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적 비관론도 근거 없는 낙관론도 아닌, 냉철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낙관론이 필요하다.
-지금 우익 진영에는 쓰레기 청소, 신상필벌의 원칙 확립과 의리가 절실히 필요하다.
-나라 무너질 걱정하기 전에 무너져 가는 우익 진영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그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선택할 여지는 남아 있다.

홍지수 객원 칼럼니스트
홍지수 객원 칼럼니스트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해군 전투기 조종사 제임스 B. 스톡데일(James B. Stockdale) 장교는 A-4 스카이호크를 몰고 출격해 임무를 수행하다가 북베트남에서 대공포에 격추된 뒤 포로로 잡혀 8년 동안 하노이 힐튼이라 불리는 악명 높은 포로수용소에서 8년을 견뎌낸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끔찍한 고문이 자행되는 가혹한 환경에서도 스톡데일은 가능한 한 많은 미군포로들이 절망을 이겨내고 살아 돌아가도록 수용소 내에서 여건을 조성하는 한편 수용소측이 포로를 잘 대우한다고 선전할 영상을 찍는 데 이용당하지 않으려고 자해까지 해가면서 죽음을 불사한 저항을 한다. 미국의 전쟁범죄를 인정하면 대우를 개선해주겠다는 회유에 넘어간 미군포로도 있었지만 스톡데일은 끈질기게 버텼다.

스톡데일은 미군포로들을 위해 월맹 베트공의 고문에 단계적으로 대처하는 지침을 만들고 정교한 비밀암호를 만들어 포로들끼리 소통이 가능케 함으로써 고립감을 느끼지 않도록 했다. 미군포로들은 이 비밀암호를 이용해 스톡데일이 격추된 지 3년째 되는 날 그에게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스톡데일은 1973년에 드디어 석방되었지만 격추당시 척추를 다친데다가 포로로서 당한 무자비한 고문과 폭행의 후유증으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았다.

스톡데일은 결말이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스톡데일은 포로수용소에서 살아 나가게 되리라는 믿음이 흔들려본 적도 없고 결국 자신이 이기고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자신의 삶을 규정하는 사건으로 승화시키게 되리라고 굳게 믿었다. 스톡데일은 당시를 돌이켜보면서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그 어떤 것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한다.

스톡데일에 따르면, 베트남 포로수용소에서 가장 먼저 사망한 포로는 시한을 정해두고 그 때까지는 풀려난다고 믿은 근거 없는 낙관론자였다. 그런 이들은 희망이 실현되지 않자 망연자실해 살 의지를 잃었다. 그 다음으로 사망한 포로는 절대로 살아 돌아가지 못한다고 절망한 극단적 비관론자였다. 끝까지 살아남은 포로는 엄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대책을 강구하면서 믿음을 잃지 않은 현실적이고 냉철한 낙관론자였다. 결국 고난을 이겨내리라는 믿음은 엄혹한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뒷받침해야 실현된다.

마이크 브론스키(Mike Vronsky)는 영화 <디어헌터(The Deer Hunter)>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절친한 친구사이인 마이크, 닉, 스티븐 세 사람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월맹 베트콩의 포로가 된다. 그리고 베트공은 여흥삼아 포로들에게 서로를 상대로 러시안룰렛을 시키면서 내기를 건다. 나약한 스티븐은 마이크를 상대로 러시안룰렛을 하다가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실수로 방아쇠를 당기는 바람에 총알이 머리를 스쳐 다친다. 마이크는 닉과 계략을 짜내 월맹 베트공들을 죽이고 나약한 스티븐을 추슬러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나무 그루터기에 몸을 싣고 강을 따라 떠내려가던 세 사람은 미군 헬리콥터에 발견된다. 닉이 먼저 헬리콥터에 구조되고 마이크가 뒤를 따른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헬리콥터에 가까스로 매달려있던 스티븐은 힘이 부치자 강물로 다시 떨어지고 그를 구하기 위해서 마이크는 다시 강물로 뛰어든다. 다리가 부러진 스티븐을 부축해 가까스로 적진에서 벗어난 마이크는 자유진영 월남 군인에게 스티븐을 맡긴다. 한편 구조된 닉은 사이공에 있는 군인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한 후 탈영을 해 홍등가에 흘러들어가 러시안룰렛을 해 돈을 번다.

미국으로 돌아온 마이크는 수소문 끝에 스티븐을 만나게 되고 불구가 된 스티븐에게 사이공에서 누군가가 거액을 송금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돈을 보내는 사람이 닉이라고 추측한 마이크는 베트남으로 돌아가 실종되었던 닉을 찾아내지만 닉은 마이크를 알아보지 못한다. 마이크는 닉의 옛 기억을 되살려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닉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면서 함께 사슴사냥을 갔던 얘기를 한다. 닉은 비로소 마이크를 알아보고 미소를 짓지만 관자놀이에 댄 총을 발사해 자살하고 만다.

문 정권 하의 방송통신위원회는 공영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황당한 사유를 내세워 절차도 무시하고 KBS 이사 강규형 교수를 부당하게 해임했다. 물러나라는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려 했던 강규형 교수는 그 과정에서 KBS 언론노조 노조원들에게 폭행까지 당했고 지금 여러 건의 소송을 진행하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강 교수가 재직하는 학교는 강 교수와 관련해 끊임없이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야당 몫으로 임명된 나머지 네 명의 이사들 가운데 일부는 몸 사리기와 눈치 보기, 침묵과 비겁과 변절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전우는 총 맞고 피 흘리고 있는데 그 알량한 이사 자리 몇 달 더 해먹으면서 목구멍에 밥풀떼기 집어넣을 생각이나 하고 있다.

강규형 이사 해임을 “초법적 폭거”로 규정하고 해임과정에서 발생한 강 이사에 대한 인권유린을 파헤쳐 가해자가 법적심판을 받게 하겠다며 거창하게 성명서까지 발표한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변호사들 가운데 실제로 강규형 이사와 관련된 소송에 발 벗고 나서서 뛰고 있는 변호사는 극소수다. 강 교수가 처한 고난을 발판삼아 우익 진영에 의인이라는 인상을 주고 이를 바탕으로 정계에 진출하려는 기회주의자들이 득실거린다.

허구의 인물이기는 하나 영화 <디어헌터>의 마이크는 자신이 미군에게 구조되었는데도 곤경에 처한 친구를 위해 다시 적진의 강물 속으로 뛰어들고, 전쟁터에서 실종된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 받는 친구의 기억을 되살려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부리를 겨눈다. 지금 우익 진영에서 이런 결기와 의리를 기대할 수 있는가.

멀리 갈 것도 없다. 자유한국당, 아니 자해공갈당(자기 당이 배출한 대통령의 부당한 탄핵에 앞장서는 자해 행위를 하고는 자신들에게 투표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협박 공갈하니 자해공갈당이 아니고 뭔가)은 선거에서 참패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자해공갈당 대표 권한대행이라는 인간은 우익 진영 국민들에게 “국정농단세력, 적폐세력, 수구냉전세력임을 인정하자.”라는 개소리까지 하고 있다. 자해공갈당 소속으로 탄핵에 찬성했던 의원들 가운데는 사석에서 탄핵이 잘못임을 인정하는 이들도 상당히 있다고 들었다. 떳떳하지 못하고 비겁한 인간들. 잘못을 인정할 용기도 없는 인간들. 이런 인간들이 선거에서 이기면 오히려 비정상이다.

그동안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정권에 몸담았던 사람들과 우익 진영 활동가들의 연이은 구속과 재판 과정을 지켜보았을 법조계가 철저하게 침묵하고 있는 상황도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금 그들에 대한 재판이 적법절차를 지켜가면서 공정하게 철저한 증거를 토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법조인들에게 묻고 싶다. 자신이 몸담은 분야를 지탱하는 원칙이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찌 이토록 조용한가 말이다.

법조계는 자기 밥그릇을 빼앗기기 전까지는 계속 침묵할 작정인지 그 흔한 형식적 성명서 한 장 발표하지 않는다. 박 전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태블릿 PC가 부실한 증거임을 밝혀낸 사람, 수만 쪽이 넘는 소송관련 문서와 판결문을 분석해 허점을 파헤치고 있는 사람 모두 법조인이 아니라 구속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나 우종창 전 월간조선 기자처럼 평범한 시민이다. 법조인들은 창피하지도 않은가.

지난 몇 달 동안 대학교에서 요청을 받아 강연을 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초청해준 교수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우익 성향인 학생들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숨긴다고 했다.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하기보다 우익으로 커밍아웃하기가 훨씬 힘들다는 말도 했다. 이런 학생들을 용기 없는 젊은이들이라고 어찌 탓하겠는가. 우익 진영 어른들의 행태를 보면 그럴 만도 하다. 결기도, 의리도 없고, 신상필벌은 쓰레기통에 처박은 지 오래고, 비겁한 기회주의자와 배신자에게 끊임없이 기회가 주어지는 진영에게 무슨 기대를 하겠는가. 어른들이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 주리라는 믿음이 있어야 용기 있게 나서지 않겠는가.

아우슈비츠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처절하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의 고결함과 존엄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얘기한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선택할 여지는 남아있다. 6.13 선거 후 우익 진영은 망연자실, 자포자기해 철저한 무력감에 빠져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할 일은 많다. 나라가 망해간다고 발만 동동 구르지 말고 우익 진영 집안 청소부터 하자. 무사안일과 일신영달에 찌든 이, 기회주의자와 배신자, 이쪽 진영이 아니라 저쪽 진영에 가있어야 할 인간 등 쓰레기부터 처리하자.

이제 더 이상 침묵할 자유는 없다. 진실을 말할 책임만 남았다. 그러지 않으면 우익 진영은 정말로 월하(月下)의 공동묘지(共同墓地)로 변할지도 모른다. 북한 김일성이 소련 스탈린의 사주를 받아 남한을 침략한 6.25다.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고 국립묘지에 누워있는 선배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는 말자. 적어도 끝까지 싸웠노라고 당당하게 얘기할 자격이라도 갖추자. 죽을 때 죽더라도 원칙과 의리는 지키고 죽자. 요기 베라(Yogi Berra)의 말마따나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홍지수 객원 칼럼니스트('트럼프를 당선시킨 PC의 정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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