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 뒤 첫 언론인터뷰 주목

박근혜 전 대통령이 25일 낮 대구 달성군 사저 인근에 있는 현풍시장을 찾아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5일 낮 대구 달성군 사저 인근에 있는 현풍시장을 찾아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연합뉴스

2021년 12월 31일 특별사면된 이후 침묵을 지켜오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앙일보와 첫 언론 인터뷰를 갖고 자신의 탄핵을 둘러싼 전후 상황과 재임 시 공과(功過), 현 정치상황 등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26일 중앙일보는 박 전 대통령의 대구시 달성군 사저에서 2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박 전 대통령 및 그를 지지하는 이른바 ‘찬박세력’의 정치세력화 가능성을 둘러싸고 관심이 고조돼왔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내년 총선에 친박계 인사들의 출마설에 대해 “(출마가) 저와 연관된 것이란 얘기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과거 인연은 과거 인연으로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선을 그었다.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20년 총선때 자신이 옥중서신을 통해 보수단결 메시지를 낸 것에 대해 “보수가 다수당이 돼야 문재인 정부를 견제할 수 있지 않겠냐는 마음에서 우선은 일단 단결해 선거에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와함께 국정농단 특검 팀윤석열 수사팀장이 보수 진영의 대선후보가 돼 정권교체를 한 데 대해 “좌파 정권이 연장되지 않고 보수 정권으로 교체된 것에 안도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우선 자신의 탄핵과 관련해 국민에게 “주변을 잘 살피지 못해서 맡겨 주신 직분을 끝까지 해내지 못하고 많은 실망과 걱정을 드렸던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진심으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이른바 ‘국정농단’ 문제에 대해 “검찰 조사에서 듣고 정말 너무 놀랐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제 불찰이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부에 대한 평가와 관련, “임기를 마치지 못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실패한 것’이라고 한다면 받아들인다”면서도 “‘정책적으로 실패한 정부’라고 한다면 도대체 어떤 정책이 잘못됐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위안부 합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체결 등 재임 시 외교안보 분야의 주요 결정에 대해 “안보를 위해서 꼭 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일을 정말 하늘이 도우셨는지 다 하고 감옥에 들어가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최서원씨와의 인연에 대해 “최 원장(최씨가 과거 유치원 원장을 지내 평소 ‘최 원장’으로 호칭)은 최태민 목사의 딸이라서 알고는 있었지만 처음부터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1998년에 제가 대구시 달성군 보궐선거에 나오면서 최 원장의 어머니가 달성에 와서 저를 도와주었고, 또 그때 최 원장의 남편인 정윤회 실장도 함께 와서 도와줬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청와대로 들어오면서 사적인 심부름을 할 사람이 없었다. 제가 여성이니까 (남성) 비서관들한테 시키기 어려운 것들이 있지 않겠나. 그래서 최 원장이 청와대에 드나들면서 심부름하게 된 것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한 번도 최 원장이 저를 이용해 사적인 잇속을 챙긴다거나, 이권에 개입하거나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심 없이 저를 도와주는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씨가 추진한 미르, 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서 롯데ㆍSK 등 대기업 회장들에게 대가성이 있는 뇌물성 출연금을 내도록 한 일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와함께 남재준·이병기·이병호 등 전 국정원장들에게 특활비 36억5000만원을 받았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국정원에서 청와대 운영과 관련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돈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고, 또 ‘역대 정부에서도 그런 지원을 해왔다’길래 그러면 ‘지원받아서 일하는 데 쓰라’고 했다.”면서 “다만 어디에 썼는지 보고를 받은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특활비를 제 사적 용도로 쓴 것은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또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서 당시 유승민 의원 등 비박계 정치인들을 배제하고 친박계를 공천하기 위해 청와대가 ‘친박 리스트’를 관리하고 불법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혐의로 유죄를 받은 것에 대해서는 “제가 구체적으로 리스트를 만들어 당에 전달하면서 ‘이 사람들은 꼭 공천하라’고 한 기억은 전혀 없다.”면서 “‘진박 감별사’라는 얘기가 있어서 제가 (친박계에) 주의를 줬는데, 정말 그때 강하게 주의를 줬어야 한다는 후회는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제가 명시적으로 유승민 의원 공천을 주지 말라고 한 적은 없다. 그러나 청와대 참모진이 제가 유 의원을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기 때문에 결과론적으로 (공천 파동은) 제 책임이다. 당시 김무성 대표가 공천과 관련해 저한테 면담 요청도 했고, 전화 연결도 부탁했는데 그게 (연결)되지 않았다. 그 얘기를 제가 구치소에 들어와서야 전해 들었다. 당시에 저는 전혀 몰랐던 일이고 그래서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나’ 하고 분노했지만 누구를 탓하겠나. 그것도 대통령인 제 책임이라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울러 자신의 국회 탄핵 표결 때 일부 친박계 의원들도 찬성표를 던진 것과 관련해 “소위 ‘친박’이라는 의원 중에 탄핵에 찬성한 의원도 있었고, 저의 오랜 수감 기간 동안 한 번도 안부를 물은 적이 없는 의원이 대부분이다. 동생(박지만 EG 회장)의 친구인 의원도, 원내대표였던 의원도 탄핵에 찬성했다는 얘기를 듣고서 사람의 신뢰와 인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또 2015년 목함지뢰 도발 사태 땐 남북 간 긴장이 준전시 상태에 달할 만큼 남북관계가 요동쳤음에도 박근혜 정부가 북한에 유화 대신 원칙적 자세를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질문에 대해 “대북 정책은 ‘우리의 안보는 확실하게 지킨다’는 원칙에 충실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비록 물밑 접촉은 없었지만, 북한이 전향적 자세를 보여주면 얼마든지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밝혀 왔고, 그런 기조하에서 ‘드레스덴 선언’도 나온 것”이라면서 “실제로 2015년까지는 남북 간의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2016년 들어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 발사로 도발하면서 잠정적으로 교류가 중단됐다. (이후) 강력한 한·미 동맹, 국제사회와의 공조 체제를 구축해 ‘국제사회 대 북한’의 구도가 정착됐다.”고 밝혔다.

그는 구속 수감된 상태에서 문재인 정부의 탄생을 지켜본 심정에 대해 “대선 소식을 듣고 마음이 참 착잡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에 북핵에 대한 대응 방식이라든가, 동맹국들과의 불협화음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나라 안보를 비롯해 여러 가지로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과거 친박계 인사들이 출마해 재기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내년 총선에 별 계획이 없다. ‘정치적으로 친박은 없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 과거에 정치를 했던 분이 다시 정치를 시작하는 문제는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제가 언급할 일이 못 된다.”면서 “다만 정치를 다시 시작하면서 이것이 저의 명예 회복을 위한 것이고, 저와 연관된 것이란 얘기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과거 인연은 과거 인연으로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에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다음달 4일부터 중앙일보 지면을 통해 매주 3회에 걸쳐 자신의 회고록을 연재하기로 했다.

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제1회는 ‘북한 3차 핵실험과 개성공단 위기’로 2011년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을 맡았을 때부터 2021년 특별사면으로 출소할 때까지의 약 10년간의 역정을 다룰 예정이다.

한편 중앙일보와의 인터뷰가 공개되기 하루전인 2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구 달성군 사저 와 가까운 현풍시장을 찾아 주민들을 만났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 4분께 달성군 현풍시장 입구에 모습을 나타냈다. 측근 유영하 변호사가 동행했다. 얇은 셔츠에 긴 청치마를 입고 운동화를 신는 등 편한 복장을 한 모습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상인들이 파는 어묵, 연근, 고구마 줄기, 호박잎 등을 직접 현금을 주고 구매했다. "이건 직접 재배하신 건가요"라고 묻거나 "브로콜리는 어떻게(얼마에) 파세요"라고 묻는 등 적극적으로 상인들과 대화를 나눴다.

한 상인이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라고 묻자 박 전 대통령은 "저도 오래전에 오려고 했는데 이렇게 늦어졌네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박 전 대통령은 시장을 돌며 만난 상인들과 일일이 웃으며 악수하는 등 밝은 모습을 보였다.

상인들은 "건강하세요", "보고 싶었어요"라고 답하며 박 전 대통령과 인사를 나눴고 일부 주민들은 박 전 대통령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30분 가까이 시장을 둘러본 뒤에 시장을 떠났다.

그는 차량에 타기 전 방문 이유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건강도 안 좋고 이런 저런 일로 많이 늦어졌다"며 "추석이 가까워서 장도 보고 주민들도 볼 겸 찾았다"고 짧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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