엄청난 차이가 나는가? 중국어와 비교하면 표의문자와 표음문자의 차이다. 또한 일본어와 비교하면 같은 표음문자인데도 불구하고 차이가 크다. 음절(Syllable)의 가짓수가 크게 차이 난다. 한국어 음절의 가짓수가 이론상 일만 개가 넘고, 실제 수천 개를 사용하는 데 비하여, 일본어의 음절 가짓수는 200여 개다. 일본어 알파벳은 기본단위가 자음과 모음이 붙어있어서 떼어낼 수 없는 구조다.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음절 수가 매우 제한될 수밖에 없다. 중국어도 마찬가지다. 전자정보인협회 나경수 회장은 중국어의 음절 수는 411개이고 따라서 4성의 성조(聲調) 변화를 넣어서 이론상 가능한 음절 수를 1,644개로 늘렸으나, 실제로는 1,340개 정도 사용할 수 있다고 분석하였다. 중국은 땅덩어리도 크지만, 이러한 성조를 가미한 언어구조 때문에 사투리 간의 차이가 심해서 서로 다른 지방 사람 사이에 의사소통이 어렵다. 재판과 같은 공식 석상에서 통역을 써야 할 정도다.

  한글은 성조 변화를 주지 않고도 편하게 발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발음의 전달력이 탁월하다. 지방마다 사투리야 있지만, 의사소통에 지장이 전혀 없다. 아마도 한글만큼 있는 대로 발음하면 되는 문자는 없을 것이다. 예컨대 영어의 경우 하나의 모음이라도 단어에 따라 여러 가지로 발음한다. 

  정말 우리는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세종대왕이 글 모르는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마음으로 학자들을 모아서 문자를 창제한 것이다. 몇 사람이 졸속으로 만들어낸 게 아니라, 당대 최고의 학자들을 모아서 연구하고, 또 신숙주 같은 신하를 중국에 보내서 음운학 대가들과 토론한 결과를 반영시켰다. 중국 학자들과 교류를 통해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원리까지도 한글 창제에 반영하였다. 

  이렇게 훌륭한 문자를 가지고도 왜 조선은 나라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렸나? 아녀자나 하층민이나 쓰는 글이라고 홀대하였다. 보물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왜 그랬나?

  중국이라는 대륙 제국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중국 것이면 무엇이든 좋은 걸로 여겼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이후 압록강과 두만강 남쪽으로 생활 공간을 축소하고 대륙의 옛 고토를 회복할 뜻을 접었다. 중국 것이라면 무조건 우수한 걸로 보는 모화(慕華)사대주의 사조가 압도하였기에, 우리의 보석인 한글을 하찮게 보았다. 

  일제 36년 일본은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걸고 조선을 동화시키려 하였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조선 고유의 문화를 말살하려는 정책을 추구하였다. 민족 독립의 싹을 자르기 위해 부락제(部落祭)와 같은 전통문화를 억제하였다. 창씨개명(創氏改名)과 함께 조선어 사용금지 정책을 취하였다. 언어야말로 그 국민정신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통일 이후 만주족을 동화시켰고, 만주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만주어가 없어졌으니 만주족은 정체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유념해야 할 교훈이다.

 

  일제의 식민 통치에 저항해 독립운동을 하는 데 있어 한글학회와 같은 단체가 중심적 역할을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신의 언어를 찾아내는 것이 자신의 얼을 지키는 것이고, 그것이 항일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된 것이다. 지금은 국력의 신장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한국어 학습열이 크게 높아졌다. 자유베를린대학 이은정 교수는 조선일보 인터뷰(2023. 9. 25)를 통해 독일에서 한글과 한국학 수강생이 일본이나 중국학보다 현저히 높아졌다고 설명한다. 베트남에서는 영어전공자보다 한국어 전공자들이 훨씬 높은 보수를 받는다. 

  요즈음 일본을 여행하면 격세지감이 들기도 한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에즈라 보겔(Ezra Vogel)교수가 ‘일본 제일(Japan as Number One)’이라고 평가하였고, 한국인에게는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었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거치면서 지금 한국보다 약간 앞설 정도로 정체되었다. 디지털 시대에는 한국보다도 뒤처진 분야도 많다. 한글의 우수성의 간접적인 효과가 아닐까? 일본인이 과거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탓도 있지만, 아직도 행정관서에서 팩스 문서를 요구하고, 도장 날인을 고집한다. 한국의 KTX는 개찰구에 차표가 필요 없으나 신칸센(新幹線)에는 필요하다. 한국보다 근대화가 백 년 앞섰고, 사회 전반에 선진 문화가 농축되어 있지만, 전광석화처럼 발전하는 현대문명에는 적응이 느린 것 같다. IT산업의 선두를 달리는 삼성전자의 매출액이 일본의 관련 기업 전체를 합한 것보다 많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제2차 대전이 미국의 승리로 끝나고, 독립을 갈구하던 우리는 나라를 세웠다. 이승만이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어려운 환경에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세웠다. 6.25 남침을 당하여 국제사회에 호소하여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엔군의 참전으로 낙동강 전선에서 침략군을 격퇴하여 38선에서 휴전을 맞이하였다. 미군을 붙잡기 위해 벼랑 끝 외교를 구사하여 1953년 10월 1일 한미동맹조약을 체결하였다. 당시 동북아 구석의 작은 나라에 대해 미국이 상호방위조약으로 방어 의무를 진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 한미동맹 70년이 한국의 고도성장을 보장하는 토대가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하면 된다(Can Do Spirit)’는 적극적 참여정신을 끌어내어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새마을 운동을 계기로 어느 개발도상국도 이루지 못한 녹색혁명까지 달성하였다. 

  그 위대한 성취가 지금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서는 민주주의의 성숙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사회 안의 극심한 이념 갈등으로 나라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위험이 폭발할 지경이 되었다. 문제의 핵심은 진보와 보수의 건전한 경쟁이 아니라는 점이다. 

  2,500만 북한 동포의 자유와 인권을 짓밟는 독재정권을 추종하는 세력이 국민을 선동해서 끌고 간다는 데 있다. 이들이야말로 반국가세력이다. 민족을 내세워 북한 정권의 반일·반미 구호에 보조를 맞추려 한다. 조공체제를 복원하려는 중국 정권에 대해서는 한없이 졸아드는 신사대주의 행태를 보인다. 광장을 무조건 점거하려는 ‘개딸’들의 행패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뒤에 조선족을 빙자한 우마오당의 선전 선동이 작동한다는 의혹을 하루빨리 밝혀내야 한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한·중 축구 경기가 끝날 무렵 포털 사이트 다음(Daum)의 클릭 응원에는 중국을 응원하는 비율(클릭 수)이 한때 92%까지 올라갔다. 하루빨리 이러한 난장판을 정리하여 우리 사회가 건전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서 한강의 기적을 다시 재현해야 한다. 

  다행히 8.18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3국 정상 회동에서 한국은 주도적 외교를 펼침으로써 결과적으로 전 세계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발언권을 높이게 되었다. 경제력 10위, 국력 6위에 걸맞은 외교를 펼치는 것이다. 지난날 경제력에 비해 현저히 낮았던 외교적 역할도 크게 격상되었다. 국제적인 위상의 변화에 맞추어 국내적으로도 극심한 갈등을 해소하여 정상적인 사회로 복원해야 한다. 가장 먼저 북한 정권을 무조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반국가세력을 고립·제거해야 한다.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전 통일원 차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