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 [사진=연합뉴스]
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 [사진=연합뉴스]

 

20년 전 필자가 근대 사료를 찾다가 일정시기 1927년(소화 2년)에 조선총독부에서 편집 발간한 ,조선인의 사상과 성격.이란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일제시대 조선통치책을 원만히 실시하기 위해 발간된 책자로서 그당시 '일본인이 본 한국인론'으로서는 지극히 중대한 의미를 갖춘 문헌자료다. 지금껏 발굴된 일제 강점시기 '조선인의 민족성' 치고 이렇게 자세하고 광범위하게 집대성한 자료는 필자의 과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없는 듯하다.

자료에 반영된 시간은 1910년대에서 20년대 당시 조선인의 성격 기질을 파악하는데 지대한 가치가 있다. 조선총독부가 3.1운동 후 식민통치정책을 스무드하게 추진시키기 위한 조사사업의 일환으로 민속, 풍속, 문화, 국민성, 종교, 신앙 등 조사를 행하여 자료집으로 발간했는데 무려 40여종이 넘는다. <조선인의 사상과 성격>도 총독방관조사과(문서과)에서 낸 그 자료 중 제20집이다.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경이감을 느낀 점은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는 조선 민족의 민족기질로서의 큰 특징의 하나가 매사에 서두르고 '빨리빨리'하는 식의 급한 성격인데, 그때 당시의 조사로 보면 정반대로 '느긋하고 매사에 서둘지 않는 유장한' 조선인의 성격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정서적으로 감정기복이 심하다는 우리의 인식과는 달리 그때 백년전의 조선인은 감정을 잘 노출하지 않고 정서적이지 않았다는 대조적 모습과 조우하게 된다.

민족성, 국민성은 역시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이민족 지배 등 역사체험을 통해 변화하는 것이다. 오늘날 조선민족의 정서적 기질이나 매사에 서두르는 등 성정을 이같은 역사의 시공간적 체험을 바탕으로 점차 형성된 것으로 추찰된다.

이 책의 내용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서문에서 이 책 출간의 취지를 "본집은 주로 조선인의 사상 및 그 성격을 조사연구하는 자료로 간주하여 각 방면으로 본 조선인의 사상과 성격관을 잡연히 모아 집성시킨 것에 불과하나, 이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조선인의 이해를 함에 도움될 것이다"고 밝히고 있다.

본편은 (1) 조선인의 개관 (2) 조선인의 성정 (3) 조선인의 사회경향 등으로 구성됐는데, 조선인의 민족성 기질은 주로 제2편에서 다루고 있다. '조선인의 일반적 성정'으로서 각종 각분야의 사람들이 관찰을 집성하여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조선인의 성벽으로서 방종, 사치, 낭비, 사행.

조선인의 주된 성격 기질로서는 ▲표면적, 형식적인 것을 즐김 ▲부화뇌동 ▲모방성 ▲무기력 ▲겁나(怯懦), 회색, 보신술 ▲이기적 판단 ▲진지함이 모자람 ▲조선인의 진지함 소유 ▲감격성의 결여 ▲의뢰심 강하고 또한 보은성 결여 ▲독립심이 적고 조선독립은 그 국민성에 맞지 않으며 ▲감각이 무디고 인내심이 강하며 울어도 진짜 감정에서 우러나서 우는 것이 아닌듯 함 ▲각도 사람의 심성. 평안도, 함경도 사람은 성질이 강경하고 용맹하여 군인에 적합하고 전라도 사람은 기예나 미술, 공업에 능하고, 충청 경기도 사람은 지모 변재에 능해 정치에 적합하며, 경상 강원도 사람은 순후 질박하여 문학의 재능이 있으며 황해도 사람은 이재에 우수해 상업에 적합하다.(1920년 6월 창간된 <개벽지> 잡지 1926년 7월호에 실린 글을 번역한 것)

그리고 '조선인의 성격관'으로 이하와 같은 특성을 열거한다. ▲사대성 ▲면종배북 ▲음모성 ▲허영심

'조선인의 특성'으로 이렇게 나열한다.

▲사상의 고착성 유동성이 결여 ▲사상의 종속성. 모든 사상을 지나(중국)에 종속시키고 그 어떤 조선의 독창적 사상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 그예로서 언어, 문학, 제도, 종교에서 모두 지나의 것을 전면 사용하여 독창성이 결여하다고 판정하고 있다. ▲형식주의, 도덕, 윤리상 형식을 중요시하고 그 실질을 추구하지 않는다 ▲당파심, 조선인이 다수 모이면 자연히 당파를 짓고 파쟁을 하게 된다 ▲문약함, 일본이 상무국인데 비해 조선은 종래로 상문의 나라다 ▲심미관 결여, 고물 보존에 있어서도 심미관이 있는 일본이 능하지만 조선은 운니의 차가 있다. ▲공사혼동, 이조의 피폐한 실례를 들면서 사욕에 배를 불리는 관료에 조선 가족주의, 중국을 그대로 답습한 데서 그 근원을 찾는다 ▲관용, 느긋하고 대범함. 일본인과 비교하여 이 성정은 칭찬해야 할 특성이다. 조선인의 성질은 기분이 유장하고 감정을 격심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속담에 조선인의 긴 얼굴과 긴 담뱃대 및 기가 유장함은 '삼장'이라 한다. 유장은 관용과 같이 감정이 평정한 평화 태연함을 상징한다. 일본인은 그에 비해 종일 바삐 돌아치고 향수할 줄 모른다. 또 조선은 예의를 옛날부터 중시하고 공자다운 예의국인 바 이조에 나타난 인물도 큰 인물이 많았다 ▲낙천적인 성격. 그 발생원인으로서 유장한 성격, 본분을 지키는 성격, 긴장 속에서도 여유를 찾을 줄 아는 것이다.

요컨대 조선인 성격 사상의 결점으로서는 형식주의, 비심미적, 문약, 당파심, 공사혼동의 '5대 특징'이며, 장점으로서는 관용, 느긋함, 순종, 낙천이 '조선인의 3대 우점'으로 꼽고 있다. "매사에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다"는 것은 100년전 조선을 찾은 서양인의 기록에도 수없이 많이 나타난다. 이런 것으로 추찰되는 것은 그때의 우리 선조들은 느긋하고 유장한 성격이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느긋한 성격은 그뒤 격동의 사회변동 속에서 성급함으로 변질, 그리고 6.25전쟁의 수난을 체험하면서 매사에 서두르는 조급한 성격으로 기울어지지 않았나 사료된다.

아무튼 일정시기 총독부 산하에서 나온 이 책은 정책적 추진을 위한 조선인의 의식구조, 민족성 파악을 목적으로 했다는 '정책을 위한 봉사'의 큰 한계를 갖고 있다. <국화와 칼>이 미국 국무성의 일본인 점령책의 문화적 근거를 삼기 위해 여류인류학자 루즈 베네딕트가 위촉을 받아 쓴 허상과 실상이 혼합된 '일본인론'이듯 이 책의 옥석혼효에 대해서는 그 진가를 가를 필요가 있다.

이 책에는 과거 우리의 많은 허상과 실상이 혼효되면서 그 허상은 물론 비판해야 한다. 또한 비판적 시각으로 우리 과거의 '거울'의 한 조각으로 될 수 있는 가치는 우리가 진지하게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김문학 일중한국제문화연구원장(현 일본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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